이상화(25·서울시청)는 서울 은석초교 1학년 때 처음 스케이트화를 신었다. 2학년때 벌써 5학년 언니들을 다 이겼다. 하지만 3학년때 외환위기로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운동을 그만둬야 했다. 부모는 딸의 열정을 피아노로 풀어주고 싶었지만 피아노 가격은 만만치 않았다. 피아노 대신 전자오르간을 열심히 두드린 이상화는 그해 가을 교내 음악 콩쿠르에서 1등을 했다.피아노가 얼음을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3학년 겨울, 이상화는 아버지 이우근씨(57)가 기분이 좋을 때면 '다시 스케이트를 타고 싶다'며 울며 졸랐다. 이상화는 4학년때 다시 스케이트화를 신었다.스케이팅은 돈이 많이 드는 운동이었다. 고교 교직원이었던 아버지의 월급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먼저 스케이트를 탄 오빠는 중학교에 올라가며 동생을 위해 얼음을 떠났다. 엄마는 새벽 4시에 일어나 훈련 나가는 상화의 도시락을 싼 뒤 하루종일 티셔츠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 매일 뛰어야 하는 둘째딸의 운동화는 자꾸만 구멍이 뚫렸다. 아빠는 실리콘을 녹여 구멍을 메우고 또 메웠다. 이상화는 그 운동화를 창피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시절 얘기를 하면서 웃는 날이 있겠지? 엄마?"라며 엄마를 위로했다고 어머니 김인순씨(54)는 기억했다.눈물을 이겨내는 열정과 근성이 이상화를 얼음 위 세계에서 가장 빠른 '빙속여제'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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