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메이저리그 진출을 계획했던 박병호가 추신수와 애리조나에서 만났을 때. 박병호의 환한 웃음을 다시 보고 싶다.(사진=이영미)>
뉴욕 양키스와의 원정을 마치면 우리 팀은 미니애폴리스로 이동해서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경기를 준비합니다. 사실 오래 전부터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경기를 기대했습니다. (박)병호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죠.
현재 병호의 상태가 꽤 좋지 않은 듯 합니다. 거취와 관련해 이런저런 소문이 나돌기도 하고요. 취재진을 통해 병호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전해 듣기도 했습니다.
기억하기 괴롭지만 지난 시즌 4월의 제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당시 전 타율 0.096을 기록하며 규정 타석을 채운 메이저리그 타자 중 꼴찌인 것은 물론 4월 역대 텍사스 레인저스 타자 중 최저 타율이라는 불명예까지 떠안았습니다. 극심한 부진으로 보이지 않는 비난과 손가락질 속에서 야구장 가는 게 두렵고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슬럼프를 벗어나기 위해 타격 연습장에서 살다시피했지만 꼬인 매듭은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훈련 한 시간 더한다고, 새벽에 출근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사람 만나는 것도 귀찮았고, 가족들한테 짜증내는 일이 늘어났으며, 나를 찾아오는 기자들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올스타 휴식기를 통해 아내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문득 깨달은 게 있었습니다. 난 추신수이고, 내가 그동안 쌓아온 기록과 평가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힘든 일을 겪는 사람으로선 지금 이 순간이 최악이란 생각 밖에 안 들지만 지나고 나면 그 또한 추억이 될 거란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병호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부진이, 힘듦이, 어려움이, 시간이 지나면 ‘아, 그때 그랬었지’라고 회상할 날이 분명 찾아올 것입니다.
팬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말도 있습니다. 제가 작년에 그랬듯이 선수를 평가하고 비난하는 건 시즌 끝나고 해도 늦지 않습니다. 강정호도 지난 시즌 엄청난 활약을 펼치다 부상으로 시즌을 접을지 누가 알았습니까. (김)현수가 스프링캠프에서부터 겪은 시련을 딛고 지금처럼 맹활약을 펼칠지 누가 예상했습니까. (이)대호도, (오)승환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익숙했던 리그를 떠나 새로운 리그에 도전하고, 그 도전 속에서 좌절과 아픔을 반복하며 선수는 성장합니다. 대호나 승환이는 일본에서 이미 외국인 선수로 생활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후배들과는 또 다른 느낌일 겁니다. 병호가 겪는 지금의 상황은 메이저리그에서 더 큰 선수가 되기 위한 시련이라고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아는 병호는 지금의 상황을 잘 극복해나갈 수 있는 선수입니다. 그래도 힘들고 자신감이 떨어진다면 제가 하는 이 말을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병호야, 형은 타율이 0.096까지 떨어졌었어. 괜찮아. 넌 분명 멋지게 일어설 테니까. 넌 박병호잖아.”
* 이 일기는 추신수 선수의 구술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http://sports.news.naver.com/wbaseball/news/read.nhn?oid=512&aid=0000000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