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반반이라고 보여지네요.. 성공할수도 있고 실패할수도 있는것.. 왜냐하면 일본에 내놓으라고 하는 투수들 진출했을때 일본리그 최상위 수준투수들도 성공 혹은 실패한 투수들이 있었으니까요.. 타자는.. 이치로와 고질라 마쓰이정도?? 그러고보면 달빛이나 이와쿠마 , 구로다 이런선수들은 성공한 케이스네요..
선동열은 분명 성공했을 겁니다.
멘탈도 장난아니고 구위도 최상... 게다가 제구력도 일품입니다.
일본에서 방어율 1점대 초반 방어율을 기록하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본에서 마무리할때도 경기 본 사람이면 아실꺼예요. 워낙 듬성듬성 이겨서 컨디션 찾기도 힘들었을텐데 성적이 어마어마했죠.
제가 빙그레시절부터 지켜봤는데 류현진공은 칠만했다면 선동열공은 칠 수 없는 공이었어요.
선동열 나오면 겜셋~~~
선동열은 이름 자체만으로도 공포였죠.
다 결과론이지만 당시 시대상을 보면 안 가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그 당시엔 메이저리그에 대한 인식이 크지도 않았고 TV중계는 꿈도 못 꿀 상황이었고
전에 다큐를 보니까 대학생일 당시 미국으로 갈지 해태로 갈지 고민중일때 광주팬들이 선동열집앞에서 해태로 가라고 시위하기도 하고 선동열 어머니한테도 '해태로 보내라'는 전화가 빗발쳤다더군요. 해태로 가서 광주에서 10년을 영웅처럼 선수생활했는데 그걸 포기하고 미국갔으면 오히려 당시엔 인기가 덜했을수도 있고 선동열이 막내라 나이많은 부모님,가족생각에 적응못하고 걍 묻혔을수도 있음.
결론적으로 메이저한번쯤 도전해보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당시엔 해태로 간게 최선이었다고 봅니다.
아닙니다.
그당시 신문기사나 작년인가 KBS에서 제작했던 KBO레전드 '선동열편' 방송이 거짓말이라면 할말이 없지만 그 방송대로라면 미국에서 제의가 왔었고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도 맞습니다. 선동열은 당시 고려대에이스로 최고의 대학선수였고 한대화의 홈런으로 유명한 82년 세계선수권도 미국전,일본전 호투로 MVP가 되고 주가가 한창이었습니다. (이땐 한국에 프로가 생기기 전입니다.) 선동열본인도 구속은 대학때가 더 잘나왔다고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한국화장품이랑 먼저 계약을 했다가 어머니가 쓰러지셔서 고향광주팀인 해태로 선회하면서 프로제명될뻔도 했는데 해태상대로 언플을 할 거면 그런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죠.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선동렬이 전성기에 메이저에 갔다면 분명 성공했으리라 확신합니다...
150중.후반대의 직구스피드 고속슬라이더등 뭐니뭐니해도 요즘 현지니의 트레이드 마크인 맨탈 과 제구력 또한 갖춘 선수가 선동렬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최동원//선동렬 선수가 메이저에 못간것은 우리나라 야구계에 큰 손실이 아니였나 싶습니다..
이미 지난 일이고 차후라도 메저에 진출할정도의 선수들에게 장애물이 되지않는 한국 야구계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선동렬도 좋았지만...구대성도 잊어선 안됩니다...일본거쳐 메이쟈에 가긴 했지만...
일본진출했을때 이미 전성기가 한물 지나갔었던 때였죠...미국에선 부상으로 조기 귀국...
한국와서는 더 한물 갔는데도 꽤나 한화에서 좋은 활약을 했었고...거기서 한물 더가서...호주로...
3물 간 상태에서 호주리그 가서...구원왕 먹고...괴물임...^^;;
만약 가장 공이 좋았을 때 메이저 갔으면...마무리 투수를 시켰어도 되었을 구위임...
투구폼이 완전 등돌린 폼이라 공도 안보이지 공도 낮고 면도날처럼 날카롭고 제구도 잘됫지...
진짜 메이저 빅마켓 팀아니었으면 마무리 구위였음...^^;;
이게 뭔소리 평균의 뜻을 모르세요? 그리고 내가 선동열 야구하는거 본세대인데.. 평균적으로 따지면 정확한 데이타는 아니지만 제기억으로 144 ~ 148정도 오가는 공이 가장 많았고.. 150넘는 공은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최선을 다해서 던지면 150넘기는거 그의 능력이라면 충분했겠지만 선발투수가 150이상을 줄기차게 던질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그리고 바이오팜님도 153~156은 평균으로던졌다고 썼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좀 제발...ㅡㅡ
그당시에 일본에서 한물간 투수였던 장명부가 우리나라에서 30승 찍던 시절입니다. 물론 초기에만 활약한건 아니지만 대충 겹치는 시기에 활약한건 사실이었기에.. 우리나라 리그 수준자체가 그야말로 우물안메 개구리 시절입니다. 그당시 스탯이 물론 엄청난 기록이긴 하지만 리그수준이 너무 낮을때죠..
물론 선동열의 포텐이었다면 최동원과 더불어 미국에서도 통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박찬호처럼 아마때 넘어가서 마이너 적응후 얘기고 만약 프로에서 넘어가 바로는 성적이 나오지 않았을거라 예상합니다.
류뚱의 경우 우리나라 리그의 수준이 예전에 비해 비교가 안될정도로 높은 수준이고 더군다나 한참 수준이 오른 우리나라리그에서도 씹어먹는 수준이었기에 통할수 있었던거라 봅니다.
결론은 최동원과 선동렬은 내가 봐도 통할거 같았으나 통한다는 얘기가 에이스급으로 통한다는 얘긴 아닙니다.. 뭐 굳이 얘기하자면 솔리드한 정도의 3선발에서 4선발 정도는 했을거 같네요... 그렇다고 신격화는 좀 그래요... 리그수준을 잘 생각해보세요.. 김일융이나 장명부를 예로 들것도 없이 밀워키 브루워스에서 더블에이 뛰던 박철순이 복귀해서 리그 씹어먹었습니다. 그때 프로의 수준은 진짜 지금에 비하면 완전 유치원수준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