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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7-31 16:23
실제 일본도의 진실
 글쓴이 : yj12
조회 : 1,572  

흔히들 무슨 한국내에서는 일본도가 쉽게 부러지니 조선 환도보다도 구리다는 이런 되도 않은 루머들이 사실인 것처럼 퍼지고 있는데 실제 당대의 기록을 통해서 일본도의 위력을 알아보자

 

의령(宜寧)에 거주하는 선군(船軍) 심을(沈乙)이 일찍이 일본에 건너가서 칼 만드는 법을 배워 칼 한 자루를 만들어 올리니, 일본 칼과 다름이 없으매, 명하여 군역(軍役)을 면제시키고 옷 한 벌과 쌀·콩 아울러 10석을 하사하였다.

https://db.itkc.or.kr/dir/item?itemId=JT#/dir/node?dataId=ITKC_JT_D0_A12_06A_01A_00060

 

 

"우리 나라 공인(工人)이 제조한 칼은 저들의 잘 단련(鍛鍊)된 것과 같지 못하니, 저들로 하여금 시험적으로 주조(鑄造)하게 하여 만약 보통 기구(器具)보다 특이하게 된다면 작은 관직을 제수하고 그들이 잇달아 왕래하도록 허가하여 우리 공인(工人)들로 하여금 전습(傳習)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또 예조(禮曹)에 물으니, 예조에서 말하기를, "시험하여 만들도록 하는 것은 해로울 것이 없습니다." 하자, 전교(傳敎)하기를, "갑오년의 예(例)에 의거하여 그들로 하여금 칼을 만들게 하라."

(세종실록의 기록)

https://db.itkc.or.kr/dir/item?itemId=JT#/dir/node?dataId=ITKC_JT_I0_A13_09A_24A_00030

 

"군기시(軍器寺)에 간직한 왜도(倭刀)는 아무리 하품(下品)이더라도 몹시 날카로우니(甚銳利) 진실로 군국(軍國)의 중한 기구인데 가볍게 화매(和賣)하는 것은 미편(未便)합니다"

https://db.itkc.or.kr/dir/item?itemId=JT#/dir/node?dataId=ITKC_JT_I0_A18_05A_15A_00020

(성종실록의 기록)


신(臣)은 왜의 땅에 와 있은 지 3년 동안 왜놈들이 날마다 군기와 창검을 수련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후에 항복해 온 왜인 가운데는 반드시 칼을 알아보고, 칼을 만들고, 칼을 갈 줄 아는 자가 있을 것이니, 충신(忠信)으로 대해 주고 녹봉을 후히 주어 날마다 달구어 만들어 내게 하고, 부산에서 만약 전일과 같이 서로 무역하게 될 경우에는 칼을 잘 알아보는 통역을 시켜 귀중한 물품을 많이 싣고 가서 사 들여오게 하여 창졸(倉卒)간의 사용에 대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간양록

https://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dataId=ITKC_BT_1380A_0010_010_0020

 

(** 1596년 1월 1일의 바로 앞에 한 장으로 다섯 줄에 걸쳐 적혀 있는 글이다.)
도양장(고흥군 도양면)의 농사일에 부리는 소가 7 마리인데, 보성 림정로(臨廷老) 1 마리, 박사명(朴士明) 1 마리를 바치지 않았다. 정명열(丁鳴悅)은 바로 길다란 서화첩(長帖)을 받아 갔다. 이는 정 경달(丁景達)의 아들이다. 갑사 송한(宋漢). 1월 3일에 배 위에서 이번에는 환도 4 자루, 왜놈칼 2 자루를 만 들었다. 아들 회가 가지고 가던 중에(이 뒤에 분실)

(난중일기)

https://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dataId=ITKC_BT_1380A_0010_010_0020

 

 

왜경(倭京)에 머물렀다. 군기(軍器)로 소용되는 장검(長劍) 1백 자루를 샀다.

 

일본에는 다른 나라 사람에게 병기(兵器)를 몰래 파는 것에 대한 금령이 있었다.
평조신(平調信)이 생시에 가강에게 아뢰기를, “조선이 조총과 환도(環刀) 등의 물품을 사고자 하니, 허락해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하니,
가강이 말하기를, “싸움을 당하면 싸울 것이지, 어찌 병기 없는 나라와 그 승부를 겨뤄서야 되겠느냐? 하물며 이웃 나라가 사고자 한다면 어떻게 금지 하겠는가?”하였다 한다.
그러므로 이번에 사는 병기는 조금도 금지함이 없어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매매하였던 것이다.
(해사록)
 
청나라 장수로서, 우리나라에 관한 일을 맡은 자가 일찍이 일본의 보검을 구하므로, 민간에서 찾아 얻었더니 매우 좋은 칼이 있었다. 공이 이 칼을 받아 감추고, 낭관들을 시켜 다시 다른 칼을 구하게 하였더니, 다시 칼 한 자루를 구하여 올렸다. 공이 말하기를, "비록 처음 칼만을 못하지만 또한 쓸 만하다." 하고, 그것을 청장에게 주었다. 얼마 뒤에 청국 황제가 그 장수의 칼을 보고 다시 구하였는데, 공이 즉시 감추어 두었던 것을 내어주며 낭관에게 말하기를, "그때 내가 이미 이럴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하니, 듣는 자가 탄복하였다.
(연려실기록)
 
"일본도(日本刀)는 크고 작고, 길고 짧은 것이 일정하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장도(長刀) 하나를 소유하는데 그 칼 위에 또 하나의 작은 칼(小刀)을 꽂아두어 잡무에 쓰기 편하도록 한다. 또 하나 자도(刺刀)로 길이가 한 자인 것을 해수도(解手刀)라 하니 이 세 가지는 몸에 지니고 반드시 쓰는 것이다. 칼이 매우 굳세고 날카로워서(剛利) 중국 칼이 이에 미치지 못한다."
대개 도식(刀式)이 견고하고 예리한 것은 왜인들이 으뜸이다. 그러므로 그 도식을 그림으로 갖추어 싣는다.)
(무예도 보통지)
 
상이 희정당(熙政堂)에서 청사(청나라사신)를 접견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왜검(倭劍)을 사서 보내라는 분부가 있었는데, 소방(小邦)이 힘을 다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근래 왜인이 병기(兵器) 무역을 전혀 허락하지 않으므로, 지금 10년이 되도록 아직 사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사신이 말하기를, "그 말씀대로 돌아가 고하겠습니다." 하였다.
(인조실록)
 
옛날 조조(晁錯)가 병법을 논하면서 ‘기계가 예리하지 않으면 자기의 군졸을 적에게 주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기고 지는 것이 기계와 관련 있다는 것은 매우 분명한 사실이니, 신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일본 검이 좋은 이유는 쇠와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쇠를 단련하는 기술이 정교하여서입니다. 우리나라도 남쪽에서 양질의 철이 많이 생산되니 백 번 정도 쇠를 담금질하여 두드려 만들기를 일본의 방법대로 한다면 또한 예리한 검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승정원 일기)
 
일본 사람은 칼을 만드는데 칼날은 왼쪽으로 비스듬하게 하고 그 끝은 뾰족하게 하였다. 칼날이 무디면 다만 그 비스듬한 한쪽만 갈아도 칼날이 날카로워지는 까닭에 갈기가 쉽고 오래 쓸 수 있다.
그들은 칼을 제조할 때 강한 쇠와 유연한 쇠를 각각 붙여서 만들기 때문에 늘 날카롭고 잘 무디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개 칼이란 칼날이 너무 얇으면 쉽게 닳고, 등이 너무 두꺼우면 무겁기만 하고 또 쇠만 많이 허비되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 칼은 그 두꺼움과 얇음을 꼭 알맞게 하고 또 칼날도 한쪽으로 비스듬하게 하였으니, 연구해 만든 것이 아주 묘하게 되었다.
 
현실은 주변국 조선이나 중국마저도 일본도가 한중일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호평함.
흔히 인터넷 영상에서 일본도vs서양도랑 비교해서 일본도가 서양보다 강도에서 약하게 나오는데 그건 그때당시 서양은 동아시랑 다르게 강철을 사용했기 때문.
애초에 서양은 동아시아랑 다르게 강철을 사용해서 갑옷같은 것도 플레이트 아머를 입었기 때문에 그런 방어구조차 뚫을수 있게 진짜 단단한 강철로 강도에만 몰빵을 해서 만든 것이니 애초에 플레이트 아머같은 강철이 일반적이였던 서양과 그렇지 않았던 동아시아랑 비교하는게 무리가 있고 일단 한중일 중에서는 확실히 일본도가 가장 좋고 높은 평가를 받았던 거지.( 일본이 철이 안좋기 하지만 그 안좋은 철을 극복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칼 제련 방법을 개발하고 이래서 주변국들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
 
그리고 무슨 임진왜란때 조선이 발린 이유가 무슨 일본 조총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현실은 그때당시 조총은 시대적인 한계로 그때당시 기계기술이 굉장히 조잡해서 숙련된 병사가 장전하는데도 무슨 30초나 걸렸고(삼단 사격으로 어느정도 극복은 가능하지만 일단 조총자체가 워낙 장전시간이 걸리니 기술적인 한계로 그런 전법들로만으로는 완전히 커버가 안되었고) 거기다가 당시 날씨에도 영향을 받아서 습도가 높으면 고장나기 일수인데다가 기본적으로 불을 붙여서 발사하는 구조다 보니 바람불거나 비오면 그냥 쓰지도 못하고 거기다가 조총이 활이나 대포보다 기본적인 사거리도 짧을 뿐더라(특히 조총은 사거리가 겨우 100m인 반면 조선의 천자총통 같은 경우는 사거리가 무려 1.4km에 달하고)거기다가 총알도 직선으로 날아가서 활처럼 곡사도 불가능하고 거기다가 당시 장전을 할때 화약가루를 넣어야 하기 때문에 여러명이 한번 쏘고나면 연기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서 그 이후에는 제대로 장전하거나 조준하기도 어려웠는게 현실(그나마 장점은 맞았을때 관통력이 높은 것이랑 활은 기본적으로 배우는데 몇년 걸린다면 조총은 3개월 정도면 된다는 점인데 그것도 당시 조총이 기계부품이 들어간다는 점 때문에 워낙 비싸서 대량으로 보급하는게 힘들기 때문에 실제로 전쟁 당시에도 일본의 조총 비율은 대략 10%정도였음.
거기다가 조선은 사실 화약무기 관련에서도 조총보다 사거리도 훨씬더 길고 위력도 더 좋은 승자총통, 천자총통,신기전,비격진천뢰 등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무기빨은 조선이 훨씬 더 좋은게 현실이였고.(무슨 조선군이 아즈텍이나,잉카군도 아니고 총 소리에 놀라서 도망쳤다는것도 진짜 무식한 소리인게 애초에 한국은 역사적으로 일본보다 훨씬 더 빨리 대포같은 화약 무기를 사용했던 국가고 조선시대에도 전쟁도중 잘만 사용했고, 사실 행주대첩도 각종 총통이나 신기전으로 도배를 해놓고 유리한 고지에서 싸웠으니 무기빨로 승리한 것이고.)
그냥 조선이 초반에 개털린것도 그냥 일본군에 비해 창술,검술같이 기본적인 전투력 차이 때문에 발린 것인데(실제로 조선군은 일본군과 창,칼들고 근접전 가면 그대로 썰리기 일수였고)  자신들의 무능함을 숨기기 위해서 조총 때문에 졌다는 식으로 되도않은 무기탓을 해되는 것이지.(흔히 게임에서 지면 장비탓을 하는 것처럼.)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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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아들 21-07-31 16:24
   
일본도 실제로 잘 부러짐
바람아들 21-07-31 16:25
   
영국에서 일본도로 실제 방송에서 일본도의 형편없음을 방송하고  보여 줌.
     
yj12 21-07-31 16:27
   
당연히 서양식 칼이랑 비교하면 잘 부러지겠지.
애초에 서양은  당시 동아시아랑 다르게 플레이트 아머같은 강철 장비들을 사용했고 서양칼은 그런 강철 갑옷들도 뚫기 위해서 진짜 강도에만 완전히 몰빵을 한 경우이니.
애초에 동양과 서양자체가 그때 당시 환경이 완전히 달랐는데 서로 동일선에서 비교하는게 무리고.
          
바람아들 21-07-31 16:28
   
잘 부러질 뿐만 아니라 잘 들지도 않았음.
               
yj12 21-07-31 16:29
   
조선이나 중국이 평가한 기록에도 일본도 뛰어나다고 잘만 적혀있는데.
          
5천일 21-07-31 17:36
   
후쿠시마 지키미 다이크림
환생하셨네요.
후쿠시마 방사능에서  일본도 지키미로 전직하셨나요?
고생하십니다 .
ㅋㅋㅋㅋㅋㅋㅋ
바람아들 21-07-31 16:26
   
일본도의 명성은 1960~1980년대 일본이 잘 나갈때 서구 사람들의 환상에서 만들어진 허상임
     
yj12 21-07-31 16:29
   
실제로는 여러 기록에서도 일본도가 뛰어나다고 적혀있는데.
물론 세계 최강의 검은 아니지만 당시 동아시아 에서는 최고로 치는  쓸만한 칼이였다는 것이지.
바람아들 21-07-31 16:28
   
사무라이를 멋지게 꾸민 망가들에 의한 허상 그것이 일본도 임
실제 사무라이 사진을 유럽인들이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함.
참다랑어 21-07-31 16:29
   
일단 일본도가 쓰레기는 아니었으니까 우리 조상님들도 인상 깊게 봤겠죠. 항왜로부터 검술을 배우기도 했고 일본도의 영향을 받은 무기도 생겼고요. 일본도를 미화할 이유도 없고 폄하할 이유도 없고 그냥 있는 그대로 보면 되는 거 아닌가.
프로스포츠 21-07-31 16:30
   
조총으로 인해 전열이 무너지고 창에 많이 당했다고 하던데...
실제로 실력차이가 월등하지 않으면 리치가 긴 창이 우세
ultrakiki 21-07-31 16:30
   
왜도는 실제 저급한 무기 많음.

왜란당시 왜군 주력은 장창부대였고 교전시 가장 피해를 준 부대임.
     
yj12 21-07-31 16:34
   
실제로 저급한 무기였는데 무슨 조선이나 중국에서도 좋게 호평하겠음?
일본도가 무슨 한번 쓰면 부러졌다니 제대로 베지도 못해서 관상용 칼이였다니 이런 루머들은 대중매체에서 너무 일본도가 지상최강의 칼인 것처럼 미화되어서 나오니 그것에 대한 반반실때문 이런 것도 컸고.
          
ultrakiki 21-07-31 16:40
   
어디 조선이나 중국에서 호평임 ???

절삭력 빼고는 허접한 무기 맞으니까 발작하지 마시길...
               
yj12 21-07-31 17:07
   
기록보면 안보임?
                    
구름위하늘 21-08-02 13:57
   
일본도는 왜구들이 주로 사용한 무기고,
한국과 중국은 왜군과의 정식교전이 아니라 왜구와의 비정규전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일본 정규군이 창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한중은 일본 무기의 대표로 조총+창이  아니라 조총+칼이라는 오해아닌 오해를 한 것이죠.

일본도 자체는 민간인 대상이거나, 기습/암살에 주로 사용되거나
실용 목적이 아닌 자기수련, 지휘, 할복에 사용되었습니다.

전쟁사에 충실한 다큐나 소개자료를 찾아보면,
일본도의 실제 사용에 대해서 이해할 것 입니다.
                         
yj12 21-08-02 20:11
   
주로 창을 사용하긴 했지만 실전에서 창만큼 흔하게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지 칼도 사용하긴 했음.
실제 조선시대의 기록들에서도 일본과 전쟁이후 일본 검술의 무서움을 언급하고 실제 나중에 명나라에서도 병법서 무비지 등에서 일본의 검술에 대해서 연구하기도 했고.
실제로 조선기록에서도 일본도의 견고함은 뛰어나고 검술도 대단했다고 적혀 있는데.
코리아 21-07-31 16:31
   
20세기 일본은 정말 이미지 포장을 잘했음.
컴백우디 21-07-31 16:31
   
우리는 원래 활의 민족.

왜구의 장궁따위는 여진족도 안썼음.
khikhu 21-07-31 16:32
   
베는 용도로는 무시 안함
베기에 최적화 되어 있어서
Lv09 21-07-31 16:33
   
단병 접전에 조선군이 약했던건 맞지만 임진왜란 중반기에는 몰라도 전쟁 초기에 조총 운용에서 개털린건 맞죠.
현장의 장수들이 궁사로는 조총병을 상대하기 힘들다고 수많은 보고를 하기도 했구요.
부산진성이나 탄금대에서 털린것도 조총병에게 당한건데

별개로 일본도야 일본의 시대상 많이 찍어냈을 테고 그러면 그만큼 발전하기는 했을테니 괜찮았을것것 같기는합니다.
실제로 전투 기술이든 무기 차이이든 단병 접전에서 힘들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했으니
     
yj12 21-07-31 16:36
   
단순히 조총보다는 그냥 병사들의 실전 실력에서 밀리니 털린 것이 크지.
부산진성은 일단 병력차이가 너무 컸고 탄금대는 하필 그때당시 탄금대에서 비가 와서 말을 쓰기 힘든 진흙이 된데다가 거기다가 신립이 고니시의 계락에 낚여서 졌던 것이고.(그리고 탄금대 전투당시 신립군의 군대도 당시 한양을 지키는 병력들까지 끌고와서 나름 정예병들이 였고.)
소피아 21-07-31 16:37
   
왜도 무시했던 거에 울분이 담겨있나보네ㅋ
5000원 21-07-31 16:39
   
     
소피아 21-07-31 16:40
   
왜도의 진실ㅋㅋ
     
역적모의 21-07-31 16:40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무와바람 21-07-31 16:40
   
애초에 일본 사무라이들이 검을 여러자루 들고 다닌 이유가 딴게 아니죠
그만큼 잘 부러진고 내구성이 형편 없다는 거죠...





     
역적모의 21-07-31 16:40
   
노키아 ㅋㅋㅋ
     
5000원 21-07-31 16:42
   
콜라 ㅋ
     
뉴클레어 21-07-31 16:50
   
콜라도 베지못하는 쓰레기검 맞네..그만 빨아라 토왜야ㅋㅋㅋㅋㅋㅋ
          
yj12 21-07-31 17:03
   
https://www.youtube.com/watch?v=UddTKZNII68
저 콜라 실험은 그냥 실제 칼이 아닌 날도 없는 모조품 칼이고 실제 실험에서는 잘만 썰고 다님.
     
yj12 21-07-31 16:50
   
애초에 일본 무사들이 칼을 여러개 차고 다닌것도 근접전,기습대용,쌍검술,투척용 등 칼에도 여러 용도가 있기 때문임.
https://www.youtube.com/watch?v=whSEcvOxEGM&t=234s
https://www.inven.co.kr/board/webzine/2097/882861
실제로 일본뿐만 아니라 유럽 기사들도 여러 용도로 칼을 여러개 차고 다녔고.
거기다가 일본도vs서양도 하면 서양도는 동양과 달리 진짜 강철을 쓰고 다닌 지역이라서 강도에만 몰빵해서 환경자체가 아예 완전히 다르고 거기다가 2번째 사진도 현대식으로 만든 물건vs옛날 일본도하면 당연히 시대차이가 얼마나 나는데 안깨지는게 당연하고 세번째 사진은 칼 자체가 아예 날이 없기 때문에 그냥 실제 칼도 아니고 알루미늄으로 만든 칼이고.
          
구름위하늘 21-08-02 14:35
   
일본도 자체가 창을 쓰다가 못쓰게 되는 비상시에 한정하여 사용하는 "임시" 무기이기에
같은 목적으로 실전용과 휴대용의 2가지 크기 형태로 가지고 다닌 것입니다.
결국 거의 사용할 상황이 없는 장식에 가까운 것이며,
현대와 와서 주무기인 소총이 일본창이라면
큰 칼은 권총, 작은 칼은 대검 정도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동양과 서양은 오래전 부터 강철 제법이 있었으며 그 방법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두 강철을 사용해왔습니다.

참고로 아랍(여기도 동양에 속함)의 대표적인 강철검에 대한 내용: 3세기부터 존재.
다마스쿠스 검은 3세기~17세기까지 생산되었던 중동 특히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서 만들어진 검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한중의 일본도 수집(?) 행태는 일본도의 전쟁 시의 효과가 좋아서가 아니라,
장식화된 일본도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목적으로 수집광들이 있었다는 점과
일본도 수확을 전과로 인정하는 분위기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yj12 21-08-02 20:04
   
당시 동양도 강철이 있다고는 하나 그게 서양처럼 일반적이지는 않았음. 즉 동양이 무슨 서양처럼 플레이트 아머같은 강철을 흔히 사용하지 않았다는 말임.(이건 인터넷 조금만 검색해도 바로 알수있고.)
거기다가 애초에 일본도는 창한테 밀렸을 뿐이지 동시대 동아시아 검하고 비교했을때 충분히 실용성이 있었음.
당시 기록에도 일본 검술의 무서움이 적혀있고 일본도를 높이 평가하면서 조선이나 중국같은 주변국들이 수입했으니 .
우야야야야 21-07-31 16:41
   
일본도 품질이 뛰어난경우도 있겠지
일본병기류는 우리나라로 말하면 절에서 만드는경우가 많아서 균일한 품질이라고 보기힘들죠
 중앙에서 관리해야 품질관리가 되지
일부 뛰어난 품질의 장인의 도가 있다해도
일본도 전체의 품질이 뛰어난게아님
포장질이 잘된거지 쓰레기가 절반이상 과장무기

일본의 주력은 장창보병부대임요
     
yj12 21-07-31 16:44
   
단순히 일부만 뛰어나고 거의 대부분이 쓰레기였다면 조선의 기록에서도 일본도가 전반적으로 뛰어나닸고 적혀있지도 않았겠죠.
          
구름위하늘 21-08-02 14:45
   
일본도 자체가 일본군에서도 창에 대한 보조무기로 사용할 뿐이며,
한중도 당연히 기본무기는 창이었고
도검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경우는 전쟁 시에는 특이한 상황에서나 나옵니다.
그러니, 일본도가 좋으니 나쁘니는 "군인"이나 "장군"이 전쟁을 전제로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마디로 일본도의 실용성은 현대 전쟁에서는 권총의 실용성과 유사합니다.
               
yj12 21-08-02 17:16
   
일본의 주무기가 창이라는 사실은 인정함.
하지만 내말은 무슨 일본도가 툭하면 부러지는 그런 칼은 아니였고 그래도 칼중에서는 나름 쓸만했다는 것이지.
사실 창이 칼보다 훨씬 사거리도 길어서 아무리 좋은 칼 들고 달려들어도 창으로 멀리서 찌르면 끝이라 창이 칼보다 주력무기로 더 많이 쓰이는건 너무나도 당연했고.
애기강뭉 21-07-31 16:41
   
실제로 잘 부러지니 여러개 들고 다닌거고 ㅋ
전체글 보니까 재미난거 많네
     
yj12 21-08-04 01:10
   
애초에 일본 무사들이 칼을 여러개 차고 다닌것도 근접전,기습대용,쌍검술,투척용 등 칼에도 여러 용도가 있기 때문임.
https://www.youtube.com/watch?v=whSEcvOxEGM&t=234s
https://www.inven.co.kr/board/webzine/2097/882861
실제로 일본뿐만 아니라 유럽 기사들도 여러 용도로 칼을 여러개 차고 다녔고.
소피아 21-07-31 16:43
   
이야ㅋㅋㅋㅋ 첫 글이 왜도 빨아주는 글인거 보니ㅋㅋㅋㅋ 토왜 한마리 발정난거 마냥 꼬랑지 부들거리며 쓴 글이네ㅋ
     
애기강뭉 21-07-31 16:44
   
잡게 첫글이지만 가생이 오랜만에 들어와서 쓴다는게 이거
          
소피아 21-07-31 16:46
   
아 그런가요? 그럼 이전 글들도 쪽본 빨아주는 글이겠네요
               
애기강뭉 21-07-31 16:50
   
전체글보면 재밋음
리로이깁스 21-07-31 16:45
   
쪽본도 차고 다니지 말라는 일명 폐도령이 내려짐
칼 만들던 이들 숟가락 끊어지게됨
그래서 나온게 미술도검이라는 타이틀
그리고 니 미뽕도의 우수함 선동질 시작
yj12 21-07-31 16:53
   
"일본도(日本刀)는 크고 작고, 길고 짧은 것이 일정하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장도(長刀) 하나를 소유하는데 그 칼 위에 또 하나의 작은 칼(小刀)을 꽂아두어 잡무에 쓰기 편하도록 한다. 또 하나 자도(刺刀)로 길이가 한 자인 것을 해수도(解手刀)라 하니 이 세 가지는 몸에 지니고 반드시 쓰는 것이다. 칼이 매우 굳세고 날카로워서(剛利) 중국 칼이 이에 미치지 못한다."
대개 도식(刀式)이 견고하고 예리한 것은 왜인들이 으뜸이다. 그러므로 그 도식을 그림으로 갖추어 싣는다.)
(무예도 보통지)
https://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_id=CP_THE009&cp_code=cp0303&index_id=cp03030009&content_id=cp030300090001&search_left_menu=1
무예도 보통지 기록 링크는 실수로 못올려서 댓글로 올림.
애기강뭉 21-07-31 17:07
   
그래 자칭 동북아 2천년 초강대국 아니냐
히포 21-07-31 17:19
   
개소리를 길게 쓰면 전문성이 생긴다고 생각한건가?
     
yj12 21-07-31 17:24
   
실제 기록까지 올려놓았는데도 자신들 마음에 안들면 그저 개소리, 토왜 ㅉㅉ.
          
구름위하늘 21-08-02 14:49
   
서양에 대비하여 동시대 동양에서 강철이 없었다고 쓰신 문장으로
님의 논리 근거는 없어졌습니다.
               
yj12 21-08-02 17:14
   
당시 동양도 쓰긴 했지만 서양과 같은 플레이트 아머 같은 강철을 쓴게 그게 일반적으로 쓰이지는 않았음.
그러니 동양은 서양과 달리 무조건 강도에만 몰빵하지 않았고.
사실 서양칼은 그런 플레이트 아머 강철 갑옷도 부술수 있게 만든 말이 칼이지 그냥 둔기에 가깝고.
축구love 21-07-31 17:49
   
더운데 애쓴다
신간 21-07-31 18:04
   
환도와 일본도의 용도부터가 다른데 이런 글을 올리는 건 안쓰럽게 봐줘야 하나
yj12 23-09-02 00:27
   
일본도(日本刀)는 크고 작고, 길고 짧은 것이 일정하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장도(長刀) 하나를 소유하는데 그 칼 위에 또 하나의 작은 칼(小刀)을 꽂아두어 잡무에 쓰기 편하도록 한다. 또 하나 자도(刺刀)로 길이가 한 자인 것을 해수도(解手刀)라 하니 이 세 가지는 몸에 지니고 반드시 쓰는 것이다. 칼이 매우 굳세고 날카로워서(剛利) 중국 칼이 이에 미치지 못한다."
대개 도식(刀式)이 견고하고 예리한 것은 왜인들이 으뜸이다. 그러므로 그 도식을 그림으로 갖추어 싣는다.)
(무예도 보통지)

http://contents.history.go.kr/front/km/print.do?levelId=km_014_0060_0030_0030_0020&whereStr=

무예도보통지 기록의 출처는 이 게시글에 있는 무예도 보통지 기록 출처 사이트 주소가 이후에 종료되어서 다시 올림.
yj12 23-09-02 00:56
   
도양장(고흥군 도양면)의 농사일에 부리는 소가 7 마리인데, 보성 림정로(臨廷老) 1 마리, 박사명(朴士明) 1 마리를 바치지 않았다. 정명열(丁鳴悅)은 바로 길다란 서화첩(長帖)을 받아 갔다. 이는 정 경달(丁景達)의 아들이다. 갑사 송한(宋漢). 1월 3일에 배 위에서 이번에는 환도 4 자루, 왜놈칼 2 자루를 만 들었다. 아들 회가 가지고 가던 중에(이 뒤에 없음)
(난중일기)

http://www.davincimap.co.kr/davBase/Source/davSource.jsp?Job=Body&SourID=SOUR001258&Lang=%ED%95%9C%EA%B8%80&Page=5&View=Text

난중일기 기록의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