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애’는 당시 2년이 채 되지 않은 시기에 8장의 앨범을 발표하면서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기획상을 받았다
더 먼저 가서 성공한 사람도 있는 듯
김연자
무명기간이 7년이었다. 4년은 한국 무명, 일본에서 3년 무명이었다."
1982년 4월. 밴드 악단장 출신 재일교포 2세 김호식과 결혼했다.
그녀 표현에 의하면 “좋아하는 사람도 얻고 비자도 얻는 일석이조 결혼”이었다. 안 되더라도 일본에 가면 그만이란 생각으로 취입한 그 음반이 대박이 났다
1982년 6월 NHK 생방송 출연
.1984년 10월 19일 한국인으로서 조용필에 이어 두 번째 NHK홀 리사이트. 라이브 레코드 한일 동시 발매.
김연자는 <아침의 나라에서>가 올림픽 주제가니까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일본 재진출을 결심한다.
이노래는 시판 2개월만에 10만장 이상 팔리며 히트한다. 덕분에 김연자는 일본에서 성공가도에 올라서 주로 일본에서 활동한다.
다음 해인 1989년 NHK 홍백가합전에서 <아침의 나라에서>를 불렀다.
조용필
미스 씨는 1982년 가수 조용필을 일본에 소개했다. 당시 일본 최대 음반사였던 CBS 소니뮤직에서 일본 전통음악 담당 디렉터로 근무하던 그가 조용필의 노래를 처음 접한 것은 1980년 말.
1982년 9월 ‘미워 미워 미워’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담은 싱글을 일본에서 냈다. “처음엔 아무 반응이 없었지만 열심히 했습니다.” NHK의 인기 프로그램 ‘가요 홀’에 조용필이 출연하자 하루에 300∼400장씩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