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이집트 향신료.
카이로를 떠나기 전날,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피라미드는 봐야지’하고 택시를 대절했다. 함께한 일행의 얼굴에도 별 기대감은 없었다. 다들 숙제한다는 기분으로 피라미드에 가는 것 같았다. 아마도 전날 백사막에서의 캠핑이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기 때문 아닐까?
피라미드 이야기를 하기 전, 이참에 사막에서 보낸 여정을 풀고 가야겠다. 카이로에서 남서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5시간을 가면 바하리야 오아시스다. 백사막과 흑사막으로 가는 출발점이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물과 음식을 사서 토요타 랜드크루저에 가득 실은 후 사막으로 캠핑을 떠난다. 바하리야 지역에는 2개의 사막이 있는데 흑사막Black Desert과 백사막White Desert이다. 이름 그대로, 흑사막은 검은 모래로, 백사막은 하얀 석회암 모래로 덮여 있다. 바하리야 오아시스에서 1시간여를 갔다. 아스팔트 길은 어느덧 사라져버렸다. 가이드는 차를 세우고 말했다. “여기서부터 흑사막이야.” 주변은 온통 검은빛 땅이었다. 내가 생각한 모래로 가득한 금빛 사막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 위에는 삼각형의 산들이 서 있고 모래가 아닌 돌가루가 가득 깔려 있었다. 흑사막은 화산이 폭발해 만들어진 사막으로, 모래에는 철광석이 많다. 사막 군데군데 자리한 산에 오르면 사막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흑사막은 마치 화성에 온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흑사막에서 다시 1시간여를 가면 백사막이다. 말 그대로 하얗다. 흑사막의 모래에 철광석이 많은 반면 백사막 모래에는 석회석이 많다. 그래서 소금을 뿌려놓은 듯 하얗다. 이 사막에 버섯, 말, 낙타, 아이스크림을 닮은 바위들이 서 있다. “웰컴 투 알래스카!” 가이드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백사막은 흰 모래 때문에 알래스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백사막은 거대한 캠핑장이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여행자들이 사막 곳곳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하룻밤을 즐긴다. 여행자들이 사막의 노을을 즐기는 동안 가이드는 텐트를 치고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해가 지면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를 켜고 사막에서의 만찬을 즐긴다. 식사를 마치면 모닥불을 피우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논다. 칠흑 같은 사막의 어둠 속에서 꽃이 피듯 모닥불이 피어난다. 밤하늘에는 쌀알을 뿌린 듯 별이 가득하다. 모닥불 곁에 드러누워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자들은 이 밤이 내 생의 가장 아름다운 밤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2020년 2월호>
글·사진 최갑수(여행작가)
에디터 여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