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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2-13 09:29
압록강의 위치 고찰(12세기 이전)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678  

※ 무기력감을 쫓고자 동아시아 게시판에서 작업했던 것을 이곳에 게시합니다. 압록강은 '현 요하~동요하'였습니다. 이것이 이미 9세기 말부터 왕건 고려의 건국과 개경을 수도로 정하고, 현 평양을 서경(호경 : 최초 수도에 대한 존숭의 의미)으로 선포하면서 중국의 지리학 정보에 혼선을 주게 되었고, 이후 몽골 간섭기를 거치며 공민왕이 현 요심 지역을 수복하였음에도 제대로 경영하지 못한데다 명나라가 그 지역에 진출하면서 현 심양 동남쪽, 무순 서남쪽, 요양 동북쪽, 본계 서북쪽에 있는 봉집현에 최초 철령위를 세우며 봉집현을 기준으로 동서 500 리를 명나라와 고려의 경계로 삼았다가 고려의 반발과 대규모 군사 행동 조짐에 따라 현 철령시로 철령위를 이치하였으나 이후 고려와 조선이 명나라 세계 질서에 순응, 연산관과 봉황성을 거쳐 양국의 국경지대가 남진

ㅡ 왕건 고려 건국 및 현 평양을 고구려 평양으로 대내외에 선포하고 서경(호경)으로 승격하여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대내외에 주장하는 프로파간다 작업을 함으로써 당시 오대와 송나라 지식인 사회에 (요수ㅡ)압록강(ㅡ평양) 라인의 지리정보에 혼선을 야기
ㅡ 명나라의 위세와 조선 건국의 명분 획득을 위한 조선의 요동지역 포기

크게 보면 이 두 이유에 의하여 압록강이 현 압록강으로 굳어졌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본인이 직접 여러 사서를 교차 분석하여 연구한 연구 결과의 일부입니다.
당시 압록강이 현 요하~동요하인 이유는 아래 제시한 것보다 더 많습니다.



1. 거란ㅡ고려 접경지로 본 압록강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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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요사 지리지 동경도 일부 속주 교치상으로 본 압록강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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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거란 병경 수병 배치 기록을 토대로 본 압록강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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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요사 지리지 동경도 분석을 토대로 한 11세기 거란 동경도의 실제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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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무경총요 숙여진 18주 기록과 요사 지리지 동경도 기록을 교차하여 본 압록강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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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지형도를 통한 거란ㅡ고려 접경상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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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125 선화을사봉사금국행정록 기록을 토대로 한 고려 서북계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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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가탐 도리기 제 2도 고찰 분석을 통한 8세기 압록강의 위치

(교차 분석 자료 : 신당서, 금사, 성경통지, 청사, 도서편, 주해도편 수록 지도, 명/청 시대 고지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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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요택의 위치로 본 압록강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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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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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난늑대 18-12-13 09:32
   
그럼 이성계는 요하는 치러 간건가유
     
감방친구 18-12-13 09:35
   
아닙니다
당시에는 이미 현 압록강을 압록강이라 인식하였습니다
금과 몽골간섭기를 거치면서 고려인 사회의 인식은 현 압록강을 압록강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압록강은 국경에 있으되 배가 드나들 수 있는 큰 강을 일컫는 말로
'요수'와 마찬가지로 별칭입니다
     
감방친구 18-12-13 09:51
   
고려는 왕건 때부터 북진을 실시하여 당시 각 지역의 반란으로 내분을 겪으며 망조가 든 발해의 남쪽 영역을 파고들어갑니다.

그리고 발해가 망한 후 들어선 동단국 역시 각 지역의 반란으로 인하여 국체 유지가 어렵자 영토를 포기하고 현 의무려산 동쪽에 있던 당시 거란 남경으로 들어가 더부살이라를 하다가 곧 망하고 거기에서 동경도로 편입이 됩니다.

그리고 동단국 지배층인 대다수 발해유민들을 태자하와 혼하, 즉 현 요심지역으로 사민하여 이른 바 숙여진을 둡니다.

고려 광종은 이 숙여진 지역을 적극적으로 공략하여 현 판진시 일대까지 진출하였고, 고려 성종은 압록강 안팎에 성보를 구축하며 압록강 정지작업을 완료합니다

이 때에 고려는 거란과 여진족(실질적으로는 발해유민) 사이에 끼인 형국이 됩니다.
고려는 거란이 여진족을 정벌할 때 수차례 묵인하였고 이를 당시 정안국이 송나라에 고자질하여 송나라에서 사신을 파견하여 고려에게 거란 공격을 종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고려가 숙여진 지역을 석권하자 거란의 성종은 고려정벌을 준비하여 거병하였으나 요택에 물이 차서 출병을 포기하여 얼마 있다가 대신 현 혼하 상류 지역에 있던 여진족, 즉 발해 유민이 세운 정안국을 대대적으로 정벌하여 붕멸시킵니다

거란 성종의 동쪽 진출로 고려의 요하 지역 지배력은 약화되고 11세기 초반에 이르러 천산산맥 라인까지 영역이 축소됩니다

거란이 1차 침공에서 고려에게 준 소위 강동 6주는 동요하 상류의 동쪽지역입니다.
거란이 이 지역을 고려에게 할양한 이유는 아직 활동하는 정안국 잔족 세력(발해 유민 세력)과 생여진을 고려를 이용하여 이이제이로써 제거하고 동시에 고려의 힘을 빼놓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거란의 이러한 의도와 달리 고려는 아주 손쉽게 동요하 상류 지역의 여진족을 소거시켰고 애초 거란이 할양(실제 거란 영토도 아니었음)한 180리보다 훨씬 넒은 지역을 개척합니다

이 지역은 현 길림합달령과 용강산맥의 서쪽 입구에 해당하는 곳으로 거란이 하얼빈과 연해주 지역의 여진 지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야 하는 요충지입니다 거란을 이후 여진 지역으로 갈 수 있게 길을 허락해 달라고 고려에게 요청하곤 하였습니다

거란의 2차 침략 및 그 이후 침략과 분쟁은 모두 직접 원인이 고려의 강동 6주를 빼앗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incombat 18-12-13 12:06
   
감방친구님 지도에 강의 라인과 이름이 들어간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아울러 사서의 거리 설명과 매칭되는 지도 상의 표시와 기호같은 것이 있으면 더 도움이 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