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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11-27 14:52
[기타] 식민사관과 역사왜곡이 남긴 한국인의 분열과 지역감정(1편 역사란 무엇인가?)
 글쓴이 : 객님
조회 : 6,738  

많은 이들이 일제 잔재인 친일청산을 외치고 우리의 주체적인 역사관이 식민사관에 의해 많이 왜곡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두리뭉실하게 일제시절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한 이완용, 박용효, 권중현 등 조선을 팔고 한일

합방에 한 몫을 한 사람들만 친일파 라고 생각한다.

현재는 잘못된 정보로 인해 이승만 정권부터 친일파의 시작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일본 사관학교를

나온 박정희 정권도 친일파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에서 지금의 지역갈등 문제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의 친일파는 무엇이고, 일제 시대의 식민사관은 정체는 무엇이며, 그러한 식민사관으로

인해 어떤 역사의 왜곡이 생겨났으며, 한국인의 분열과 정체성에 대하여 다각도로 설명하고자 한다.

 

우리가 역사에 대하여 논하기 전에 역사란 무언인가를 먼저 살펴보는것이 순서인듯 하다. 역사란 단순하게

설명하면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 역사이다. 그렇다면 "시간이 간다" 라는 의미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시간이 간다" 혹은 "버스가 간다" 어법 상으로는 어떤 하등의 문제나 이상함이 없다. 그러나 "버스가 간다"

버스라는 특정 물체가 존재 하는데 "시간이 간다" 는 이 버스처럼 어떠한 시간이라는 뭔가가 존재하는가?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데 우리가 말하는 시간이 간다 라는것은 "어떤 변화에 대한 사람의 인식체계" 라는것이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한 예로 매일 아침 해가 뜨는것을 보고, 저녁때 해가 지는것을 봤을때 이런 변화에 대한 인식이 시간이 간다

라고 표현하는것이다. 인도 영화중 "블랙"이란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앞을 못보고 말을 못하고 듣지를 못한다.

이러한 장애인이 느끼는 시간과 일반인이 느끼는 시간이란 천지 차이라 할수있다. 또는 "쇼생크 탈출"처럼

빛을 볼수없는 암흑같은 곳에 수감된 죄수만 하더라도 변화에 대한 인식을 할수 없다면 시간의 흘러감을 인식할수

없다. 그렇기에 시간은 전형적으로 사람 생각의 모습을 닮는다. 시간의 모습을 2가지로 표현하자면,


첫째, 직선적 모습이다. 시간이란것은 한 방향으로 갈줄만 알지 뒤로 가는 법을 모른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음

이라는 시간에 이르기 까지 시간은 꿋꿋하게 한방향으로 움직인다. 이것이 역사에 대입되면 진보사관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둘째, 순환적 모습이다. 매일 일어나고 하루가 반복되며, 일년 4계절이 반복하고, 사람의 삶은 길게는 직선적

모습이지만, 내부는 이러한 순환적인 모습으로 살아 간다. 이러한 시각이 역사에 대입되면 순환사관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라는 말과 역사를 통해 현대 사회를 예측 할수 있다고 한다.


내가 이글을 쓰는 이 순간도 역사의 기록이고, 지금 이순간에도 누군가가 밥을 먹고 있는것도 하나의 역사이다.

그러나 모든 순간을 기록 하는것이란 불가능 하기에 역사는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기록된다"

내가 쓴 어떠한 글이 획기적이며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하더라도 내가 쓰는 이 글이 역사에 있어서

"역사적 사건" 으로 기록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단 한명의 사람이 읽더라도 나의 글에 커다란 영향을 받아 일본 대사관을 테러한다던지 방북을 한다던지

이러한 사건이 터진다면 그리하여 그 사건의 주동자가 나의 글에 대한 언급을 했다면 이글은 나의 역사에 한줄의

기록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역사적사건(a historical[historic] event)"의 모체로

기록될 것이다.

따라서 19세기의 랑케(http://100.naver.com/100.nhn?docid=54188)는 "모든 역사는 실증적으로 기술되어야 한다"

라는 객관적 실증주의 역사를 강조했다. 그러나 모든 역사는 아무리 사실적으로 역사적 사건의 기록만 적는다 해도

역사란 기계가 기록하는 것이 아니요, 하물여 문자로 기록을 남기던 시대에는 더더욱 이러한 실증적 역사 기록이란

불가능했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있어서 내가 "글을 썼다" 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데 이 글로 영향으로

인해 어떠한 역사건 사건이 발생되었다고 가정할때, 나의 글 때문에 특정 국가의 대사관 테러가 일어났다거나

아니면 정 반대로 나의 글로 인해 일본 과거 청산의 전환점이 되었다면, 사실에 있어서는 "글을 썼다" 라는 것만

있을뿐이지만 후대에 기록되는 역사의 평가에 있어서는 천지 차이가 될것이다.


최근 "봉은사 땅밝기 논란" 이나 몇해전 "광우병 소동", "촛불시위", "남북정상회담" 등등 사회전반의 굵직 굵직한

역사적 사건만 해도 그것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 기술은 천차만별이다. 이러한 것을 역사가가 보는

시각이라고 하여 "사관" 이라고 한다.

어떤 역사든 역사가의 해석을 거치지 않은 역사란 없다. 우리가 글로 기록하는 역사적 시대는 지났다 하여 모든

티비 및 미디어를 통해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으니, 과거의 역사는 그렇다 하여도 지금부터의 우리의 역사를

우리는 후대에게 가장 사실적이고 실증적인 역사를 남겨 준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미디어 또한 사람이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에 따라 방송의 내용이 천지차이로 바뀔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의 역사를 이야기 할때 흔히 반만년의 역사라고 한다. 그렇다면 5천년이라는 역사적 기록이 모두 상세하게

남아있지 않더라도 일제의 식민지 시절은 36년 뿐인데 이러한 36년이 5천년이라는 시간을 왜곡할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곤 한다. 삼국시대의 역사적 기록부터, 고려사기,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역사적 기록이 충분한

조선왕조실록이 있는데 어찌하여 이러한 역사기록이 식민지 사관이라는 시각 아래서 왜곡이라는 것이 가능하게

됐을까?

많은 이들이 숱하게 착각하는 부분이 여기에 있다. 우리가 역사의 기록적인 사료가 많다고 하여 우리의 역사가

그대로 쓰여진 것은 아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 즉 한반도 내에 살았던 같은 동종의 언어를 쓰는 민족의

통사(通史)는 19세기에 쓰여졌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이러한 민족의 역사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19세기에 민족의 통사가 쓰여진건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다. 독일 또한 게르만 민족에 대한 역사를

이 시기에 정립하였고 게르만 민족의 위대함을 강조하면서 히틀러의 나치가 등장하였다.

유구한 역사의 중국도 이 시기에 역사를 정립하면서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것을 묻고 한족의 문화적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해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할 무렵부터는 명나라의 문화적 수준을 강조하였다.

지금의 중국을 가면 너도 나도 한족이고, 우리가 흔히 "나는 안동김씨 입니다" 이런식으로 자신의 가문을

자랑하듯이 중국인들은 "나는 한족입니다" 라고 너무 자랑하는 모습을 볼수있다.

이런것처럼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는 고려시대에 삼국에 대한 역사를 기록한것이고, 제왕운기는 고려의 역사를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의 역사만을 다루고 있다.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의 변화에 있어서는 혁명이 있을것이고, 또한 전쟁이나 반란도 포함될 수 있다. 그러한

나라에서 나라로 시대에서 시대로 변하는 과정에 있어서 연결의 흐름을 한 민족의 역사로 보고 통사를 짓는 일이란

어느 민족에게도 가장 중요한 작업일진데, 이러한 한 민족의 통사를 처음 지은것이 일제하 시절 일본인과 조선을

팔아먹었던 일부 친일파의 손에 지어졌다는 것이 역사왜곡의 시작이고, 식민사관의 출발이라고 할수있다.

일제는 한국민의 역사를 쓰기위해 친일파를 앞세워 조선사편수회
(http://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EC%82%AC_%ED%8E%B8%EC%88%98%ED%9A%8C)를 조직하여 한국민족의

역사를 쓰기 시작하였다. 이는 식민지 시절에 일본인과 친일파 역사가들의 시각에 맞춰 역사가 기술되었다.

(이마니시 류우, 이완용 등등)하여 이것을 식민사관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식민사관이란 어떤것인가?

이 단어는 참 많이 들어봤지만 정작 식민사관이 어떠한 뜻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체적으로

식민사관이란 일본민족이 한국 민족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여졌다는 뜻은 알지만 그 실체가 어떤것인지

이제 알아보자.


식민사관은 2가지 명제로 요약된다.

첫째, 한국민족은 분열을 반복하는 민족이다.

우리가 학창시절 배웠던 역사책이나 만화로 풀이된 한국의 역사책를 젊은 나이라면 한번쯤은 봐왔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책의 전체적 흐름을 보면 항상 모략과 음모로 인한 정권의 다툼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어떤 위인이

어떠한 위대한 작품을 어떤 시대에 남겼으며 그것이 그 당시에 어떤 시대적 반영을 하고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단지 짧게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했다. 삼국유사는 일연이 썼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 이런식으로

짧게 표기하면서 권력의 다툼이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까지 당나라를 끌어들이는 과정, 김춘추가 당나라에

가서 어찌어찌 설득하고 모략을 꾸미는지, 이런식으로 분열하는 중심으로 시각을 맞춰 역사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중 하나의 모순점이 있는것이, 한국 민족의 역사를 분열의 역사라 말하는데..

작은 시각의 권력 투쟁에 있어서는 모략과 분열은 분명 존재하지만, 부족국가 시절에서 진한,변한,마한 등이

삼국시대로 합쳐지고 삼국은 통일신라로 합쳐지며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볼때,

분명 분열되던 민족 통합의 역사이지 분열은 역사는 아니다.


둘째, 한국인들은 항상 사대(事大)를 한다.
(http://ko.wikipedia.org/wiki/%EC%82%AC%EB%8C%80%EC%A3%BC%EC%9D%98)

이 말은 즉, 한민족끼리는 항상 권력투쟁을 하며 자신들끼리 치고 받고, 분열하기에 항상 큰 나라에 기대어 살면서

그들에게 반종속되어 살아간다는 것이다. 과거부터 중국에 기대어 살았고 고려시대엔 원나라에 종속되어 살았으며,

조선은 명나라나 청나라에 기대어 살았으니, 이제는 대동아공영권의 기치를 걸고 아시아를 수호하려는 일본에게

기대어 사는 것은 당연하다 라는 결과로 도출된다.

따라서 지금까지 한미동맹이라는 것을 과거부터 쭉 사대주의에 빠져 살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의 식민지사관이 "정확하다" 라는 결과까지 도출되며, 그렇기에 아직까지 우리는 일제의 잔재를 청산

못하고 일본식민지 사관에 지배 당하며 살고있다는 결론이 되는것이다.

정말 그러한가? 지금 이러한 흐름을 보면서 한번쯤 고개를 갸우뚱한다면,(사대하면서 살아온것 그리고 미국에게

사대하는것은 부정할수없는 사실아닌가 라고..)당신은 식민사관의 영향하에 아직 살아온것이다.

우리가 일제 식민지배를 받았던 36년이 중요한것이 아니다. 물론 36년간 우리의 조부, 조모, 조상들이 숱한 핍박과

고통을 받았었다는 사실은 결코 잊으면 안되는 중요한 사실이지만, 우리는 이러한 눈에 보이는 결과에 집착하다보니

정작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사는 것이다.

일제의 36년은 우리의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을 단절 시켜 버린것이다. 왠지 조선의 왕은 아주 먼 과거의 왕으로

느껴지기에, 한켠에선 존재하긴 했을까? 라는 여부성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때가 있는가 반면 조지 워싱턴 같은

외국의 대통령이나 루이14세 같은 폭군에 대한 존재는 먼 과거의 역사 아닌 확실한 존재성을 느낄때가 있다.

고려나 신라. 혹은 삼국시대에 대한 존재성은 더 멀게 느껴지고 결여되는 것, 이것이 일본의 식민사관이 남긴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의 단절이라는 가장 커다란 문제점이다. 이제 왜 이러한 문제점이 생겼는지 살펴보자.


우리가 역사를 이야기하고 시대적으로 분류할 때 흔히 고대-중세-근대 로 나누어 분류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적 분류는 어떤 방식으로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단지 어떠한 년도 별로

하는거였나?(~bc까지는 고대 ad~1800까지 중세 ~1900년대 후반까지 근대. 이런식으로 생각)

혹은 철기문명의 시작이라던지 농업혁명의 시작등 굵직한 문화적 시작에 따라 분류되는건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의 분류는 칼 맑스의 역사발전 5단계설에 의해서 분류된다.


원시공산사회-노예제-봉건제-자본제-완벽한 사회주의(미래공산사회) = 역사발전5단계

       ↑           ↑          ↑       ↑           ↑

   원시시대   - 고 대  -   중 세 -근 대  - ?(오지 않은 미래)                = 역사의 분류

 

즉 문명마다의 차이가 있겠지만 노예제가 존재하는 곳은 고대이고, 봉건제가 존재하는 곳은 중세 이며,

자본제가 존재하는 곳은 근대 라는 개념이다. 이러한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분류하는 것은 맑스사관의 영향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래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으니 구체적인 언급은 안하도록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도식과 기준으로 역사를

분류하였는데 있어서 암묵적으로 사람들의 뇌리엔 "역사는 불합리하고 유치한 곳에서 점차 좋고 합리적인 시대로

발전되어왔다" 라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도 자신이 지금 서 있는 위치에서 자신의 인생을 역사

분류하듯이 이렇게 분리해놓고 생각해볼적에 60살 환갑의 사람이 20대까지를 자신 인생을 고대, 40대까지를 중세,

40세 이후부터 현재 60살까지를 근대로 나누고 생각해본다면, 자신의 20대가 유치했습니까? 40대가 유치했습니까?

모두가 대답은 NO!라고 할것이다. 그러나 역사에 있어서는 고대가서 살고 싶으냐? 중세가서 살고 싶으냐?

라고 물으면 고대보다는 중세요, 중세보다는 근대에서 살고 싶다고 한다.

사람 나이와 역사를 비교해서 말했지만 지나간 역사에 있어서 그것이 불합리하고 유치한 곳에서 좋고 합리적인

세상으로 발전된 것이 아니다.

사람의 인생을 나눈것에 있어서 20대가 유치하고 학업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과 혼돈의 시기 일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가치적으로 유치하고 나쁘다고만 평가 할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의 "가치" 가 있는것이다.


그런데 왜 서양사람들은 역사를 분류할때 이렇게 분류하냐면, 산업혁명과 제국주의의 시작에서부터 자신들이

이 세계를 지배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같은 서양식 근대(자본주의)가 없는 모든 문명은 죄다 유치한 문명

이라고 치부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인식은, 불합리적이고 유치한 너희들의 문명을 합리적인 보다 나은 좋은 문명

이라는 것을 전파하기 위함이라는 명목 아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라는 것이 결부되어 식민지 지배가 합리화 되었다.


그렇다면 왜 이게 우리와 일제식민사관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가 하면, 고대, 중세, 근대로 나누어 역사를

바라볼적에 자본주의가 바탕인 근대 이전엔 반드시 봉건제인 중세가 존재하여야 하는데 일본이 에도막부를

청산하고 메이지 유신을 통해 천황을 중심으로한 강력한 중앙집권적 입헌군주제 국가로 탈바꿈하면서 서양의

근대문물과 자본제를 받아들이고, 조선을 식민지화 하고보니 조선에는 그들이 메이지유신을 통해 이룩했던

중앙집권적 체제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일본은 자신들이 조선에 인프라를 구축하고 신진문물을 전수하였으며 자본제를 전수하였기에, 일본의

식민지부터가 조선역사에 있어서 근대의 시작이고, 식민지 이전의 조선을 유치하고 나쁜 과거의 잔재인

봉건시대 라고 한것이다.


그럼 근대적 시각으로 본 유치하고 불합리적인 전 근대적 봉건제도 란 무엇인가? 봉건이란 가운데 천자나 황제같은

군주가 존재하고 주변의 지방세력에게 땅과 군사의 소유를 인정하여 통치하게끔 하는 제도이다(이것을 분봉이라 한다).

그 결과로 지방분권의 세력끼리 세력균형을 이루면서 가운데 천자에게 충성을 하는 독특한 제도이다.

그러나 전 세계 모든 역사와 문명에 있어서 봉건이라는 것은 딱 3개만 존재하는 데, 가장 오래된 중국의 주나라와

주변 제후국, 그리고 로마제국으로부터 시작된 서양의 봉건제, 일본의 에도막부가 있다.

이렇듯 일본의 역사 패턴은 서양의 역사 분류와 패턴에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진다.

그외에 마야문명이나 아즈텍문명,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 문명의 어느곳에서도 봉건제도를 발견할수 없다.

 

물론 최초의 봉건제도인 주나라의 봉건제도는 방대한 영토를 지배하기 위한 혈연적 관계에서 출발했다면

서양의 봉건제도는 계약에 의해서 시행되었다는 차이점은 있으나 땅을 주고 군사를 인정하여 그 지역에서 왕같은

막대한 권력을 행사 하였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러한 봉건제도가 한반도에서 존재하였던 적이 있는가? 물론 조선 이전에 통일신라 말기, 지방의 대 호족들의

등장과 함께 후고구려, 및 후백제 등, 각기의 지역에서 군사와 땅을 가진 세력이 있었지만 이들이 신라에게

충성을 다하는 관계도 아니고 엄연히 나라였다.

하지만 고려를 세운 왕건이 송악지역의 대 호족이였다는 사실로 호족이라는 존재가 땅을 가진 영주임과 동시에

군사력을 지닌 존재가 아니냐? 라는 말로 고로 봉건이라는 것이 존재하였다는것이 맞다. 라는 설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왕건 역시 고려를 세우기 전에는 자신의 땅과 군사를 후고구려에게 바치고 궁예의 그늘 아래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해보면 이것 또한 봉건이라 볼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도 봉건이라고 할수 없다면, 이들은

어떤 부분을 봉건이라 우기는 것일까? 일본인들은 한국인은 항상 사대 한다는 전제하에서 통일신라 시대부터

중국에게 기대고 조공을 마치며, 원나라 시절엔 치욕적인 항복과 원나라 황실과 정략적인 결혼 등을 예를 들면서

그러한 행태가 조선에서도 이어진다고 강조하며 한국 자체를 중국 역사의 하나의 봉건적 제후국가 처럼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중국은 암묵적인 동의와 함께 지금의 동북공정이 나타난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도

거시적으로 보면 고개를 갸우뚱 할 정도의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중국의 국가와 한국의 역사적 국가에 있어서

차별화된 연호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큰 설득력을 가지진 못한다.

그렇다면 왜?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한뒤 일본식민지부터 조선의 근대 시기라 정하고 조선을 봉건윤리와 사상에

젖은 부패된 봉건제 국가라 했는가? 단순히 근대 이전엔 봉건이라는 사회가 존재하여야 하는데 자신들이 힘들게

이룩한 중앙집권적 국가가 이미 조선에 존재하였기에 이러한 것을 부정하고 덮어버리기 위해 역사적 분류를

억지로 조선에 껴 맞춘 것이다.

조선이 왕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적 국가였다는것을 쉽게 찾아볼수 있는것은 조선왕조실록이라는 태산같이

존재하는 역사의 기록이 있고, 또 하나는 "춘향전"과 같은 문학적 기록이다.

조선이 봉건사회였다면, 이몽룡과 변사또가 남원에서 춘향이를 놓고 그렇게 대립할수 있는 구도는 없었을 것이다.

변사또가 그 지방에서 칼을 휘두를수 있는 권한이 있기에 아무런 꺼리낌없이 이몽룡을 처단하거나 이몽룡이

변사또를 칼로 휘둘러 죽였을텐데, 굳이 한양으로 가서 과거보고 중앙에 진출하여 마패를 얻고, 그 마패를 들고와서

변사또를 벌하는 것을 보면 이것은 어디까지 지방의 구석구석까지 왕의 힘이 닿는다는것을 말하고 왕 중심의

중앙집권적 국가라는 증거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학적 기록이나 구전문학 등은 문학적인 가치는 있지만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기에는 어렵기에

모든 역사의 사실에 대한 기록은 역사서에 많이 의존한다.


그럼 역사서에 대한 기록은 누구의 역사인가? 위에 언급한대로 역사란 역사적인 사건을 다뤄 기술하게 되지만

기본적으로 역사란 힘에 의해 기술되고 그 말은 권력을 잡고있는 벼슬아치들의 역사라 할수있다.

조선 중기 말엽 조정은 동인이니, 서인이니, 각종 붕당에 의해 다툼이 잦았다. 혹자는 이러한 붕당정치가 정치적

퇴보와 사회의 분열 현상을 가져오기에 나쁘다고 하지만 붕당이란 권력을 향한 힘있는 자들의 균형이며, 대립이다.

현재의 법과 권력도 삼권분립의 기초로 상호견제를 통한 투명성 확보에 있다면 붕당 역시 권력을 가진자들끼리의

상호 견제를 통한 투명성이 발생한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될것이다. 이러한 상호 견제속에서 역사는 진보하고

서민문화는 발전하는 것인데, 영조때 이러한 붕당이 사회에 커다란 폐단을 준다고 하여 탕평책을 실시하여 붕당을

없애지만, 영조의 탕평책 이후 조선후기의 사회는 안동김씨나 풍양조씨 등 파벌의 세도정치로 인해 조선은 더욱

피폐해지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세도들로 인해 조선사회는 급변하는 세계에 발빠르게 적응하지 못하고

경직된 사회가 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에 이르기 까지 연결되는데,

조선사회의 이러한 파벌과 세도정치로 인한 고착화되고 부패가 만연된 사회를 일본인들은 구식제도인 봉건사회의

폐단이라고 정의한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에 반하지 않고 많은 이들이 수긍하였던것은 조선말기는 고립된

상태에서 내부적으로는 많이 부패되어 있었던 상황이였기에 봉건제에 젖은 사회라고 스스로 인식해버린것이다.

 


일본 식민지 결과에 의한 강제적 근대화인가? "실학"을 통한 자발적 근대화 움직임 이였는가?

(아래부터 설명할 조선에서 "실학"이라는 것은 불가능 하다 라는 전제의 내용은 도올 김용옥 교수의

"독기학설"이라는 책의 내용을 근거로 작성하였고, 책 후반부의 "기학"에 관한 내용은 생략하였습니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역사의 분류에 있어서 근대를 말하면, 자본제라는 이전에 없던 특징이 존재하여야 한다.

우리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의 역사를 정확히 보자는 취지에 부합하려면 우리나라와 그 주변국의 역사도 알아야

한다. 특히 식민사관과 일본에 의한 근대화 라는 것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싫지만 일본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흔히 일본인들이 알고있는 한일 합방에 대한 역사는 어떤것일까?

일본인들은 일본이 아시아의 자주적 근대화를 위해 조선에 선진 문물을 전해주었으나, 이러한 일본의 은혜(?)를,

조선인들이 러시아를 불러들임으로써, 은혜를 원수로 갚는 행위를 하였다고 한다. 러시아는 위험한 국가이고,

따라서 조선을 무력으로 식민지하려는 러시아를 막기위해 러일전쟁이 발발했으며, 전쟁에 승리후 자주적으로

근대화를 못하는 조선을 근대화 시키고,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막기위해 미국과 영국등 서방의 국가가 한일합방을

권유하고 동의 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한일합방을 기점으로 한국의 근대의 시작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가들은 우리의 역사속에서 근대화의 움직임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우리의 자발적인 근대화가

아닌 외부에 의한 근대화 라는것은 인정하지 싫었던 것이다. 그러한 대표적인 인물이 육당 최남선이다.

"해에게서 소년에게" 라는 작품으로 더 알려진 최남선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민족의 정신적 지도자 라는 평가가 있는가 반면 친일파 라는 평가도 있다. 또한 한켠에서는 소심한 친일파,

민족을 생각하는 친일파, 등등 그에 대한 평가는 너무나도 많다. 물론 그가 조선사편수회의 편수 위원직이였다는

것과 매일신보와 경성일보에 내선일체를 강조하는 사설을 기고하는 등의 행태를 보면 완전한 친일파 다.

하지만 나는 그가 일본역사의 희생자 라고 하고 싶다. 그는 대한제국 황실 유학생으로 일본에서 수학하였고,

조선에 들어와 민족의 시대적 각성을 위한 노력을 하며 안창호 선생과 함께 청년 학우회를 설립하는 등

민족 교육에 힘을 썼다. 이러한 행동으로 볼때는 민족주의자 이다. 이처럼 양극단적인 행동을 보이는 그에게

일본역사의 희생자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그가 조선 근대의 시초를 "실학"에서 부터 태동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최초로 "실학" 이라는 단어를 조선에 퍼트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약용, 유형원, 박제가, 유득공, 홍대용, 박지원, 이익 하면 떠오르는 생각은 "실학자" 라는 생각이다.

이들이 실사구시, 경세치용, 이용후생 등의 기치로 민생을 위한 실질적 학문을 했다고 우리는 알고있다.

이들이 대두된 시대적 상황도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탁상공론뿐인 주자학 중심의 성리학에서 벗어나 보다

실질적이고 민생을 위한 학문의 필요성을 느껴 실학이라는 것이 대두 되었고, 이들의 사상은 후에 북학파로 발전

되며 조선의 근대화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있는 실학 이라는 존재이고 이것을 다른말로

하면, 근대=자본제 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니 이러한 근대의 자발적 움직임이 있었다는것을 가르쳐

"자본주의 맹아론" 이라고 한다.

하지만 민생을 위한 보다 실용적인 학문을 추구하는 어떠한 학풍이 존재하였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들이

스스로 주자학 중심에서 벗어나 실용적인 학문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 하며 자신들을 "실학자" 라고 하지는

않았을 뿐더러 동학의 기치를 내걸로 동학운동을 했던 전봉준 처럼 어떤 학파를 내걸었다거나 그런 기록도 없다.

정약용 또한 정통 주자학을 섭렵한 인물이다.

조선에서 실학 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것은 최남선, 문일평 같은 일본에서 수학했던 조선 역사가들에 의해서

등장한다. 이들은 일본에 건너가 조선의 근대화를 위한 공부를 했지만 정작 그들이 배운것은 비판적인 수학이

아닌 습득을 위한 수학이였다. 그들은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일본의 역사와 문화 사회제도 모든것을 배웠다.

그들은 조선의 근대화가 한일합방을 통해서 일본에 의한 강압적인 근대화가 조선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반박하고

조선인들에게 우리에게도 시기상의 문제이지, 일본이 근대화를 전하기 이전부터 근대화의 움직임이 있었다는것을

증명하여 한일합방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조선인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싶었을것이다.

실학 이라는 개념은 조선에서 이러한 자본주의 맹아가 시작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것인데

왜 이것이 잘못된 역사의 왜곡이냐면, 이들이 일본의 역사를 배우면서 일본도 근대화가 미국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루어 졌는데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근대화는 미국에 의해 이루어지기 전부터 이미 근대화의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도출해 내어 일본인의 긍지를 올리려 했다는것이다. 이러한 것을 그대로 베껴서 조선에

실학이라는 개념을 덮어 씌운것이다.


일본의 지식인이라 불리는 유자층을 보면 대부분 사무라이(무사)나 쵸오닌(町人:정인)이라 불리는 상인 계급이였다.

오규우 소라이(1666-1728)가 에도의 강렬한 반 자주학적 학문인 코가쿠(古學)를 창시 했는데 20세기 마루야마

마사오는 소라이의 학문을 일본 근대성의 기점으로 보았다.

이 오규우 소라이의 코가쿠는 코쿠가쿠(國學)으로 발전하고, 미토가쿠(水戶學)으로 발전하며 이 미토가쿠 계열의

사람들이 미국의 개항 아니면 전쟁이라는 선포하에서 막부정권을 밀어내고 메이지 정권을 세우는 존왕파(尊王派)

사람들이다. 이 존왕파 사람들이 자신의 철학을 가르켜 지쯔가쿠(實學:실학) 이라고 불렀는데, 이러한 일본의

실학 개념과 자본주의 맹아론을 그대로 조선에 대입시켜, 民을 바탕으로 한 주자학의 대가였지만 실용적인 학풍을

가지고 있던 정약용 등을 반주자학적 실학자 라고 한것이다.

(존왕파(http://ko.wikipedia.org/wiki/%EB%B3%B4%EC%8B%A0_%EC%A0%84%EC%9F%81)
(자본주의맹아론 : http://banti.egloos.com/4120651 )

이런 실학개념을 주창한 사람들의 역사의식은 민족성과 역사성은 있고, 일제에 의한 근대의 시작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자발적인 근대화의 움직임을 설명하려 했지만 거시적으로는 일본식민사관의 테두리를

벗어날수 없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근대라는 것을 역사에서 추구해야만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근대라는 것 때문에

한이 맺혔다. 20세기를 통해서 어떻게 하면 근대적 모델을 빨리 만들어 가는가? 라는 질문에 우리 민족은 고민하게

되었고, 우리가 지금까지 서양의 학문, 종교, 역사, 예술, 과학 및 사회제도를 배운건 빨리 근대적 민족이 되기

위함이였다.

그러나 근대라는 것을 이야기하기 전에 어떠한 인간이 근대적 인간인가? 라는것을 이야기 해야한다.

우리는 인간에 대한 아무런 단서나 모델이 없이 그저 자본제에 근대적 인간이라는 뿌리를 찾으려고만 했다.

이것은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틀이 역사 밖에 있었다는 소리이다. 역사가 역사발전 5단계설 처럼

원시공산사회-고대-중세-근대-완벽 사회주의 식으로 발전한다는 이러한 주장은 역사를 순환적 사관이 아닌

직선적 사관의 역사 시각을 가져오게 했고 이러한 직선적 역사관은 역사의 목표를 역사 밖에 두는 오류를 범했다.

제 각각의 시대나 특색 그리고 문화에 따라 각기 다른 척도와 가치로 역사를 평가해야지.

역사는 불합리하고 유치한곳에서 합리적이고 좋은것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이러한 직선적 역사 시각이 우리 스스로의

역사 가치를 무시하고 기존의 우리 역사적 가치를 배제한체 역사 밖의 틀에서 맹목적으로 앞만보고 근대화를 위해

달려가는 민족으로 만든것이다.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라는 말을 했다. 모든 역사를 현대적 시각에서

지금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고 역사를 현대적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우리가

앞으로 역사의 교훈을 통해 무엇을 배울수 있을것인가.


이렇듯 일본의 역사를 알지 못하면 우리의 역사 왜곡도 발견할수 없다.

이제부터 일본의 역사 및 중국, 러시아, 미국간의 이해관계 그리고 6.25 전쟁까지 살펴보자.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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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날 10-11-29 18:20
   
멎져요.....잘읽고 갑니다....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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