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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1-08 14:16
예전에 조선중기 일본중기 쌀생산량소출비교 갖고계신분있나요
 글쓴이 : Marauder
조회 : 610  

임진왜란 이전 이후 비교글이었는데 찾아보니까없네요.

동아게에서 본거같기도한데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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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0 16-01-08 14:45
   
임진왜란 전 조선의 생산력은 일본의 1.6배
 
150만결, 임진왜란 전 조선의 총 식량 생산량을 가리킵니다.

결이라는 단위는 고려시대 면적을 의미했으나,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생산량의 단위가 됐습니다.
세종때부터 임진왜란 까지는 1결=300두를 의미했고, 조선 후기 농업기술의 발전이 가속화된 후, 1결=600두가 됐습니다.
두는 1말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150만결 * 300말 => 4억5천만말,
1석 = 15말
4억5천만말 = 3,000만석

임진왜란 전 조선의 생산력은 3,000만석이었습니다.
반면, 일본의 생산력은 1,850만석에 불과했지요.
조선의 생산력이 1.6배 높았습니다.

임진왜란의 피해로 조선의 결수는 30만결 수준으로 줄었지만,
그 후 꾸준한 복구 노력으로 조선 후기 다시 150만결 수준을 회복합니다.
그리고 생산성이 증가하여. 6,000만석의 생산력을 가지게 됐습니다.

일본이 6,000만석의 생산력을 가지게 된 것은 메이지유신에 들어서입니다.
즉, 조선의 생산력은 임진왜란과 같은 전란의 시기를 제외하고, 메이지유신 전까지 지속적으로 앞섰던 것입니다.

이런 생산력의 차이는, 경지면적의 차이에서 기인합니다.
일본의 경지면적은 임진왜란 전후 160만 헥타아르에 불과했습니다.
임진왜란후 도쿠가와 막부는 늪과 뻘이었던 간토평야를 개발했고,
적극적인 경작지 확장 노력으로 메이지유신 당시 302만 헥타아르로 늘어났습니다.

 반면, 조선의 경작면적은 400만 헥타아르를 넘었습니다.
1910년 일본의 조사자료에 다르면 한반도의 경작면적은 422만 헥타아르였습니다.

 일본이 조선의 생산력을 앞선 시기는, 홋카이도를 본격적으로 개발한 이후입니다.
일부에서 일본이 국력이 조선초기부터 앞서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근거 없는 주장입니다.

또한 조선인은 1인당 평균 240kg 수준의 식량을 소비할 수 있었습니다. 1인당 평균 100kg 대의 식량 소비가 가능 했던 일본인보다 월등히 윤택한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4leaf 16-01-08 15:04
   
차이점이 있다면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의 경작지는 대부분 밭이고 임진왜란 이후의 경작지의 반 이상이 논이라는 점이죠.


경작지의 면적만으로 비교하기에는 밭과 논의 생산량 차이는 엄청납니다.
mago 16-01-08 15:31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