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가 자서전에서 본인의 첫사랑이라 언급했고, 시진핑 주석이 박근혜에게 3m의 조운 족보를 선물했다.(...)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박 전 대통령이 조운과 같이 충성심 넘치면서도 야망은 없는 부하를 원한다는 것으로 분석했지만, 조운은 유비를 섬기기 이전에 섬겼던 군주들이 섬길만한 그릇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주저없이 그들을 떠난 적이 있다.
실제 정사에서도 언급이 적고 공도 유비의 적자 구출빼곤 드러낼만한 공이 별로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비 사후까지도 촉나라 실세의 측근으로 꼽힐 정도로 정치적 입지가 탄탄했다. 이는 조운이란 인물이 능력도 능력이지만 공사 양측으로 책잡을 만한 행동자체를 하지않았고 조운이란 인간 자체가 여러의미로 매력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런 면때문에 조운은 십수세기 전인 송나라시절부터도 탄탄한 팬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여담으로, 나관중이 이렇게까지 조운을 띄워준 이유는 나관중의 고향이 조운과 같은 상산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하지만 나관중본에는 조운이 아두(유선)를 구하기 전에 주모를 핍박해 죽게 만들어 충신의 사당에 들어갈 자격을 잃었다고 써져 있다. 그리고, 삼국지연의에서 북부 지방의 지리가 틀린 점이 많아 나관중 상산 출신설이 반박되기도 한다. 위에서 언급되었듯이 조운에 관련된 설화가 많았고 그것이 연의에 반영된 점이 많았기에 조운의 활약상을 더 돋보이게 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