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이슈 게시판
 
작성일 : 17-03-11 00:45
마지막 촛불집회 후기...
 글쓴이 : 허까까
조회 : 989  

글재주가 없어서 토막글로 씁니다. 긴 글 싫어하시는 분들은 뒤로 눌러주세요.

*원래 어제(이제 엊그제군요) 가서 날밤새려고 했는데 저도 제 할일이 있다보니 못가고 새벽 6시 반에 전철타고 올라갔습니다. 안국역에 도착하니 다들 바닥에 쪼그려 앉아있고 몇몇 분들은 돗자리 깔고 계시더군요. 그 광경을 보는데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드디어 탄핵선고.. 이정미 재판관의 'ㅇㅇ가 인정된다'라는 말, 뒤이어 나오는 '그러나'라는 말.. 사유들이 빠르게 기각되면서 휙휙 지나가니 극도의 좌절감이 밀려왔습니다. 옆에 어떤 아저씨는 '이거봐 ㅅㅂ 박근혜가 심어놓은 것들이라니까'라면서 이성을 잃어가시고.. 사람들이 자꾸 동요하니까 어떤 아저씨가 '원래 처음엔 이런걸로 밑밥깔고 탄핵사유는 맨 마지막에 하는 거다. 걱정 마시라'라고 안심시켜주시더군요. 제발 그러길 바랬습니다.

*미르/K스포츠재단 말할 때 뭔가가 달랐습니다. 이게 바로 저 아저씨가 말한 그건가?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간절하게, 정말 간절하게 계속 되뇌었습니다. "제발 '그러나' 소리만 하지 마라.. 제발"

*마침내 '주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이정미 재판관의 말.. 그 순간 그동안 개고생했던 일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그 땐 진짜 노인, 젊은이,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전부 다 엉엉 울었습니다. 심지어는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막 부등켜안고.. 어떤 아주머니는 저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그동안 고생하셨어요'라며 우시고.. 진짜 한 30분 넘게 울었던 것 같습니다. 30분이 지나고도 계속 울컥 치밀면서 눈시울이 붉어지더군요. 정말 그 순간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잠시 후에 저쪽에서 깽판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뉴스엔 안 나온 것 같은데 저쪽에서 이쪽 경찰벽으로 물병 같은 것도 날아왔습니다. 진짜 열받는 건 물이 들어있는(물인지 술인지) 패트병이 날아왔다는 겁니다. 이게 사람 머리에 맞았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지금도 그 때 생각하면 분노가 치밉니다.

*한참 사람들과 있다가 저혼자 광화문 쪽으로 갔습니다. 그 쪽에 작은 김밥집 하나 있는데 거기서 김밥 한 줄 먹었습니다. 전날부터 아무 것도 못 먹었더니 소화가 안 되더군요. 그리고 광화문으로 향했는데 이미 그쪽에도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다들 싱글벙글 들뜬 표정들.. 그 따스한 햇살.. 시원한 바람.. 정말 그 때는 세상 다 가진 기분이었습니다.

*저녁 5시가 되어가자 사람들이 상당수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한 7시? 즈음엔 이순신 동상 뒤까지 찼고요. 다만 전체가 그렇게 찬건 아니었고 박사모 집회처럼 블럭으로 나뉘어서(즉 무리 가운데에 빈공간이 큰) 모였고 양쪽 차로는 다 개방되어 중앙 광장 부분만 모였습니다.

*어떤 외국인 무리가 제 옆에 있었는데 뭐가 좋은지 되게 뿌듯한 표정으로 연신 웃더군요. 속으로 '재한 외국인들도 감동하는구나'하는 생각에 왠지 모를 자부심이 들었습니다. 근데 잠시 후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오더니 방송을 하더군요. 그 때 알았습니다. 외신이라는 걸...

*이순신 장군상 앞에선 어떤 풍물패의 공연이 열리고 있었는데 여기도 외신이 촬영을 하더군요. 이 외에도 외신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외국인들 정말 많이 봤습니다.

*kt건물쪽에 MBC 차량이 보였습니다. 차 위에선 기자, 스텝들이 뭘 하고 있었고요. 순간 저는 욱해서 '어용언론 MBC! 반성하라!'라고 외쳤습니다. 근데 워낙 시끄러워서 안들리는지 쳐다도 안 보더군요. 그래서 아예 길을 건너 그 사람들 앞에서 외쳐댔습니다. 근데 갑자기 기자가 하는 말.

'지금 방송하는 거 아닌데요?'

순간 어이없었습니다. 누가 방송타자고 그런 소리 하나? 전 너무 화가나고 허탈해서 울분을 토하듯 말했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데 정확히 이렇게 외쳤습니다.

'어용언론 MBC는 반성하라! 부디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라! MBC가 어떤 회사입니까?! 보도 프로그램의 명가, 미디어 저널리즘의 자존심이라고까지 불리웠던 곳입니다. 근데 그 대단했던 MBC가 지금은 정권의 개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부디 정신 차리십시오!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십시오!'

그랬더니 이번에는 차에서 기사로 보이는 사람이 내리더군요. 그리고 같잖다는 듯 말했습니다.

'이따가 방송하니까.. 그 때 불러줄께.'

순간 멍했습니다. 아.. 내가 그냥 관종으로 보이는구나.. 그냥 영웅심리에 객기 부리는 걸로밖에 안 보이는구나..

저는 '방송이고 뭐고 그런거 필요 없어요. 전 당신들에게 하는 말입니다!'라고 또 다시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투명인간 취급 받을 뿐이었습니다. 결국 쓰잘데기 없는 짓이라는 걸 깨닫고 그냥 집으로 향했습니다.

하루종일 기분 좋았는데.. 그 순간 우울해지더군요. 지금까지 우울함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목에 마지막 집회라고 썼지만 내일(그러니까 이제 오늘) 진짜 마지막 집회를 한다고 합니다. 사회자 말로는 대선 즈음에 몇 번 더 모인다는데.. 어쨌든 이번 사건에 대한 집회는 이제 오늘이 정말 마지막입니다.

시간 나시는 분들.. 오늘 마지막이니 꼭 참여해주세요. 이번엔 화내러 가는게 아니라 축제입니다.

길고 쓰잘데기 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토끼승우 17-03-11 00:47
   
내..내일읽을께여..ㅜㅅㅜ
일비아 17-03-11 00:54
   
고생하셨습니다.
님의 진심어린 고언을 무시하는 쓰레기들은 잊으세요.
살다보면 쓰레기도 보고 하는거죠 뭐.
다 잊고 대견한 자신을 기특해 하며 편안한 밤 보내시길.
북풍 17-03-11 00:55
   
잘 읽었어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별명없음 17-03-11 00:59
   
엠빙신들 남아있는 놈들 수준이 그런거죠...

어떤 놈들인지 참 반성이란걸 모르네...
아나키스트 17-03-11 01:08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 상황이 님을 우울하게 만든다면..........
차마 말을 못 하겠네요......
상처받을까봐.....
황다도 17-03-11 01:27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냐옹이마을 17-03-11 01:35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수고 많았네요^^
에스프리 17-03-11 02:05
   
엠빙신에 지금 남은 인력은 그냥 집지키는 개 정도이니까요 너무 심려마세요 . 개들 사람말 못알아먹어요
sangun92 17-03-11 04:37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아니라 짐승과 대화하는데 실패했다고, 우울해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