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부터 문명국가들은 야만족한테 항시 털렷습니다
로마 제국은 게르만 아프리카 야만족에게 맨날 털리고
고대 페르시아 제국도 스키타이인이나 동방유목민족에게 맨날 털리고
중국도 흉노 월족 거란 몽고 왜구 등에게 많이 털렷죠
마찬가지로 한국도 왜구 여진족에게 많이 털려먹은역사가..
심지어 북아프리카 해적은 아일랜드 영국 네덜란드까지 올라가서 털어먹은 적도 있다는
원나라 지배하에서 개경부군의 경군을 제외하고는 지방군체제가 아예 와해된 상태라고
합니다.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지방군이 있어야 싸우든지 말던지 하겠죠. 최영이라든지
이성계라든지 화약을 개발한 최무선이라든지 다 그 시대적인 배경하에서 나타난 인물들
입니다. 왜구와 홍건적 침입을 겪으면서 고려조정에서도 그 이후로 잠자코 가만히 앉아있
지는 않았을테니까요.
고려는 우리나라 역대 왕조 중에서 가장 많은 수의 뛰어난 군사를 중앙군으로 가졌습니다.
2군 6위(4만 5천명)이였죠.
그리고 이들은 직업군인이라서 실력도 좋았습니다.
세습군인의 형태가 많았다고 하더군요.
대신 지방군이 빈약했습니다.
북방의 양계에는 많은 수의 지방군을 배치했지만
나머지 지방에는 수천의 군사가 전부였습니다.
게다가 무신정권을 거치면서 중앙군은 와해됐고 유력자들의
특히 최씨 무신정권의 삼별초같은 형태의 사병이 강화됩니다.
원나라 간섭기의 영향도 있었고 권문세족의 수탈로 나라가 골병이 들죠.
위화도 회군을 할 때 군사가 5만인데 이게 고려의 병력의 전부였습니다.
현종 때 강조가 이끈 군사가 30만인데 당시 고려의 상황을 알 수가 있죠.
조선의 건국 후 개혁을 통해 경제력이 회복되면서 군사력이 35만까지 증가하고
고려와 달리 지방군을 강화하면서 왜구에 대비를 합니다.
고려 말 진포대첩에서 500척의 배와 황산대첩에서 상당한 병력을 잃은 왜구는 기세가 꺽이는데
여기에 마침표를 찍은게 대마도 정벌입니다.
그 전에는 쳐들어오면 모두 물리쳤지만 피해도 만만치 않았죠.
그리고 요즘은 왜구가 실상은 일본 남조의 정예병이였다는 말이 많더군요.
단순히 해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