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어
캡쳐에도 떠 있듯이 팩트는 이전엔 한국에서 장어가 보양식이 아니였다라는 황교익의 주장이 전제로 깔려 있는 것임.
애초에 이거에 대한 반박으로 네티즌들이 고서를 들어 반박하고 있는 것인데 이걸 또 "즐겨 먹었냐 안먹었냐"로만 논점을 맞춰서 물타기를 하고 있음.
게다가 약으로만 여겨 죽으로만 음용했다는 것도 사실과 다름
식료찬요(1460년에 발행.) 목차만 봐도...
2. 한정식
이것도 역시 애초 황교익의 주장에 대한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음.
황교익은 1인 1상을 주장하며 그의 1인분 상차림 예찬론(이것도 따지고 보면 그의 일식에 대한 무한 찬양에서 비롯된...)에 근거해 커다란 상에 한꺼번에 음식을 먹게끔 차리는 상차림이 이전엔 없었고 기생집 또는 요정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주장을 한것임.
하지만 이것도 사실과 다름.
애초에 그 명월관이라는 요릿집도 궁중 음식 주임관이 조선 영조의 음식과 연회의 요리법과 상차림을 민간으로 전수시킨것인데 그렇다면 한정식도 궁중음식이 기원이지 어떻게 기생집이 기원이 될수가 있음? ㅎ
(이건 마치 라볶이가 호텔 음식이였는데 거기 요리사가 김밥천국을 개업해서 라볶이를 어레인지 해서 메뉴로 내면 라볶이의 기원이 김밥천국이 된다는 식의 왜곡일뿐....)
-그리고 현재 한정식의 상차림의 시간순 배열과 동일한 것으로 알려진 진어찬안-
궁중잔치 엿볼 수 있는 정해년(丁亥年, 1887년) 대왕대비전 진어찬안
궁중의 국가행사는 모든 일이 끝난 후 기록물로 의궤(儀軌)를 만들어 보관했다. 이러한 기록물은 조선시대 궁중연향을 시각적으로 살필 수 있는 자료로, 공간 구성과 참여 인력들의 역할, 의례용 물품의 형태·음식·복식·음악 등과 관련된 다채로운 정보를 그림으로도 나타냈다. 특히 궁중음식과 관련해 찬품(饌品)조가 있어 신분에 따라 상차림명이 있고 의례순서에 따라 올리는 음식들을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궁중잔치를 잘 알 수 있는 사례로, 고종 24년(1887년, 정해년) 1월 익종비 신정왕후 조대비의 팔순을 기념하기 위해 경복궁의 만경전에서 열린 잔치를 예로 들면, 27일 내진찬(內進饌)과 야진찬(夜進饌), 28일 대전회작(大殿會酌)과 야연(夜宴), 29일 왕세자회작(王世子會酌)과 야연(夜宴) 등 여섯 차례를 행했다.
연회음식에 관해서는 연회 일자별로 차리는 찬안(饌案)의 규모·종류·차리는 음식의 이름을 적은 찬품단자(饌品單子)를 만들었다. 14일 전부터 숙설소는 만세문 안에 1백 66칸을 설치해 필요한 식품 재료를 품의하고 잔칫날에 맞추어 미리미리 준비했으며, 연회음식의 조리는 규모에 따라 적당한 인원의 숙수(熟手)를 동원해 만들었다.
대왕대비전 진어찬안에는 47그릇이 오르고, 유기그릇과 갑번자기를 썼으며, 붉은색 칠을 한 다리가 높은 상 6개를 붙여서 음식을 30~40㎝로 괴였다. 음식의 종류로는 떡류·과자류·사탕·마른과일·생과일·음청류 등 33가지와 탕·전·적·포·회 등 고기·생선 음식이 11가지이며, 꿀·겨자·초장이 3가지였다. 고기음식은 금중탕·열구자탕·각색절육·편육·족병·삼색전유화·전복초·해삼전·각색화양적·전치적·잡증·각색갑회 등이 올랐다.
진작의 궤 (1828년 순조 28)
3.불고기
황교익이 자꾸 불고기가 야끼니꾸의 번역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바로 김윤경 선생의 1965년 인터뷰임.
하지만 당시 인터뷰를 직접 찾아서 잘 읽어보면 알수 있듯이 이건 "야끼니꾸가 불고기의 번역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야끼니꾸를 불고기라 말할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란 맥락일뿐.
야끼니꾸가 불고기라는 명칭의 기원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님.
게다가 불고기 명칭에 관해서 더 앞선 기록도 존재함.
이기문(서울대 명예교수)가 2006년에 쓴 "새국어 생활" 제 16권 4호에 실린 글.
4. 멸치육수
육수란것은 그 범위가 다양하고 내는 방법도 다양함.
그냥 재료를 넣고 끓여도 육수고 생선에 소금을 더해 발효시킨뒤 내려서 국물을 낸것도 육수임.
고로 멸치로 국을 만들어 먹었으면 그것도 이미 포괄적으로 육수의 개념인것임.
다만 일본식으로 삶거나 훈제한뒤 말린 생선으로 국물을 내는 방법이 일제 강점기에 들어은 것은 맞음.
고로 그런 일본식의 육수내는 법이 전해졌다고 말한다면 그건 맞는 말이지만 육수를 내지 않았다는 비약은 틀린 것임.
게다가 당시 황교익의 발언은 육수발언뿐 아니라 멸치를 어업한것도 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주장했었음.
육수발언만 부각되어 이 발언은 묻힘 ㅎ
5. 삽겹살
"삼겹살을 즐겼다는 기사가 아니라 삼겹살이라는 부위가 맛있다는 기사를 가져와서 선동"?
아니 이게 말인지 막걸리인지 ㅎ
황교익은 돼지고기의 부위중에 유독 삼겹살만 즐겨먹은 이유가 육류의 다른 부분은 일본에 수출되서 어쩔수 없이 삽겹살만 먹게 되었다는 논지인데
그 이전부터 돼지고기 부위중에 삽겹살이 가장 맛이 있었고 선호했으므로 이 주장은 틀렸다라고 말한걸 왠 난독이...ㅎ
그리고 끝으로...
요즘 보면 황교익을 까는게 무슨 찢이 묻어서 그렇다느니 여당에 붙어서 그렇다느니 하면서 정치논리로 자꾸 변질시키며 까는 사람들을 무슨 베충이나 여당쪽 알바로 몰아대는데...
분명한건 황교익 일뽕논란은 그가 여당 지지발언하기 훨씬 이전부터였고 예전부터 지속적으로 까이고 있었다는게 팩트임.
이걸 자꾸 정치논리로 물타기 하지 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