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사진은 요령성 심양, 아래 지도에서 선양으로 표기된 위치에서 발견된
초기 고조선을 대표하는 청동 비파형 동검이나 미송리 토기 및 고인돌 등
의 세력권에 있는 고조선의 대표적 출토지 중 하나인 <정가와자유적지>입
니다.
윗그림 중 아래 오른쪽 사진이 바로 고조선의 영역에서 나오는 청동 단추로
이것은 동아시아 최초의 금속 갑옷인 청동 갑옷이나 신발에도 확인되며 그
외 의복용으로도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청동단추들은 고조선의 비파형 동검과 거의 같은 지역에서 출토됨)
KBS 역사스페셜에서 나온 고조선의 갑옷과 투구.기마병. |
기타 심양 정가와자 유적지의 여러 출토 유물
한민족 고유의 상투머리를 한 홍산문화
문익점 보다 800년 앞선 백제의 면직유물
고조선 가죽-모직물은 이웃나라 교역상품
고조선의 유적인 심양시 정가와자 6512호 무덤과 누상무덤에서 묘주의 가슴과 다리부분에서 많은 량의 청동장식 단추가 출토되었다. 이것은 묘주가 청동 단추를 단 가죽옷과 신발을 신었던 것을 알게 한다. 고조선에서는 화려한 청동 장식이 빼곡히 달린 의복과 가죽신발을 신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전쟁터에서는 갑옷의 역할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구려에서는 신분에 구별 없이 성인 남자 모두 가죽 모자를 쓰고 누런 가죽신을 신고 무늬가 없는 가죽 띠를 착용했으며, 부여와 한에서도 가죽신을 신었다.
신발은 복식 가운데 가장 많은 수요를 차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집짐승 가운데 가장 많이 생산되는 돼지가죽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돼지는 사육이 빠르기 때문에 가죽을 대량으로 쉽게 얻을 수도 있고 털이 적은 동물은 털이 많은 동물보다 가죽이 질기고 강한 장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신의 재료로서 적당했을 것이다.
부여는 건국신화에 돼지우리와 마구간이 등장하고, 짐승의 이름이 관직명으로 사용된 것을 보아 목축업이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토성자유적 대부분의 돌관무덤에서는 돼지의 이빨과 뼈가 대량으로 출토되어 부여에서 돼지를 많이 길렀음을 알 수 있다. 숙신에서도 돼지를 많이 길러 고기는 식용으로 하고 가죽과 뼈는 갑옷을 만들고 털은 짜서 포를 만들었다. 읍루에서도 돼지를 많이 길러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었다.
고구려에서는 사슴과 멧돼지가 많이 사냥되었다. 부여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