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엔 우산도와 관련된 글을 몇차례 올렸으니 이번엔 독도 관련 또다른
미스터리의 섬인 석도에 대한 썰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석도라는
섬은 대한제국 칙령 41호에 등장하는 섬입니다. 대한제국
칙령 41호는 1900년에 울릉도와 그 부속도서를 정식 군으로 승격시킨 관제 개정으로
만약 이 칙령에 독도가 포함돼 있다면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먼저 독도를 근대적으로 통치한 것이며 이는 국제법상 영토분쟁의 핵심인 "선점"요건에 해당되므로
이전 우산도 역사논쟁이나 이 후 SF조약의 해석논쟁과 무관하게
독도는 우리땅이라는것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며 일본의 독도 선점 근거인 시마네현 고시를 바를 수 있어 우리측에게서는 독도 점유에 대한 아주 결정적 증거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한제국 칙령 41호에는 독도라는 섬이
나오지 않습니다.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한 건
제1조 → 울릉도를 울도라 개칭하여 강원도에 부속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하여 관제 중에 편입하고,
군의 등급은 5등으로 할 일
제2조 → 군청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전도와 죽도·석도를 관할할 일
울릉도가
현재의 울릉도라는 것은 이의가 없고 죽도가 현재의 죽서도라는 것도 이의가 없습니다. 문제는 뜬금없이
등장하는 "석도" 라는 섬입니다. 석도라는 섬은 칙령 41호에 뜬금없이 등장하기 시작 해서 이후 몇건의
신문기사에서 잠깐 다루어지곤 그 이후에는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는 미스테리의 섬입니다.
당연하게도
이섬의 정체에 대해 한일간의 견해차가 있습니다.
한국측은 석도가 곧 독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울릉도 주변의 부속도서라고 할 수 있는 섬은 죽서도, 관음도, 독도
정도가 있는데 관음도의 경우 당시 "도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 졌으니 석도가 될 수 있는 것은 독도 밖에 없다.
또한 독도는
원래 돌섬이라는 뜻의 독섬이라고 불렸는데 독섬의 뜻을 빌려서 석도라고 표기한 것이고 이후 독도가 된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에반해
일본측은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것이 구한말기 대한제국 신문인 황성신문의 사설입니다.
‘광무4년 1900년 10월 25일
정부 회의를 거쳐 군수를 배치하였으니, 군청은 태하동에 두고, 이
군이 관할하는 섬은 죽도와 석도요, 동서가 60리, 남북이 40리, 합이 200여리라고 하였다더라.’
위는 울도군과
관련한 황성신문 기사로, 울도군의 크기가 동서가 60리
남북이 40리라고 합니다. 독도는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250리에 위치한 섬이니 이 기사에 의하면 울도군 관할 밖이므로 석도와 독도는 다른 섬이겠죠.
아래는 황성신문에 나오는 울도군의 관할 범위인 동서-60리 남북-40리의 크기 및 독도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입니다.
보시다시피 거리 차이가 너무 많이 나죠;;;;;; 황성신문의 기사가 사실이라면 석도는 독도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석도는 도대체 어디냐?는 반문에 일본은 관음도의 또다른 이름이거나 대한제국의 지리 인식 부재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의 섬일것이라고 답변합니다.
사실 대한제국은
꽤나 칙령 41호를 발효하기 직전까지도 울릉도 주변의 섬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는데 다음의 지도에
보다시피 뜬금없이 울릉도 밑에 4개의 섬을 그려놓기도 합니다.
위의 지도는
대한제국 칙령 41호가 발표되기 1년 전 1899년에 제작된 대한제국 지리 교과서인 대한지지에 첨부된 대한전도입니다.
보시다시피 울릉도 동북쪽에 표시된 우산도는 현재의 죽서도가 맞는데 남쪽에 표시된 4개의 섬은 현재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 섬이에요.
울릉도 주변에 작은 돌덜미들을 표시한것같기도한데 그렇게 보기에도 너무 크죠. 어쨋건 일본은 이 섬들이 석도의 정체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
섬들이 석도여야지 울릉도 부속섬들의 위치가 동서가 60리 남북이 40리라는
황성신문의 기사와 레퍼런스가 되는 것이니까요.
또한 최근에 외교부가 1955년 이승만 정부가 맥아더라인을 그을 당시 독도에 대한 입장을 밝힌 “독도문제개론”을 공개했는데 당시에는 석도와 독도는 다른 섬이고 대한제국 칙령 41호에는 독도가 없었다는 것을 인정했음이 알려짐에 따라 석도=독도론은 거센 반론에 부딪히게 됩니다.
독도는 기록과 실제 지식으로 벌서 부터 잘 알려지고 울릉도의 한 속서(属嶼)로서 봉금기(封禁期) 중에도 왕래가 끊히지 아니한 것임은 전술한 바와 같으니, 독도를 구태여 울릉도의 행정구역에 편입 했다고 선언할 필요도 없었고, 또한 새삼스럽게 공적 기록을 남길 이유도 없는 것이다. 우리 옛날의 가지도, 삼봉도, 우산등이
이전에는 해상고현(海上孤縣)의 한 암서(岩嶼)로서 문제가 되려 하여도 될 만한 사건이 있지 않었으며, 그것이 문제된 것은 일본인의 강치 보획지로 이용하고 저의 시마내현령으로 편입함에 시(始)한 것이니, 이렇게 되기 이전에 울릉도의 행정 구획에 편입된 명시된 공적기록이 없다고
해서 독도가 울릉도의 군수의 관할하에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독도를 일본령이라고
통고하여 오자 광무10년에 울릉도 군수가『우리 나라 소속 독도』라고 기록하여 중앙정부에 보고 하였던
것이다.
보시다시피 1955년 맥아더라인을 그은 당시에는 석도는
독도점유의 근거가 아니라고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과연 석도는 어느 섬일까요? 제 개인적으로는 퀘스쳔마크를
달고 있습니다. 독도인듯하면서도 독도가 아닌듯도 합니다. 이름만 보면 독도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긴하는데 그 생각을 이승만 정권에서 못했을리도 없고 무엇보다 황성신문의
동서가 60리 남북이 40리라는 기사가 너무 걸립니다... 결국
우리측 자료가 발목을 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산도가 독도가 아니라고 확신을 하는 저로서는, 우리
정부가 독도 논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서는 삼척동자도 믿지않을 우산도 = 독도설을 주장할 바에
석도=독도설에 대해 보다 다양한 논리를 확보하는 한편 일본의 선점 근거인 시마네현 고시의 국제법상 하자를
찾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ps 이 글을 읽으시고 황성신문 기사를 반박하고자 또 열심히 검색한뒤 결국 또 유미림 교수의 논문과 신용하 교수의 논문에 근거한 주장을 퍼오시는 분이 계실듯한데요 ㅎㅎ 퍼오시기 전에 그 주장들이 말이 되는 주장인지 찬찬히 생각해보시고 퍼오시길 바래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