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도 세월호 사건과 비슷한 해난(海難) 참사를 경험했다. 일본에서 가장 험한 바다로 꼽히는 세토 내해(瀨戶 內海)에서 1955년 일어난
시운마루(紫雲丸)호 사고가 대표적이다. 이 사고로 수학여행 중이던 초·중학생 100명 등 168명이 사망해 일본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역시 안개 속에서 주의를 게을리하고 안전 속도를 무시한 항해가 사고의 원인이었다.
일본은 선박 안전 기준을 대폭 강화함으로써 일본의
안전 의식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로 삼았다. 일본은 또 "참사를 반복하지 말자"며 사고가 일어난 세토 내해를 선원이 되기 위한 필수
항해 코스로 삼았다.
세토 내해는 혼슈(本州)·시코쿠(四?)·규슈(九州)로 둘러싸여 있고 600여개에 달하는 섬이 혼재해 있다.
그만큼 수로가 좁아 물살이 거세다. 조수간만의 차가 3.5m가 넘는 곳도 있다. 특히 만조와 간조 때 조류가 정반대 방향으로 바뀐다. 조류의
최고 시속이 19.4㎞에 달해 마치 험한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착각이 든다. 세월호가 침몰한 맹골수도의 조류는 사고 당시 시속
11㎞였다.
여객선이 화물선과 충돌한 사고였다. 당시 바다에 짙은 안개가 끼었음에도 해상충돌예방법이 규정한 속도 이상으로 항해했고
선장이 육안(肉眼) 검증보다 레이더에 의존한 것이 원인이었다. 배엔 수학여행 중인 3개 초등학교와 1개 중학교 학생 349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 중 100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81명이 힘없는 여학생이었다. 당시 학생들과 함께 목숨을 잃은 어른은 68명이었다.
선장도 그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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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국 초·중학교에 수영장을 만들어 수영 교육을 강화한 것도 이 사고 때문이었다. 학생들이 수영하지 못해 익사했기
때문이다. 해난 사고 예방을 위한 조사와 항로 개선에 대한 조사를 담당하는 해난방지협회도 설립했다. 이런 노력으로 1950년대까지 빈발하던
일본의 대형 해난 사고가 1960년 이후 크게 줄었다. 이와 함께 사고 지역을 선원이 되기 위한 항해 연습코스로 지정했다. 항해사 등 선원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항해연습선에서 실습을 할 때 필수적으로 이 루트를 지나가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