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김준섭] ‘보통국가’로 향하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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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 8일 아베 총리 관저에서는 ‘안전보장의 법적 기반의 재구축에 관한 자문회의’라는 긴 이름의 회의가 개최되었다. 이날 아베 총리는 “여러분의 예지를 담은 결론을 직접 받아보지 못해 매우 마음이 괴로웠는데 오늘 이렇게 다시 보고서를 받을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정말로 여러분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감개무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베 총리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2007년 5월 18일, ‘전후체제로부터의 탈피’를 외치며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추진하고 있던 아베 총리는 ‘보통국가’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인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실현하기 위하여 ‘안전보장의 법적 기반의 재구축에 관한 자문회의’를 발족시켰다. 집단적 자위권이란 긴밀한 유대관계를 가진 국가들 중 어떤 나라가 제3국으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 다른 나라가 이를 스스로에 대한 무력공격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여 반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 것으로, 유엔헌장 51조에 의해 모든 회원국들에 부여되어 있다.
그런데 일본정부는 헌법 9조에 의거하여 자위를 위한 필요 최소한의 무력만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이 자국이 무력공격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긴밀한 유대관계에 있는 타국에 가해진 무력공격에 대해 반격하는 것은 헌법 9조에 비추어 볼 때 위헌이라는 헌법 해석을 유지하고 있다. 만일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게 된다면 헌법 9조는 완전히 유명무실해지며 자위대는 헌법 9조의 제약에서 벗어나 공격용 무기를 강화하고 군사활동의 영역을 넓혀 ‘보통군대’로 탈바꿈할 것이다. ‘보통군대’를 가진 ‘보통국가’ 일본이 출현하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이 자문회의에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 없이는 해결될 수 없는 안보상의 상황들을 제시하며, 자문회의의 전문가들에게 각각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대책을 제시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런데 전문가들 대부분이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지론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문회의가 ‘헌법 해석의 변경에 의한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라고 하는 아베 총리가 원하는 정답을 내놓을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해 9월 아베 정권은 붕괴되었으며, 2008년 6월 24일 후쿠다 총리에게 ‘정답’이 담긴 최종보고서가 제출되었지만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 문제에 관심이 없던 그는 아무런 후속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뒤 일본 정치는 반전을 거듭하여 2009년 총선거에서 민주당 압승에 의한 정권교체, 2012년 12월 자민당에 의한 정권 탈환과 아베 정권의 재탄생이라는 드라마가 펼쳐지게 된다. 아베 총리는 이번에야말로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실현시키겠다는 집념으로 6년 전의 자문회의와 완전히 동일한 멤버와 명칭을 가진 자문회의를 발족시켰으며 그 첫 번째 모임이 이 글 서두에 소개한 회의였다.
그리고 이날 자문회의는 2008년 후쿠다 총리에게 무시당했던 보고서를 다시 아베 총리에게 제출했던 것이다. 이제 아베 총리 스피치의 의미와 그것에 서려 있는 그의 심정이 이해될 것이다.
이 자문회의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명기한 ‘국가안전보장기본법’을 제정할 것을 제언하는 보고서를 7월에 실시되는 참의원선거 전에 제출하고, 선거 이후 일본 정부는 그 법안화에 착수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되고 있다. 물론 연립정권 내의 공명당이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법안화가 그렇게 순탄하게 진행되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참의원선거에서 현재 많은 전문가들이 예상하듯이 자민당이 큰 승리를 거둔다면 아베 총리에게 더욱 힘이 실리면서 법안화가 급물살을 타게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보통국가’ 일본의 출현은 그렇게 먼 장래의 일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김준섭 국방대 안보정책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