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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4-04 12:50
조선시대 신하가 왕을 대하는 태도.jpg
 글쓴이 : Attender
조회 : 4,709  

111.jpg


1112.jpg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떻게 해 신하들이 왕의말 한마디도 안지려고 들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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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ender 19-04-04 12:51
   
조선 중후기시대의 어떤왕 : 기분 X가튼데? 야, 너 좀 쉬고와라
신하 : (인생하직)
치즈랑 19-04-04 12:52
   
극한직업~~ 조선의 왕~

말 안들으면 독약 먹여`
     
Attcamo 19-04-04 14:19
   
극한직업 조선왕
실제 근무시간 14시간(업무처리,상소체크,세종이래로 사형수판결은 왕이 결정,신사들과 경연등의 정책-역사-학문 토론,과거문제출제등등등),식사시간조차 일단은 조선팔도의 음식을 맛보며 각 고장의 상태를 살피는 '업무'의 일부ㅋ,휴식시간에 취미생활으로 사냥같은 거라도 하려하면 신하들이 '님 미쳤음?사냥하면 백성동원해야하고(실제로 농번기인 봄과 가을엔 사냥ㅋ못ㅋ함ㅋ,태종과 세조가 이짓해서 사관들이 대대로 물고 씹고 뜯고 즐김ㅋ) 호위하느라 국세들어가는데 그걸 낭비하겠다고?'하고 대듬. 결국 궁에 감금된 상태나 매한가지라 휴식시간에 할 수 있는 건 음주가무인데 이것도 심하게 하면 폭군소리 들음ㅋ 성군이라 불린 세종과 성종 초반기 선조는 감금상태에서 탈궁을 위해 행행(왕이 백성의 옷을 입고 도성을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생활을 살핌)을 했다는 썰이 있음ㅋㅋㅋ
해충퇴치 19-04-04 13:03
   
자연재해를 덕이 없어서 그렇다는 유교...
     
꾸물꾸물 19-04-04 13:05
   
시기상의 차이가 있지만, 자연재해와 지도자나 특정 개인을 연결해 책임을 지우는것은

동서를 막론합니다.
     
Attcamo 19-04-04 14:21
   
프랑스도 루이 14세 말 전쟁 후유증에서의 가뭄으로 루이 14세가 노트르담에서 철야기도 해야했음. 과학이 발달한 현재 시각에서야 어리석어 보이지만 당대에는 자연재해엔 답이 없었다.
비좀와라 19-04-04 13:05
   
과연 저 사대부들이 옳은 사람 이었을 까요?

연산군이 성종 당시 대신들을 다 숙청 하였지만 한 사람만 살아남았습니다. 그 사람이 살아남은 이유는 연산군의 생모을 폐비로 하고 죽일 것을 논의 하기로 하고 당시 대신들을 다 소집 하였는데 그 사람이 생각 하기에 연산군이 다음 왕에 오르고 폐비를 죽일 이유가 약하다고 생각 해서 일부러 등청하다가 말에서 낙마하고 팔이 뿌러 졌다는 핑계로 등청을 하지 않죠.

그래서 살아남게 됩니다. 자신들에게 관한 것은 관용이네 하면서 폐비에게는 왜 그런 것이 적용이 되지 않았을 까요?

연산군을 욕만 하기에 바쁜 사람들은 그런 것을 보지 않죠. 물론 연산군이 막장인 것은 맞지만 연산군도 변명이 있단 말입니다. 워낙 당시 사대부들이 위선에 쩔은 썩은 집단 이었단 말입니다.
해충퇴치 19-04-04 13:09
   
저거 좋은 내용이 아닌데요?

자연재해를 덕이 없어서 그렇다는 유교 탈레반들

그걸 핑계로 냉큼 정적(윤필상은 훈구파)을 처리하려고 하다가 왕한테 딱 걸림

왕이 죄도 없는데 처리하는건 말도 안된다고 명령하니까 신하가 우리는 왕을 위해 일하지 않으니 우리(사림파) 뜻대로 한다....

신하가 아니라 간신배네요
ParisSG 19-04-04 13:16
   
(신하 기준) 당대에는 성종을 세종과 동급으로 봤었죠. 그만큼 지네 말을 잘 들어서
그럴껄 19-04-04 14:00
   
성종 대는 신권이 강하던 시대였습니다.
성종의 출신성분 영향도 강한데,
윗대 왕은 세조와 예종입니다.
세조는 단종을 몰아내고 즉위했고, 그 다음 예종은 세조의 서자이며,
성종은 세조의 맏아들의 둘째아들...

예종 성종 모두 적장자가 아니죠.

예종은 1년도 못 살고 죽었으며,
성종은 13세쯤에 즉위해서 20대까지 수렴청정을 했습니다.

신하들에게서 키워졌다 해도 무방합니다.
중반에 가면 신하들과 꽤나 의견대립을 하지만,
결국에는 "더러워서 안해" 수준으로 따라가고 말죠.

그리고, 그런 왕의 모습을 불만스럽게 바라본 이가 바로 세자였던 연산군입니다.
즉위하고 흑화되어 버리죠.

종합하자면, 조선시대 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왕과 신하의 관계는 왕에 따라 천차만별이었습니다.
sunnylee 19-04-04 14:06
   
원래,, 유교를 숭상한 조선을 말아먹은것도 저런 사대부임.
 차라리  생전에 거짓말 한번 안한 사람
자신에게 돌을 던지라고 해라..
축구게시판 19-04-04 14:44
   
훈구파가 부패했다지만 따지고 보면 그때가 그나마 조선이 강국으로 유지되던때...
과학도 발전하고 군사력도 유지되었죠.

사림이란 말만 앞서는 것들이 훈구파를 배척하고는 지들이 부패해버린 순간부터

조선은 계속 약체의 길을 걸었죠.
강운 19-04-04 15:07
   
저당시 신하들이 세조 측근들이 많았고 아직 유지 할때 아니였나요
     
Attcamo 19-04-04 18:15
   
세조 11년, 왕이 사냥나가다 말에서 떨어지자 사관 채중이 이를 기록.

세조: 야 씨 쪽팔리게 그걸 적냐? 지워.
채중: 전하께서 사냥중에 말에서 떨어진 걸 적지말라고 하셨다고 적음ㅋ
세조: 너 도랐냐? 야. 이 새끼 영창ㄱㄱ시키고 다른 놈 데려와.
채중의 후임 곽인서: 전하께서 사냥중에 낙마한 사실을 기록한 전임 영춘추관사 채중이 주상께서 낙마한 사실을 기록한 것을 수정하라는 명을 듣지 않자 삭탈하고 유배보내심.
세조: ...이 미친 새끼들이...야, 얘네 직장 폐쇄해.
곽인서: 전하께서 (역사를 기록하는)영춘추관을 폐쇄하려고 하는데 이건 폭군 주걸이나 하던 짓이라고 적음ㅋ
(전국에서 상소 빗발)
세조:...내가 졌다...그래도 한번 내린 영을 거두는 건 쪽팔리니까 영춘추관을 없애진 말고 그냥 춘관과 추관으로 분리하자...
신하들: 음ㅋ그럼 다신 임금이 사관 없애려 들지 못하도록 아예 법으로 만들죠ㅋ 경국대전에 수록합니다. ㅇㅋ?
세조:...내가 더러워서 불교를 밀든가 해야지...ㅅㅂ...

천하의 세조도 왕 독재는 못하던게 조선ㅋㅋㅋㅋ

실제로 사관일을 두루 맡던 채씨와 곽씨들은 연산군 때 줄줄이 죽어나가면서도 저짓을 멈추지 않아서 현재 한국에서 소수 성씨가 됨ㅋㅋㅋ
닥생 19-04-05 00:21
   
세조 같은 경우는 반란 일어날까봐 전전긍긍한 인물임. 공신들 비위 맞춰 주느라 무리한 특혜를 줌. 이방원과는 차원이 다른 저급한 임금임.
숭이사절 19-04-05 03:22
   
그러니 500년을 해먹을 수 있는거지, 중국과 일본이 그 난리법석을 피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