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국 지배를 말하는 건 아니고, 홍콩의 경우입니다.
중국과
영국 사이에 벌어진 아편전쟁에서 중국이 패하면서 1841년에 홍콩이 영국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영국이
홍콩을 넘겨받을 당시 홍콩의 인구는 불과 7450명뿐이었어요. 그러니까 어부들만 사는 따라지 깡촌 시골 섬 하나를 달랑 받은 것이었죠.
그런데
영국이 홍콩을 통치하기 시작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1841년에 불과 7450명이었던 인구가 1865년에는 12만명, 1916년에는 53만명, 1941년에는 160만명, 1997년에는
650만명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인구가
늘어난 이유는 중국의 폭정 또는 중국에서의 굶주림에 못 견딘 중국인들이 자꾸 홍콩으로 넘어왔기 때문이에요.
본토
중국과는 달리 홍콩에서는 법치주의의 틀 안에서 자유롭게 상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 주었어요.
1997년에 만기가 도래해서 홍콩은 다시 중국으로 반환이 되었는데요,
이
때 홍콩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을까요?
자,
이제 우리는 영국으로부터 꿈에 그리던 독립을 하는구나! 홍콩 독립 만세! 이랬을까요?
아니요.
오히려 그 반대였어요. 홍콩 사람들은 영국 통치자에게 제발 우리를 공산주의 중국의 손에 넘기지 말라고 폭발적인 여론이 일어났어요. 심지어
홍콩 사람들 중 돈이 좀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공산주의 중국의 폭정이 두려워 캐나다, 미국 등지로 투자 이민을 가는 경우가 유행처럼 번졌어요.
(다행히 중국이 홍콩을 자치 지구로 지정하여 공산당의 지배로 넘어가진 않았지만.)
영국 식민 지배 당시 홍콩의 특징이 한 마디로 ‘살기가 좋았다’라는 거에요.
1970~80년대
당시 홍콩은 물가가 엄청 쌌어요. (지금은 아니지만.)
1980년대
당시에 홍콩에 살던 한국 주재원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때 홍콩에서 각종 보석, 명품, 가구 등을 잔뜩 사서 가는 게 유행이었어요. 홍콩의
물가가 워낙 싸서.
또
한 가지 특징이 영국 지배하의 홍콩에서는 교육 시스템이 이원 체제였는데 중국 학교와 영국 학교가 같이 있었어요. 그런데 희한한 게 돈이 좀 있는
홍콩인들은 자녀들을 중국 학교에 안 보내고 영국 학교에 보냈다는 거에요. 영국인들은 원래는 홍콩에 있는 영국 지배계층을 위해 영국 학교를 세운
거였는데 홍콩인들이 자꾸 영국 학교를 오길 원해서 교육 장사가 되니까 나중에는 장사하려고 홍콩인들을 위한 영국 학교들을 따로 세웠죠.
이
영국 학교에서는 일단 학교 가는 순간부터 중국어는 금지, 영어만 써야 하고요, 역사도 중국 역사가 아니라 영국 역사를 가르쳤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홍콩인들은 다들 자녀를 영국 학교 보내고 싶어서 안달이었어요.
우리에게
익숙한 성룡, 주윤발, 왕조현, 주성치와 같은 홍콩 영화 배우들도 1980년대 영국이 홍콩을 통치할 때 홍콩이 문화의 꽃을 피우면서 나온 것이고요.
이와 같이 영국의 홍콩 식민 지배를 보면 무작정 “식민 통치는 다 나쁘다.”라고
단정을 하는 건 좀 아닌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