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더 빠른 서구권 K팝이라면
독일,스페인,스위스 등 17개국에서 1위를 했다던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는 어떨까요
1988년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라고 봐도 될거 같은데
코리아나에 대해선 이런 기록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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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해외 음악 트렌드와 정보를 얻기 어려웠던 국내에서는 교포들이 만든 3류 가수 수준으로 취급했으나, '코리아나'는 1970~80년대 당시 유럽에서 상당히 인기를 얻었던 그룹으로 아리랑 싱어즈 시절의 대표곡인 'Dark eyes'[1]는 국내에도 제법 알려져 있었고, 1980년 당시 서독 ARD 인기프로 '무지크라덴(Musikladen)' 에서 유럽의 음악 그룹 Top 10에 선정[2]되기도 하는 등 당시 해외에서는 명성도 대단했고 음악성도 알아주는 그룹이었기에 전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의 주제곡을 부르기에 결코 부족하지 않은 명성과 실력을 가진 이들이었다.
1960년대 활동한 the kim sisteres 김시스터즈 라고 들어본적있으세요?
한국최초걸그룹이래요
댓글에 the original K-Pop girl group !! Guess this is the origin of Korean girl group..!
이런 멘트보니 뭔가 심쿵했어요 한국전쟁직후잖아요ㅜ
클래식 타악기 전공자님이 그러시는데 마림바 테크닉, 타법 ,심지어 말렛 운지법 까지 완벽하대요
https://youtu.be/RaFej2a7LF0 https://youtu.be/nPfOil8K0F8
여담입니다만 얼마전 이글을 모 커뮤너티에 올렸더니 저 욕 엄청먹었습니다.
알고보니 일명 일본을 좋아하시는 무리들이 제글을 난도질 하더군요
2000년 이후엔 일본노래가 망했어도
그 이전은 무조건 일본이 우세여야하는데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K팝이 서구에서 인기있었다는게
화났나보더군요
글쓰신분이 링크주신 유툽 영상봤었거든요 김완선님이 일본갔을때 NHK 9시 뉴스에서 공항도착과 김완선님 한국공연무대와 팬들까지 취재하며 상당시간 아주 디테일하게 보여줬던데요?
일본소속사가 춤노래쩌는 김완선님을 본후 충격먹고 따라 카피하며 여가수하나 만들고 있다는걸알고 지저분한 일본기획사 행동에 계약거절하고 한국에 돌아왔다는것까지는 김완선님팬분들이 알고 있었고 그 톱이 된 여가수가 아무로나미에 일거라는 추측만 하고 있었는데~
한참 세월이 지나고 2010년 카라가 일본진출후 대박터트리고 카라 소시 케이팝걸그룹 연거퍼 일본강타한 상황에서 일본일간지에 한국과 일본가요계의 밍글기사가 실렸는데 골자는 지금의 카라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아무로나미에의 탄생도 한국과 무관치않으며 과거 춤노래모든게 가능했던 한국여가수의 일본출현과 춤노래모든게 가능한 현재 한국걸그룹카라의 일본출현으로인한 쇼크 현상을 함께 실었으니 유추가능한 상황이 아닐까 싶음요
모나미펜님글 보니 생각나는게, 엔카가 한국이 뿌리라는글도 일뽕 부들거림에 한몫했어요 일본엔카가요협회이사장 인터뷰
기사1: [미스터K의 음악편지]트로트 미스터리 (언론사- 스포츠경향)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144&aid=0000181703 주요내용: 10여년전 일본을 방문했을때 만났던 한 무명 엔카 가수는 매우 놀란 표정이었습니다. "트로트가 엔카에서 유래했다니요? 우리 엔카가수들은 모두 엔카가 한국 트로트에서 유래한 곡으로 알고 있는걸요?" 최근 만난 가수 박현빈의 증언도 같습니다. "저도 일본가서야 알았는데, 일본 엔카가수며 팬들은 모두 엔카의 본산지를 한국이라 하더라고요" 트로트와 엔카와의 관계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꼭 알아야 할 인물이 있습니다. 코가 마사오(古賀政男)라고요. 그는 엔카계의 대부, 사실상 엔카는 소위 말하는 ‘코가 멜로디’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다 할 수 있을 만큼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코가 마사오가 1931년 발표한 엔카곡 ‘사케와 나미다카 타메이키카’는 일본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는데 이게 뒤늦게 표절 시비에 휘말립니다. 당시 일본 잡지 <신청년>에서 대문짝만 하게 내보낸 보도인데요, 코가의 노래가 당시 조선의 작곡가 전수린이 발표한 ‘조용한 장안’과 지나치게 똑같다는 것이었죠. 코가 마사오와 전수린은 실제로 가까운 동료였고,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 자주 만났던 사이이기도 합니다.
당시 조선에선 무수히 많은 훌륭한 작곡가들이 데뷔 합니다. ‘직녀성’ ‘찔레꽃’의 김교성, ‘홍도야 울지마라’의 김준영, ‘타향살이’의 손목인, ‘신라의 달밤’ ‘이별의 부산정거장’, ‘애수의 소야곡’을 만든 박시춘 등이 모두 1926~1936년 사이 등장하죠. 엔카가 자리매김한 시기에 앞서 조선의 가요계는 이미 르네상스를 맞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난해 JP뉴스라는 일본 온라인 매체에는 쐐기를 박는 인터뷰가 하나가 등장합니다. 다카기 이치로 일본엔카가요협회 이사장은 아예 코가 마사오가 한국인이라고 말해버립니다. ‘엔카의 원점이 되고 있는 천재 작곡가 코가 마사오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한국인이었고, 유년시절 한국으로 되돌아와 교육을 받았다, 일본에 다시 건너와 탄생시킨 엔카의 멜로디는 결국 한국 것이고, 엔카의 원조는 한국이고….’
이사장은 나아가 “일본 엔카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 피가 섞여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기사2:" 지금 일본에 필요한건 돈이 아닌 정"(언론사-JPNEWS) http://www.jpnews.kr/8082 주요내용: 엔카가수이자 일본엔카가요협회이사장 다카기 이치로 씨 일본 엔카를 대표하는 그가 의외의 말을 입에 담았다. "일본 엔카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 시가 섞여있고, 엔카 멜로디 원조는 한국입니다...(중략).. 일본 엔카의 원점이 되고 있는 천재 작곡가 고가마사오씨는 일본 후쿠오카 출신이지만 한국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일본에 건너와 그가 탄생시킨 엔카의 멜로디는 한국의 것이었죠. 그러니까 엔카의 원조는 한국입니다."
**일본엔카의 대부인 코가마사오 (古賀 政男, こが まさお, 1904년 11월 18일 ~ 1978년 7월 25일) 와 더불어 엔카의 대모 와다아키코는 본명 김현자인 재일교포. 지금도 매년 일본 홍백가합전에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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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언론기사 올라오니 일뽕들 개난리났었습니다. 우리들조차 반대로 알고 있었잖아요
그리고 코가의 엔카가 시작된 배경과 일본엔카협회입장이예요. 단몇줄 단순몇관계자가 아닐텐데요 ㅋㅋㅋㅋㅋ
[코가 마사오가 1931년 발표한 엔카곡 ‘사케와 나미다카 타메이키카’는 일본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는데 이게 뒤늦게 표절 시비에 휘말립니다. 당시 일본 잡지 <신청년>에서 대문짝만 하게 내보낸 보도인데요, 코가의 노래가 당시 조선의 작곡가 전수린이 발표한 ‘조용한 장안’과 지나치게 똑같다는 것이었죠. 코가 마사오와 전수린은 실제로 가까운 동료였고,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 자주 만났던 사이이기도 합니다.
당시 조선에선 무수히 많은 훌륭한 작곡가들이 데뷔 합니다. ‘직녀성’ ‘찔레꽃’의 김교성, ‘홍도야 울지마라’의 김준영, ‘타향살이’의 손목인, ‘신라의 달밤’ ‘이별의 부산정거장’, ‘애수의 소야곡’을 만든 박시춘 등이 모두 1926~1936년 사이 등장하죠. 엔카가 자리매김한 시기에 앞서 조선의 가요계는 이미 르네상스를 맞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난해 JP뉴스라는 일본 온라인 매체에는 쐐기를 박는 인터뷰가 하나가 등장합니다. 다카기 이치로 일본엔카가요협회 이사장은 아예 코가 마사오가 한국인이라고 말해버립니다. ‘엔카의 원점이 되고 있는 천재 작곡가 코가 마사오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한국인이었고, 유년시절 한국으로 되돌아와 교육을 받았다, 일본에 다시 건너와 탄생시킨 엔카의 멜로디는 결국 한국 것이고, 엔카의 원조는 한국이고….’
이사장은 나아가 “일본 엔카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 피가 섞여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대목에서 모든정황파악이 된다고봐요
정상적인 사람들은 저기사보면
왜 뿌리인지 알겠습니다만.
만약 님이 그렇게 제3의것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저분 다카기 이치로씨 아직까지
일본엔카회장하고 있으니,
엔카협회회장에게 님생각을 피력하는것도 좋은방법이겠네요.
그럼 전 여기서 댓끝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