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에 강남에서 가장 비싸다고 하는 아파트 중의 하나에 살았었고, 가장 너른 평수에 살았다는.
당시 이 친구의 아버지 직업은 지금의 국정원격 기관의 간부였습니다.
이 친구 아버지는 저도 종종 보기는 했지만, 빨갱이라면 엄청 싫어하는 외골수였으며, 반면 일본은 엄청 빨아대는 왜골수였습니다.
친구들과 사석에서 친일파 욕하고 그런 집안은 능지처참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이런 말은 그렇게 마음 편하게 듣지 않다가 고3이 되어서야 커밍아웃 고백을 하더군요.
이 친구 할아버지가 한복을 입고 집안 주요 잔치날 사진을 찍었는데, 온가족이 가슴에는 일장기를 붙이고 왜놈 간부들과 함께 기념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네요.
북한 땅에서 하루 종일 걸어도 일제로부터 하사받은 땅을 벗어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부호였다고 합니다.
일제 시대에 땅 많은 조상 둔 집안은 거의가 그런 케이스가 많다고 녀석이 그러는데 기가 차지도 않았습니다.
얼마나 매국노 중의 매국노 집안이었는지 니뽕 왕하고 비행기 타고 낚시를 간 기념 사진도 있었네요.
그리고 해방후 자기 할아버지는 매국노 처단이 두려워 우선적으로 재산을 될 수 있는대로 정리해서 우선적으로 자기 아들(이 친구의 아버지)에게 마약을 몸에 두루게 하고 월남시켰다고 합니다.
이 친구 아버지는 그 마약 팔아다 우리나라에서 정상적인 부를 다시 이루고 재기해서 늦으막에 대학, 대학원도 가고, 북에 두고 온 부모 생각에 처절한 반공주의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이러한 이 친구 아버지의 투철한 반공 정신을 높이사서 중정부에 취직이 되었고, 처벌한 고문과 충성으로 승진을 거듭나서 그 당시까지 강남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에서 가장 큰 평수를 살게 되었고, 수많은 부동산을 보유하고 떵떵거리며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몇년 전에 이 친구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지금은 수도권 대저택에서 그 부모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 친구의 말이 지금(그 당시)도 이 친구 아버지에게는 니뽕은 존경과 존엄의 대상이라고 합니다.
자기도 이런 아버지가 답답한 면은 있기는 하지만 듣고 보면 또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고 그럽니다.
이 친구의 용기 있는 고백이 한편으로는 애틋하기도 했지만, 피는 못속이는지라 볼 때마다 정이 떨어지는 언행과 생각에 거리를 두게 되더군요.
그리고 이후 이 친구와 자연스럽게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친구 말로는 강남구에서 이런 월남한 매국노들 꽤 된다고 합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때 참으로 잘도 중용이 되었다고 하니.
매국노들은 매국노들을 알아본다고, 당시 강남에는 그런 집안들 이 친구도 잘 안다고 그랬던 일이 지금도 생각이 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