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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2-05 09:31
[일본] 일본이 국력이 세진건 1차 세계대전 이후임
 글쓴이 : 하얀gd
조회 : 2,597  

메이지유신때 일본은 그렇게 쎄지도 않았음

청일전쟁에서 일본은 청나라와 싸운것이 아닌

청나라의 리홍장의 군대와 싸운것임

즉 청과 대규모 전면전을 한것이 아님


게다가 일본은 청일전쟁을 정말 온힘을 다해서 싸웠고 청나라는 일본군을 너무 무시했으니

청이 박살이 난 것임


3국 간섭으로 요동반도를 돌려주고 빡친 일본은 민비(이땐 고종이 황제가 아니었기에 민비임)를 살해

그리고 조선을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개혁시킴


나중엔 미국 영국과의 외교수교를 통해 서로 교류가 있었고..


1차세계대전이 터지자 일본은 1차대전 말미에 참전했고 중국 칭다오에 주둔하고 있던 독일을 공격하여 전과를 올리고(사실 이때 독일은 다 죽어가던 상태였음..)

ps 갑자기 칭다오 맥주가 생각나네~있다 한 캔 마셔야지 ㅋㅋ


1차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자 일본이 패전국으로부터 받은 배상금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여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성장했던 것이 일본인데


이때부터 일본의 국력이 점차 강성해진것이지...

뭔 헛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요?


일본이 문 열기전에 일본이 국력이 강해서 유럽 이런 나라들이 건드리지 못했다?

뭔 소리를 하시는지...


섬나라라서 공격을 못 하겁니다 할수도 있지만 일본의 토양은 쌀 이런 농사를 짓기에 척박한 땅이고

(일본은 지금도 상당수 식량을 수입합니다)

동방의 끄트머리에 섬나라 일본이 무슨 매력이 있겠습니까?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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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노스 15-02-05 09:59
   
청국의 실권자 이홍장은 일본의 세력을 두려워해서 가능하면 일본과의 전쟁을 피하려한 기록이 있어요.
청국 자신들의 기록에 의하면 청국의 주력군인 북양군조차도 훈련이 덜 되어있는 내전용 시위군이지 외국과 싸울만한 군대가 아니었다고 하지요. 북양해군이 대형전함 '정원'을 함대 총기함으로 삼았으나, 주포 포탄의 구입 비용을 서태후의 생일비용으로 날려버렸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청국은 부패로 인해 취약했습니다(아 헬기없는 독도함 어떡하나).
이홍장은 자국의 그런 사정을 잘 알고있던 실권자인데, 그런 청국이 일본을 얕보고 무시해서 일본에 졌다고 말씀하시기는 좀...

아무튼 일본이 16세기 이전에도 강국이었다 떠드시는 분도 계셨지만 님처럼 1차대전 이후로 말씀하시는것도 좀...
러일전쟁은 먼거리에서 군대를 보내야했던 러시아와 싸운것이라는게 확실히 일본에게 실력만이 아니라 운도 따라주긴 했다 말할수 있지만요.
1차대전뒤라...저도 마음같아선 80년대에야 비로소 일본이 강국이 되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으나, 좀 너무 뒤로 밀으셨네요 ^^
북창 15-02-05 11:23
   
민비(이땐 고종이 황제가 아니었기에 민비임)????
이건 대체 무슨 사고 방식임??
시호로 부르는건 당연한 건데...
그럼, 인현왕후도 민비인가요?ㅋ
     
하얀gd 15-02-05 11:28
   
그땐 민비였기에 그렇게 부른건데 뭐가 잘못된거죠?
          
북창 15-02-05 11:34
   
??? 그땐 민비라뇨?? 점점더 이상하시네...
그땐 중전이었죠. 민비였을 때란건 없습니다.
왜구들이나 그렇게 불럿죠.
               
하얀gd 15-02-05 15:57
   
중전 민씨는 황후마마란 소리 한번도 못들었는데 뭔 소리하시는지,,?
봊이 15-02-05 11:28
   
민비의 민은 성씨고 비는 왕(비)자인데
명성황(후)라고도 했으니
왕비도 맞고 황후도 맞는것임
하지만 존호를 받은적은 없고........
명성황후는 후대에 불려진이름인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남궁동자 15-02-05 13:35
   
일본의 국력이 강해진건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입니다. 메이지 유시니 이후 기형적으로 군사력만을 증강해 그 전까지는 단순히 군사력만 강했을 뿐인 기형적인 거지국가였지만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이후에 간신히 숨을 돌릴 시간을 얻게되어 사회 전체적인 발전이 이루어지며 열강의 한 축으로 끼어들 토대가 이루어졌고 되었고 이후 한반도를 수탈하여 간신히 열강에 진입하게 된것입니다.
스마트MS 15-02-06 00:46
   
러일전쟁이 먼저냐- 1차 대전이 먼저냐. 전후의 차이만 있을뿐.
1차대전 영향도 일본성장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긴 했습니다.
그렇기에 완전히 틀리다고는 할순 없죠.
예를들어 러일전쟁 이후. 나름 호황이던 일본 경제가 1907년 미국발 경제공황에. 경공업 수출이 타격받기 시작하였고.
이는 전체적인 경제불황과 재정위기로 삐그덕 대던 시점이였죠.
이때. 영-미국이 제안한  제한적인. 참전을 무시하고. =전면적인=참전국으로. 합류하여.
7만2천명을 파병하고. 이중 부상자 2만명에. 사망자 4000명의 핏값으로.
이익을 챙겨. 중국내 독일지분이라든지. 전쟁보상금등으로 경제호황을 이루어. 수출증가를 만들고.
발주물량을 소화할. 선박이 부족하다보니. 직접 건조에 뛰어들어. 해운업까지. 진출하게 되고.
이는 일본해군전력 강화의 초석이 된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1차대전 참전 이후. 누린 경제효과.

일본 근대화 이후. 최초로. 공업생산액이. 농업생산액을 누른거라 하니...분명. 분명. 1차대전은. 일본 입장에서는
호재 였던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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