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서촌의 한 골목에서 만난 그녀의 치마에는 ‘태평장춘’(太平長春)’이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태평’은 나라가 안정되어 아무 걱정없이 평안하다는 뜻이고, ‘장춘’은 어느 때나 늘 봄빛 같다는 말이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조선왕실 궁중보자기 유물에 새겨진 글씨였다. 궁중보자기에는 한 쌍의 봉황, 모란꽃, 석류와 같은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7일 서촌의 한 카페에서 만난 단하 씨는 “갑자기 쏟아진 글로벌한 관심이 아직도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뮤직비디오가 나온 후 해외에서의 반응은.
“블랙핑크가 입은 한복은 원래 저희 회사 온라인숍에서 팔던 제품이다. 뮤직비디오 공개 후 온라인숍에서 한복을 구매하려는 해외팬들의 방문이 하루에 3000~4000명 씩 이어지고 있다. 있다. 미국 쪽이 50% 이상이고, 나머지는 유럽과 중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지역 팬들이다. 팬클럽이나 현지 편집숍 같은 곳에서 단체로 대량구매 주문도 들어온다. 그동안 동양여성의 전통의상이라고 하면 ‘기모노’를 떠올렸는데, 이제는 ‘한복’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외국인들이 많아진 게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YG나 블랙핑크 하고는 어떤 인연이 있었나.
“YG스타일리스트가 저희 회사 홈페이지나 인스타그램을 보고 연락을 주신 것 같다. 블랙핑크 뮤직비디오가 공개되기 2주 전 쯤인 6월 초 쯤에 YG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한복진흥센터에서 주최하는 신진 한복디자이너 공모전에 서류를 접수하기 위해 원주에 다녀오던 차 안에서 전화를 받았다. YG측에서 여러 가지 옷을 검토한 후에 구매해갔다. 사람들은 제가 금수저로 태어나 인맥 넓어 누군가가 YG에 꽂아준 줄 안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아무런 네트워크도 없는, 설립한지 2년차 밖에 안되는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젊은 디자이너일 뿐이다. 지난해 10월에 캐나다 밴쿠버 패션위크에 선 적이 있는데, 제니와 로제 씨가 입은 한복도 그 때 출품됐던 작품이다. 아마도 YG스타일리스트가 그 패션쇼를 눈여겨보고 연락을 주신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블랙핑크 뮤직비디오를 봤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
“블랙핑크가 엄청나게 많은 의상을 입고 뮤비를 찍었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최종편집본이 나오기 까지 블랙핑크가 저희 옷을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뮤비가 공개되기 전까지는 YG에서도 진짜 극소수의 관계자들만 안다고 한다. 의상을 준비한 스타일리스트 팀도 최종 편집에 어떤 의상이 들어간지 모른다고 하더라. 뮤비가 공개되는 날 가슴을 졸이면서 카운트다운을 하면서 기다렸다. 뮤비 마지막 군무 장면에서 우리 한복을 입고 나오는 걸을 보고 직원들끼리 다같이 소리지르고, 하이파이브하고 난리가 났다. 미국 컴백무대인 지미 팰런쇼에서도 한복을 입고 나와서 더더욱 임팩트가 컸다.”
―국내에서는 ‘배꼽티’처럼 보이는 한복이 생소하다는 반응도 있다.
“걸그룹이 본격적으로 한복을 입고 격렬한 댄스를 춘 것이 처음이다. 한복으로서는 노출이 심한 편이어서 더욱 그런 논란이 벌어지는 것 같다. 그런데 해외에서는 반응이 좋다. 전통의상을 리디자인한 패션 중에 가장 힙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국내에서와 달리 세계 젊은이들에게 한복이 화려한 파티룩으로 받아들여지는 것같다. 만약 우리가 판매하는 한복의 원형 그대로 블랙핑크가 입고 나왔으면 이슈가 덜 됐을 것 같다. 오히려 무대에서 댄스 퍼포먼스형으로 커스텀(재가공)됐기 때문에 눈에 더 잘 띄고, 시너지 효과를 낸 것 같다. 한복은 신라,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오랜세월 동안 다양한 유행을 겪었다. 특정시대 한복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이것도 새로운 한복의 유행이라고 자유롭게 생각하면 좋겠다. 해외에서 한복이 댄스 파티의상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상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정작 우리나라에서만 노출이네 한복이 아니네 논란
유튜브에 기모노 댓글달리면 외국팬들이 한복이라고 정정해줌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