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새 잡담게시판으로 가기
(구)잡담게시판 [1] [2] [3] [4] [5] [6]
HOME > 커뮤니티 > 잡담 게시판
 
작성일 : 17-06-23 22:15
조선인들의 미국 인식수준
 글쓴이 : 레스토랑스
조회 : 1,775  

http://upload2.inven.co.kr/upload/2017/06/23/bbs/i16535245303.png

http://upload2.inven.co.kr/upload/2017/06/23/bbs/i15420161718.png

http://upload2.inven.co.kr/upload/2017/06/23/bbs/i13752629934.png

http://upload2.inven.co.kr/upload/2017/06/23/bbs/i13211549398.png

http://upload2.inven.co.kr/upload/2017/06/23/bbs/i13281892548.png

http://upload2.inven.co.kr/upload/2017/06/23/bbs/i16151407970.png

http://upload2.inven.co.kr/upload/2017/06/23/bbs/i16289985587.png

http://upload2.inven.co.kr/upload/2017/06/23/bbs/i16131972522.png

작은 촌락 수준의 나라 미국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coooolgu 17-06-23 22:18
   
왜냐면 알면 안돼기 때문이죠....비밀로 해야 자신들의 기득권이 지켜지니깐.
     
R포인트 17-06-24 00:14
   
국정 패단의 되물림이군요...
소리까무잡 17-06-23 22:18
   
조선은 진짜 한반도 역사상 제일 세상물정 몰랐던 나라가 아니었나 싶네.
     
이리듐 17-06-23 22:27
   
중국은 영국을 외교문서에 '오랑캐 이'자를 써서 보낼정도로 무지했다가 아편전쟁으로 개털렸죠.
          
소리까무잡 17-06-23 22:35
   
중국이 영국을 몰랐던게 아니라 영국의 힘을 몰랐던거겠죠.
그당시 영국조차 중국의 힘을 몰랐었으니까요.
힘을 모르는것보다 그나라의 정보를 알수 있는 루트 자체가 거의 없었던게 문제임.
조선은 오로지 중국만 봤었으니까..중국이 영국을 무시하면 아.. 그런가보구나.. 이런 생각밖에 못함.
               
이리듐 17-06-23 22:42
   
그나라의 정보를 알수 있는 루트가 거의 없다는건 조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죠
                    
소리까무잡 17-06-23 23:00
   
조선에게 해당되는 말이겠죠.
이리듐 17-06-23 22:19
   
저 대화가 몇년도인지는 모르겠으나 1880년 조선책략이 들어오고부터는 인식의 변화가 생겨서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게 되죠. 이를 계기로 1883년 보빙사를 파견해서 미국을 시찰해서 산업의 중요성도 깨닫게 되죠.

특히 조미수호통상조약에는 거중조정이라고해서 한 국가가 억압적 상황에 놓일 경우 도와주도록 되어있는데 적어도 1882년만하더라도 미국을 강대국으로 인식하고 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조선이 1876년 강화도조약을 체결한것이 첫 근대적조약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래도 그 이후로는 시각이 다르다고 봐야되요
     
촐라롱콘 17-06-23 22:48
   
본문글의 고종과 김병학의 미국에 대한 문답이 있었던 시기는
1971년 신미양요가 일어나기 직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비록 저 당시에 예외적으로 일본은 미국의 힘과 통상압력에 일찍 굴복한 편이었지만...
저 당시인 19세기 후반시기만 하더라도 미국은 유럽 강대국들과 비교하면
적어도 군사력 측면에서는 적은 규모이고... 유럽에 비해 적극적인 제국주의의
길로 들어서기 전인지라...(남북전쟁시기 일시적으로 규모가 비대해지기는 했지만)

미국이 제국주의와 대외평창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시기는 신미양요 시기로부터도
20여 년이 지난 19세기가 저물어가던 무렵에 발생한 미국-스페인 전쟁 이후입니다.
          
이리듐 17-06-23 22:54
   
그렇군요. 다만 미국 멕시코 전쟁으로 국경이 획정된게 1847년이고 알래스카 매입이 1867년이니까 지금의 영토가 된게 1867년이지만 뭐 그 시대에는 미국이 얼마나 큰지를 모르니..
솔루나 17-06-23 22:20
   
저건 아직 사절단이 미국에 가기 전 같네요. 당연히 가서 보질 않았고, 주변국들도 시시 했으니
헬로가생 17-06-23 22:23
   
저 빌딩들이 아직 있다는 거...
한낮의달 17-06-23 22:24
   
영의정 진짜 노답이네 진실을 알면서도 저랬던 거겠죠?
소리까무잡 17-06-23 22:26
   
저당시 조선인이 미국을 갔다면 신세계처럼 보였을거 같네.
외계문명수준의 차이
잭윌셔 17-06-23 22:27
   
1900년대 초 조선 사진이랑 미국 사진이랑 비교해보면 충격임.
고층 빌딩과 차가 즐비한 미국과 전기도 안들어오는  오두막 초갓집 조선.
천지개벽
다잇글힘 17-06-23 22:28
   
조선의 호연지기가 느껴지네요 ^^;;;
     
jungjisa 17-06-23 22:30
   
바보같은 소리도 적당히ㅋㅋ
이건 호연지기가 아니라 그냥 무지한겁니다 ㅋ
          
다잇글힘 17-06-23 22:35
   
님에게서도 역시 호연지기가 느껴집니다 ㅋㅋ
               
jungjisa 17-06-23 22:37
   
호연지기:도의(道義)에 근거(根據)를 두고 굽히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바르고 큰 마음

칭찬 감사합니다 ㅎㅎ
          
tuygrea 17-06-23 22:41
   
진지충....
               
jungjisa 17-06-23 22:43
   
비꼬는 것이었다면 제가 이해를 잘못했네요 ㅋㅋ
커리스테판 17-06-23 22:28
   
고종이 클리블랜드 대통령에게 국서 쓰기전 일이군요
jungjisa 17-06-23 22:28
   
근대화를 위해 국제 사회의 정보파악에 동분서주 한 일본과 조선의 차이네요.
     
솔루나 17-06-23 22:34
   
그 차이가 아니라 그냥 접한 시기의 차이임
10년이상 차이가 남.
     
이리듐 17-06-23 22:37
   
중국 : 아편전쟁(1840년) -> 난징조약(1842년)
일본 : 미일화친조약(1854년)
조선 : 강화도조약(1876년)

3국중에 무력으로 개항당하지 않은 나라가 있습니까?
          
jungjisa 17-06-23 22:40
   
그 후 일본은 구미의 힘을 깨닫고 국제사회의 정보 파악에 힘써서 자신들이 생존할 방법을 꾀하였죠.
               
이리듐 17-06-23 22:42
   
거 누가들으면 조선은 개항이후 노력을 안한줄 알겠습니다.
                    
jungjisa 17-06-23 22:44
   
삽질을 노력이라고 하진 맙시다.
                         
이리듐 17-06-23 22:48
   
삽질이라고 폄하하진 맙시다
                         
tuygrea 17-06-24 01:44
   
조선에서도 구한말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고 근대화하려는 시도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부패한 조선 기득권들이 지들 밥그릇 잃을까봐 방해해서 실패했죠
                    
소리까무잡 17-06-23 22:58
   
다 망해갈때는 바보라도 노력합니다.
근데 이미 늦은거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예 모르고 중국만 보고 앉아있으니..
                         
이리듐 17-06-23 23:01
   
러일전쟁(1904)전까지는 망해간다는 표현은 부적절하죠.
                         
이리듐 17-06-23 23:03
   
강화도조약 이후 1880년대부터 세계 여러나라와 통상조약을 맺게 되는데.. 누가들으면 한일병합때까지 중국만 바라본줄 알겠습니다
                         
이리듐 17-06-23 23:05
   
참고로 강화도조약(1876)때부터 '조선은 자주국이며..'라는 표현이 들어갑니다
                         
jungjisa 17-06-23 23:10
   
애초에 자주국이었으면, 굳이 그런 표현으로 강조할 필요 없는거 아님?

그 당시엔 중국도 자기 코가 석자이니까, 처치 곤란한 조선을 '우리랑 관계 없는 자주국임. 그니까 님들이 알아서 하세요.' 라고 선긋고 자기 몸 처신한건지.
                         
이리듐 17-06-23 23:14
   
jungjisa/ 소리까무잡님이 망해갈 때까지 중국만 보고 앉아있었다길래 하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님은 무슨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하시나요?
               
스리즈 17-06-23 23:34
   
일본을 무력으로 개항시키는 나라가 미국이 아니라 다른 유럽권 국가였으면
아마 틀린 결과가 나왔을겁니다~
그 당시 미국은 국제적으로 산업화나 파워가 다른 서양열강에 부족한 편이었고
일단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나라인지라..
무엇보다 19세기 중반에 미국은 남북전쟁으로 인해 자국의 내부의 상황이
않좋아서 외부에 신경을 둘 여유도 없었죠 ! 떄문에 근대화 할 시간을 벌은 것

반대로 조선의 경우 중국이나 특히 일본같은 나라들과 가까웠기에 견제가 심했는데도 불구하고 짧은 기간 동안 상당한 진전을 이룬것을 보면 (신분제 폐지,도로 정비,근대적인 법 계정등) 조선이 특별히 무능하다고 할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많은 인구와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고
서양 열강의 식민지로 전략한 중국에 비해 부족한 기간 대비 상당히 선전한 것이죠
가새이닫컴 17-06-23 22:32
   
지도자의 눈과 귀가 멀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참 교훈
섬나라호빗 17-06-23 22:41
   
주고받고
굿잡스 17-06-24 00:15
   
?? 넷상에서 국적불명의 익명을 이용해서 출처불명에

무슨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는지 의심스러운 그림막짤로 어쩌고 하는 걸

역사입네 받아들이는 건 좀 신중하길 바라군요.



고종실록 11권, 고종 11년 6월 24일 을미 1번째기사 1874년 조선 개국(開國) 483년 

중국의 예부에 회답 자문을 보내다
 

 


중국(中國) 예부(禮部)의 자문(咨文)에 대한 회답(回答)에,

"총리각국사무아문(總理各國事務衙門)의 편지와 다시 심보정(沈葆禎)이 신들에게 보내온 편지 내용에 근거하면, 서양 장수(西洋將帥) 쁘로스뺄 지겔〔日意格〕이 말하기를, ‘일본(日本)은 아직도 장기(長崎)에 5,000명의 군사를 가지고 있고 대만(台灣)에서 부대를 철수한 다음에는 조선과 해 보려고 하는데, 프랑스〔法國〕와 미국(美國)은 조선과 지난번의 사건을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아무래도 병선(兵船)을 가지고 일본을 도와 줄 것이니 조선은 세 나라를 대적하기에 부족하다. 만약 중국이 조선으로 하여금 프랑스나 미국과 통상조약(通商條約)을 맺도록 한다면 일본은 형세가 고립되어 감히 군사를 출동시킬 수 없게 될 것이며 조선의 백성들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설사 일본이 무모하게 군대를 출동시킨다고 해도 조선 자체의 힘만으로도 넉넉히 지탱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상고하건대, 일본이 조선을 넘겨본 지가 어제 오늘이 아니라는 것은 외국의 신문지상에도 자주 실리는 말이니 쁘로스뺄 지겔의 말이 꼭 근거 없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만약 일본이 조선에 대하여 침략하려 하고 프랑스와 미국의 원조 까지 받게 된다면 형세는 무심하게 보고만 있기 어렵습니다. 프랑스나 미국과 통상조약을 맺는다는 말은 종전부터 각국(各國)에서 자주 이런 의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신의 아문(衙門)을 통해서 잘 막아버렸던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는 이미 들은 말이 있으니 마땅히 사실에 따라 알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예부(禮府)에 명령을 내려 참작하여 조선 국왕에게 비밀 자문을 띄움으로써 미리 대책을 세우도록 할 것을 청합니다. 삼가 별지를 붙여 비밀리에 진술하니, 삼가 황상(皇上)께서 살펴주시기를 바라며 삼가 아룁니다.

동치(同治) 13년(1874년) 5월 30일에 토의된 대로 주비(朱批)를 받들고, 의논한 대로 삼가 이것을 바칩니다."

하였다.



 

고종실록 19권, 고종 19년 8월 5일 무오 5번째기사 1882년 조선 개국(開國) 491년 

서울과 지방에 세운 척양비를 모두 뽑아버리라고 명하다

또 전교하기를,

"‘우리 동방(東方)은 바다의 한 쪽 구석에 치우쳐 있어서 일찍이 외국과 교섭한 적이 없으므로 견문이 넓지 못한 채 삼가고 스스로 단속하여 지키면서 500년을 내려왔다.

근년 이래로 천하의 대세는 옛날과 판이하게 되었다. 영국·프랑스·미국·러시아 같은 구미(歐美) 여러 나라에서는 정교하고 이로운 기계를 새로 만들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사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들은 배나 수레를 타고 지구를 두루 돌아다니며 만국(萬國)과 조약을 체결하여, 병력(兵力)으로 서로 견제하고 공법(公法)으로 서로 대치하는 것이 마치 춘추 열국(春秋列國)의 시대를 방불케 한다. 그러므로 천하에서 홀로 존귀하다는 중화(中華)도 오히려 평등한 입장에서 조약을 맺고, 척양(斥洋)에 엄격하던 일본(日本)도 결국 수호(修好)를 맺고 통상을 하고 있으니 어찌 까닭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겠는가? 참으로 형편상 부득이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병자년(1876) 봄에 거듭 일본과 강화도 조약(江華島條約)을 맺고 세 곳의 항구를 열었으며, 이번에 또 미국·영국·독일 등 여러 나라와 새로 화약(和約)을 맺었다. 이것은 처음 있는 일이니 너희 사민(士民)들이 의심하고 비방하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교제의 예(禮)는 똑같이 평등함을 원칙으로 하니 의리로 헤아려 볼 때 장애될 것이 없고, 군사를 주둔시키는 의도는 본래 상업 활동을 보호하는 데 있으니, 사세(事勢)를 놓고 참작하더라도 또한 걱정할 것이 없다.

교린(交隣)에 방도가 있다는 것은 경전(經典)에 나타나 있는데, 우활하고 깨치지 못한 유자(儒者)들은 송(宋) 나라 조정에서 화의(和議)를 하였다가 나라를 망친 것만 보고 망령되이 끌어다 비유하면서 번번이 척화(斥和)의 논의에 붙이고 있다. 상대쪽에서 화의를 가지고 왔는데 우리 쪽에서 싸움으로 대한다면 천하가 장차 우리를 어떤 나라라고 할지를 어찌하여 생각하지 않는단 말인가? 도움 받을 곳 없이 고립되어 있으면서 만국과 틈이 생겨 공격의 화살이 집중되면 패망할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헤아리면서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면 의리에 있어서도 과연 무엇에 근거한 것이겠는가? 의론하는 자들은 또 서양 나라들과 수호를 맺는 것을 가지고 점점 사교(邪敎)에 물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진실로 사문(斯文)을 위해서나 세교(世敎)를 위해서나 깊이 우려되는 문제이다. 그러나 수호를 맺는 것은 수호를 맺는 것이고 사교를 금하는 것은 사교를 금하는 것이다. 조약을 맺고 통상하는 것은 다만 공법에 의거할 뿐이고, 애초에 내지(內地)에 전교(傳敎)를 허락하지 않고 있으니, 너희들은 평소 공맹(孔孟)의 가르침을 익혀왔고 오랫동안 예의(禮義)의 풍속에 젖어 왔는데 어찌 하루아침에 정도(正道)를 버리고 사도(邪道)를 따를 수 있겠는가? 설사 어리석은 백성들이 몰래 서로 전습(傳習)한다 하더라도 나라에 떳떳한 법이 있는 이상 처단하고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 어찌 숭상하고 물리치는 데에 그 방도가 없다고 근심하겠는가?

그리고 기계를 제조하는 데 조금이라도 서양 것을 본받는 것을 보기만 하면 대뜸 사교에 물든 것으로 지목하는데, 이것도 전혀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그들의 종교는 사교이므로 마땅히 음탕한 음악이나 미색(美色)처럼 여겨서 멀리하여야겠지만, 그들의 기계는 이로워서 진실로 이용 후생(利用厚生)할 수 있으니 농기구·의약·병기·배·수레 같은 것을 제조하는데 무엇을 꺼려하며 하지 않겠는가? 그들의 종교는 배척하고, 기계를 본받는 것은 진실로 병행하여도 사리에 어그러지지 않는다. 더구나 강약(强弱)의 형세가 이미 현저한데 만일 저들의 기계를 본받지 않는다면 무슨 수로 저들의 침략을 막고 저들이 넘보는 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참으로 안으로 정교(政敎)를 닦고 밖으로 이웃과 수호를 맺어 우리나라의 예의를 지키면서 부강한 각 나라들과 대등하게 하여 너희 사민들과 함께 태평 성세를 누릴 수 있다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지난번에 교화하기 어려운 자들을 익히 보고 백성들의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마침내 6월의 변고가 일어나 이웃 나라에 신의를 잃고 천하에 비웃음을 사게 되었다. 나라의 형세는 날로 위태로워지고 배상금은 거만(鉅萬)에 이르렀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겠는가?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언제 우리를 학대하고 모욕하며 화의에 어긋난 일을 한 적이 있었는가? 그러나 다만 우리 군민들이 함부로 의심해서 멀리하고 오랫동안 분노를 품고서 이렇게 까닭 없이 먼저 범하는 행동이 있게 되었다. 그 잘못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너희들은 생각해 보라.

이번에 다행스럽게도 일처리가 대강 이루어져서 옛날의 우호관계를 다시 펴게 되었고, 영국과 미국 등 여러 나라들이 또 뒤이어 와서 조약을 맺고 통상하게 되었다. 이는 세계 만국의 통례(通例)로 우리나라에서 처음 행해지는 것이 아니니, 결코 경악할 일이 아니다. 너희들은 각기 두려움 없이 편안히 지내면서 선비들은 부지런히 공부하고 백성들은 편안히 농사를 지으며, 다시는 ‘양(洋)’이니 ‘왜(倭)’니 하면서 근거 없는 말을 퍼뜨려 인심을 소란하게 하지 말라. 각 항구와 가까운 곳에서는 비록 외국인이 한가로이 다니는 경우가 있더라도 마땅히 일상적인 일로 보아 넘기고 먼저 시비거는 일이 없도록 하라. 만일 저들이 능멸하거나 학대하는 일이 있다면 응당 조약에 따라 처벌하여 결단코 우리 백성들을 억누르고 외국인을 보호하는 일이 없게 할 것이다.
굿잡스 17-06-24 00:36
   
고종실록 26권, 고종 26년 7월 24일 무진 1번째기사 1889년 조선 개국(開國) 498년 

미국주재 전권 대신으로 있다가 돌아온 박정양을 소견하다

미국주재 전권 대신(美國駐在全權大臣)으로 있다가 돌아온 박정양(朴定陽)을 소견(召見)하였다. 복명(復命)하였기 때문이다.

하교하기를,

"그 나라 면적이 일본에 비하여 몇 배나 되는가?"

하니, 박정양이 아뢰기를,

"면적은 우리나라에서 거리를 재는 법으로 계산하면 동서가 8,550리이고 남북이 4,800리입니다. 이것은 세계지도를 보고 안 것이고, 그 나라 사람을 만날 때마다 들어보니 강역(疆域)의 넓이는 아세아주의 중국이나 구주(歐洲)의 러시아보다 작지 않다고 했습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그 나라에 주재해 있을 때 대통령이 접대하는 절차는 어떠했으며 접견할 때마다 악수로 인사를 하던가?"

하니, 박정양이 아뢰기를,

"그들이 접대하는 절차는 기타 각 나라들과 같았으며 극히 친절했습니다. 서양 풍속에서는 악수하는 것으로 접견할 때의 항상 된 예절로 여기기 때문에 신도 그 나라에 들어가서는 그 인사법을 따라 악수로 인사를 했습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그 나라는 매우 부강하다고 하는데 과연 그렇던가?"

하니, 박정양이 아뢰기를,

"그 나라가 부강하다는 것은 비단 금이나 은이 풍부하다거나 무기가 정예하다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내부를 정비하고 실리에 힘쓰는 데 있으며, 재정은 항구세를 가장 기본으로 하고, 그 다음은 담배와 술이고, 그 다음은 지조(地租)이며 기타 잡세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근년에 한 해의 수입은 거의 3억 7,140여 만 원을 넘고 한 해의 지출은 2억 6,790만 원이니 지출과 수입을 대비할 때 남는 것이 4분의 1이나 됩니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각 항구에 들어오는 물건의 세를 줄이자고 논의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각 항구에 들어오는 물건의 세를 줄인다면 다른 나라에서 명주, 비단, 도구 같은 물건 등의 수입이 날로 증가하여 들어오고 그에 따라 값이 싸지면 백성들은 사서 쓰기를 좋아하면서 만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니, 백성들이 자연 게을러지고 나라가 빈약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세를 줄이자는 논의는 결국 시행되지 못했으니, 그 나라가 부유해진 이유를 이미 알 만하고, 재정을 넉넉하게 하는 방법도 이를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대개 그 나라 재정의 원천이 이와 같은데도 오히려 비용을 절약하고 낭비하지 않기 때문에 날로 부유하여 각 국의 으뜸이 되었으니, 그 나라가 부유하게 된 요점은 전적으로 비용을 절약하는 데 있고, 비용을 절약하는 요점은 전적으로 규모에 달려 있습니다. 그 나라의 규모가 주도면밀하여 일단 정한 규정이 있으면 사람들이 감히 어기지 못합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그 나라의 규모가 매우 주도면밀하다고 했는데 과연 어떠한가?"

하니, 박정양이 아뢰기를,

"관리로 말하면 나랏일을 자기 집안일과 같이 여기며 각각 자기 직책의 정해진 규정을 지키고 한마음으로 게을리하지 않으며, 백성으로 말하면 사농공상(士農工商)이 각각 자기 일에 종사합니다. 전국을 통계해도 놀고먹는 백성이 드물기 때문에 재정이 이로 인하여 부유하고 규모가 이로 인하여 주도면밀한 것입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그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가장 부유한 것은 실로 규모가 주도면밀한 데 원인이 있겠지만, 인심이 순박하기도 각 국에서 첫째라고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

하니, 박정양이 아뢰기를,

"각 국의 인심을 다 알 수 없으나 미국은 독립한 지 100여 년에 불과하여, 토지는 아직 개간하지 않은 곳이 많으므로 전적으로 백성들을 모집하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육에 대한 문제를 나라의 큰 정사로 삼기 때문에 인심이 자연 순박합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그 나라에 주재하고 있을 때 어느 나라 공사(公使)와 가장 친밀했는가?"

하니, 박정양이 아뢰기를,

"공사들의 교섭에서는 서로 좋게 지내기에 힘쓰기 때문에 별로 친소(親疎)의 차이가 없었습니다만, 우리나라와 조약을 맺은 나라의 공사와 더욱 친밀하게 지냈습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일본 사람들은 각 국에 왕래하면서 좋은 제도를 많이 모방하여 법률을 고치기까지 하였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하니, 박정양이 아뢰기를,

"일본 사람들이 각 국에 왕래하면서 정치와 법률에서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하여 모방한 것이 많습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미국이 재정이 풍부하고 제도가 주밀하다는 것은 정말 소문대로이다. 그런데 전적으로 농사일에 힘을 쓴다고 하는데 과연 그렇던가?"

하니, 박정양이 아뢰기를,

"농사만이 아닙니다. 사농공상이 각각 자기 일에 힘쓰고 있는데, 미국의 남쪽 지방에서는 농사에 가장 힘쓰고 있습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미국은 나라를 세운 지 얼마 되지 않는데 그 정치 제도가 이러하고, 사농공상이 모두 자기 일을 잘하고 있으니 영국보다 우세할 것 같다. 그런데 영국은 상업만을 위주로 한다고 하던데 과연 그런가?"

하니, 박정양이 아뢰기를,

"영국은 땅이 좁고 인구가 많아서 무역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자연 상인이 많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그 나라에서는 항구세를 많은 경우 100분의 5를 받는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하니, 박정양이 아뢰기를,

"미국의 항구세는 수출세를 낮게 하여 주민들이 생산에 힘쓰도록 장려하고, 수입세를 높여 외국 물품이 백성들의 돈을 거둬 내가는 것을 억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혹 100분의 5도 받고 혹 100분의 10도 받는데, 그것은 그 물품에 따라서 백성들에게 유리한 것은 세를 가볍게 하여 들여오도록 하고 백성에게 해로운 것은 세를 무겁게 하여 막아 버립니다. 명주, 비단, 담배, 술 같은 것들은 관세가 원가보다 높은 것이 있으므로, 다른 나라에서 처음 오는 상인들은 가끔 세금이 원가에 맞먹는다고 말합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그 나라는 면적이 그렇게 넓고 백성들의 집도 크고 화려하지만 대통령의 관청은 별로 화려하지 않다고 하던데 과연 그런가?"

하니, 박정양이 아뢰기를,

"대통령의 관청은 백성들의 개인집과 구별이 없으며 부유한 백성들의 집에 비교하면 도리어 미치지 못할 정도로 매우 검소합니다. 그러나 개인집과 다른 것은 건물을 전부 흰 칠을 했기 때문에 나라 사람들이 ‘백옥’이라고 합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그 나라는 남쪽으로 칠레와 브라질을 이웃하고, 북쪽으로 영국, 러시아 등에 속한 땅과 경계를 하고 있는데 이것이 북미국(北美國)인가?"

하니, 박정양이 아뢰기를,

"남북의 경계는 과연 전하의 하교와 같은데 비록 북미합중국(北美合衆國)이라고는 부르지만 아메리카주 전체를 놓고 말한다면 미국은 그 복판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그 나라는 해군, 육군의 제도가 그다지 정비되지 못하였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하며, 또 상비병(常備兵), 예비병(豫備兵), 후비병(後備兵)이 있는가?"

하니, 박정양이 아뢰기를,

"그 나라에 상비 육군은 3만 명에 불과한데 각 진영에 배치했으며, 현재 워싱턴에 주둔하여 있는 군사는 몇 백 명에 불과합니다. 그 나라의 크기에 비하여 군사를 보면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 밖에 또 민병(民兵)이라고 부르는 것이 각 지방, 각 촌락에 있고 군사 학교가 있어서 백성들에게 훈련을 가르치는데 정부에서 군량을 대주지 않아도 나라에 변란이 있을 때마다 천만 명의 정예병을 선자리에서 동원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군사를 백성에 부속시킨다.’라고 하는 것인데, 나라를 위하는 마음은 관리나 백성이나 차이가 없습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군사 학교는 공립(公立)인가, 사립(私立)인가?"

하니, 박정양이 아뢰기를,

"공립도 있고 사립도 있습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오가는 길에 단향산(檀香山)이 있다고 하던데 그것은 어떤 곳인가?"

하니, 박정양이 아뢰기를,

"그것은 하와이에 속하는 섬입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하와이는 작은 나라이다. 오가는 길에 과연 두루 보았겠는데 그 면적은 얼마나 되던가?"

하니, 박정양이 아뢰기를,

"하와이는 바로 태평양 가운데 있는데 여러 섬이 모여 한 나라를 이룬 것으로서 오키나와나 우리나라 제주(濟州)에 비교하여도 많이 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신이 미국으로 갈 때에 배가 그 경계에 닿았으나 밤이 깊어서 육지에 내리지 못하여 자세히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항구와 수도는 매우 영락되어 있었습니다. 40년 전에 천연두가 유행하여 사람들이 많이 죽었기 때문에 근래에 구라파, 아시아 각 주(洲)의 백성들을 모집하여 겨우 모양을 갖추었다고 합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하와이는 한 개의 섬나라인데 미국(美國)과 영국(英國)이 그전에 서로 분쟁한 일이 있었다고 하니 무슨 까닭이었는가?"

하니, 박정양이 아뢰기를,

"영국에서 하와이를 병탄(竝呑)하려고 하므로 하와이는 그 침략에 견딜 수 없어 미국에 속하기를 원했으니 그것은 대체로 영토가 가깝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본래 남의 땅에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속국이 되겠다는 그 나라의 소원을 승인하지 않고 그대로 자주 독립하게 하여 지금까지 보호하고 있습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우리나라에 주재하는 미국 공사(美國公使) 딘스모어〔丹時謨 : Dinsmore〕는 이미 체직(遞職)되었지만 새로 임명된 공사도 곧 그만두려고 한다는데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딘스모어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나라에서 새 공사를 파견한 후에 미국의 새 공사도 파견되어 온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하니, 박정양이 아뢰기를,

"미국은 자체의 실력을 기르는 데만 힘쓰고 외교는 부차적인 일로 여기기 때문에 사신으로 나가는 사람들의 봉급이 서양 여러 나라들에 비하여 좀 적습니다. 혹시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민주국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각각 자유로운 권리를 가지고 있는 만큼 정부에서 강요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새 공사를 파견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딘스모어의 말이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다른 나라에 사신을 내보내는 것은 다 다른 나라의 사신이 자기 나라에 와서 주재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며, 또 등급이 높은 관리를 원하는 것은 다른 나라가 자기 나라를 우대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물론 요즘 각각 외교의 일반적인 추세입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다른 나라에 오가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노고는 비록 많았지만 각 국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사신의 임무를 잘 처리했다고 하니 이것은 다행한 일이다."

하니, 박정양이 아뢰기를,

"사신으로 가는 의리가 중한데 어떻게 감히 노고에 대하여 말하겠습니까? 학식이 부족하여 자연 잘못하는 일이 많았으니 황송하여 주달할 바가 없습니다."

하였다.


허점투성이 <조선> '이규태 코너' (3)

김병학의 메국 인식은 아주 원시적으로 보입니다. 메국을 원시부족이나 해적 취급을 한 셈이니까요. 당시 조선의 국무총리(영의정) 치고는 국제정세에 대한 견해가 너무 치졸해 보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랬을까요? 당시에는 이미 중국을 통해 서양 소개서들이 많이 들어와 지식인들이 탐독하던 시기였습니다. 김병학 자신도 해국도지를 인용했고 영환지략 등을 비롯한 다른 서적을 접했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서적에는 서양의 현실과 진면목이 비교적 정확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김병학은 당시의 메국이 아니라 당시로부터도 1백년이나 더 전의 메국을 고종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얕잡아 보는 말들만 골라서 인용했지요. 그리고는 "이들이 교역을 운운하는 것은 해괴한 일"이며 "만약 이들과 교역한다면 나라를 보전할 수 없을 것"이라는 협박성 결론까지 내립니다.



김병학이 해국도지를 인용한 것은 바로 이 결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보 자체는 정확한 것이었지만 선별적으로 과장, 누락시켜 왜곡한 것이지요. 그 책에는 화륜선이나 대포, 총과 같이 서양의 앞선 문물도 다수 소개하고 있으며, 저자인 웨이유안은 서문에서 '이이제이(以夷制以)'를 위해서도 이런 문물을 중요하게 참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김병학은 이런 대목은 빼고 메국 건국 당시의 원시성만 골라 과장해 가며 고종에게 보고한 것이지요. 자기 정견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보를 과장하거나 무시하는 왜곡의 관행은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닌 듯 합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0003068
새끼사자 17-06-24 01:32
   
강화도 조약 때 영어하는 사람이 없어 중국 영어통역사 우리나라 중국통역사 거쳤다고 고종 열받아서 외국인 선교사 대거 입국허용해서 학교만든게 지금 유명한 사립대학들이고..그때 영어 단시간에 배워 미국 나가서 기차도 들여오고 전기불도 넣고 전화기도 넣고..시청앞 광장은 워싱턴 카피해오고.... 시간이 늦었을 뿐이었지...아쉽다...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