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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04 15:06
조선의 소드 마스터... 이치전투의 영웅 황진
 글쓴이 : 활인검심
조회 : 1,639  


이순신 장군님이 안심하고 해전에 집중 할 수 있었던 이유
전라도가 살아남아 우리나라를 되살릴 발판이 된 이유

1. 진주대첩에서 일본군 격퇴
2. 전주로 진입히려던 일본군을 이치고개와 웅치고개 전투로 승리해서
  (일본이 조선 침략전쟁에서 가장 크게 패한 전투를 꼽을때 반드시 꼽는 전투)

- 그런데 2번의 전주를 지킨 가장 큰 용장이 황진
 얼마나 대단했는지 도절제사 , 부사, 목사, 군수, 현령 의 체계에서
 현령도 아닌 현감(종6품)이던 황진이 6개월 후 충청도 병마절도사가 됨
 이분은 글을 몰라서 이순신 장군님처럼 자기 기록을 못남김
 (조선에 양반이라도 무반쪽은 글을 몰라고 급제 할수 있었음)
 조선의 소드마스터 라고 할까 삼국지의 노익장 황충에 비견되는 인물


암튼 찾아보면 임진왜란중에 우리나라 장수들도
일본이 전국시대 덕후들 물고 빠는 거 못지 않게 재밌고 훌륭한분 많음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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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 20-12-04 15:11
   
그러게요.조선에도 활잡이만 있었던건 아닌가봅니다.
임란초에 전주성이 안넘어간게 다 저냥반 덕분이라고 하더라구요.

정기룡같은 기마돌격 특화형도 있어서 이야깃거리를 더 만들어낸다면 좋을텐데 말이죠.
개인적으론 몽둥이 버서커 양규가 제일 멋진것 같음.
     
세임 20-12-04 15:20
   
내가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 정기룡 장군인데 ... 1970년대만 해도 정기룡 장군을 소재로 한 꽃신이라는 사극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대본, 필름이 모두 소실되어 리메이크 조차도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그나마 그때까지 살아계셨던 향토 사학자들의 사망후 장군의 연구 자료도 찾기 힘들다고 ...
쌈바클럽 20-12-04 15:15
   
이분 영상을 보기 전까지는 이순신장군도 훌륭한 지략가, 군지휘관으로만 생각했는데 조선시대 무과급제자라 기본 무예가 뛰어나고 지휘능력 뿐 아니라 군사행정분야도 엄청났다는 얘기. 듣고보니 다 맞는말.

그리고 이분은 영상에서 많은 영웅들을 다뤄주시죠. 전부다 기억나진 않더라도 뛰어나고 멋진 분들 많았더라고요.
화난늑대 20-12-04 15:15
   
이 양반 대단한 양반임 ㄷㄷ
글구 당시 한자는 몰라도 한글은 다 알았쥬
그래서 무관도 할 수 있었구유
용이굥이 20-12-04 15:16
   
나에게 소드마스터란... 고려의 척준경장군뿐이었는데... 대를이은 또한분의 소드마스터가...
몽당연필 20-12-04 15:18
   
2차 진주성 전투때도 황진이 전사한 후에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을 정도로 그 영향이 컸다고 하죠.

근데 무관이라도 장계나 기타 공문서를 작성해야 할 일은 있을탠데...
글을 몰라도 상관없었다는건 좀 의외네요
     
활인검심 20-12-04 15:20
   
그런 무관은 대신에 현령 이상 올라가기 힘들었을겁니다
그래도 한 고을에 사또직은 하는지라 이방이나 호방같은 옆에서 보조해주는
벼슬아치들이 사무직 부분을 보필했다고 합니다.
     
세임 20-12-04 15:22
   
2차 진주성 전투 때 조헌, 고경명, 정기룡 장군 같은 대다수의 상식적인 장군들은 모두 후퇴를 주장했음..
애초에 20배나 많은 적들을 상대하는 것 자체가 자~살이라고 생각했죠.

결국 진주성내의 백성들을 피신도 시키지 않아 떼죽음 당함 ...
heltant79 20-12-04 15:20
   
왜군처럼 엄청나게 많은 실전에서 살아남은 군인도 무섭지만
조선처럼 수백년 동안 일정한 교리 하에서 훈련하고 선발한 군인도 만만찮게 무섭죠.
그것도 조선 전기의 군인이 놀고먹기만 한 것도 아니고, 50년 단위로 끊었을 때 여진족과 충돌이 나지 않은 기간이 적었으니...
세임 20-12-04 15:27
   
참고로 글을 몰랐다는 말은 근거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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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최경회(崔慶會) 의병장과 1562년 유교 성리학 수학 시절 사형제(師兄弟) 관계를 맺었는데 이후 1593년 임진왜란 때 사형(師兄) 최경회 의병장과 함께 진주성 전투에서 함께 전사하였다.

황희 정승의 고손자가 글을 모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임... 1570년 초시(初試)에 합격했는데 글을 모르는 사람이 초시에 합격할 수는 없음
     
활인검심 20-12-04 15:35
   
황진을 동복 현감으로 삼았다. 황진은 무인으로 문자는 알지 못했으나 용략(勇略)이 있었다. 그는 김성일을 따라 일본에 다녀와 왜변이 장차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매일 공무가 끝나면 곧바로 말타기와 활쏘기를 부지런히 익혔다.
(선조 수정 실록 25권, 선조 24년 12월 1일 계사 1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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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에 있던 글입니다.

덤으로 위에 동영상에도 나오지만 황진이 직접 장계(보고서)를 올리질 못했다고 합니다.
     
예카테리나 20-12-04 18:32
   
황희는 장수황 씨구요.
황진은 창원황 씨 입니다. 황희정승의 고손자는 아닌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