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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6-03 07:45
[MLB] [야구는 구라다] 반칙하던 코치, 말 안듣는 문하생
 글쓴이 : 러키가이
조회 : 1,376  


[야구는 구라다] 반칙하던 코치, 말 안듣는 문하생


1983년에는 그 곳 주소가 달랐다. 1000 Elysian Park Avenue였다. 지금은 Vin Scully Avenue로 불리는 곳이다. 바로 다저 스타디움이다.

클럽 하우스에 소포 하나가 배달됐다. 수신자는 뉴 페이스였다. 텍사스에서 막 이적한 좌완 투수였다. 상자 속 내용물은 괴상했다. 못, 사포, 압정. 그런 것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적혀 있었다. ‘Welcome, Frederick Wayne Honeycutt.’ 환영 선물의 수신자는 릭 허니컷이었다.

이상한 물건은 3년 전 사건 때문이다. 그러니까 1980년의 일이다. 시애틀 투수였던 그는 KC 전에서 나쁜 짓을 했다. 글러브 속에 압정을 숨긴 뒤 공에 흠집을 내면서 던졌다.

하지만 금새 들통났다. 공만 긁어야 하는데, 잘못해서 자기 얼굴에도 상처를 냈다. 피가 나자 심판은 압수 수색을 집행했다. 증거가 발견됐고, 퇴장 명령이 내려졌다. 10게임 정지와 500달러의 벌금이 뒤따랐다.

어설픈 악행이었다. 그건 커리어 내내 꼬리표가 됐다. 다저 스타디움에 배달된 소포 역시 장난끼 많은 누군가의 선물이었다.

허니컷의 퇴장 장면.     사진 출처 = 조지 벡시 홈페이지
               허니컷의 다저스 시절 모습.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초구 커브의 의미

찬란한 5월이었다. 그 대미를 장식한 8승째 경기(5월 31일 메츠전)에서 눈여겨 볼 장면이 있다. 초구였다.

경기 시작과 함께 던진 첫번째 공은 커브였다. 72마일의 느릿한 곡선이 1번 타자 아메드 로사리오의 몸쪽에 떨어졌다.

‘이건 뭐지?’ 현재 스코어, 리그 톱을 찍는 투수 아닌가. 대놓고 파워 피처라고 내세우긴 어렵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아직 예리함을 포기한 적은 없다. 당연히 타자를 제압하는 패턴은 중요하다. 그런데 초장부터 커브라니….

이런 건 교본에 없는 일이다. 일단 1회는 힘으로 시작하는 게 기본이다. 정상급 선발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무조건 맞붙어 압도하는 게 먼저다. 즉, 초구 빠른 볼은 교전 수칙의 1장 1절이다. 비틀고, 꺾고, 꼬는 건 그 다음에 할 일이다.

나중에 본인이 밝혔다. 어느 포털에 연재하는 일기 중에서다. ‘뉴욕 메츠와의 홈경기에서 1회 선두타자인 아메드 로사리오를 상대로 초구 커브를, 2회 선두타자인 피트 알론소에게 초구 커브를 던진 것 등은 초구 패스트볼을 잘 치는 메츠 타자들의 특징을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허니컷 코치님의 조언도 한몫했던 것이고요.’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작년에도 그런 적 있다. 디비전 시리즈 1차전 때였다. 커쇼를 제치고 1선발로 간택돼 화제가 됐던 경기였다. 1회 애틀랜타의 첫 타자 로날드 아쿠나 주니어를 향한 초구도 느린 커브였다. (6-0 선발승) 그 때도 역시 사전에 계획된 볼 배합이었다. 물론 투수 코치의 한 마디가 결정적이었다. “빠른 공 잘 치는 친구니까, 일단 흔들고 시작하자.”

이젠 숙제를 잘 해오는 선수

사방에서 찬사가 쏟아진다. 칭찬과 감탄, 놀라움과 부러움 뿐이다. 입을 떼는 모든 사람이 한결같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대견함을 담은 멘트가 있다. 압정을 사랑한 코치의 평가다.

LA 타임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그가 뭘 던질 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런 걸 예측하는 건 무의미하죠. 모든 타자를 상대로 원하는 공을 던지는 친구예요. 일단 스트라이크 존을 4개 구간으로 나누죠. 그리고 거기에 5개 구종을 마음먹은대로 배달해요. 그런 투수를 상대로 예측하고 친다는 건 바보같은 짓이죠. 같은 타자에게, 같은 투구를 반복하는 법이 없어요. 상대할 무기를 많이 가진 거죠.”

물론 처음부터 우쭈쭈는 아니었다. ‘문제아’까지는 몰라도, 별종처럼 여겨진 부분이 있었다. 자꾸 열외하려는 습성 탓이다.

입단 초기였다. 커브에 문제가 발견됐다. 레슨이 필요했다. 허니컷이 불펜 투구 스케줄을 물었다. 별종의 대답은 기가 막혔다. “저는 그런 거 안 하는데요. 한국에서도 죽~ 안했구요.”

남들은 다 하는 거다. 등판 간격 사이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루틴이다. 너무 많이 욕심내는 투수를 말린 적은 있어도, 아예 생략하는 건 보질 못했다.

“한국에서는 다 안 하니?” (압정)

“아뇨, 거기서도 저만 안했는데요.” (열외)

하긴 뭐. 캠프에 몸도 덜 된 상태로 합류했다. 달리기는 압도적 꼴찌였다. 몸무게와 담배 때문에 시끄러워지기도 했다.

그건 그렇다치자. 공부도 건성건성이다. 구단 전력 분석 파트는 언제나 엄청난 자료를 준비한다. 특히 상대에 대한 데이터는 중요한 것들이다. 꼼꼼히 하려면 밤을 새워도 부족할 판이다. 그런데 대충대충이다. 경기 당일, 자신의 감이 더 중요하다는 논리였다.

그래도 넘어갔다. 아니, 뭐랄 수 없었다. 어쨌든 14승씩 해주지 않았나. 괜한 소리는 트집 밖에 아닐 것이다.

그런데 달라졌다. 갑자기 열공 모드가 됐다. 복학한 뒤, 그러니까 수술로 2년을 쉰 후였다. 눈에 불을 켜고 공부에 매달렸다. 예습은 물론, 경기 중에도 틈틈이 수첩을 꺼내든다. 심지어 경기 전날은 코치 앞에서 프리젠테이션까지 서슴지 않는다.

급기야 성실성에 대한 칭찬까지 나왔다. “Ryu의 머릿 속에는 게임 플랜이 잘 정립돼 있다. 누구는 백도어로 다뤄야하고, 누구한테는 커터를 써야할 지를 잘 구분해서 던진다.” 그리고 한 마디로 압축했다. “이젠 숙제를 아주 잘 해오는 선수다.”

커쇼에게 슬라이더, 류현진에게 커터를

2008년 (베로비치의) 다저 타운에 헐렁한 투수 한 명이 나타났다. 19살의 클레이튼 커쇼였다. 불같은 빠르기와 숨이 멎을듯한 커브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람들은 “샌디 쿠팩스가 나타났다”며 흥분했다.

단 한 사람은 예외였다. 2년차 코치 릭 허니컷이었다. 그는 커브 불안정성에 의구심을 품었다. 그리고 한 가지를 제안했다. 슬라이더였다. 그가 현역 시절 애용하던, 압정을 쓰면서까지 연마한 필살기였다.

비기의 전수는 2~3년에 걸쳐서 이뤄졌다. 급기야 커쇼는 슬라이더 투수로 거듭났다. 그걸로 2011년 첫번째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그 때 허니컷의 대사가 이랬다. “다들 (그 속에) 샌디 쿠팩스만 있는 줄 알았죠. 하지만 그의 영혼 속에는 (좌완 슬라이더의 장인) 스티브 칼튼이라는 위대한 투수가 또 한 명 깃들어 있었던 거예요.”

로스 스트리플링은 부러움에 빠졌다. 어느 틈에 전국구 톱이 된 99번 투수를 향해서다. “커터 하나 배우기 위해 선수 생활 내내 애쓰는 선수들도 많다. 그런데 그 친구는 하룻밤 사이에 마스터했다. 어쩌면 종종 그렇게 타고 나는 선수들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말은 정확하지 않다. 남 일이라고 간단해 보였을 뿐이다.

어깨 수술 후 복학 무렵이었다. 시간도 많겠다,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할 때였다. 압정 코치는 커터를 제안했다. 그러면서 참고서 하나를 알려줬다. 댈러스 카이클(무직)의 동영상이다. 면밀한 관찰 뒤에 테스트에 들어갔다. 캐치볼 하면서 던진 느낌이 괜찮았다.

그런데 찜찜했다. 실전용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계속 반복해도 나아지는 느낌이 없었다. 갸웃거리던 그 때 다시 허니컷이 등판했다. “이렇게 잡고 한번 던져봐.” 살짝 변경된 그립을 알려줬다. 비로소 완성품에 가까워졌다. 꺾임의 정도와 코스의 균일함을 얻었다. (‘류현진의 MLB일기’ 중에서)

‘재능’이 ‘각성’을 만나서 일으킨 화학반응

허니컷은 독보적이다. 벌써 14년째 그 자리를 지킨다. 연속 재임기간으로 치면 메이저리그 역대 3번째다. (시카고 화이트삭스 - 돈 쿠퍼 18년, 샌디에이고 - 대런 발슬리 17년)

그의 문파는 최고의 문하생을 배출했다. 커쇼라는 걸출한 모범생이다. 그를 통해 3차례의 사이영상도 이뤘다.

그리고 이제 또 한 명의 문하생이 뜨고 있다. 겉보기는 그냥 그렇다. 폭발적이지도, 압도적이지도 않다. 그런데 묘하다.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시험만 치면 만점이다. 어렵다는 난제도 척척 풀어낸다. 그러다 보니 자꾸 예측 포인트에서도 맨 앞자리를 차지한다.

공교롭게도 모범생 스타일은 아니다. 걸핏하면 아프다고 수업을 빼먹는다. 착실한 교과 과정에는 관심도 별로다. 예습/복습이라면 손사래친다. ‘골치 아프게 그런 걸 뭐하러요.’ 즉흥적이고, 실전적인 문하생이다. 성실성과는 이웃 사촌간이 분명했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형국이었다.

압정이 가득한 소포는 상상도 못했다. 수신자는 비아냥과 키득거림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런 그가 최고들을 가르치는 코치가 됐다. 게다가 그 중 한 명은 별종이다. 너무 일찍 ‘열외’의 안락함을 깨달았던 문하생에 불과했다.

하지만 세상은 모를 일 투성이다. 그래서 가끔 이런 일도 생기는 법이다. ‘재능’이 ‘각성’을 만나면 일으키는 놀라운 화학 반응 말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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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키가이 19-06-03 07:46
   
설중화 19-06-03 13:36
   
재밋습니다.
아라미스 19-06-03 15:14
   
허니컷 ㅋㅋ 그 시절엔 파인타르가 없었나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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