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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2-18 05:40
[중국] 중국 최고 무장
 글쓴이 : 붉은kkk
조회 : 7,527  

흠...보통 중국 역사상 최고의 장수를 뽑으라하면 대부분 항우라하지 않나요? 이는 중국 사학자들도 인정했고. 당대 최고 역사가인 사마천도 그를 최고라고 치켜세운걸 보면 정말로 강했나보네요. 물론 어느정도 과장이 섞여있기는 하겠지만, 판타지 소설책에서 일어날 듯 싶은 일들이 <사기>에 기록되어 있는걸 보면 이건 인간이 맞나 싶네요... 다음은 <사기>의 항우본기입니다...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항우의 프로필>

항적(項籍)은 하상(下相) 사람으로 자는 우(羽)라고 하며, 처음에 군대를 일으켰을 때 나이가 24세였다.

그의 계부(季父)는 항량(項梁)이며 항량의 부친은 초(楚)의 장수 항연(項燕)으로 진(秦)의 장수 왕전(王翦)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이다.

항씨는 대대로 초의 장수로서 항(項)의 제후로 봉해졌으므로 성을 항씨로 하였던 것이다.



<항우의 어릴적>

항적은 어렸을 때 글을 배웠으나 다 마치지 못한 채 포기하고는 검술을 배웠는데 이 또한 다 마치지 못하였다.

항량이 노하니 항적은 말하기를 "글은 성명을 기록하는 것으로 족할 따름이며, 검은 한 사람만을 대적할 뿐으로 배울 만하지 못하니, 만인을 대적하는 일을 배우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항량은 항적에게 병법을 가르치니 항적은 크게 기뻐하였으되 대략 그 뜻만을 알고는 또한 끝까지 배우고자 하지는 않았다.

진 시황이 회계산(會稽山)을 유람하고 절강(浙江)을 건너는데, 항량과 항적이 함께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항적이 말하기를 "저 사람의 자리를 내가 대신할 수 있으리라"라고 하니,

항량이 그 입을 막으며 말하기를 "경망스러운 말을 하지 말아라. 삼족(三族)이 멸하게 된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항량은 이 일로 하여 항적을 범상치 않은 재목이라고 여겼다.

항적은 키가 8척이 넘고 힘은 커다란 정(鼎)을 들어올릴 만했으며 재기(才氣)가 범상치 않아 오중의 자제들조차도 이미 모두 항적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진나라와 반란>

진 이세(秦二世) 원년 7월, 진섭(陳涉) 등이 대택(大澤)에서 군대를 일으켰다.

그해 9월 회계(會稽)의 군수(郡守) 은통(殷通)이 항량에게 이르기를 강서(江西) 지역은 모두가 반란을 꾀했으니, 이는 또한 하늘이 진(秦)을 멸망시키려는 때가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소.

내가 들으니 먼저 하면 남을 제압하고 나중에 하면 남에게 제압당한다고 하니, 나는 군대를 일으켜 그대와 환초(桓楚)를 장수로 삼고자 하오라고 하였다.

이때에 환초는 택중(澤中)에 도망하여 있던 터라 항량은 말하기를 "환초는 도망하여 그가 있는 곳을 아는 자가 없는데, 오직 항적만 이 그곳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하고는 즉시 밖으로 나와 항적에게 검을 가지고 처소 밖에서 기다리도록 분부하였다.

그리고 항량은 다시 들어가 군수와 대좌하여 말하기를 "청컨대 항적을 부르시어 환초를 부르라는 명을 받들도록 하십시오"라고 하였다.

군수가 "좋소!"라고 하니 항량이 항적을 불러들였다. 잠시 후, 항량이 항적에게 눈짓을 하며

"때가 되었다!"라고 말하자, 항적은 마침내 검을 뽑아서 군수의 머리를 베었다.

이에 항량이 군수의 머리를 들고 그 인수(印綬)를 차니, 군수의 문하(門下)들은 크게 놀라서 어지러이

우왕좌왕하는데, 항적이 쳐죽인 사람만 해도 거의 100명에 가까웠다. 이리하여 온 부중(府中)이 온통 놀라서 땅에 엎드리고는 감히 일어나지를 못했다. 항량은 이에 이전에 알던 세력있는 관리들을 불러서 대사를 일으킨 바를 설명하고는 마침내 오중에서 군대를 일으켰다. 그리고는 수하(手下)를 보내어 관할 현을 거두고 정예군 8,000명을 얻었다.



<생매장>

"항복을 즉시 하지않았기에 생매장을 했다고 고하였나이다. 앞으로 이 항우가 무서워서라도 즉각 항복할것입니다." - 초한지

항량은 항우에게 별도로 양성(襄城)을 공격하게 했는데, 양성은 수비가 굳건하여 쉽게 함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항우는 결국 성을 함락시키고 나서, 모두 산 채로 땅에 묻어버리고 돌아와서 항량에게 보고하였다.



<송의와의 대치>

"대저 진나라의 강대함으로 지금 막 일어난 조나라를 공격하게 된다면, 그 형세는 조나라를 함락시킬 것이 당연한데, 조나라가 함락되고 진나라가 강해진 뒤에 무슨 지친 틈을 이용하겠다는 것인가? 또 우리 군사가 지금 막 패전한 터이라 왕께서 좌불안석하시어 온 나라의 병사를 통틀어 오로지 장군의 휘하에 속하게 하셨으니 국가의 안위는 오직 이 거사(擧事)에 달려 있다. 그런데도 지금 사졸을 돌보지 아니하고 그 사사로운 정만을 따르니 사직을 보존하려는 신하가 아니로다."

항우는 아침에 상장군 송의의 막사를 찾아가서 그 자리에서 송의의 머리를 베고 군중(軍中)에 영을 내리기를 "송의는 제나라와 더불어 초나라를 배반할 모의를 꾸미고 있었으므로, 초왕께서 은밀히 나에게 그를 주살하도록 하셨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당시 여러 장수들은 모두 두려워서 복종하고 감히 저항하지 못하며 말하기를 "처음 초나라를 세운 것은 장군의 집안이시더니 지금 장군께서 난신을 주살하셨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서로들 모두 항우를 임시 상장군으로 세우고, 사람을 보내서 송의의 아들을 제나라까지 추격하게 하여 그를 죽였다. 그리고는 환초(桓楚)를 보내어 회왕께 보고하게 하자, 회왕은 항우를 상장군으로 삼고 당양군(當陽君), 포장군(蒲將軍) 등을 모두 항우의 휘하에 소속시켰다. 항우가 경자관군 송의를 죽인 후, 그의 위엄이 온 초나라를 진동시키고 명성은 제후들에게까지 전해졌다.



<거록의 전투>

흔히 죽음을 담보로한 전법이라 합니다.

한신의 배수진과 같은 병법입니다. 항우는 거록의 전투에서 타고온 배를 모두 부숴버리고

3일분의 군량만 휴대하게합니다. 나머지는 모조리 태워버리고 진나라를 박살내버립니다.

실제로 장한의 군사가 20여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뒤에 사료제시를 해드리겠습니다.

항우의 군사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적은것은 확실합니다. 초한지의 기록(7만)과

범증이 "절대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 말하였습니다.

이에 당양군과 포장군으로 하여금 병사 2만을 이끌고 장하(漳河)를 건너서 거록을 구원하도록 하였으나

싸움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는데, 진여가 또 구원병을 요청하였다.

이에 항우가 군사를 이끌고 장하를 건너서는 배를 모두 가라앉히고, 솥과 시루 등의 취사도구를 깨뜨리고

막사를 불사른 뒤 3일분의 군량만을 휴대함으로써 사졸들에게 필사적으로 싸울 것이며 추호도 살아

돌아올 마음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이리하여 거록에 도착하자마자 왕리(王離)를 포위하고 진의 군사와 수차례 접전하여 그들의 용도(甬道)를

끊어서 크게 무찔렀으며, 소각(蘇角)을 죽이고 왕리를 포로로 하였다.

섭간은 초나라에 투항하지 않고 분신xx하였다.

이때 초군은 제후군(諸侯軍) 가운데 으뜸이었으니, 거록을 구하고자 달려온 제후군이 10여 진영이었으나

감히 함부로 군대를 움직이지 못하고, 초군이 진군을 공격할 때에도 여러 장수들은 모두 자신의 진영에서 관전만하고 있을 뿐이었다. 초나라 군사는 전원이 다 한 명이 열 명을 대적할 정도로 용맹스러웠으며,

초군의 고함소리가 하늘을 진동시키니 제후군들은 모두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진군을 무찌르고 난 후, 항우가 제후군의 장수들을 불러 원문(轅門)에 들게 하자 모두 다 무릎걸음으로

나오며 감히 고개를 들어 쳐다보지 못하였다.

이때부터 항우는 비로소 제후군의 상장군이 되니 제후들이 모두 그의 휘하에 소속되었다.



<장한의 항복과 대박 생매장>

장한은 공적을 세우면 세울수록 몽염이나 백기와같이 자기가 조고에게 죽임을 당할것을 알고있었습니다.

그래서 항우에게 투항해버립니다.

장한은 주저하며 항우에게 몰래 후시성(侯始成)을 보내어 협약하고자 하였다. -史記

군대가 신안(新安)에 이르렀을 때였다. 제후군의 장병(將兵)들이 예전에 요역(徭役)과 변경수비에 동원되어 진나라를 지날 때에 진나라의 장병들이 그들을 아주 무례하게 대했었다. 그런데 지금 진군이 제후군에게 항복하자, 제후군의 장병들은 승세(勝勢)를 이용하여, 그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진나라의 장병들을 걸핏하면 학대하고 모욕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자 진나라의 장병들이 저희들끼리 수군거리기를 장(章) 장군 등이 우리들을 속여 제후들에게 투항하도록 했는데, 지금 만일 관내(關內)에 들어가서 진나라를 무찌른다면 아주 좋은 일이나 만일 그러지 못한다면 제후군들은 우리를 포로로 하여 동쪽으로 퇴각할 것이니, 진나라는 우리의 부모와 처자를 모두 다 죽일 것은 분명한 일이다라고 하였다. 제후군의 장수가 몰래 그 말을 듣고서 항우에게 보고하였다. 이에 항우는 경포와 포장군을 불러서 계책을 말하기를 "진나라의 장병들이 아직도 그 수가 많은 데다 마음으로 복종한 것이 아니니, 관중(關中)에 이르러서 우리에게 복종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일이 위태롭게 될 것이므로 그들을 죽이고 장한, 장사 사마흔, 도위(都尉) 동예(董翳)만을 데리고 진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나으리라"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초군은 밤에 진군을 습격하여 진나라 병졸 20여만 명을 신안성 남쪽에 생매장하였다.




<팽성전투>

<한왕(漢王) 유방은 천하를 바로잡기 위하여 각국의 제후들에게 이 글을 보내노라.

짐은 일찍이 의제를 받들어 무도한 진을 멸함으로써 천하를 평정하였노라. 그러나 무도하고 포악한

초패왕(王)이 의제마저 해하고 천자의 위(位)를 빼앗았으니, 이는 위로는 천명을 거스르고

아래로는 백성을 속이고 기강을 흩트려놓은게 아닌가! 이에 국상을 치러 의제를 애도함과 동시에

초해왕을 멸하여 천하의 의를 일으켜 세우려 하노니, 바라건대 각국의 제후는 대의를 살펴

함께 군사를 일으킬지어다.>

이리하여 유방이 변하(卞河)를 건널때의 군사가 무려 50만에 이르렀다.

하지만 사방에서 모여든 군사들인지라 명령체계가 제대로 서지않고 급히 모여든 잡졸(雜卒)이 많아

대오(隊伍)가 어지러웠다. 유방은 위나라의 표를 불러 대장군의 인부(印付)를 내리고 군사를 이끌게 하였다.

표는 행군 도중 재합류한 군사를 합해 60여만의 군사를 이끄는 대원수가 되었다.

이에 초패왕은 제나라 공략을 종리매(鐘離昧)와 용저(龍咀)에게 맡긴채 3만의 기병을 이끌고

팽성으로 진격했다. 범증이 말하길 "적은 육십만의 대군이라 했사옵니다. 정예병이라 하오나 겨우

3만의 기병으로 어찌 적을 칠 수 있겠습니까?"

항우가 대답하길 "비록 육십만의 군대라 하나 그것은 잡군(雜軍)에 불과하다. 이 삼만의 군사로 그들을

찢어놓기에 충분하다."라 하며 팽성앞 30리 지점에 진을 쳤다.

항우군이 나타나자 한군(漢軍) 또한 대치하여 선봉에 사마공과 신양, 중군은 위표, 후군을 유방이 맡았다.

항우는 스스로 선봉이되어 한군에게 뛰어들어 신양과 사마공을 일합(一合)에 베었다.

초패왕은 기세를 몰아 중군까지 흔들어 한군은 혼란에 빠졌다.

한군은 곡수(穀水)와 사수(泗水)까지 쫒기어 달아나다 강에빠져죽은 군사만 10만이 넘었다.

결국 한군은 영벽(零壁) 동쪽 수수(睡水)에서 초군에 포위되어 한군은 지리멸렬 무너졌다.

유방은 등공 하후영의 구원으로 간신히 포위를 뚫고 하읍 탕산을 통해 형양성으로 달아났다.



<광무산 전투>

제왕 한신이 30만 대군을 이끌고 한왕의 성고성에 도착하였다.

한신이 진용을 짜길

제 1대 번쾌,관영

제 2대 주발,주창

제 3대 근흡,노관

제 4대 양희,여마통

제 5대 장창,장이

제 6대 누번

제 7대 왕릉,하후영

제 8대 조참,시무

제 9대 경포

제 10대 한왕

한왕에게는 광무산 기슭에서 5천을 거느리고 지원하길 당부하였다.

초군이 광무산 서편에서 나타나자 한신은 군사를 매복시키고 초패왕을 도발하여 유인하였다.

초패왕은 스스로 선봉에서서 말을 달려 광무산으로 진입하였다.

이에 종리매가 말하길 "이 산은 나무가 울창한데다 험하기 이를 데 없나이다. 적의 매복이 걱정되오니 잠시 말을 세워 후진의 도착을 기다리소서."

종리매의 말을 따라 후진을 기다리던 도중 산 속 사방에서 한군이 뛰쳐나와 초군을 포위하였다.

항우가 군을 정비하여 말을 박차고 가자

우측 산자락에서 번쾌,관영,주창,주발의 군대가 뛰쳐나왔다.

좌측 산자락에서 근흡,노관,여마통,양희가 군대가 뛰쳐나왔다.

좌우 사방에서 하후영,왕릉,장이,장창의 군대가 달려나와 항우를 포위하고

항우의 정면에서 구강왕 경포가 길을 막았다.

항우의 후방에서는 누번이 퇴로를 막았다.

항우는 경포와 수 합을 겨누자 경포가 당하지못하고 달아났고 누번은 항우의 창에 찔려 쓰러졌다.

항우는 포위를 뚫고 퇴로를 만들어 달아났고 추격하던 근흡과 노관은 항우에게 죽었으며

주발과 주창은 당해내지 못하고 달아났다. 한군의 장수들은 항우를 보고 함부로 덤벼들지 못하였다.

항우는 광무산 서편 본진으로 퇴각하여 인마(人馬)를 쉬게하였다.



<구리산에서의 한신의 십면매복十面埋伏>

한왕은 한신에게 대원수의 인(印)을 주어 병권(兵權)을 모두 맡겼다.

한신이 각처에서 모집한 군사를 점검하니

연왕(燕王)의 군사 15만

경포의 군사 5만

팽월의 군사 5만

위(魏)나라 군사 20만

장도의 군사 3만

한왕(韓王)의 군사 3만

삼진(三秦)의 군사 6만

소하가 낙양에서 이끌고 온 군사가 15만

한신의 군사 15만

여기에 한왕(漢王) 유방의 군사 20만을 더하자 그 수는 100만에 달했으며 장수들도 8백여명이나 되었다.

한신은 그날부터 군사를 훈련시키고 소하,진평,하후영에게 삼진으로부터 군량과 물자를 나르게했다.

한신은 계책과 훈련이 마무리되자 군사를 팽성으로 진격시키니 밤에도 횃불이 대낮처럼 밝혀지고

낮에는 창칼로 들판을 뒤덮으며, 대오가 가지런하고 엄정해 그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또한 진류(陣留)와 고창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군량미를 실어 나르는 수레가 끝없이 이어졌다.

양무와 서주를 거쳐 팽성을 향하자

초패왕이 말하길 "유방의 백만대군을 어찌 막아낼 수 있으랴, 지난날 범아부의 말을 들어 유방을 죽였어야 했거늘!"라고 애통해하였다.

(중략)

항우가 구리산으로 진격하자 공희와 진하가 항우와 대치하였다.

항우는 수 합에 진하를 죽이고 공희는 견디지 못하고 달아났다.

공희를 추격하자 시무와 하후영이 달려나왔고 시무와 하후영은 당해내지 못해 퇴각하였다.

항우가 추격을 계속하자 한군이 사방에 벌떼처럼 몰려나왔다.

앞선 장수는 왕릉이었으며, 북쪽에서 노관, 동북쪽에서 조참, 남쪽에서 주발, 서남쪽에서 장이

서쪽에서는 장도가 군사를 이끌고 나왔다.

이어 박소,손가회,고기,장창,척사 다섯 장수가 말을 달려나왔고 양쪽 장수들이 어우러져 창칼을

번쩍이며 싸웠다.손가회와 척사는 일합에 죽임당했고 다른 장수는 항우를 당해내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러자 이번에는 성녀산(聖女山) 동쪽에서 진희,부관,오예가 항우를 공격했다.

항우는 그들과도 맞서 세 장수 모두 퇴각하였다. 그들 세 장수 마저 물러나자

선뜻 앞으로 나서 맞서려는 자가 없었다 십면(十面)에 매복해있던 한의 장수가 60여명이었으나

항우를 당해내지 못하였다. 실로 무서운 힘이요, 용맹이 아닐 수 없었다.

한신은 전장을 보고 매우 놀라며 "초패왕은 천하에 둘도 없는 맹장이로다."라 하며 초조해했다.

항우는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으며 진중으로 유유히 돌아가니

초의 장수들은 "폐하께서는 하늘이 내린 신장(神將)이요. 예순도 넘는 적장을 혼자서 물리친 용맹을 어찌 땅위의 장수들이 따를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해하의 전투>

초패왕 항우는 해하(該河) 성녀산(聖女山) 기슭에 진을 치고 한군의 동태만을 살폈다.

한의 매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자 초군은 군량이 바닥났다.

그러자 어느날 밤 초군은 앞다투어 달아났고 장수들도 졸개를 막지않고 종적을 감췄다.

(장량이 퉁소와 노래로 초군이 고향을 그리워 하게 만들었다고도 함

또 시를 써붙여 고향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고도 함)

항백,계포와 종리매마저 행장(行裝)을 챙기고 진영을 빠져나갔다.

잠에서 깬 초패왕은 매우 비통해하며 전투를 위해 말에 올랐다.

이에 우희(우미인)가 "어이 저를 두고 가시렵니까? 정녕 저를 두고 가시겠다면 제가 드리는 술 한잔 드시고 가시옵소서"라 말하니 초패왕은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술상을 마련했다.

산을 뽑는 힘과

천하를 제압하는 기백도

이제는 소용이 없구나

오추(항우의 명마 오추마)여 너마저 걷지 않으니

아! 우희여,우희여

너를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이에 우희가 답하길

사방은 한나라 군사로 뒤덮여

그들이 부르는 초나라의 구슬픈 노래뿐

대왕의 의기가 저토록 꺾였으니

이 몸이 어찌 살기를 바라리오.

하며 초패왕의 칼로 자결하였다.

항우는 매우 슬퍼하며 8백명 남짓한 군사를 두 패로 나누고 그 중 한 패를 거느리며 포위를 뚫었다.

관영은 항우를 당하지 못하고 퇴각하였으며

한의 조참,왕릉,주종,이봉 네 장수가 달려나왔다. 이에 주란과 환초가 이끄는 한 패가 전멸하였다.

항우는 음릉(陰陵)에서 양희를 말에서 떨어뜨리고

양무,양익,여승,여마통,경포,팽월,왕릉,주발 여덟장수와 맞서 퇴로를 뚫어 퇴각하였다.

항우는 곧장 말을 달려 동성(東城)에 이르러 군을 정비하니 군사는 30명이 있었다.

항우는 뒤따르던 군사들을 둘러보며 말하길

"내가 군사를 일으킨지 8년, 그동안 70여 차례를 싸웠으나 한번도 패한적이 없었다. 또 나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적장은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천하를 거머쥐었지만 오늘 이꼴이 되리라고 생각지 못했다. 이것은 곧 하늘이 나를 버렸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나는 앞으로 나아가 싸울것이다. 내가 세 번을 싸워 다 이기고 최후를 맞을 것인즉 너희들은 내가 비겁한 장수가 아니었음을 새기도록하라"

군사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하길 "저희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폐하의 명을 받들 것입니다."

이에 초패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너희들의 충정 또한 내 가슴에 새기겠노라."라 말하였다.

항우는 지체없이 오강(烏江)으로 진격하기로 하였다.

적을 휩쓸며 동산 아래에 닿으니 자신이 따르던 군사는 28명이었다.

항우가 잠시 숨을 돌리는데 한군이 세 방향에서 몰려왔다.

항우는 이우,도위,왕항을 모두 일합에 죽이고 여승과 양무는 당해내지 못하고 퇴각하였다.

이 날 적과 맞서 싸운 것은 아홉 차례로, 아홉의 적장을 베고 수없이 많은 적군을 죽였으나

몸에 상처 하나 입지않았다. 항우의 군사중 죽은자는 두 명밖에 되지 않았다.

패왕은 장강(長江) 연안인 오강에 도착하여 말하길

"나는 강을 건너지 않겠다. 하늘이 이미 이 몸을 버렸거늘, 강동으로 돌아간들 무슨 소용이겠느냐?

지난날 뜻을 세워 이 강을 건널대는 6천의 군사를 이끌었으나, 이제는 다 죽고 혼자뿐이네. 죽은 젊은이들의

가족이 설령 나를 반겨준다 하더라도 내가 무슨 낯으로 그들을 대하겠는가."라 말하였다.

항우는 마지막으로 추격군과 싸우기 위해 강변으로 갔고 항우의 창에맞아 쓰러진 한군은 수백 명이 되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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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난감 12-02-18 12:21
   
그래봐야..내전 아닙니까?
국제전쟁을 한 사람도 아니고...
그리고 재들은 툭하면 뭐,,백만이라고 공갈만 치고..백만되게 좋아하네
     
greaf 12-02-18 18:53
   
노노노 당시 중국은 한 나라라는 인식이 거의 없다 시피 했기 때문에 다른 나라끼리의 국제전이라고 봐도 무방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에서 항복한 장병들을 감당할 제도나 도덕적 제약이 없어 살려두지 않고 가급적이면 모두 죽여 버렸죠. 한 예로 진나라와 조나라 사이의 장평대전이 있었는데, 여기서 진나라는 항복한 조군 30만을 모두 죽여버립니다. (최근 유물 조사로는 30만은 오바고 그래도 10만 정도라더군요. 그래도 세계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수 없는 초 대형 급의 학살ㅎㄷㄷ) 이 전투로 조나라는 작살이 나고 멸망 테크를 타죠.
래알 12-02-18 20:36
   
유방과항ㅇ라
무한의불타 12-02-20 09:25
   
개인적으로는 항우 보다는 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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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1 [중국] 내참....소말리아 해적이나 중국정부나 똑같군요... (11) 주말엔야구 02-21 2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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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7 [기타] 미국 대학 등 - 한국인은 이런 인간종이다. (13) 슈퍼파리약 02-21 7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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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5 [중국] 도데체 왜냄새나능 짱꼐들이 (10) gelaga 02-20 3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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