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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4-20 04:34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생각나는 시가 있습니다.
 글쓴이 : jirall
조회 : 247  

 김수영 시인의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시죠. 뭐 워낙 유명해서 알 사람은 다 아는 시죠, 여기서 화자는 언론의 자유나 월남파병에 대한 반대와 울분보다 자기에게 맛없는 갈비를 준 식당주인이나 돈 걷으러 오는 야경꾼에게 더 화가 난다고 하죠. 이 시에서 방점은 자신의 불합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삶에 대한 울분이라기보다는 소지식인적인 삶에 대한 솔직한 인정이죠. 김수영이라고 해서 언론의 자유를 떠들거나 정부를 비판하거나 월남파병에 대해 한소리 못 할까요?  그라고 해서 그런 사실들이 화가 나고 짜증이 나지 않을까요? 그런데 시인은 아는 겁니다. 자신이 아무리 언론의 자유나 정부 비판을 떠들어대도  오늘 자신이 먹은 밥 한끼, 억울하게 자기 주머니에서 돈 몇푼 나가는 게 실은 더 화가 난다는 비겁한 사실을 말이죠. 

나는 대다수의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요즘 티비에서 인기있는 강신주라는 인문학자가 강의에서 재미난 일을 하더군요. 친구 두명을 두고 한 사람을 때리고 다른 사람에게 어떠냐고 묻는거죠. 네 마음이 아프지 않다면 너는 니 친구를 정말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죠. 이것은 간단한 예이지만 중요한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친구라는 외연을 넓혀보면 너는 지구 반대편에서 힘없는 누군가가 폭력을 당할 때 너 자신이 당하는 것만큼 아프냐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원하는 것이죠. 이것이 공자가 말한 인의 정신이고 예수가 말한 사랑이죠.  그런데 이게 안 된다면요? 그렇다면 김수영처럼 벌거벗은 마음으로 솔직해야 합니다. 오늘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누군가 불합리한 폭력에 죽어가지만 그것보다 오늘 먹을 식사메뉴와 물가가 더 걱정이라면.

어제 유스트림으로 유족들을 비춰주는 것을 보는데 현재 작업중인 구조팀 전문가가 나와 유족들에게 설명하는 것을 보고 반대로 해경에서 나와 상황 설명을 하는 것을 보니 알겠더군요. 구조팀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니 일이 쉽지 않고 시간이 부단이 걸리는 작업이라는 것, 그러나 배 내부에 남은 사람들은 이미 가망이 없거나 희망이 있다해도 희박하다는 것. 그럼에도 최선을 다 하고 있다는 것. 반대로 해경에서 나온 사람을 보니 어째서 정부에서 초기에 발표가 각각 달라 중대본이나 해경이 서로 말이 달랐는지, 왜 정부관계자의 말은 미심쩍은지 왜 확실한 사실을 안 알려주는지.

분명 정부측 잘못은 있어보입니다. 사건이 일어나고 초도대응이 어설펐다는 것. 상황을 보고받고 창구단일화를 못했다는 것. 그 후에도 실제 작업현장과 유족들이나 언론에 대한 브리핑이 시간차가 나거나 달랐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족들에게 현재 상황을 실시간으로 말하지 못한 것. 하지만 초기대응과 창구단일화 에서 보여준 어설픈 리더십말고는 나름 이해가 갑니다. 대체 이 상황에서 현장 전문가도 아닌 관료층인 정부나 해경 관계자가 유족들이 원하는 다양하고 디테일한 실시간 정보를 어떻게 정확히 알 수 있으며 부정적인 사실들을 어떻게 대놓고 말 할 수 있을까 하는 것.

 그러니 현장 전문가가 아닌 해경이나 정부측 관계자들은 보고받은 단편적인 브리핑을 초기에 말하다가 유족들의 강한 반발이 있으면 어버버대거나 한 발 뒤로 물러서서 그냥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일반론을 말하게 되고 그러면 유족들은 뭔가 숨기는 것 아니냐 하면서 더 반발을 하고 유족들 사이에서는 정부 못 믿는다. 내가 아는 전문가는 이렇다더라. 언론에서 그러는데 배 내부에서 소리를 들었다더라 등등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소문들이 떠돌면서 그런 루머들이라도 믿고 싶은 유족들 사이에서 서서히 살이 붙어 퍼지는 등등 음모론이나 유언비어가 자연스럽게 퍼지고 언론은 다시 이것을 퍼나르면 재생산하고 인터넷에서는 서로 다들 내가 더 잘 안다며 한마디씩 거들고 결국 초기에 해경에서 발표한 사실들은 뒤로 묻히고 온갖 것들이 사실이 되어 돌아다니죠.  게다가 정부의 발표중에 틀린 사실이 하나라도 실제 밝혀지면(탑승인원이나 사망자수) 정부에 대한 불신감은 더더욱 커지죠. 결국 이런 상황에서 늦더라도 팩트검증은 철저히 하고 나서 발표를 해야 하는데 정부측 리더십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분노와 슬픔 그리고 비난은 결국 유족들이나 관계자들의 몫입니다. 처음에 말했다시피 그들의 슬픔이 진정 내 슬픔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침착해야 합니다. 오늘까지 상황을 보고 느낀 것은 결국 지금까지 그나마 가장 믿을 만한 것은 결국 실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구조팀, 그리고 해경의 최종보고일 뿐이었고 나머지는 그 팩트들에 살이 붙거나 다른 루머들과 그것에 살이 붙은 것들 뿐입니다. 그들의 슬픔이 내 슬픔으로 진정 다가오지 않는다면 결국 일반 시민들은 침착해야 합니다. 그래야 2차 3차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봅니다. 누구나 분명 화나거나 우울한 일이지만 그것이 유족들만큼은 될까요?  그런데 오늘도 지인들 술자리나 인터넷을 보면 마치 내가 유족들만큼 슬픔을 느끼며 그렇지 못한 것은 비도덕적인 놈이라도 된듯한 분위기를 보면 내가 정말 비정상인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유족들 사이에 선동꾼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확실한 사실은 아닌이상 저는 입을 다물지만 최소한 인터넷이나 주변 사람들은 잘못된 사실이나 정확하지 않은말을 하면서 그것이 다 유족들을 위한 정의로운 일인냥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맞아 보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다시 읽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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훋하다 14-04-20 04:35
   
ㅎㄷㄷ.......ㅎㄷ...? 죄송합니다 못읽겠습니다
낭독훈련 14-04-20 04:37
   
미안 해요 휴대폰이라 글씨가 넘 작고 많아요
끄으랏차 14-04-20 04:54
   
큰 틀자체는 공감하는 부분도 있는데

전제가 일단 이분법적이십니다.

지구 반대편 사람이 맞은것만큼 전부 내가 공감해주지 못한다 해서
내가 그 사건을 접했을때 받은 느낌이 전부 거짓이고 부질없는 일이 되진 않습니다.
개개인의 차이만큼 각기 다르게 느끼겠지만 작게라도 느꼈다면 충분히
그 슬픔에 대해 작게라도 얘기할순 있는거죠.
크게 느낀 사람은 유가족이 모인 장소를 가서 유가족 위로라도 하며 같이 슬픔을 나누시는 거고
작게 느낀 사람은 주변 사람과 이야기하며 그 슬픔을 나누는 거죠.

왜 꼭 유가족 만큼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벌거벗어야 하나요?
유가족 만큼 슬프지 않다고 해서 슬픈일이 아닌건 아니잖습니까.

술자리에서 그 주제가 나오는데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주변분위기가 더 비극적인거 같아
마음에 걸리십니까?

그건 사실 꼭 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케이스에서도 마찬가지 아니던가요?
나와 술자리 함께 하고 있는 그 지인이 혼자 알고 있는 사람이 죽은 경우에도
그 이야기를 그 사람이 꺼내지 않으면 모를까 그 사람이 꺼냈다면
나야 당연히 모르는 사람이니 그 지인만큼 슬플래야 슬플수가 없죠.
그렇다고 해서 그 지인이 느끼는 슬픔을 망칠 이유도 없죠.

꼭 그게 아니더라도 그렇습니다.
밥먹는 자리에서 농담이 아니라 누가 진지하게 지금도 아프리카에서는 굶어죽어가는 애들이 어쩌고 하는데로
주제를 잡으면
다들 잔반하나 안남기고 열심히 먹으려 노력합니다.
굶어죽어가는 아프리카 애들 심정만큼 공감 해주지 못한다 해서
그렇게 작게 나마 노력하는게 혹시 비도덕적이고 가식적인 행동으로 생각하실거 까진 없지 않으신지요
고프다 14-04-20 12:13
   
동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