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과 김영삼. 남진과 나훈아. 이미자와 패티 김. 이들은 시대를 상징하는 숙명의 라이벌(Rival)이었다. 말이 칼이 돼 상대를 찌르기도 했지만, 이들은 라이벌을 인생의 동반자 삼아 일생을 함께했다. 프로야구에도 라이벌이 있었다. 선동열과 최동원이다. 두 투수는 한국프로야구를 상징하는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두 이가 전부는 아니다.
야구해설계에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라이벌이 있었다. 바로 하일성(62)과 허구연(60)이다. 두 이는 1982년 프로야구 출범부터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마이크 앞에 앉아 있다. 그러나 마이크 앞에 앉아있다는 걸 제외하면 다른 라이벌처럼 공통점이 없다. 두 이는 서로 다른 방송사에서 서로 다른 관점과 서로 다른 스타일로 야구팬에게 야구를 전달했다. 두 이가 동시에 중계할 때 시청자들이 반으로 갈리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일성과 허구연은 ‘다름’과 ‘틀림’이 어떻게 다른지 아는 이들이었다. 두 이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했고, ‘차이’를 용납했다.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이 됐다. 물론 세상은 두 이의 건전한 경쟁심을 부추겨 등을 돌리게 하려 노력했고, 항간엔 두 이의 사이가 나쁘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하일성과 허구연은 같은 악보를 바라보는 성가대원처럼 이렇게 말한다. “하일성과 허구연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다”고.
두 이의 대담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30년 동안 몇 차례나 대담을 했다. 하지만, 두 이는 “숨겨진 진실과 감춰둔 속내를 털어놓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한다. 사실이다. 프로야구 30주년을 맞아 한국야구 해설계의 두 거목인 하일성과 허구연은 <스포츠춘추>와의 특별대담에서 ‘기억’이란 밀실에 숨겨둔 야사와 뒷이야기들을 ‘대담’이란 광장에 펼쳐놓았다. 예순이 넘었으나, 아직도 야구소년인 두 이는 장시간 동안 한국프로야구를 반추했다.
박동희(이하 ‘박’) : 바쁘실 텐데, 귀중한 시간 내주신 두 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역시 ‘프로 해설가’다우십니다. 예정된 대담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오셨네요.
하일성(이하 ‘하’) : 사실 그보다 일찍 왔다고. 배가 고파서 식사를 먼저 하고 왔어요. 그런데 허 위원이 나보다 먼저 와있네(웃음).
허구연(이하 ‘허’) : 오늘 참 바쁜 날인데, 형님이 오신다고 하니 안 올 수가 있나요. (하 위원을 바라보며) 요즘 건강은 어떠십니까.(주 : 1949년생의 하 위원이 1951년생의 허 위원보다 2살이 많다)
하 : (손을 가로 저으며) 말도 마라고. 진짜 나이는 못 속이겠더라. (허릴 굽혀 무릎을 만지며) 요즘 무릎이 그렇게 아파. 예전엔 온종일 걸어 다녀도 무릎이 생생했는데 말이지. 넌 요즘 어때?
허 : 저도 비슷해요. 실업야구 한일은행에서 뛸 때 정강이를 심하게 다친 적이 있잖아요. 이게 나이가 드니까 조금씩 아파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형님이나 나나 다른 건 몰라도 건강은 챙깁시다(웃음).
박 : 시즌을 앞두고 중계준비하시랴, 야구계 발전에 애쓰시랴 상당히 바쁘실 듯합니다.
하 : 아무래도 야구해설가는 시즌 전이 더 바쁘다고.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정말 눈코 뜰 새가 없어.
허 : (울상을 지으며) 나도 일이 많아 죽겠쓰요. 야구해설이 주업이니까 일본 스프링캠프 다녀오고, 9구단 창단 좀 도와주고, 야구장 건립 문제를 신경 쓰다 보니까 좀 지쳤어요. 요즘도 한 번씩 야구장 건립문제로 경남 의령, 거제를 다녀오는데 정말 몸이 예전 같지가 않아요(웃음).
프로야구 출범은 MBC의 작품이었다.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295&article_id=0000000580&date=20110401&pag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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