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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1-01 14:52
[기타] 노래하는 철학자, 신해철의 죽음과 삶
 글쓴이 : stabber
조회 : 1,618  


  • by 윤영훈

  • 노래하는 철학자, 신해철의 죽음과 삶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겠지
    굿바이 얄리 언젠가 다음 세상에서도 내 친구로 태어나 줘


    신해철은 처음 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 일곱 살 때 사건을 떠올리며 '날아라 병아리'를 만들었습니다. 이 노래의 얄리처럼 그는 며칠간 심하게 앓다가 우리 곁을 훌쩍 떠나 버렸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는 스무 살 무렵 데뷔할 때부터 유한한 인간 존재와 그 소멸을 진지하게 사유해 왔습니다.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로 대상을 받은 후 발매한 무한궤도 1집 타이틀곡인 '우리 앞에 생이 끝나 갈 때'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세월이 지나가고 우리 앞에 생이 끝나 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이제 막 우리 앞에 생을 시작할 나이에 그는 '우리 앞에 생이 끝날 때'를 상상합니다. 이처럼 신해철은 존재의 유한함에 대한 자각과 이를 넘어서려는 실존적 가치를 묵직하게 담아내며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 냈습니다. 그는 철학적 수사를 대중음악의 틀 안에 녹여낸, 그때도 지금도 찾아보기 어려운 특별한 음악인입니다. 그가 남긴 노래 중 넥스트 2집에 담긴 'The Ocean: 불멸에 관하여'를 소개합니다. 장엄한 음악과 철학적 가사는 거대한 바다(자연) 앞에 선 작은 인간의 존재 의미를 묵직하게 이끌어냅니다. 

    바다, 검푸른 물결 저 위로 새는 날개를 펴고
    바다, 차가운 파도 거품은 나를 깨우려 하네.
    슬픔도 기쁨도 좌절도 거친 욕망들도
    저 바다가 마르기 전에 사라져 갈 텐데
    그대여 꿈을 꾸는가? 너를 모두 불태운 힘든 꿈을
    기나긴 고독 속에서 홀로 영원하기를 바라는가.
    사라져가야 한다면 사라질 뿐 두려움 없이
    처음 아무런 선택도 없이 그저 왔을 뿐이니
    이제 그 언제가 끝인지도 나의 것은 아니리 
    세월은 이렇게 조금씩 빨리 흐르지만
    나의 시간들을 뒤돌아보면 후회는 없으니
    그대 불멸을 꿈꾸는 자여 
    시작은 있었으나 끝은 없으라 말하는가
    왜 너의 공허는 채워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처음부터 그것은 텅 빈 채로 완성되어 있었다.



    신해철은 상업적으로 안주하기보다 끝없이 실험하고 도전한 예술가였습니다. 서태지 신드롬에 살짝 가리기도 했지만, 그는 댄스, 발라드, 하드록, 프로그레시브, 테크노-일렉트로닉, 재즈에 이르기까지 199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이 도전한 거의 모든 음악적 실험에 자신의 자취를 남깁니다. 그가 아주 창의적인 장르 생산자는 아닐지라도, 끊임없는 실험정신과 음악적 변신은 대한민국 음악사에 그를 독창적 음악인으로 기록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는 1990년대 우리나라에 '미디'와 '사운드' 개념을 최초로 정착시켰으며, 수많은 표절 의혹으로 멍든 우리 대중음악계에서 그로부터 자유로운 몇 안 되는 음악인이었습니다.

    또한 사회 문제나 개인 삶에서나 언론과 대중의 시선을 넘어 늘 자기 목소리를 뚜렷하게 내는 용감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종종 언론은 그의 발언을 '독설'로 포장해 기사화했지만 돌아보면 그 말은 늘 '상식'에 충실한 내용이었습니다. 신해철은 느지막이 결혼을 하고 모든 가부장적 가치에 저항이라도 하겠다는 듯 그동안의 카리스마를 다 버리고 따뜻하고 심지어 귀여운 남편과 아빠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보다 인생을 더 다이나믹하게 살아낸 이가 또 있을까요?


    대담가 지승호와 함께 작업한 < 신해철의 쾌변독설 >은 그의 삶과 음악 사상을 잘 보여줍니다. 그의 진보적 사상뿐만 아니라 의외로 아주 뚜렷한 도덕적 기준들도 눈에 띕니다. 밑줄을 그으며 읽다 보면 거의 모든 지면이 얼룩덜룩해질 정도로 놀랄 만한 발언이 계속 이어집니다. 젊은 시절 신부가 될까도 심각하게 고민했던 그의 자아는 천상의 영성 대신 세속을 순례하는 '딴따라'의 길을 선택했는지 모릅니다. 

    '민물장어의 꿈'은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신해철이 1999년에 발표한 노래입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지만 널리 알려지지는 않아 늘 아쉬웠다고 밝힌 적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장례식에 울려 퍼질 노래이며 자신이 죽고 나면 뜰 노래라고 말했는데, 불행히도 그 예언이 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이 노래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 시지프스의 신화 > 속 주인공처럼 우리는 끝없이 반복되는 공허한 인생에서, 또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허무와 삶의 부조리를 느낍니다. 어렵고 때로는 고루하게 다가오는 실존적 고뇌는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싸르트르의 말처럼 우리는 광대한 우주와 장구한 시간 속에서, 통제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세상으로 내동댕이쳐진' 존재인지 모릅니다. 어디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 노래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한' 삶의 구도를 계속하리라는 굳은 의지로 끝을 맺습니다. 신해철이 자신의 노래에 담아낸 가장 중요한 철학적 진술은 바로 인간의 실존적 고뇌와 인간 의지에 대한 성찰입니다.

    그가 마침내 발견한 작은 해답은 존재론적 거대담론이 아니라 '일상'의 소중함입니다. 그가 부른 '일상으로의 초대'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혁명을 이야기합니다.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 책을 보고 생각에 잠기는' 반복적 일상이 누군가와의 만남과 관계를 통해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일상은 구원받습니다. 

    내게로 와 줘 내 생활 속으로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새로울 거야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달라질 거야


    그가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난 지금, 그가 남긴 많은 앨범 가운데 1991년에 발표한 2집 앨범 < Myself >를 꺼내 들어 봅니다. 혼자 힘으로 작사, 작곡, 노래, 편곡, 연주, 녹음까지 해낸 것도 놀랍지만, 스물두 살 청년이 바라본 세상과 그 세상에서 어떻게 살겠다는 다짐이 이 노래 아홉 곡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그는 스무 살 언저리에 썼던 가사의 고백대로 음악을 했고 그렇게 인생을 살아왔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14년 발표한 그의 마지막 앨범이, 스물두 살 자신에게 보내는 답장인 듯 < Reboot Myself Part 1 >라니 새삼 놀랍습니다. 늘 되새기며 복원하고 싶었던 그의 출발은 < Myself >의 마지막 트랙 “길 위에서”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한 구절 한 구절이 마음을 적시는 숨은 명곡입니다. 이 시대 청춘들과도 꼭 함께 듣고 싶을 만큼 소중한 노래입니다. 

    차가와지는 겨울바람 사이로 난 거리에 서 있었네
    크고 작은 길들이 만나는 곳 나의 길도 있으리라 여겼지
    생각에 잠겨 한참을 걸어가다 나의 눈에 비친 세상은
    학교에서 배웠던 것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았었지
    무엇을 해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나의 첫 깨어남이었지 
    끝없이 뻗은 길의 저편을 보면 나를 감싸는 두려움
    혼자 걷기에는 너무나 멀어 언제나 누군가를 찾고 있지
    세상의 모든 것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고
    삶의 끝 순간까지 숨 가쁘게 사는 그런 삶은 싫어
    난 후회하지 않아 아쉬움은 남겠지만
    아주 먼 훗날까지도 난 변하지 않아
    나의 길을 가려하던 처음 그 순간처럼
    자랑할 것은 없지만 부끄럽고 싶진 않은 나의 길
    언제나 내 곁에 언제나 내 곁에 있는 그대여 날 지켜봐 주오


    제 딸이 5학년이 되던 해, 신해철 20주년 콘서트에 함께 갔습니다. 아이돌 음악만 듣는 아이에게 신해철 같은 음악인도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보다는 그를 통해 나를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는 늘 자신의 음악으로 내게 말을 걸었고, 나는 그의 음악을 통해 내 생각을 더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는 내가 좋아했지만 실현할 수 없었던 음악을 펼쳐 주었고, 기득권층을 향한 분노에도 두려움으로 침묵했던 내 대신 시원하게 펀치를 날려 주었습니다. 그는 나의 외향 이면에 숨겨놓은 위선의 껍데기도 대신 벗어젖히고 자유롭게 질주했던 내 인생의 분신으로 살아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원맨 아카펠라, 'A.D.D.A'만 보더라도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한 그의 장난기에 놀랍니다. 하지만 그 보다는 천 번 이상을 덧입혀 녹음하는 그의 집요함과 성실함에 더 큰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재미와 최선, 그것이 그의 인생을 집약하는 두 철학인 듯 합니다. 그는 그렇게 '재미있게', 또 '열심히' 46년 간 자신의 삶을 '충분히' 살았고 '아쉽게' 갔습니다. 그는 사라졌지만 우리에게 계속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눌 진짜 레전드가 되었습니다. 그의 노래와 '죽음'은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을 위한 성찰로 이끌어 줍니다. 

    소년아 저 모든 별들은 
    너보다 먼저 떠난 사람들이 흘린 눈물이란다. 
    세상을 알게 된 두려움에 흘린 저 눈물이 
    이 다음에 올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지
    - '해에게서 소년에게' 中, < N.EX.T Ⅳ- Lazenca - A Space Rock Opera >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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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버리쏜 16-11-01 15:40
   
노래하는 철학자라.............
가사가 와 닿는점이 많았던.......
구절 하나하나를 다시 한번 곱씹게 만들던 그런 사람 이었죠.
세상여행 16-11-01 15:55
   
얼마전에 여자친구가 LP에 꽂혀서  턴테이블과 LP앨범을 같이 사러간적이 있었는데
그때 제가 추천한 LP앨범이 신해철 2집 이였었죠 째즈카페,나에게 쓰는편지,그대에게,
내마음 깊은곳의 너,아주 오랜후에야,50년후의 내모습
집에와서 오디오를 설치하고 듣는데 지금 들어도 진짜 명곡들이네요
90년대 서태지가 대중과 약간거리를둔 신비로운 천재뮤지션이였다면
신해철은 대중속으로 들어와서 같이 화내주고 싸워준 천재뮤지션이였죠
참 멋있는 사람이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게 너무 아쉽고 아쉽습니다
     
seoljay 16-11-01 16:22
   
90년대 서태지, 신해철 둘다 철학적인 천재뮤지션이라는데 점은 공감되네요.
당시 제우스 같은 존재인 서태지와 스스로 마왕을 자처했던 하데스 신해철..
미소고 16-11-01 16:06
   
그의 가사에 깊은 공감을 하고 한국에서 다시 나오기 힘든 아티스트라 생각합니다
노래하는 철학자란 말은 정말 정확한 표현이네요
seoljay 16-11-01 16:14
   
실제 서강대 철학과 출신..
노래하는 철학자가 맞는 말이네요.
위스퍼 16-11-01 16:22
   
벌써 2주기라니 세월 참 빠르네요.
도편수 16-11-01 18:24
   
너무나도 어이없게 운명을 달리한...
할 일이 너무나도 많은 사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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