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양질의 물량공세.
블랙핑크가 2년에 한 번 타이틀 곡을 내고 셀럽놀이를 할 동안,
뉴진스는 반년만에 양질의 곡을 6곡이나 뽑아냈으며 모든 곡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여 소비자를 끌어모았습니다.
이는 하이브라는 최고의 기획사가 세계에서 긁어모은 곡을 뉴진스에게 우선적으로 배분한 것으로,
최고 기획사의 저력을 보여준 것입니다.
블랙핑크는 테디 하나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런 시도는 꿈도 꾸지 못할 것입니다.
둘째, 유행이 끝나버린 걸크러쉬를 버린 Y2K 컨셉.
무한도전으로 도래한 90년대 유행이 지나고, 트로트 유행이 붐을 이뤘습니다.
아이돌판이 블랙핑크의 악영향으로 걸크러쉬만 가득하게 되어 사람들이 피로를 느낄 때,
외면받았던 Y2K 컨셉을 선택하여 새 시대의 흐름을 읽어냈습니다.
블랙핑크는 또 지긋지긋한 걸크러쉬를 들고나와 진부하다는 평을 듣게 된 것입니다.
셋째, 전략적인 데뷔와 컴백.
케이팝 최고의 성수기인 8월에 데뷔하여 임팩트를 만들었고,
이 임팩트를 이어 비성수기인 겨울에 컴백을 하여 차트를 지배해버려 그들의 이름을 차트에 못박았습니다.
이도저도 아닌 음원 성적을 남기고 컴백을 또 2년 후로 잡은 블랙핑크의 전술적 실패입니다.
넷째, 신선하고 청량한 뉴진스 자체.
블랙핑크가 서양인을 흉내낸다고 고양이 창법과 인상을 찡그리고 멋있는 척을 하기 바쁠 때,
뉴진스는 신선하고 청량하고 나이에 걸맞는 창법과 춤으로 걸크러쉬 시대의 종말을 알렸습니다.
뉴진스가 블랙핑크의 스포티파이 리스너를 제치고 걸그룹 원탑에 오르게 된 것은 모두 이렇게 계획된 것입니다.
이 전략들로 데뷔 후 첫 월드 투어를 스타디움에서 성사할 수 있을 만큼의 엄청난 저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블핑을 넘어 2000만을 상회하는 리스너를 보유한 뉴진스는 이미 세계 음악을 지배중인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