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산업적으로 애니메이션이 제대로(?) 제작되고 있는 국가는 전세계적으로 봐서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미국, 일본, 중국(홍콩), 프랑스, 독일, 영국 정도를 제외하면 그렇게 자국 애니가 활성화된 국가들이 없습니다. 물론 예술적인 측면에서는 CIS 지역, 아프리카 일부, 중남미 등에서도 좋은 애니메이션들이 만들어지고 있으나,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양옆에 있는 중국과 일본이 워낙 시장이나 산업적 측면에서 세계 탑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우리나라가 초라해 보이는 것이지, 그런 부분을 제외하면 그렇게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절대 긍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긴 합니다만...)
예컨대 동남아에 가보면 애니는 70% 이상은 일본 애니고 20% 정도는 미국, 나머지 10% 정도가 그 나라 또는 한국 등의 애니메이션인 것 같습니다. 그나마 한국은 유아용 애니메이션에서는 꽤 경쟁력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조금씩 위 연령대로 올라오려는 시도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즉 다른 나라들이라고 해서 재패니메이션 쳐다도 안볼만큼 자국 애니가 흥한 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일정서가 강한 중국도 동영상/애니메이션 사이트들을 보면 최소 50% 이상은 재패니메이션이 차지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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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애니메이션이 왜 이렇게(?) 되었냐고 할 때, 다른 대부분의 세상사가 그렇듯이 결국 수요와 공급, 시장과 상품이라는 대원칙이 가장 우선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정부탓도 있을 것이고 제작자나 소비자 탓도 다 어느 정도씩은 있겠죠. 그러나 - 현업에서도 느끼지만 - 결국 문제는 "돈이 되냐"입니다.
만약 한국 오덕들과 일반인들이 갑자기 애니 굿즈에 돈을 펑펑 쓰기 시작한다면, 한국 애니메이션이 일본을 능가했다는 말이 10년 내로 나올 거라고 장담합니다. 중국이 무서운 건, 시장이 있기 때문에 한국 일본 건너뛰고 바로 헐리우드의 메인스트림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을 고용해서 중국 시장을 위한 애니메이션들을 만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일본은 버블기에 명작들이 나왔다가 지금은 오타쿠 시장 위주로 갈라파고스화되고 있으로 보입니다. 그런 현학적이거나 라노벨류, 미소녀류의 작품들이 청소년이나 오타쿠들에게는 수준높은 작품처럼 보일지는 모르나, 넓게 보면 산업적으로든 작품 내적으로든 그런 애니메이션들은 마이너하며, 뚜렷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식의 범용적인 정서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이 훨씬 파급력이 있죠. (그래서 지브리의 몰락은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이나 일본보다 중국 애니메이션의 미래가 밝다고 봅니다. 투니X스 등을 소유한 국내 최대의 모 미디어 대기업은 중국이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지 않은 프로젝트는 쳐다도 안 본다는 속설(?)도 있지요... 한국 애니메이션이 왜 망했냐보다는 앞으로 그럼 우린 어찌해야 하나가 더 중요한 토론거리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실제적으로 볼 때 가장 심각한 부분은 테마와 스토리를 풀어내고 완결짓는 노하우나 경험을 가진 PD와 작가, 감독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물론 그 원인은 위에서 말한 시장과 수요공급입니다) 초기 컨셉을 잡는 건 다른 나라에 꿀리지 않게 잘 하는데, 그걸 풀어나가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의외로 영화나 드라마보다 애니메이션이 유독 인문학적 상상력과 감성을 요구한다는 점도 한중일이 공통적으로 약한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픽사와 전성기 지브리 작품들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