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옥시아와 WDC 간 합병이 갖는 진짜 의미에 대해 이해하려면 과거 양사 간 합병 시도 사례들부터 먼저 알아야만 함.
어차피 낸드 원툴 회사라는 한계가 명백한 만큼 WDC는 예전부터 지속적으로 키옥시아 인수 합병을 시도해 왔음.
우선 첨부 기사에 나왔듯 2017년에 도시바 메모리가 매물로 나왔을 때 200억 불을 제시하면서 인수를 시도했던 게 WDC였음. 그때 계약 체결이 거의 임박했었는데 일본에 단 하나 남은 메모리 반도체 회사를 외국에 넘기는 것에 부정적이었던 일본 정부의 반대로 결국 일본 정부가 참여한 한미일 연합 컨소시엄에 팔리게 되었음
그리고 21년에도 WDC가 키옥시아 인수 시도를 했음. 그런데도 그때도 역시 일본 정부의 어깃장으로 무산되고 말았음. 마지막 메모리 회사만은 절대로 외국에, 심지어 미국에도 넘기지 않겠다는 일본 정부의 똥고집이 졸라게 쎘음. 그래서 대신 추진한 게 키옥시아의 단독 IPO인데, 22년 3월에 키옥시아 FAB에서 오염 사고가 크게 터지고, 또 그 이후에는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꼴아 박으면서 키옥시아 IPO는 사실상 완전히 물거품이 된 상황임.
결국 그동안 키옥시아 매각이 계속 결렬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일본 정부라고 보면 됨. 그러니까 일본 정부가 답답한 게 능력은 없으면서 어거지로 키옥시아를 붙잡고만 있다가 이 사단이 났기 때문임. 키옥시아를 매각하지 않을 거면 미국이나 중국 정부처럼 각잡고 무제한 보조금을 밀어 주던가, 아니면 IPO라도 빨리 빨리 진행 시키던가 뭐 하나라도 제대로 했어야만 했는데 결과적으로 한 게 아무것도 없음.
그래서 내가 작년부터 낸드 다운턴이 깊으면 깊을수록 좋다고 계속 말했던 게 키옥시아가 뒤지기 직전의 개노답 상태가 되어야만 일본 정부가 더는 못 버티고 포기할 것을 진작부터 깨달았기 때문임. 이제 키옥시아의 경쟁력에 복구 불가능한 치명타를 받은 상황에서 수십 조 원을 지원해 줘도 장기 생존할 가능성이 희박하니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이제는 매각 말고는 답이 없는 상황임. 진작에 키옥시아를 내놓았으면 다같이 해피했을 텐데 쓸데없이 똥고집만 부리다가 상황을 여기까지 악화시켰음.
그런 관점에서 키옥시아와 WDC 합병의 가장 큰 의의는 결국 낸드 통폐합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일본 정부 손에서 키옥시아가 떠나게 되었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함. 사실상 WDC가 키옥시아를 먹어치우는 형국이니 미국 정부 입장에서 같은 미국 회사인 마이크론에 저 두 회사를 같이 합치기가 훨씬 용이해진 거죠. 그리고 원래부터 키옥시아와 WDC는 한 몸이었기 때문에 키옥시아가 완전히 맛이 가면 WDC 역시 못 버티게 되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마이크론이 다 먹어 치우는 시나리오로 흘러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함.
그리고 합병 방식 역시 아주 마음에 드는데, WDC가 키옥시아를 직접 인수하는 게 아니라 WDC의 낸드 사업부를 분사해서 키옥시아와 합치는 방식이기 때문임. 그러면 나중에 마이크론이 WDC HDD 사업부를 따로 분할하는 노력이 필요 없이 저 합병 회사를 그냥 통으로 인수하면 됨. 인수 과정이 훨씬 간편해 짐. 결국 키옥시아와 WDC의 합병은 마이크론과의 3사 통폐합을 위한 중간 단계일 뿐이며, 그 가장 큰 장애물(일본 정부)이 무너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함.
PS. 그리고 키옥시아 관련해서 일본 정부와 미국이 어느 정도 딜을 할 것이라고 생각함. 과거 마이크론이 엘피다를 인수했을 때처럼 일본 FAB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 키옥시아 임직원들의 고용 승계 및 경영권 일부 지분이 그 딜 조건임. 비록 일본 최후의 메모리 반도체 회사는 사라지더라도 미국 기업 아래에서 일본이 디램과 낸드의 주요 생산거점으로 남으려고는 할 것 같음. 그리고 그 정도 조건은 미국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임.
3자 통폐합이 완료된 낸드 시장의 미래
디램 사례를 참고하면 됨 ㅇㅇ 고정비 레버리지 효과가 큰 산업이 더 이상 서로를 죽이려고 경쟁하지 않고 암묵적으로 담합해서 공급을 통제하고 수익성 중심의 경영을 시작하면 저렇게 떼돈을 버는 산업으로 180도 변모함. 디램이나 낸드나 우연찮게도 공통점이 마지막 일본 메모리 회사가 치킨게임으로 퇴출당하고, 그리고 그 회사를 미국 마이크론이 인수하면서 업계 통폐합이 마무리 된다는 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