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은 지명이였다.
사기;
卷六十九 苏秦列传第九
曰:“燕东有朝鲜、【索隐】:潮仙二音,水名。
연동에 조선이 있다,[색은]조선 두음이다, 강이름이다,
卷一百一十五 朝鲜列传第五十五
集解张晏曰:“朝鲜有湿水、洌水、汕水,三水合为洌水,疑乐浪、朝鲜取名於此也。”
[집해: 장안이 말하기를,조선에는
습수,열수,선수,가
있는데, 3水가 합하여 열수가
되니,'낙랑','조선'의
이름은,그것을
취한것이 아닌가 한다.]
【索隐】:案:朝音潮,直骄反。鲜音仙。以有汕水,故名也。汕一音讪。
[색은:
朝는 음이, 潮요,
鮮은, 仙이니,'선수'가 있슴으로, 그
이름을 붙인 것이니, 선이
원래음이다.]
대동여지도
발문(跋文)
東史曰 朝鮮音潮仙
因仙水爲名 又云鮮明也 地在東表日先明 故曰朝鮮
《동사》에
이르기를 조선(潮仙)이라 소리나는 ‘朝鮮’은 선수(仙水)로 말미암아 이름을 삼음이요 또한 이르기를 선명(鮮明)한 것이라, 땅이 동쪽에 있어 해가 뜰 때 먼저 밝아오므로 조선이라 한다 하였다.
사기와 한서의 흉노전에 보며는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다.
燕有贤将秦开,为质於胡,胡甚信之。归而袭破走东胡,东胡卻千馀里。与荆轲刺秦王秦舞阳者,开之孙也。燕亦筑长城,自造阳至襄平。”置上谷、渔阳、右北平、辽西、辽东郡以拒胡。
연나라의 장군 진개가(BC280년좌우) 동호를 천여리 넘어로 몰아 내고 장성을
쌓았는데 상곡으로 부터 어양,우북평,료서,료동까지이다, 동호를 막기위하여 쌓은
장성이다, 현재의 북한 지역 까지인데 이 기록을 보며는 당시 소위 조선이라는
나라는 존재치 아니 하였고 이지역은 동호의 활동 지역이였다.
료동이란 현재의미의 료동이란 뜻이 아니고 머나먼 동쪽이란 뜻이다.
료동에는 반도의 북부가 포함되 서술하고 있다.
诸左方王将居东方,直上谷以往者,东接秽貉、朝鲜;
흉노의 좌방왕이 동방에 거하는데 상곡으로부터 동쪽으로 예맥과 조선까지이다,
이상 기록을 보며는 조선은 흉노의 지역이였고 소위 조선 왕조는 근본 존재치
아니 하였으며 연나라가 흉노의 손에서 이런 지역을 뺏아 았다는 것이다.
위만 조선이 망하고도 계속 조선이란 명칭은 존재하였다.
삼국지에 보며는 위만 조선이 이미 망한지가 몇백년 되는데
《高句丽在辽东之东千里,南与朝鲜、濊貊,东与沃沮,北与夫馀接。》
고구려가 남으로 조선과 인접하였다고 하는 점을 보며는
확실히 지명으로서 조선은 계속 존재하였다.
한나라가 위만 조선을 멸망시킨후 낙랑군에(평양) 조선현을 설치 하였다,
이후 각종 사서에도 계속 조선이란 지명 사용이 계속 나타 난다.
조선이 국명이였다며는 망국한 국명을 지명으로 사용할수 없는 것이다.
사기와 한서를 보며는 위만이 조선에서 왕위를 찬탈한 것이 아니다.
《眞番과 朝鮮의 蠻夷 및 옛 燕·齊의 亡命者를 복속시켜 거느리고 王이 되었으며, 王險에 도읍을 정하였다. 》위만 이전에 조선 지역에 조선이란 나라가 근본존재치
아니하였음을 알수 있다. 위만은 절로 무리를 거느리고 왕이 된것이다.
왕험성도 위만이 도읍을 정한 것이지 원래 고조선의 도읍이 아니였다.
각종 사서에 춘추 전국시기의 연나라가 반도까지 세력을 뻣히 였지만
산융,고죽국,동호 등과의 전쟁 기록은 많이 있지만 조선과의 마찰이나 전쟁기록은
전무 하다.(위략에서의 기자조선 날조 제외, 위략은 중국25사에 들지도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