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특정 정체성을 가진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하죠.
역사 + 국적 + 문화 + 인종 + 혈통 + 경제 + 정치 + 기타
집중해서 봐야 할 건 내용이 아니라 어떤 특정 국가정체성을 가지지 위한 것들이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의 문제이지요.
예를 들어서 한국인이기 위한 조건들을 전부 나열한다면야
역사: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은 알아야 하고 위안부할머니 불쌍해요 정도의 도덕싸구려
국적: 당연히 대한민국국적
인종: 몽골로이드
혈통: 옛날부터 여기서 살던 사람
경제: 생활터전이 여기에 있는 사람
정치: 적어도 북한이 주적이라는건 아는 사람
기타: 나머지
문화: ????
오늘날 이런 조건들은 그닥 강력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몇가지가 탈락되죠.
누군가가 다문화를 떠들면서 인종과 혈통이 탈락됩니다.
누군가가 신자유주의시대를 외치면서 국민경제가 반드시 국적동일성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경제는 탈락.
누군가가 북한이 누군인지 아는것이 그닥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도 탈락.
남는건
역사 + 국적 + 문화 + 기타이죠.
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한국사람' '한국적''절대로 부정할수 없는 한국적 정수이자 요체, 핵심'이라고 할건
위의 것들입니다.
여기서 중요한건 역사냐 국적이냐 경제냐 하는 내용적인 것보다, 과거에는 당연하게 정의되었던 한국인스러움이 과거만큼 많지는 않고 서서히 탈락하여 느슨해졌다는 겁니다.
로버트할리가 한국인인가? 아마도 '네'라고 대답할 사람은 많을겁니다.
그 이유는 한국적, 한국인이라고 주장하기 위한 조건들 중에서 혈통, 인종이 없기 때문이지요.
한국/한국인 = 역사 + 국적 + 문화
라고 할때에 이러한 한국적임을 정의하던것이 과거보다는 느슨하기 때문에 적어도 이 역사, 국적, 문화라는 조건이 과거보다 더 긴장감 있게 강조되어야 합니다. 만약에 역사, 국적, 문화 모두가 탈락해버린다면야 더 이상 한국적, 한국인이 뭔지 정의해주지 못하고 이는 혼란으로 이어집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벌어지는 정체성론은 대개 역사의 극단적 강조와 문화의 극단적 강조로 이어집니다.
더욱이 역사교육의 강조는 괜히 튀어나오는 게 아닙니다. 정확히는 역사가 강조되어야 하는 시대적 이유가 있기 때문이지요. 과거처럼 혈통, 인종처럼 당연히 인지되었던 것들이 사라졌기 때문에 이들이 한국인임을 보장받는 장치로서 역사를 우길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한국문화'라는 두루뭉술한 무언가를 정체성의 단위로 인지하고 이를 체화, 습득하는가로 한국인이 될 수 있다라는 극단론이 나오게 되지요. 주요한 예는 '다문화는 안된다. 한국문화에 동화되어야 한다'라고 하는 것들.
그러나 한국문화는 무언가를 동화시킬 체계도 장치도 아니고 그냥 사후적으로 이건 '한국에서 있었던 생활양식'으로 불리는 것들입니다. 한식 잘먹는다고, 한옥에 산다고, 한복 많이 입는다고 한국문화와 동급인게 아니지요. 상당수 한국인들도 제사 지내지도 않고, 한식을 맨날 먹지도 않고 한옥에 살지도 않으며 한복을 자주 입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관에서 할리우드화된 영화를 보면서 미국팝아류인 케이팝을 주로 듣거나 서양음식에 익숙하며 영어공부에 힘쓰고 있고 해마다 해외여행을 갑니다. 실제 한국인들의 생활은 한국적인게 없어요.
이러한 환경에서 한국인스러움을 정의하는 조건이 사라져가니 으레 문화, 역사에 의탁할 수 밖에 없고 그러니 있지도 않은 한국문화=>정체성을 강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물건은 외산을 사도 되는 시대이고, 인종이 그닥 중요한 기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낙관론의 기저에는 역사, 문화에 대한 극단적인 강조가 있고 이들이 한국을 이루고 있으며, 한국의 밑바닥이 된다면야 불변하는 한국이 된다고 믿습니다.
역사를 잘 붙잡고 있으면, 한국문화만 잘 지켜내면 불변하는 한국이 될 것이니 나머지는 어찌되어도 그닥 상관없다는 듯이 생각합니다.
가장 큰 배신은 그 역사도 문화도 원래는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이건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수도없이 변하는 것들이지요.
최후에 남는건 '법률상 국적'인데 어떠한 내적 연결도 없는 그냥 여권에 찍히는 'RoK'라는 것만으로도 '한국인'으로 불려야 하며 그냥 이건 1등급소, 2등급소로 분류하듯이 인간분류의 기준만 될 뿐입니다.
한국/한국인 = 국적
이러한 조건축소의 시대로 서서히 가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미래가 될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