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긴 하죠. 근데 서울에서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가치가
가장 큰 편에 속하는 경복궁인지라 동원할 수 있는 자원
될 수 있는 한 많이 투입했으면 하는 바램에서...ㅎㅎㅎ
사실 내가 보고싶어서이긴 하지만...ㅋ
예전 모습 그대로 있었다면 참 다양한 이야기거리가
전해지고 보는 사람도 흥미가 배가될텐데...
그림보니 짜증이 확... 왜구새끼들...
파괴시키고 변형시킨 일본도 분명 몰상식한 죄가 있고 잘못이 있지만 이미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등 다른 궁궐이 있는데도 왕조의 권위를 올리겠다고 조선전기 경복궁보다 거대하게 국가규모에 비례해서
무리한 중건을 시도한
흥선대원군과 고종등 통치세력 잘못도 있죠
민생을 피폐하게 하고 국운을 쇠하게 만들었으니까요
오죽하면 경복궁 타령도 있을까요
그리고 현대 대한민국 정부 들어서 훼손시킨 경우도 많습니다 경복궁에 산책로 조성한다고 아스팔트 깔고
화장실 곳곳에 세우고 국립민속박물관, 고궁박물관과 주차장을 세우고 구 총독관저 허물고 청와대 세운것도 대한민국정부에서 한일이죠 도로 넓힌다고 동십자각을 섬처럼 만들고 관리소나 사무실등 현대 시설도 세우고
휑해보이니 공원처럼 나무심고 벤치 조성하고 다 유구 훼손이죠 그리고 덕수궁의 경우 대사관이나 종교단체에 부지를 할양해주거나 대한문을 도로 넓힌다고 뒤로 후퇴시켰고 경희궁에 학교나 서울 역사박물관등 시설을 짓기도 하고 창경궁에는 놀이기구를 들여왔죠
일제탓만 하기에는 우리가 소홀히 대하고 무신경쓴점도 크답니다 미륵사지 석탑도 일제가 공구리 발라놨다고 까는데 정작 조선말기 사진을 보니 숭유억불로 석탑이 돌무더기로 무너지는 와중에 방치하고 있었죠 그나마 그당시 첨단소재인 콘크리트로 발라서 형태라도 잡아줬으니 더 붕괴하지 않고 보존할수있었던 것입니다.
제발 무작정 비난하고 남탓만 하기전에 자신먼저 돌아보고 반성하고 깨우쳐야죠 당시는 약육강식의 세계였는데 국방을 소홀히 하고 세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파악못하고 뒤쳐져 약소국이 되었는데 열강들앞에서 자비를 바라는게 웃기는 노릇이죠
그리고 문화재 유물 관련해서는 한국전쟁이나 삼국시대들 내전으로 우리민족끼리 파괴한 경우도 많았고
숭례문 방화사건처럼 스스로 파괴하거나
유물을 집 벽지에 숨기고 보관하거나 도굴해서 파는등
몰상식한 사람들이 많아서 차라리 외국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어서 그나마 보존되고 다행이라고 여긴점이 한둘이 아니네요
방사능 범벅에 태평양 오염 역사적으로 내내 주변 민폐질이나 쳐하면서 제대로 국가 관리도 못하는 쨉은 이참에 대한민국에 국권을 맡기는건 어떨지?ㅋ(최소한 대한민국은 쨉처럼 전비마련, 무기 수입질 쳐하려고 아프리카급 미개 막장으로 자국 백성을 인신매매로 외국에 팔아쳐먹거나 핵쳐맞을 개짓거리는 안하니 걱정은 덜할것)
"일본 정부는 인신매매와 노예제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마리아 루즈 호가 쿨리들과 맺은 계약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 내에서 행해지고 있는 창녀의 인신매매는 무엇입니까? 그녀들은 어릴 때 돈으로 팔려서 가혹한 조건 아래 홍등가에 매여 있지 않습니까? 일본인 창녀의 매매가 합법이라면, 페루인 선장의 행위도 합법적인 것이 되지 않습니까."
디킨스의 표적은 일본에서 합법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예·창기약정(芸·娼妓約定)>도 노예계약이라는 거였죠. 디킨스는 이런 자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실제 유녀의 연한계약증서 사본과 요코하마 병원의 치유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실제 일본 내에서 인신매매가 행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므로, 이러한 변론을 받자 오오에로서도 당장 논리가 궁해질 수밖에 없었죠. 급거 휴정에 들어간 재판정은 한참 후에야 재개장되었고, 고심 끝에 내려진 최종판결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出羽奥州와 奥州(현재의 동북지방)에서
매년 1만 6, 7천명, 上総(현재의 지바현)에서는
3~4만명의 갓난아기가 솎아냄(마비키) 되고 있다'
ㅡ에도시대 농학자 사토 노부히로
쌀로부터 돈(화폐와 상품 경제)으로, 경제의 중점이 옮겨 갔다.상품 경제에 날려 돌려진 농민은, 돈 갖고 싶음에, 농지를 담보로 하고, 고리의 돈을 지주나 상인・고리대금등에서 빌린다.이 농민의 빚정책은, 가난한 농민의 대량생산을, 필연적으로 재촉했다.
「오공 오민」은, 마침내「6공사민」의 맹렬한 착취에까지 발전했다.막부의 大寒・神尾는, 이것에 관해서「백성은 참깨의 기름과 같아서, 짜면 짤수록 잘 나온다」라고 공언하고 있다.
에도시대의 대략 250년간, 일본의 총인구는 2500~3000만명의 사이에 정체하고 있다. 이 원인으로서는, 어려운 연공이나 부역의 징집으로, 농민은 생활에 필요한 최저의 축적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은 채, 조그만 흉작에서도 빈농은 기아로 연결되어, 아사하고 있는 것과 평년이라도 생활을 위협해지고 있던 농민이, 스스로의 지금의 최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갓난아기를 죽이거나(솎아냄), 버리거나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라고 생각되고 있다.
왜농민의 의복에 관해서는, 삼・무명으로 한정되어 노동에 적절한 염색되지 않은 筒袖・잠방이가 사용. 농민의 주거에 관해서는, 더 비참해서, 가건물기둥에, 토방을 강제. 마루는 불경제로 여겨져 토방 위에 멍석이나 짚을 깔고 잤습니다. 땀으로 부드러워진 멍석이나 짚은, 논의 비료로 사용. <농민의 식사에 관해서는, 엄격하게 규제되어 보리나 조가 주식이었습니다. 작은 새의 먹이입니다. 부식이나 간식도 금지.> 오락도, 연중 행사 이외는 금지
그러니까 90% 잘못한 가해자와 10% 잘못 있는 피해자 중에서
10% 잘못한 피해자를 더 욕하고 더 까야한다? 가해자 탓만 하지마라?
어디 보험사 직원이슈?
글케 따지면 일본은 전쟁에 패한게 유일한 잘못이고 반성해야 할 점이겠네?
한국 잘못한거 따지기 전에 일본 잘못한거 좀 읊어봐라.
못하겠지? 쪽바리 똥꼬빨면 알바비 얼마주냐?
그걸 다른 인간 말종 버러지 전범쨉처럼 남의 집에 불을 지르고 강 간, 살인, 재산등을 빼앗거나 온갖 악행에 소유권을 주장할 하등의 이유나 정당성은 전혀 될 수 없는 버러지 전범쨉 극우나 토왜들의 전형적 논점이탈이군요(하물며 왜구들이야 교토나 에도고 지들이 수시로 얼마나 대화재로 태워쳐먹어왔는지 기억상실 ㅋ
그기에 아시아 여러나라의 문화재 파괴와 약탈, 인육질에 대학살에 온갖 짐승 이하의 개짓거리에 자국 왜인조차 전쟁 소모품으로 사용하며 옥쇄질 쳐하다 핵쳐맞은게 불과 100년도 안된 현시점에서 전혀 역사적 기초 상식도 없는 허접개솔들이 전범 쨉극우들 논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