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내에서 커다란 사건이 있을때마다(관동대지진같은..) 조선인 때문이다 라며 일본인들에게 핍박을 받는 재일동포들은
조국으로 돌아가는것을 갈망합니다. 그러나 조국으로 돌아간 몇몇 사람들은 "반쪽바리"라는 대접을 받는 것을 보며
동병상련이랄까? 그들끼리 그곳(일본)에서 뭉쳐 사는것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일본 내에서도 재일조선인이 조국으로 갈 경우 그들의 재산반출을 제한하고있으며, 더욱 문제인것은 그들의 국적이
한국이 아닌 조선사회주의인민공화국으로 되있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문제점은 일제시대부터 내려오는 역사적사건을 토대로 살펴봐야 합니다.
재일동포의 출발점은 일제시대, 강제로 일본의 산업현장 혹은 광산으로 끌려간 우리 선조들입니다. 그러한 재일동포들은
전국적으로 제주도 사람이 가장 많았고,(일본과 가깝다는 이유로) 해방과 동시에 조국으로 대거 들어옵니다. 이들은
일본의 산업현장에서도 인권을 위해 투쟁하였고 노동조합 등을 규합하며 일을 해왔기 때문에 해방후 제주도로
돌아온 재일 동포들은 당시 조선내에서 가장 깬(세상을 보는 눈이) 사람들이였습니다.
해방과 동시에 전국적으로 조선사회는 인민위원회(빨갱이와 결부하는건 억지. 이들은 "일본이 물러감에 따라 혼란스러운
한국사회의 질서를 자체적으로 잡자는 한국인 들의 자치기구 같은 성격) 가 대거 생겨나고 미군정에 의해 해산 되지만
남한내에서의 해산된 인민위원회는 산으로 피신하여 끝까지 투항하고 이들이 바로 빨치산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제주도는 육지와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미군정의 영향을 덜 받게 되고 일본에서 조국으로 돌아온 깨인
지식인들이 끝까지 저항하였기에 제주도의 인민위원회가 끝까지 버티게 됩니다.
당시에 이승만 정권은 북한에서 내려온 서북청년단을 제주로도 보내게 되고, 북한 내에서 "빨갱이" 하면 치를 갈았던
서북청년단은 제주도 인민위원회를 빨갱이와 결부시켜 결국 제주도 4,3사태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 사건으로 제주도 사람들이 3만명 가량 희생되고 조국으로 왔던 재일 동포들은 대다수 다시 일본으로 피신하게 됩니다.
이들이 지금 재일동포의 시작이라 할수 있습니다.
이들은 국적이 없는 "한국인(조선인)" 이였기에(조선-한일합방-조선사회주의인민공화국, 대한민국 2분열) 일본내에서
일본으로 귀화를 할것인가? 두개로 갈린 조국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아니러니 하게도
6,25전쟁 이후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상황이 좋았고, 북한은 일본의 재일동포를 아주 조금 지원했던 일이 생기며,
일본내 재일 동포들은 "조선" 이라는 단어가 자신들의 조국을 떠올리기에 많은 재일동포들이
"조선사회주의인민공화국" 를 조국으로 선택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일이 생깁니다.
따라서 지금 현재 일본내에서 일본인들에게 핍박받는 이유가 "국적이 북한" 이라는 점, 그것도 한몫합니다.
지금 젊은 재일동포3세들은 조국의 말도 부족하고 거의 일본화 되었다 하지만 1세와 2세들에겐 일본은 자신들은
일본으로 강제로 끌고 갔으며, 일본때문에 조국의 분란이 생겼고 불안한 조국의 정세때문에 어쩔수 없이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야만 헀던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고, 항상 조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였습니다.
40년대 후반, 이들에겐 사회주의나 자유주의에 대한 이념의 개념은 없었습니다.
지금 시대의 개념에 맞춰 이들이 "친일이냐? 빨갱이냐?" 라는 식의 잣대를 그들에게 들이대는 것은
옳지않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