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화교의 기원은 1882 임오군란을 진압하기 위해서 중국 청군이 한반도로 진군했는데
이때에 들어오는 청군을 따라서 중국의 상인들이 많이 같이 들어옴
이 중국상인들은 주로 산동성 출신이 많았음.
명나라와 청군은 군인들이 쓰는 대부분의 보급을
정부에서 하는게 아니라, 정부에서 민간 상인들한테 구매해서 씀.
그래서 군인 따라서 상인들이 대거 같이 움직임.
후에 청일 전쟁으로 청군이 한반도에서 쫓겨날 때 까지 중국 상인들도 같이 한반도에 있었고
청군 물자 보급일만 한 것이 아니라 동시에 조선에 상권에까지 진출해서 장사를 함.
그리고 중국에 있던 지네 가족들도 데려와서 거주함.
청군이 쫓겨난 후에도 중국 상인들이 다 떠난게 아니라 일부는
한반도땅에 그대로 남아 장사를 하며 살았던 이들 중국 상인들이
이후 있었던 우리나라 화교의 기원이 됨.
동남아 화교의 역사는 15세기부터 중국인의 화교 이민이 시작되었고 인구도 엄청 많았고
그리고 동남아 각 나라의 상권과 경제를 지배하고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동남아를 식민 통치할 때에는 유럽 식민정부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동남아 현지인 착취에 가담했던 역사가 있는 동남아의 화교와 한반도에 화교는 성격이 다름,
이들은 한반도에서 그런 역사가 없었고 기반도 많이 쌓지 않았고 숫자도 많치는 않았음.
그러나 중화사상을 머리속에 가지고 자기들 언어와 습관 그리고
자기들끼리 뭉치는 것은 중국인들 모두의 특성이라서 한국의 화교도 마찬가지였음
그리고 한국 곳곳에 화교 학교를 세워서 어릴적부터 중화사상과 자기들의 정체성 유지에 힘썼음.
한국어를 할 줄 아나 한국 화교의 대부분이 그래서 사실상 중국인이라고 볼 수 있음.
자기들 스스로도 자기들을 한국인이라고 생각 당연히 안함.
중국(대만) 국적을 많이 유지했고 소수가 한국으로 국적을 귀화해도 이들도 자기들을 중국인이라고 여김
그리고 대륙 중국은 49년 공산화가 되었고 국교도 끊켰기 때문에, 한국에 화교들은 49년 이후
대만 국적으로 정해짐. 대륙에서 쫓겨났지만 대만 정부를 한국에서는 전통 중국이라고 봤기 때문임.
한국인과 결혼한 화교도 약간 있는데. 이들의 2세들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보면
뭐. 반반으로 보면 됨. 중국인과 한국인 반반의 정체성을 가졌음.
오히려 개개인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화교의 경우는
한국과 중국의 혼혈이어도 한국보다 중국쪽 정체성의 더 정도가 높음.
중국인들은 혼혈이어도 어디 살아도 중국인의 정체성 버리지 않음.
한국국적 취득한 화교는 한국인과 똑같다라거나, 혼혈이니 한국인과 똑같다는건 맞지 않는 얘기임.
형식적으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어도 실제적 이들의 정체성은 중국인이거나 중국인쪽에 더 가깝기 때문임.
하지만 중화사상의 자부심으로 정체성을 유지하고 동화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들의 특성을 나쁘다거나 문제 있다고 하는건 아님.
전세계 곳곳에서 정체성 지키며 살고 있는 유대인처럼 중국인들도 자기들의 특성이고 방식임.
현지의 법과 문화를 지키고 살면 됨, 속으로나 지들끼리 중화사상의 우월 의식 가지는것도 현지 그나라 사람들한테 드러내지만 않으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