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기록물을 보면, 특정시기에, 좌와 우 진영에서 기록을 따로 기록했습죠.
더 놀라운건 서로의 기록을 정권이 바꼇다고 없애지 않고, 이것도 역사다라는 인식이 있었다는것..
지금도 그 역사 기록물을 보면 놀라움을 금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광해군만 보더라도 미친사람인가.. 아니면 줄타기 외교의 신으로 재평가 되는 인물..
역사를 있는 그대로 적는다는게.. 쉬운게 아닌건 맞는거 같습니다.
1960년대
못산것 맞습니다.
미국의 긴급지원에도 그렇게까지 못살았던 경우가 없읍니다.
솔직히 419혁명이 없었다면 못산것은 맞습니다.
흉악할정도의 부정부패
개인의 이기심에 의한 범죄의 만연
경제기반의 붕괴
농업산업조차 산림의 파괴로 인한 자연재해 속출.
등으로 .. 많은 폐혜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 탈출만이 답인 상황이였읍니다.
후에 이때당시 미군에 의해서 미국으로 간사람만이 상당히 운이 좋은 편이였읍니다.
`문제는 419혁명 이후 2공화국의 행태가 더욱 문제가 되었읍니다.
이당시 가장 큰문제는
인사청탁에 의한 자리배치.
부정투표행위(선거로인한 부정투표행위 선금발포)
부의 급격한 이동에 따른 기존 부의 수평적이동.(결국 지들위치이동일뿐)
경찰력의 급격한 위력수축으로 인한 민생범죄만연.
교육수준의 차이로 인한 세대간의 이념양분.
사실상 정치권은 민생문제를 인식만 할뿐 경제개혁및 재건의지에 따른 실행력은 거의 없었다고 보면됨.
행정력의 붕괴를 메울수 있는 국가적재건자금이 없었음.
기아와 굶주림등 해결할수 잇는 근본적 인식조차 없었음.
즉, 팔자소관이였음.
가난은 왕도 구제하지 못한다.
(실제로 이당시 북한과의 비교는 한마디로 처참함. 자세한것은 알아보기 바람. 쉽게 이야기하죠.
이당시 북한은 명태를 길거리에 버리는 수준, 전력량차이가 5배이상)
당시 소련의지원을 분배정책으로 해결하려할때.
우리의 상황은 신분세탁에 의한 매국세력의 철저한 유린으로 이어지고 있었음.
정치, 행정력은 거의 미경험에 의한 수많은 실패 모든 정보 일본유출.
즉, 경제, 외교의 활동은 전면적인 중지상태라고 봐도 무방할정도로 인재인프라 구축조차 힘든 상황.
쉽게 말해서 행동력자체가 없었음.
다만 민주화의 첫걸음마를 뗀 상태에서 그이후의 상황을 행할 아무런 메뉴얼이 없었음.
(현재 촛불혁명과 가장 큰 차이점임. 발전된 민주화라는 것은 바로 이부분이 촛불혁명이 위대한 이유임.
잘못된것을 정치 경제 행정등 그어떤 공백이 발생하지 않고 수정이 가능한 정말로 민주주의가 최대한 발전할수 있는 원동력은 국민의 지식수준의 차로서 증명됨. 쉽게 이야기하면 그당시 사람들 정말로 무식했음.)
박정희의 평가는 무조건 잘못된것만을 말하는 것도 역사인식이 잘못된것임.
역사적 평가라는 것은 마치 천칭에 이래재보고 저리재보는 작업임.
그게 좋은쪽 나쁜쪽 기울림쪽을 역사적잣대로 수치화를 결정하는 것이 역사적인 인식임.
역사적인 문제를 다시 거론 한다라는 것은 역사적인 잣대의 수위가 변화하는 것.
특히 이러한 역사적인 잣대가 세계어느국가보다 변화가 심하다라는 것이 현재의 대한민국의 역사인식입니다.
이 역사적잣대가 아직도 흔들린다라는 것은 숨겨진진실이 다시 추가되고 추가 흔들리는 시간일뿐
잘했다 못햇다.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역사적인 인식은 아니라고 봅니다.
군사쿠데타로 인한 경제발전정책은 사실상 국민의 희생에 의한 부분이 상당부분 많죠.
아마도 그당시는 어쩔수 없었을것입니다.
경제적 기반이 성립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금조차 없었으니.
결국 국민의 일정부분의 희생강요는 ..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국가적 행동력으로 유지해간것은 확실히 박정희의 공으로 돌리는 것은 맞다고 보여집니다.
2공화국당시에.. 절대로 행할수 없는 기획을 바로 행동력으로 옮긴것이
최대의 업적이겠죠.
바로 하면 된다.
위험한 발상이였고, 심지어 이념전쟁이라는 명분아래 군사적파견까지 결정하면서까지 할수 없는 방안을 무자비할정도로 밀어붙였다라는 것이죠.
이게 세계적으로 볼수 없는 면이죠.
사회전반적으로 전후복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모든 사회구조의 개혁을위한 행동력.
이게 가장 잘했다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나머지 역사의 추에 올릴것은 하나둘씩 새로이 올리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국가적으로 강력한 개혁 행동력 그것도 사회전면적으로 진행했다고 하는데 높은 평가를 주는 것은
역사적인 인식에서 그렇게 무리없는 행동이라고 봅니다.
여기에 사회적희생에 따른 보상적 차원, 편협한 법의 잣대, 정권유지에 대한 불법적행동력,등등
수많은 잘못이 나오는것도 당연한것이고 역사적으로 필히 해야할 목록이기도 합니다.
다만 현재의 문제는 이역사적인 기술을 현재의 관점으로만 편향되는 것으로 평가하는 것보다는
그당시 사회적 상황까지 고려한 평가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전체가 그럴수밖에 없는 상황을 몰아간 사회상도 같이 연계해서 기술해야 한다라는 것이죠.
즉, 역사적인 연속성을 가져야 정확한 평가로 이어진다라는 것입니다.
현재 역사교육의 가장 큰 폐해가 바로 이 역사의 연속성을 무시한 시험속 한문제를 맞추기위한 단편적 사실평가에 머물러서 더큰혼란을 가져오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이러한 사조는 조선시대의 정책설정에 가장큰오류로 남아서 혼란을 야기한 역사가 있는데도,
계속해서 어리석은 역사적인 연속성을 무시한체로 단편적인 역사사실을 말하는 것은 이제 현세의 역사적인식의 한계로 작용하는 것 같읍니다.
좀더 크게 보는 것이 .. 좋을 보이고
이러한 역사의 연속성에서 단편적인역사기술을 세우는것이 좀더 옳다고 보여집니다.
(그래야 역사적 오류에서 현재상황을 대입해서 오류를 줄여갈수 잇을 것입니다.)
단편적인 역사기술은 조선시대에서 대부분 당쟁의 원인을 둡니다.
제가 가장 역사적으로 싫어하는 평가는
바로 남한산성에서 누가 충신인가? 라는 논제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남한산성에서 역적만 있었을뿐이지 충신은 한명도 없다라는 것이 결론입니다.
모두 욕심가득한 정권야욕에 눈이먼 장님들뿐이였읍니다.
그정도까지 패전상황으로 몰리려면.
청이 강해서 그랫다.. 라는 헛소리는 집어치우라고 말하고 싶읍니다.
조선이 망한것은 이러한 역사의 단편적인 역사사실만을 기반한 자기 논리를 설파했던 어림치기식 역사론자의 양성이였고 그런 논리를 편자를 우대한것이 조선의 최대의 실수 였읍니다.
그러한 역사사조의 대표주자가 현재 뉴라이트의 역사논리기 때문에 문제가되었던 것입니다.
3공화국은 이미 존재했고, 그에 따른 전후상황의 역사적인 평가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역사인식의 단편적사건만을 부각하는 것은 이제는 지양하는것이 옳다고 보여집니다.
사실을 그대로 봐야하하지요
군사독재하에서 지꼴리는데로 쓴 기레기들의 거짓 소설들이 민주화된 지금 까발려지는걸
세뇌받은 유신잔재와 공작의 유산으로 벌레로 살아가는 알라들이 발광하는 것인데
중화학공업만 하더라도..
만약 지금 케냐에서 독재자가 나타나서 엄청난 해외차관을 끌여들여서.. 중화학입국을 외치고 땅크공장.. 자동차공장.. 제철소.. 석유화학에 대규모 투자하려 한다?
이를보고 학자들과 해외경제단체들이 미친짓이라고 우려를 표명한다?
너무 당연한게 아닐까요?
다까끼시절 한국만하더라도..
당시 중화학공업은 외국으로부터 수입은 엄청난 관세로 막아서 국내에서 소비하게하고(비싸게 팔고) 잉여물량은 원가보다 싸게 덤핑수출을 하며 겨우 연명하였던 것인데 (적자분은 다양한 명목으로 국고에서 지원)
돈먹는 하마.. 적자기업을 넘어 나라 말아먹을 천더꾸러기였었다는 것이 팩트지요
이런 천더꾸러기 엄청난 짐을.. 가발팔고, 의류, 신발을 남산만큼 팔아서 이자를 갚으며 겨우 버텨온 것인데
중화학공업이 경쟁력을 갖게 된 것은 다까끼가 총 맞은 사후 20년 이후의 일이지요
이사람 참 역사를 쉽게 생각하시네... 그 사실을 기록하는게 얼마나 다양한 시각이 들어가는데... 빼는 것도 왜곡이 될 수 있고 두 번 말하는 것도 왜곡이 될 수 있어... 그렇다고 있었던 모든 걸 기록할 수는 없어.... 역사에는 사관이라는 것이 있다... 그게 뭔 뜻인지만 알아도 역사를 기록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텐데.... 역알못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