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케이팝의 연습생문화는 일본에서 왔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또한 아이돌과 비주얼락은 일본의 오리지날문화라고 굳게믿는 분이 많이 계십니다.
그러나 엄연히 아이돌문화와 비주얼락은 서양에서 왔습니다.
왜 사람들은 일본에서 먼저 왔다고 생각할까요.
그것은 일본에서 서양의 대중문화를 가지고 와서 자기의 문화로 왜곡한후 둔갑시켰기때문입니다.
그걸 일본매니아들이 일본의 오리지널문화라고 왜곡하고 날조한후 확대 재생산했기때문입니다.
2. 그러면 한국의 아이돌은 어디에서 왔는가
a. 이수만의 프로듀싱의 롤모델이 된 모리스 스타
1981년 이수만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컴퓨터공학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이때 이수만은 미국의 연예시스템을 알고 싶어서 미국의 MTV와 미국의 음반산업을 연구합니다.
이수만은 미국의 음반제작자 모리스 스타를 자신의 롤모델로 여러가지를 구상을 합니다.
모리스 스타
1978년 흑인이자 싱어송라이터였던 모리스 스타는 25세의 나이에 보이그룹 뉴에디션를 프로듀싱합니다.
모리스 스타는 재능있는 10대를 발굴해 훈련시키는 일에 수완을 과시힙니다. 그의 첫프로젝트가 뉴에디션이였죠.
또한 토끼춤으로 유명한 바비 브라운도 뉴에디션의 멤버였죠
뉴에디션과 바비브라운
뉴에디션은 1984년에 모리스 스타와 결별하게 됩니다.
독립한 바비 브라운은 두명의 댄서와 삼각편대를 이루어 춤을 추는 형태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 여기서 영감를 얻어 이수만도 현진영과 와와를 만들었습니다.
바비브라운의 토끼춤
한편 모리스 스타는 새로운 그룹를 만들기로 결심하며 흑인이 아닌 백인소년를 만들기로 결심하며
5인의 틴에지저그룹을 결성시킵니다.
바로 HOT의 롤모델이 된 뉴키즈온더블록입니다.
뉴키즈온더블록과 모리스 스타
모리스 스타는 이 5인조 백인소년들에게 흑인들의 끼와 영성이 깃든 춤과 노래를 연습시켜 데뷔시킵니다.
흑인프로듀서가 백인의 보이멤버를 기획하고 백인시장을 겨냥한것은 인종별 인구분포를 생각해서라도 방향은 옳았습니다.
백인이 85%, 흑인이 12%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뉴키즈의 첫 앨범은 처참하게 참패하고 맙니다.
흑인프로듀서가 기획한 흑인노래를 부르는 백인보이그룹를 위한 방송를 할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려도 "흑인이 길렸다"라는 것이 걸렸죠.
하지만 모리스 스타는 포기하지않고 도시의 쇼핑몰이나 클럽을 순회하며 뉴키즈온더블록을 알렸습니다.
노력이 결실을 맺었는지 플로리다의 방송국에서 Please Don't Go Girl를 틀기 사작하면서 서서히 인기을 얻었고 뉴키즈의
두번째 앨범 Hanging' Tough를 발매하면서 백인소녀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얻으며 성공의 길을 걷습니다.
스태프 전원이 흑인으로만 짜인 뉴키즈온더블록의 성공이 팝시장에 던진 메시지는 매우 컸습니다.
음악산업의 인종적 경계가 청소년들의 시장지배력 앞에서 무너진 것이었죠.
그런데 비롯 뉴키즈가 백인이었지만 백인소년들이 흑인들의 손으로 키워져 백인에게 열광한 것은 이수만에게는 엉청난 충격이었죠
이수만은 모리스 스타의 시장저변의 흐름을 낱낱이 규명하고 여기에 맞게 탄탄한 기획력으로 치밀하게 마케팅하는 모리스 스타의 프로덕션 방식에 찬탄을 금하지 못하였으며 SM의 하이틴그룹의 원형의 롤모델이 됩니다.
b. 일본의 아이돌시스템을 도입한 기획사가 있다.
한국문화가 일본문화에 영향에서 자유로울수 없다는 말은 매우 당연한 말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러하지않습니다.
대중문화 종사자들이 일본문화를 안따라하는사람이 없지만
그건 미국문화를 이해할수 있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기 힘들니까 대신 손쉽게 일본문화를 가져온것에 불과합니다.
일본문화보다 더 우월한 문화가 있는데 차라리 그걸 가져오는 것이 맞죠.
일본도 서양것을 먼저 가져온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그당시 미국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면서 가져올려면 장기간 유럽이나 미국을 유학하거나 아님 10대시절을 이태원클럽에서 미군들과 보내든가 밖에 없습니다.
박진영, 서태지, 현진영, 이현도, 양현석은 미군들이 상주하는 이태원의 문나이트에서 관련된 사람들임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일본문화보다 미국문화를 가져왔습니다..
자신의 10대 시절에 미군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미국문화를 접했으니까요.
그러나 이수만은 문나이트세대보다 윗세대라서 그런 시절을 보낼수 없기 때문에 대신 미국으로 4년정도 유학을 한 사람이고 그래서 미국문화에 빠삭합니다.(서태지는 문나이트와 관련이 없지만 양현석과 이주노가 문나이트출신이고 이수만의 초기가수들이 거의 문나이트출신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대중문화의 기획자나 종사자들은 그런 미국문화를 접할길이 없습니다.
모든 기획자가 시간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손쉽게 옆동네의 일본문화를 가져온것은 사실입니다.
DSP의 이호연사장도 그러한 사람중에 하나입니다.
한때 SM의 라이벌이라고 불리던 DSP는 쟈니스의 아이돌시스템를 그대로 직수입해서 가져온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이호연은 한밭기획에 근무하면서 쟈니스의 소년대을 모태로 하는 소방차를 프로듀싱하고 크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대성기획으로 독립하면서 쟈니스의 V6를 벤치마킹한 젝스키스를 론칭했습니다.
80년대 그룹 소방차의 모태가 되었던 일본 아이돌 소년대
소년대를 보면 노래하다가 멤버하나가 덤블링을 하는데 소방차도 덤블링을 하죠
또한 쟈니스그룹중의 하나인 V6은 멤버가 6명이며 3명씩 2팀으로 나뉘어집니다.
20th Century(토니센)팀이 3명, Coming Century(카미센)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젝스키스도 2팀으로 나누어 블랙키스와 화이트키스로 나누어집니다.
쟈니스의 시스템이 보석을 찾아내서 그 모습 그대로 개개인의 매력으로 승부한다는 것인데 DSP가 초창기에 추구했던 거죠.
또한 일본아이돌이나 쟈니스는 예능을 가장 중요시하는데
초창기에는 DSP출신 아이돌은 예능을 중시한데 반해 SM출신 아이돌은 예능을 덜 중요시했습니다.
미국문화를 추종한 기획사(SM,YG,JYP)는 영향력이 커지는데 반해 일본문화를 추종한 전통기획사(DSP,코어)는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고있는 실정이죠.
3. 일본의 아이돌과 한국의 아이돌의 차이점
일본은 프랑스의 프랑스갈에서 유래되었으며 한국은 미국의 바비브라운과 뉴키즈온더블록에게 유래되었죠.
일본은 아마추어적인 순수함을 중시해서 보컬 트레이닝, 댄스 트레이닝 같은 것을 하지 않습니다.
보컬를 가르치면 개성이 사라진다나 음치도 개성.. 뭐 이수준이라.. 무조건 보석을 찾아내서 그 모습 그대로 개개인의 매력으로 승부한다는 느낌입니다.
일본최대아이돌기획사의 쟈니스의 연습생인 쟈니스주니어들은 기존의 쟈니스 팬덤에게 얼굴 알리는 게 연습생 기간의 목표입니다.
여자애들이 그라비아 화보 찍는 것처럼 이 어린애들도 옷을 벗기고 찍게 하는 화보을 찍고 회사 측과 연계된 파파라치 집단에게 사진도 흘리기도 합니다.
또한 선배들 무대에서 1시간이나 공연도 하면서 인지도를 올립니다. 그래서 인기가 좋으면 그룹의 센터로 채용되지만 외모가 역변하는 애들은 한참 뒤에 쩌리멤버로 들어가게됩니다.
(참고로 액터즈스쿨은 음악, 댄스, 연기를 가르치는 학원입니다. 실용음악학원의 원생을 연습생이라고 하지 않는것처럼 해당이 되지않습니다)
그에 비해 한국아이돌은 강하고 하드코어한 집중트레이닝을 합니다.
SM의 연습생시스템에서 노래, 춤, 연기, 외국어(영어, 일본어,중국어)로 강훈련을 시키며 몇년이나 장기간 지속됩니다.
SM의 기획은 원석을 발굴해 철저한 트레이닝에 의한 보석으로의 메이킹이 가장 핵심입니다.
일본과 한국의 아이돌의 성격은 정반대죠.
일본의 아마추어리즘과 한국의 하드코어트레이닝의 차이는 제이팝의 몰락과 케이팝한류를 초래하지않았을까 합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81&aid=0001949341
일본의 대표적인 아이돌 스맙은 자신이 운영하는 SMAP X SMAP에 미국밴드인 토토을 초대합니다.
여기서 TOTO의 리더이자 보컬인 스티브 루카서가 리허설 도중 SMAP의 노래를 듣고 “이런 상태로는 같이 노래할 수 없다.”며 스맙의 가창력에 화를 내면서 방송에서 나가버렸습니다.
TOTO의 다른 멤버가 루카서을 달래서 스튜디오로 복귀시킨후 루카서는 스맙에게 30분 가량 보이스 트레이닝을 했습니다.
일본인이 이사건에 크게 실망을 나타냈죠.
그런데 나중에 동방신기가 보쿠라노온가쿠에 나와서 스맙의 대표곡인 라이온 하트을 열창하는데 원곡주인인 스맙보다 동방신기가 더 잘부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방팬이 급속이 늘어나게 되며 결국 소녀시대가 등장하면서 일본에서 케이팝신한류을 초래하게 되었고 아시아에 제이팝의 아성이 무너지게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된 사건이었죠.
4. 그러면 영어권국가에서 말하는 아이돌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김연아가 세계선수권에서 압도적인 기량를 선보이며 우승을 차지하자 시카고트리뷴은 김연아가 모든 미국선수의 아이돌이라고 호칭하며 극찬을 아끼지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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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an American's idol, wins short at world skating
http://articles.chicagotribune.com/2013-03-14/sports/chi-kim-an-americans-idol-wins-short-at-world-skating-20130314_1_gracie-gold-yuna-kim-triple-lutz-triple-toe-combi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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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권에서 아이돌(idol)의 의미는 본받고 싶은 롤모델이 되는 존재, 자신이 존경해야할 영웅, 자신이 가장 배울려고 하는 스승같은 존재를 말합니다.
보통 스포츠선수, 가수, 배우같은 스타들이 아이돌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 비틀즈, 마이클잭슨같은 가수나 펠레, 무링요, 김연아, 마이클조단같은 스포츠선수, 톰크루즈, 브래드피트, 디카프리오같은 배우들이 그 대상이죠.
시카고트리뷴은 자국의 피겨선수인 그레이시 골드가 김연아를 아이돌(스승)로 흠모하고 롤모델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또한 다나모자그레브감독도 무링요는 나의 아이돌이라고 하며 무링요를 통해 축구에 대해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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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모 자그레브 감독 " 무리뉴는 내 아이돌 "
http://www.managingmadrid.com/2011/9/13/2422329/champions-league-dinamo-zagreb-vs-real-madrid-match-preview"지난 수년동안 나는 감독으로써 무리뉴의 일하는 방식을 많이 분석해왔고
그가 나의 아이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을 숨기길 원하지 않는다.
그가 경기를 운영하는 방식과 경기 중 그의 리액션을 많이 좋아한다.
그는 경기에 많은 감정을 가져다오는 사람.
만약 감정이 없다면 나에게있어 축구는 실제가 아니다.
조세와 같은 사람이 없다면 축구는 지금과같은 인기를 누리지 못했을 것."
"During the last few years I have analyzed
[Mourinho's] work as a coach a lot, and I can say he is my idol. I don't want to hide that. I like his way of managing matches a lot, and his reactions during matches, he brings a lot of emotion into matches. If there are no emotions, football is not a real sport for me. Without people like Jos?, football would never be as popular as it is at the mo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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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동아시아권에서 아이돌의 의미가 전혀 틀립니다. 10대 소년소녀 가수&연기자들이 아이돌이라고 정의하죠.
이렇게 의미가 변질된 이유는 일본에서 프랑스갈(프랑스10대의 어린 여가수)이 진출하면서 일본에서 금발의 미소녀가수에게 아이돌이라고 하면서 의미가 완전히 바뀐것입니다.
즉 일본은 금발의 미소녀가수에게 아이돌이라고 정의하면서 편의상 다른 기성가수들을 아티스트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아이돌들은 기본적인 보컬, 댄스트레이닝을 받아서 완성된 형태로 데뷔하기때문에 일본식기준으로는 아티스트라고 분류됩니다.
일본의 아이돌이라면 어떠한 트레이닝을 생략한 순수함을 강조하므로 한국아이돌과 일본아이돌은 큰 차이가 납니다.
일본식영어가 한국과 중국에 역수입하면서 아이돌=10대 소녀소년연예인으로 통용되는 것이죠.
한국에서 HOT, SES, 베이비북스, 잭스키스등이 10대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얻자 한국언론의 기자들이 편의상(귀잖으니까) 일본에서 비슷한 뭔가가 있으니 아무것도 조사하지않고 일본식개념어인 아이돌이라는 용어를 차용해서 그런겁니다.
그예전 일본식한자를 마음대로 차용해서 뿌리깊게 박혀버린 것과 동일한 사례로 볼수 있죠.
영국이나 미국에선 젊은 그룹가수를 하이틴밴드라고 하죠. 이들을 따로 아이돌이라고 하지않습니다. 실제 영어권에서 틴에이저, 하이틴, 보이밴드, 걸밴드, 걸그룹, 보이그룹등이 통용됩니다.
엄연히 아이돌은 김연아, 무링요, 비틀즈같은 롤모델이 될 사회적명사에게 붙는 호칭입니다.
5. 일본이 자국문화로 둔갑시킨 영국의 락문화와 서양의 대중문화들
이수만은 HOT를 론칭하면서 SMP라는 특이한 군무와 함께 강렬한 분장과 액세서리, 복장, 머리 메이크업를 선보입니다.
특히 문희준의 패션및 의상과 헤어스타일은 항상 가장 전위적으로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동시에 안티들의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하였죠.
많은 사람들은 이걸 일본의 비주얼락에서 가져온것이 아니냐고 생각했지만 이미 영국에 원류가 있었습니다.
글램락이라고 하죠
글램락이란 Glamour rock의 줄임 말로 사전적인 의미는 현란한, 혹은 매혹적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1960년대 히피 음악에 대한 반동으로 70년대 록 음악이 쇼 비즈니스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생겨났습니다.
보통 글램락 뮤지션들은 부풀린 헤어스타일, 화려한 염색, 타이트한 선정적인 실루엣, 벨벳이나 가죽, 모피등 요란한 장식과
화려한 조명등으로 도발적이고 반역적인 인공미를 추구했습니다.
기존의 제도에 반발하며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양성적 변화가 특징입니다.
좀더 쉽게 이해하자면 히피문화(자유와 평화)의 반동으로 쇼 비즈니스적인 락음악을 부추겨 영국 런던등지에서
무
척이나 파격적이며 화려한 패션과 여성미가 풍기는 메이크업이 특징이며 게이나 레즈비언도 아닌 양성적인 변화와 음악역시 이러한 특성을
나타내듯 몽환적이며 싸이키 델릭하고 환상적인 특히 어딘가 모르게 우울함이 배인 멜로디가 특징이라고 말할수 있겠습니다.
대이빗 보위와 데이빗 실비앙이 글램락의 대표적 뮤지션입니다.
일본 비주얼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데이빗 실비앙 (David Sylvian)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참고자료 - 글램락과 데이비드 보위와 데이빗 실비앙
금기를 깨는 파격의 관능, 데이빗 보위 - "이것이 글램이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ipanova&logNo=40073848427글램과 펑크의 시대를 관통한 패션 아이콘, 데이빗 보위 (David Bowie)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ipanova&logNo=40115706285데이빗 보위 David Bowie!!!!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elnal&logNo=60147502924라르크가 존경하는 뮤지션 데이빗 실비앙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mbsIdx=473280글램락의 대표적인 곡 Dead Or Alive - Brand New Lover
글램락의 분장을 한 Black Veil Brides의 멤버
일본이 자랑하는 비주얼락은
일본애들이 보기에 글램락이 멋지게 보이니까 멋대로 표절해서 비주얼락이라고 명명하고 자기걸로 둔갑시켰고
일본매니아들이 비주얼락은 일본의 오리지날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실상 영국의 글램락이 원조고 비주얼락은 일본이 영국 흉내낸거에 불과하죠
또한 우리가 일본의 패션이라고 생각하는 고스로리룩도 모두 영국패션인 펑크락과 글램락에서 가져왔다는 충격적인 사실말입니다.
영국 여성듀오 Strawberry Switchblade
1985년에 방일한 Strawberry Switchblade
HOT의 SMP는 안무는 미국에서 패션은 영국의 글램락에서 가져오고 사운드는 좀 하드코어한걸로 가져왔죠. 물론 HOT 그자체는 뉴키즈 온더블록에서 가져왔죠.
사실상 미국과 영국에서 짜집기한것에 불과했지만 많는 소녀팬들이 HOT에 열광하게 된 계기가 됩니다.
6. 이수만은 왜 미국의 연예계 시스템을 가져올려고 했는가?!
방송인으로 잘나가던 이수만은 결국 어릴때의 한을 풀기위해서 안정된 생활를 포기하고 유학을 결심하게 됩니다.
그 어릴때의 한이라는 것은 다름아닌 영국의 소년가수였죠.
1969년 10월 클리프리처드가 내한 공연을 합니다.
내한공연이 열리기전 1968년 1월 12일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습격한 사태가 있었으며 1월 23일에 미국의 푸에블로호가 북한해군에 납치된 사건이 있었죠.
하지만 이런 사회적 분위기속에서 클리프리처드의 내한공연에 수많은 소녀팬이 열광했고 공연이 이뤄진 서울시민회관과 이화여대강당에 구름처럼 팬들이 몰려들었습니다.
MBC가 방영한 클리프 리처드의 내한공연
그당시 사건은 기성세대에게 커다란 충격이었고 그걸 지켜본 이수만도 매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이수만은 언젠가 영미권의 연예시스템를 모두 배우자라는 결의를 주게 하였고 결국 1981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이수만이 미국에 유학하면서 배운것을 자신의 사업에 모두 이식했습니다.
즉 SM의 가수들은 전부 북미와 유럽, 중남미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셈이죠
이건 이수만의 인터뷰에도 나온 이야기입니다.
뉴요커에 존 시브룩(John Seabrook)이 쓴 "팩토리걸스:문화 기술과 K팝 만들기(Cultural technology and the making of K-pop)" 에 의하면 이수만이 직접 미국에서 모든 것을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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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ewyorker.com/reporting/2012/10/08/121008fa_fact_seabrook뉴요커: 팩토리걸스:문화 기술과 K팝 만들기에서............
이수만을 인터뷰하고 2008년에 <한국으로 간 팝(Pop Goes Korea)>을 펴낸 마크 러셀은, 한국 정부가 이러한 음악계를 결딴내고 유명 음악가 몇 명을 대마초 혐의로 구속하여 수감하였다고 썼다. 1980년에 전두환이 군사 쿠데타로 집권할 때, 이수만의 라디오와 TV 쇼는 중지되었다.
이수만은 미국으로 건너왔으며, 노스리지의 캘리포니아 주립대에서 컴퓨터공학 석사 과정을 다녔다. 이 때 그는 새로 시작된 MTV의 주요 상품이었던 뮤직 비디오에 매료되었다. 장래 K팝에서 재현될 많은 요소를 간직한 80년대 뮤직 비디오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비 브라운의 1988년 히트작 '마이 프리라거티브(My Prerogative)'일 것이다. 이 곡은 뉴 잭 스윙에서 특징적인 16분음표의 셋잇단음표 이음을 썼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활달하게 걷다가 갑자기 돌아서고 백 댄서들이 이를 반복하는 브라운의 춤 동작 역시 K팝의 DNA에 스며들어 있다.
이수만은 1985년에 학위를 받은 뒤, "한국에서 미국 엔터테인먼트를 복제하려는" 결심을 한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러셀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한국으로 간 팝(Pop Goes Korea): 마크 러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