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DC유니버스가 잘하는 수용자 관점 진화와 몰입”
지난 15일 SMCU(SM Culture Universe) 아이돌 그룹 에스파의 에피소드 첫 번째, ‘블랙 맘바’가 공개됐다. 에스파 데뷔 싱글 제목이기도 한 블랙맘바는 두 번째 싱글 공개 직전 그룹의 탄생배경과 실질적인 세계관, 그리고 첫 번째 곡의 의미를 약 10분간의 영상을 통해 풀어냈다. 뮤직비디오보다는 마치 단편영화처럼 촘촘하게 이야기하는 이 에피소드는 세계관을 에스파의 콘셉트로만 단순히 구조화한 것이 아니라, 이 세계관을 통해 탄생할 수 있는 다양한 SM 유니버스 아이돌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특히 ‘아이’라고 하는 아바타이자 또 다른 ‘자아’의 존재, 그리고 그 ‘자아’가 현실 세계의 나와 공존할 수 없게 싱크를 끊어 버린 블랙 맘바가 무엇인지를 첫번째 싱글 활동이 종료되고 두번째 싱글을 앞둔 시점에 공개하면서 SMCU는 팬들에게 스토리의 단초를 던져준 것이다.
지난해 메타버스에 관한 칼럼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SM 엔터테인먼트에서 에스파 탄생은 코로나19 시대 비대면 네트워크를 활성화할 수 있는 ‘메타버스’적 그룹의 탄생이란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하지만, ‘멤버들이 존재하는 세계관’을 이야기한 곡과 앨범의 콘셉트를 코딩해 잘 숨겨놓고, 이를 수용자들이 적극적으로 해독하게 만드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점 또한 중요하다.
그전까지 블랙 맘바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팬들에게 이 에피소드는 그룹으로부터 출발한 거대한 이야기의 시작을 사실은 데뷔곡에 숨겨놓고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만들었다. 후속으로 나오게 될 앨범 연작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앨범과 앨범 사이에 숨겨져 있는 가사와 이야기의 존재, 커다란 세계관에 숨어있는 다양한 코드들을 팬들은 이제부터 찾기 시작하고, 그 코드로부터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전략을 ‘해독하기’의 전략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팬들이 한 세계관에 모여, 이야기를 잇고, 숨겨진 코드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마블 유니버스와 DC 유니버스가 가장 잘하고 있는 전략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수용자들을 진화시키고 그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것. 사이에 공간을 채울 수 있을 만큼의 코드를 해독하게 하는 것이 바로 그들의 이야기 전략이다.
‘아이는 자신이 올린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에피소드 속 대사는 눈여겨볼 만한 기호다. 결과적으로 에스파의 세계관은 팬들이 상상하고 해독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세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사르트르의 문장이 이 영상에서 기능하는 지점도 그 부분이다. 소셜 미디어 사회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본질과 존재를 고민하게 만들면서 에스파의 세계관은 이제 거대한 코드를 펼쳐놓았다. 여기서 팬들은 영상과 멤버들의 인터뷰, 그리고 에피소드와 곡들을 이어가면서 이야기를 직조한다. 스스로가 팬이면서 이 거대한 세계관의 창작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을 SMCU는 한 발짝 떼어냈다.
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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