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에 의하면 다르빗슈가 복귀전에서 강정호와 맞붙고 싶어 했다고 한다. 추신수는 강정호가 생각보다 훨씬 장점이 많은 선수였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커쇼가 커쇼이듯, 다르빗슈는 다르빗슈였습니다. 2014년 8월 팔꿈치 통증으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이듬해 3월 수술을 받았던 다르빗슈 유가 오늘(5월 29일, 한국시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의 2차전에 복귀했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 시간을 기다렸을까요. 이미 마이너리그에서 재활 경기를 치르며 몸 상태가 완벽히 회복됐다는 것을 실력으로 보여줬지만 그래도 제 경험에 의하면 메이저리그 복귀는 묘한 긴장과 설렘을 안겨줍니다. 다르빗슈도 비슷한 감정을 공유했을 텐데 그는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제구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고 자신의 투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토니 바넷에게 공을 넘기고 마운드를 내려온 다르빗슈와 함께 경기를 보며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다르빗슈가 아주 흥미로운 얘기를 하더라고요. 피츠버그를 상대로 한 복귀전이 결정되면서 자신은 강정호랑 꼭 붙어보고 싶었다고요. 순간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한국의 강정호를 상대해보고 싶었다는 얘기지?”라고 물었습니다. 다르빗슈는 “예스”라고 답했고요.
글쎄요, 그게 자신은 일본 투수이고, 정호가 한국 선수라서 맞붙고 싶다고 말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거기까진 묻지 않았으니까요. 피츠버그 라인업에 오른 선수들 중 정호 이름을 콕 집어서 얘기한 것은 정호가 그만큼 잘 하고 있다는 얘기이고, 자신도 그에 대비해 준비를 많이 해놨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요? 다르빗슈와 정호와의 맞대결은 솔직히 저도 보고 싶었던 장면입니다. 구단의 선수 관리 차원에서 오늘 경기에 결장했지만 정호가 요즘 보이는 상승세라면 분명 재미있는 경기가 펼쳐졌을 테니까요.
전 어제 정호가 메이저리그에서 경기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가까이서 지켜봤습니다. 지명타자로 출전하는 바람에 수비 장면은 보지 못했지만 공격은 정말 자신감 있게 풀어가더라고요. 정호의 기록이 말해주듯이 홈런도 잘 치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스윙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며 자꾸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오늘 경기를 앞두고 ‘코리언 데이’ 행사가 펼쳐졌습니다. 저야 부상으로 뛰지 못하지만 정호라도 경기에 나섰더라면 야구장을 찾은 많은 한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을 텐데 정호의 휴식일과 겹치다보니 ‘코리언 데이’에 두 명의 한국 선수들이 모두 뛰지 못했습니다. 경기 전 사인회를 통해 그 아쉬움을 대신했지만 여러 가지로 한인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습니다.
경기 전 정호에게 한 가지 당부한 게 있습니다. 투수들의 견제를 조심하라고요. 투수는 잘 치는 타자를 상대할 때 몸쪽 승부나 위협구를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못 치게 해야 하니까요. 그러다보면 몸에 맞는 볼도 많이 나오고 예기치 못한 부상이 발생합니다. 맞기 싫으면 물러서야 하고, 그래도 맞고 나가려면 몸쪽 공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유독 많은 투수들로부터 몸에 맞는 볼을 경험했던 저로선 사구를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이 생기는 순간 투수의 심리전에 말려들 거란 생각에 몸쪽 공으로 위협을 해도 물러서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야구를 하는 선수들은 압니다. 90마일이 넘는 공이 포수 미트가 아닌 자신의 몸을 향할 때 0.2초 사이에 느끼는 강렬한 공포가 어떤 감정인지를.
정호를 비롯해서 현수, 병호 등 올시즌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후배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제가 야구하면서 가장 기대했고, 상상했던 그림들이 올시즌 펼쳐지고 있는데 정작 제가 부상으로 그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있네요. 그래도 후배들 관련 소식은 종종 챙겨 봅니다. (김)현수는 꾸준히 기회가 주어지면 충분히 제 실력을 발휘할 거라고 믿었고, 정호야 이미 한 시즌을 경험했기 때문에 복귀 후에도 파워있는 모습을 보여줄 거라 기대했습니다. 가장 걱정했던 후배가 병호였습니다. 병호는 많은 부분에서 저랑 비슷합니다. 그래서 더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어요. 최근 병호가 살짝 힘든 모습을 보였습니다. 병호가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전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나중에 병호랑 직접 통화하거나 만나게 된다면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지난 번 일기에서 햄스트링 부상 후 LA 에인절스에 복귀 예정이란 내용을 담았다가 결국 그 경기에 복귀하지 못하고 다시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올랐습니다. 에인절스 경기 전에 일찍 야구장으로 출근해서 트레이너랑 다양한 테스트를 통해 몸에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트레이너가 이왕 테스트해 본 김에, 병원에 가서 MRI를 찍어본 후 완벽하다는 결과가 나오면 경기에 나가자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MRI 촬영 전에 또 다시 주치의가 다양한 검사를 실시했습니다. 거기서도 전혀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MRI 검사 결과 허벅지에 이상 증세가 발견된 겁니다. 그 상태로 경기에 나갔다간 전력 질주하는 중에 허벅지 부상이 재발될 확률이 높다는 의사의 소견이 제기됐습니다. 결국 MRI 촬영 후 제 복귀 시나리오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말 참담했습니다. 부상 복귀전에서 다시 부상을 당했으니 팬들도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욕 먹을 각오를 했고, 어떤 비난에도 제 부족함을 내세우며 재활에 몰두했습니다. 현재 전력을 다해 질주하는 것만 빼놓고 치고 던지는 훈련은 다 소화하고 있습니다. 한국 시간으로 6월 6일부터 마이너리그로 내려가 재활 경기를 치른 후 일주일 정도 지나 메이저리그로 복귀할 예정인데요, 제 야구 인생 자체가 단 한 시즌도 수월하게 흘러가는 걸 허락하지 않네요.
복귀전을 기다리고 계셨을 팬들에게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무슨 탓을 해봐야 소용 없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뒤돌아보지 말고 주어진 재활 프로그램 잘 소화하면서 또 다시 복귀일을 기다릴 수밖에요. 야구 선수가 야구를 해야 하는데, 자꾸 정신 수양만 거듭합니다.
* 이 일기는 추신수 선수의 구술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http://sports.news.naver.com/wbaseball/news/read.nhn?oid=512&aid=000000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