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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9-24 19:24
[기타] [질문] 통일신라와 일본의 군사력 차이는?
 글쓴이 : 욕지도뽈래…
조회 : 6,824  

통일신라가 마음만 먹으면 일본 정벌가능할 군사력임??

그렇다면 일본을 안친 이유는 뭘까요??

신라가 일본의 침략계획을 알고도 방어만 했던게 궁금해서..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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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우 11-09-24 21:05
   
당시 어디글에서 본건데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왜를 제압할수 있었지만

그렇게 안했다고 본적이 잇습니다 이유는 키도 작고 땅딸보에 토인수준.... 정도라고나 해야할까..

점령을 하더라도 국방비(?)만 축낸다고 해서 엄청 무시당했다고 하네요

오죽하면 힘이 있는데도 쓸데없다 해서.... 일부로 안했을까요....

과거 일본의 수준이 어느정도인지 짐작 가시지요....? 물론 진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릅니다.



확실한건 근대에 와서 개혁성공으로 사람취급 받게된거...
     
명품 11-09-25 00:08
   
다른게시판에서 욕설좀 하지마세요. 여기는 어린애들도 오는곳입니다.

자중해주세요.

님만의 가생이가 아니잖아요

님과 그분들의 댓글보고 얼마나  혐오스러운지..

주의하세요
          
한시우 11-09-25 00:10
   
마치 제가 다른게시판에서 욕만 하고 다닌다는듯이 말씀하시네요

어쩌다가 충돌로 일어난 사태를 이렇게 확대해석까지 하시면 전 억울합니다.

앞으로 자중하겠습니다 허나 혐오스럽다는 말은 기분 드럽게 들립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으셨네요. 명품님께서도 앞으로는 이런 코멘트를 다실려면

상대방에 대해 완전히 알아오셔야겠습니다 제가 올린 게시글이나

다는 코멘트 분석이라도 해주시든지 하셔야지요... 왠지모르게 욕만 하고다니는 유저로 찍힌거 같아 기분이 좋지 않네요
     
ㅇㅇ 11-09-25 06:57
   
일본 군대가 한반도에 출현한 역사기록은 많지만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일본군이 경주를 포위하고, 신라가 일본에 왕자를 인질로 보냈다는 기록이 있고,
백제 성왕은 신라를 칠 때 일본의 출병을 요청하기 위해, 왕자를 인질로 보냈습니다.)
한반도 군대가 일본 열도에 상륙한 역사기록은 하나도 없습니다.

삼국시대에 기술/문화 수준은 한반도가 일본보다 위였지만,
수천년간 몽골이 중국보다 기술/문화 수준이 낮아도 군사적으로 우위였듯,
삼국시대에 군사력은 몇 만명을 바다 건너편으로 보낸 일본이 백제, 신라보다 위였습니다.

사학자들은
7세기 중반 일본인구가 신라와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하며
그 후 격차가 계속 확대되어 10세기 이후에는 일본 인구가 고려, 조선의 3~4배 정도로 추정합니다.
 
1860년대에 일본의 2개 번이 서양에서 군함과 대포를 구매해, 중앙정부를 전복하고 메이지 유신을 벌였는데
동시대 조선은 경복궁 만들다가 재정이 파탄나고 인플레이션이 일어났습니다.

19세기 중후반 기록을 보면 일본 중앙정부의 재정이 조선의 30배 수준이었습니다.

이런 경제력 차이 때문에, 일본은 서양무기를 사고, 서양에 수백명씩 유학생을 보내 문물을 받아들이고, 공장을 지어 산업화를 시작했지만
조선은 수백명을 총으로 무장시킨 것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일본, 청, 러시아가 조선에 맘대로 들어오고, 러시아가 거문도를 차지해도 조선이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Assa 11-09-25 13:05
   
ㅎㅎ 님아 그거 다 서양에서 돈을 빌려다가 쓴거에요 마치 그떄 일본 재정이 엄청난걸로 아시는데 빚으로 연명한 상태에서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청나라한테 받은돈으로 간신히 빚 다 갚았다능
          
사랑합니다 11-09-26 17:00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 일본이 군사력이 쎄 지나가던 개가 웃는다 암튼 거짓말하면 안되죠 ㅎㅎ.. 일본놈들이 형님처럼 떠 받들던 백제가 망할때 야마토정권에서 군사를 보냇지만 순식간에 전멸됏던 일본이 군사력이 위 ㅎㅎ 일본은 거의 해적무리엿기때문에 해적무리를 아예 관심 거둔 역사임..

고구려,신라, 수많은 중원국가는 일본은 해적,왜구라 아예 쓰레기 처럼 생각해서 쳐들어가지 않음 유일하게 한국이 일본을 한번 쳐들어 가려고했다가 해적무리 쳐들어가봐야 듣될게 없다고 판단해서 취소했고, 몽고는 일본이 해적이든 아니든 무시하고 쳐들어가려고했지만 폭풍때문에
쳐들어가는거 포기..

사기치지말고 꺼져라 그당시 문화는 모든거이 위라는 것이다 .. 무기도 문화가 발전해야 나온느것인데..

일본이 고기를 먹는 역사가 겨우 100년인것을 아는지 ㅎㅎ 일본인 대다수가 미개인정도 사람들이었음 ㅎㅎ 아 그래서 한반도에 3배라면 임진왜란때 30만이 최고 ㅋㅋ 장난하나 일본은 무인국가였고 조선은 문인국가였지만 10만이었는데 말이되는소리해라 무인국가가 끌어모은게 30만 일본이 인구가 급격히 는것은 메이지 유신때다 거짓말하지말고
          
지나가다 11-09-29 16:09
   
/oo 님이 정말 잘못 알고 계시네요..
기마병 유물이 괜히 있는게 아닙니다.
당시 한반도에는 기마병이라는 것이 있었지요. 기마병이 뭐냐하면, 말타고 다니는 병사라고 보시면 되는데. 이 기마병들 즉, 말과 무사들을 모두 무장시킨 유물들이 한반도에서는 일본보다 300년 이상 앞서 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고 하니, 기마병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전투력을 지닌 병기입니다. 일반 병사하고는 전투력에 차이가 엄청나지요. 쉽게 요즘 말로 설명하면, 원자폭탄을 가진 것과 같습니다.  즉. 한반도 남부까지 이미 기마병들이 있는 데 왜군의 군사력은 새발의 피도 안되었습니다. 쉽게 설명해서 원자폭탄 가진 나라가 화살 쏘는 나라한테 군사력으로 밀릴 것 같습니까? 절대로 아니지요... 당시 일본은 일본이 아니라 왜였지요...  작은 왜소한 집단들 한테 이익 볼게 없어서 상종을 안했었어요...  바로 이 기마병 유물들이 바로 당시 군사력의 힘이 왜군들이 당시 한반도 세력에게는 상대가 안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철기국가가 청동기 집단에게 밀릴 거라는 생각은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할 수 있는지 참 이해가 안되네요... -_-;
양앵민이 11-09-24 21:48
   
국가관이 틀려서 점령해도 골칫거리죠. 물자보급도 힘들고.
shantou 11-09-24 21:55
   
궁금해요? 그럼 역사책보고 연구해보세요, 만약 신라가 일본정벌을 했더라면 ?????? 대당전쟁에 백제,고구려부흥군에다, 위에 발해라는 막강한 신흥 세력에 등장하고 있었고 이제 막 편입한 영토 안정에 할일이 좀 많았겠습니까?
거기다 압록강건너 요동 원정까지 간걸로 알고 있습니다.한마디로 일본원정에 신경쓸 틈이 없었다는거죠.
백제 침공할때 신라병력 딸딸끌어간게 5만 이였다고 하니 상상이 가시겠죠?
간단함 11-09-24 22:12
   
그런데 통일 신라 시대땐 일본의 침략 없었음..ㅡㅡ
그 이후 시대인 고려말기까진 없었음..ㅡㅡ
뭐 결국 고려말 왜구가 극성이어서 이성계가 왜구 격퇴 한걸로다가 결국 왕까지 된거지만 ㅡㅡ
ㅇㅇ 11-09-24 22:16
   
그 시대는 원정가서 이긴다는 건 불가능한 시대죠. 신라가 왜로 원정가서 일본점령 한다는 거도 어불성설이고 왜가 반도로  건너와 삼한을 점령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입니다.
맙소사 11-09-24 22:18
   
신라가 왜를 정벌하지 않은게 아니라.........

 백제가 왜열도 서쪽에 세력을 두고 있을 때.....신라 고구려 다 동쪽에서 세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증거는 왜의 신화 속 최초의 신은 신라계이고, 백제 고구려는 그 지명으로 왜 열도에 남아 있고, 세 나라 모두 전문 인력이나 귀족들이 왜열도 전역의 신사에 신으로 모셔져 있다는 것...

 그리고 고구려와 백제가 망하고,,,,,조금 지나서 일본에서 ....아마 신라인가 고구려인가 잘은 기억이 안나지만 일본의 백제의 왕과 그 세력들을 암살하고 권력을 쟁탈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당시 왜 열도는 사람은 살고 있으돼,,,,,,한반도에서 들어 오는 세력의 침략의 대상이 아니었고,,,,무주지에 깃발 꼿는 식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삼국 중 둘이 망하고 신라만 남았을 때는 신라는 한반도 내의 당나라 잔당들 쫓아 내야했고, 후에는 백제부흥 세력과 고구려부흥 세력, 발해 등 왜열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겠죠....고려도 마찬가지고.....고몽 연합 일때는 북쪽 후방이 몽고였으니 걱정 없이 왜열도로 고몽연합으로 치러 갈 수 있었을거고....조선도 명목상으로는 왜는 두들겨 패야 할 무리가 아니라 가르치고 계몽시켜야 할 대상이라고 했는데...틀린말은 아니지만,,,,,이것도 북쪽 후방에 청을 두고 치러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을 테니까요...
간단함 11-09-24 22:22
   
그나저나 그당시 한반도는 정말 이나라 저나라가 노릴만한 위치인건 확실합니다...
벼농사 짓기 좋은 평야 곡창지대 보유하고있고 중국 문물 적당히 받아 문명국이였고..ㅡㅡ
암튼 북쪽 여진족 말갈 몽고 선비 남쪽 왜구 한반도국력이 약해 졌다 싶으면 쳐들어온 이유가 있었음 ㅡㅡ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구요 ㅡㅡ
카이사르98 11-09-24 22:23
   
영국과 프랑스를 보면 답 나옴 . . .일단 바다건너기가 영 . . . 아마 장보고가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당시 왜는 해적질 무척많이 했으니 . . (장보고 살아있을때 거의 초토화) 아마도  왜까지 식민지 만들었을거라는
문제는 당과 동남아 무역으로도 부의 축척이 가능 했기때문에 . . . 사실 당신 왜는 지금에 아프리카 수준이었기
때문에 . . .
동산고딩 11-09-24 22:52
   
일본치면고구려랑
백제가뒷치
돌뱅이 11-09-24 23:27
   
왜에 다녀온 사신들이 왕에게 보고하길
왜는 불악 무식한  사람들이 사는곳이라 하여
점령해도 개화를 시키기 어려운 곳이니
그저 지들끼리 죽이고 살리고 하도록
내버려 두는것이 조선에 이롭다고 보고를 올린바가 있습니다.....
진눈 11-09-24 23:46
   
이미 점령했었습니다.
음.. 11-09-24 23:52
   
통일신라군이든...고려든...고구려든..
일본을 칠수가 없져....
북방에 세계최대 나라들이 침략할려고 즐비한데...일본갔따가???쳐들어 오면여...
그리고 자꾸 왜 침략당했냐 하는뎅....
일본의 배가 어디로 올줄알져????
그래서 무사들 한쪽으로 침략해서 노략질하고 도망가져...
그래서 노략질 당했던 겁니다. 우리나라만???
명나라, 베트남 등등 다 당했어여...
일본은 사방에 적이 없으니까여...
하지만 지금은 다르져...러시아도 있고..
자꾸 미국미국 하는게 이유가 있어여....그때하곤 다르게...
레이더도 있고...사정거리 엄청난 무기들 등등 그래서....
일본이 해군력 증강하고 잠수함 잡을꺼만 죽어라 증강하는 이유가 그거고..
또한 우주에 군사위성 띄우는 이유여여....
만약 고구려군이 일본에 떨어졌으면????
개마군 아시져???말에다가 갑옷까지 한거...난리났져...
결론은 지정학적 위치가 좋았다 여요....영국도...ㅋ
     
진눈 11-09-26 16:53
   
아놔 이미 점령했다니까 무슨소리임?
뭔소리야 11-09-25 00:08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고 나당전쟁을 거쳐 안정된 시기에 생산력이 급격히 증대됬을 뿐더러
국제적으로는 육상 실크로드 외에 해상 실크로드가 열리고 신라 상인이 인도,중동 국가들까지
가서 무역하던 때였고 당나라 또한 최대국력을 자랑하면서 국제적인 당문화를 꽃피우던 시기.

신라의 문화력이나 군사력, 통일 후의 국가적 자신감을 생각해 보면 일본 정벌은 충분히 가능했으리라
생각되고요. 그 시기 일본은 신라를 번국 즉 자신들의 속국이라고 불르고 일본서기에도 그렇게 쓰고
하던 시기였지만 이건 도대체 근거가 없어요. 당 황제 앞에서도 신라 사신과 왜 사신이 서로 싸웠다죠.

하지만 그 시기 자체가 동아시아가 굉장히 안정된 시기였고 번영하던 때라 굳이 전쟁의지도 없고
필요도 없었던 때였을 겁니다.
피카츄 11-09-25 00:08
   
대충 통일신라때가 발해있었고 당나라가있었고 당나라는 발해때문에 움직이지못하고 게다가 당나라는 상당히 약해져있던상태라 누굴친다는 그런게불가능했다고생각;; 발해는 어느왕때였더라 신라랑 친해지려고노력많이했었고 충분히칠시간많았을거라생각함;; 그리고 그시기일본은통일도안되있어서 세력분열되있었을걸요
고구려 11-09-25 00:16
   
북방 세력의  고구려, 호전적인 백제
거기에 신라를 먹으려 버틴 당나라
이런 강대한 세력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싸운 신라가
기껏 동네싸움의 왜국과 싸운다면
백전백승일듯
음.. 11-09-25 02:47
   
뭔소리야 님//
그 시기는 미묘하져...
신라상인이 실크로드 등등...//그시기는 당하고는 친교지만..
자칫..당나라 쳐둘어 오던가..아님 지금의 북한 즉 고구려의 옛 성들은
완전히 당나라게 아니였져...그당시는 발해가..건국할려는 시기고..
발해가 건국되었고...그 후엔 뭘가여???..견훤, 궁예 등등..해서 왕건이 고려..세움
그 시기에 발해 왕자의 난으로 거란한테 망함..발해가 망함...
그리고 통일시기에 당나라 쪼차내고...그 당시에 지금 평양쪽하고..백두산위아래 사이는
공백이었어여..대조영의 아버지에서 대조영때까지...고구려 유민들이
뭐랄까 반란이 심했져...그리고 고구려가 지금의 중국 남쪽에 이주 됬다는뎅..그것도 맞지만..
대다수가..지금 발해만 쪽에...(잘은 기억안나지만)살았어요...쩜 지나서 고구려 공주가.
중국 성주(왕족)...자신의 마누라 죽인애하고 결혼하져..유민들을 위해.안전하게.. ㅠㅠ
그리고 그 놈도...고구려쪽 힘이 필요했져...등등
고구려가 중국한테 망했네 마네가 중요한게 아니고... 그 당시 고구려는 엄청강한거였고..
또한 그만큼 무서워했져...중국 계속 다른나라 생길적에 고구려는 500년이상 지속된 나라이니 말
입니다. 연나라가 고구려쳐들어가서 망나니짓하다가 고구려한테 200여년정도 하다가 없어졌어요.
지금의 광개토대황보면 알듯..(물론 그당시 백제 근초고왕때문에 ㅠㅠ)
지금 연나라한테 당한게..광개토대왕의 할아버지인 고국원왕임(근초고왕한테 죽음)
연나라가 무슨 무덤인가 도굴해가고 그러다가...광개토대왕이 어캐??
정복전쟁한거져....왜??백성들 민심얻기위해 (왕권약했심, 자신입지도)...
그래서 첨에 백제까고....거란쪽 쳐들어 간거임..(드라마가 음 쩜)
쳐부쉰 성만...150개가 넘어여...성 말이져...엄청난거임.
성의 예를 들면 고구려꺼여...생각해보삼...
요동성..등등 150개 라면여..ㅋ 대단
너무 다른야기 막 썻네여..
지송합니다...^^;
아 너무 새벽이라 뚱딴지 같이 고구려 야기로 ㅋ ^^V
     
mymiky 11-09-26 12:17
   
고구려 공주가 아니라 백제의자왕 손녀뻘인데, 부여태비라고.. 당의 왕족이랑 결혼했음.
당 고조 15자의 손자였나? 괵왕 이옹인가 그럼.. 그 사람도 야심만만했던  것 같음.
*** 11-09-25 06:51
   
충분히 털 수 있는데 안 털었다면 허세죠. 고구려 같은경우가 그렇죠. 신라,백제 깔끔하게 정리할 힘이있었는데 괜히 남겨뒀다가 나중에 화근이 되죠. 통일신라나 그 이후 왕조들같은 경우에도 힘이 있었을때 왜부터 정리했어야했습니다.그래야 후방걱정없이 북진에 매진할수 있는 조건이됐는데 계속 남겨두죠. 고대세계에서 피정복민은 기본적으로 착취의 대상이지 교화의 대상이 아니죠. 교화시킬 자신이 없어서 열도를 먹을필요가 없었다는건 솔직히 구더기 무서워 장못담근단 얘기랑 같은 맥락아닌지.
     
양앵민이 11-09-25 12:03
   
고대가 아니라 조선은 중세시대 입니다. 열도를 정복 안한 가장 큰 이유가 섬이라서 그럴겁니다.

제주도도 물자보급이 힘든데 열도는 어떻겠습니까. 정복한다 하더라도 열도 특유의 가문놀이 때문에

이만저만 골칫거리도 아닐테고 근본적인 유교사상을 조선에 심는데 백년이상이 걸렸는데 열도에

유교사상을 심는다는건 ㅎㅎ ㅋㅋ 두번째 이유는 열도애들 파워가 좀 쌨죠 ㅋ 이건 설명할 가치도 없으니 패스.
을지문덕 11-09-25 22:53
   
통일신라성립당시 왜와의 군사력비교는 당연히 통일신라 우위였습니다(당시세계최강국 당 과의 통일전쟁에서 완승한것이 극명한 증거죠). 물론 그 이전에도 고구려 백제 신라 각각의 국가보다 왜의 군사력이 강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고구려는 말이 필요없고 백제 신라보다 왜가 강했다고 볼 수 없죠. 가령 삼국사기기록을 보면 왜가 바다를넘어와(또는 한반도남부의 어느지점에서 침략했다고 해석될 수 있는 기록들도 있음)약탈을 자행했을때마다 신라정부에서 토벌대를 파견하죠.놀라운것은 그 신라군 토벌대에게 왜가 힘한번 못쓰고 완패해서 진압되었다는 기록이 무척 많습니다.내물왕때 경주가 왜(백제와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큰)에게 포위도어 어려움을 겪었던 것도 천년이 넘든 신라역사상 매우 드믄일 이었던거죠(그것도 광개토대왕의 원조로 왜인들은 거의 괴멸되었습니다).백제가 왜에 군원을 청한것도 역사적 사실이나 칠지도명문이나 왜국내 백제인들의 영향력을 감안할때 일본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왜가 주고 백제가 종이라고 볼 수도 없는거죠.삼국시대 신라는 왜의 침구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그것이 국방력의 지표가 될 수는 없죠. 만일 그럴거면 고려나 조선초에도 왜의 군사력이 더강했다고 해야 할 겁니다.당시왜는 여러소국으로 분열 되었을 때인데 강력한 중앙집권국가 일뿐 아니라 왜보다 훨씬 앞서 강력한 화약무기들을 확보한 조선초의 조선왕조보다 왜의 군사력이 강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그렇다면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어째서 왜의 침탈의 피해를 보았는가 하면 왜가 우리나라나  중국보다 먼저 활발하게 대륙과 열도를 잇는 바닷길을 개척했다는 거죠. 쉽게 말해서 약탈을 위해 치고 빠지기 매우 유리한 조건을 비교적 일찍 확보 했다는 거죠. 섬나라인 왜는 자기들 것을 지키고 남을 침략하는 데 있어 대단히 유리했었던 거죠. 이러한 왜의 주변국 침탈이 왜의 국방력이 강해서 였다고만 생각하면 단순한 생각입니다. 생각해 보십쇼 중국의 명이 국방력이 약해서 풍신수길이 통일하기 이전의 왜의 해적들에게 그 많은 피해를 봤겠습니까? 고려가 약했다면 최영이 홍산에서 왜군을 괴멸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당시 고려가 왜보다 약했다면 이성계가 황산에서 열배가 넘는 왜군을 섬멸할 수 있었겠습니까? 통일신라는 당나라도 이긴나라였습니다. 충분히 마음만 먹었다면 왜정벌도 가능했을 겁니다. 그러나 통일전쟁을 수행하면서 너무많은 출혈이 있었고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 내치에 전력을 기울여야 했던것입니다. 왜가 우리보다 국방력이 강했던 시기는 엄밀히 말해서 조선중기 이후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조선초 세종이 괜히 대마도정벌을 감행했던게 아닙니다.그만큼 국방력이 뒷바침 됬기 때문인 거죠.
고구마밤 11-09-26 00:16
   
왜냐면 우리는 대륙이고 왜나라는 섬입니다. 문제는 왜나라를 칠려면 해수쪽에 능해야되는데 왜나라의 파도나 이런걸 간파 할 수 있는 배가 부족했고...굳이 안쳐도 되니까요...솔직히 칠려면 위쪽을 치는게 더 났잖아요...
문물교류도 우리가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왜나라 쪽은 우리껄 받아먹는 신세였습니다. 왜나라가 우리보다 전력이 나아진 때는 전국시대를 지나서 메이지왜왕이 메이지유신을 하면서 외부와 많은 교류를 했고 그 때문에 과학기술도 많이 발전했죠...그 때 아시아에서 대학도 처음 생겨나고요...아무튼 그 때 부터 였습니다...
그리고 신라는 자력으로 통일신라를 이룩한게 아니에요 당과 손을 잡고 백제와 고구려를 쳤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러니까 통일 시킬려고 너무많은 힘을 쏟고 그 상황에서 당도 견제하려니 당연히 내부를 다지는 수밖에요 그당시 왜나라는 무시해도 상관없는 나라라서 ㅋㅋ
나가라쟈 11-09-26 21:58
   
후세들이 이런 저런 상상속에서 열도 정복의 야망을 불태우지만..

결과는 2천년간 수도 두번 털린 한반도 세력의 완패.(* 수도 두번털릴동안 열도내 한개성도 떨어뜨리지 못함)

신라때나 지금이나 주변 신경 안쓰고 열도 정복길에 오를 파워는 되지 못했음.
김김김 11-09-26 22:53
   
일단, 당시 통일 신라는 왜구 막기에 급급할 정도로 국력이 형편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전성기를 구가한 문무대왕이 죽어서 해룡이 되어 왜구를 막겠다고 할 정도니까요. 전근대 역사상 우리 민족 최대의 전성기를 맞은 세종도 일본 정벌을 국방비 측면에서 부담스러워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후대에 어떻게 될줄 알았으면 사실 가만히 두진 않았겠죠. 중국이 우리나라를 천생 변방으로 생각하고 이정도로까지 발전할줄 몰랐던 것처럼.
뭘모르시네 11-09-27 10:36
   
잘모르는 분들이 많겠지만, 본래 왜구란 집단이 국제 해적입니다.
소위 왜인만 있는게 아니라, 중국 남동해안 주민들과 한반도인,
심지어 북방유목민족 계통도 다수 포함되어 있던 해적세력이었습니다.

본래 열 장정이 도둑 한놈 못당한다는 말 아시죠?
왜구 몇천, 몇만명이 기습적으로 나타나 수백 관군이 지키는 해안지방을 약탈하는 거 일도 아닙니다..

그리고, 흔히들 왜구와 가야, 백제의 상관 관계의 비밀 같은게 있는데..
광개토대왕 시절 신라가 경주를 포위당할 무렵에, 경남쪽에는 왜인이 바글바글했다고 합니다.
헌데, 아무런 약탈이나 피해가 없었지요. 왜 그랬을까요?

일본의 당시 유물이나 갑옷 같은걸 보면, 가야계 갑옷을 그대로 베낀걸 입고 있습니다.
가야에서 생산된 철로 무장하고, 갑옷을 입었다 이거죠. 그리고 신라의 경우엔 연오랑, 세오녀 설화가 남아있죠.
그 말은 즉 가야, 신라에서 많은 이주민이 일본으로 건너가 세력을 형성했다는 소리입니다.
아무래도 가야가 주축이죠.

백제는 마한을 정벌하고 나서 가야와 국경을 맞대게 되고,
가야, 신라에 비해 뒤늦게 일본과 교류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가야-가야에 정복된 왜-백제 동맹이 결성되었다는 소리겠지요.
     
욕지도뽈래… 11-09-27 17:18
   
아 ㅋㅋ 신라구가 일본 해안지방 털고다녔단 얘기 어디서 본적있는데 ㅋㅋㅋ
뭘모르시네 11-09-27 11:37
   
그러다 가야가 고구려 속국에서 벗어난 신라에게 박살나고, 백제가 망하면서 이 연합이 깨지게 되는 것이죠.
경주가 공격당하던 무렵의 신라는 아주 나약한 상황이었고, 적들에게 둘러쌓인 불리한 상황이었다는 걸 잊지 맙시다.

제가 봤을 때.. 고려시기까지는 분명 일본을 압도할만한 국력을 갖고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본래 고려라는 나라가 왕건이라는 수군 장수를 중심으로 세워진 나라입니다. 그래선지 수군도 나쁘지 않은 편이죠.
삼별초 항쟁 때 1천척의 대규모 선단이 등장하고, 진도-제주도로 달아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죠.

또한, 왜구와 비교도 안될 숫자인 북방 기마민족의 수십만 대군과 맞짱을 뜨는 고려의 능력입니다.
왜구가 백병전 암만 잘해봐야, 말타고 활쏘고, 칼 휘두르는 전쟁머신 북방 기마민족에 비할 바가 안됩니다.
거란, 말갈(여진), 몽골 이런 부류들은 공포의 사신 그 자체지요..

실제적으로 마상무예라는건 가장 어렵고, 최종적으로 배우는 무예에 가깝습니다.
고려는 그런 적들을 대상으로 30만 대군도 너끈히 동원하는 괴력을 보여주고 몇차례나 물려칩니다.

그리고, 고려 후기 원나라의 요청으로 고려군 수천명이 이성계, 최영 등의 지휘 하에
중국에 파견되어 홍건적 토벌에 나섰는데..이 3천명 + 현지 고려계 주민들이 수십만 홍건적군대를 쓸어버려서
수십만 홍건적이 뿔뿔이 찢어지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사실 홍건적의 한 무리에 의해 개경이 함락되기도 했지만, 이건 원채 대비할 틈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고..
결국 홍건적 무리 10만 대군이 모조리 섬멸되어 살아남은 자가 거의 없다시피하죠..

사실, 왜구 무리들은 거기에 비하면 아주 숫자가 적지요. 병력이 500여척이니까..
대략 5만명 내외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이 왜구와 일본 본토인들은 별개의 관계죠.
일본 본토 애들은 백제 멸망 때 증원왔다가 전멸한 뒤론 실제적으론 한반도와 투닥거린 적이 없습니다.

사실 일본 본토도.. 당시 막부와 지방 다이묘들이 다스리는 상황이었고..
여몽연합군이 제대로 상륙해 각개격파해 나가면 일본은 정복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고려군을 포함해 대부분이 억지로 끌려나온 터라 전의가 별로 없는 상황이었죠.

이 후,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고려의 체제에 비해 조선은 체제가 상당히 물렁물렁했습니다.
동원능력이나 신분제적 결속도 예전 고려만 못했습니다. 북방민족의 위협도 명나라 건국과 더불어 약해졌죠.
이러는 상황에 일본은 오랜 내전으로 갈고 닦은 군대를 통합해서 조선을 친겁니다..

그래도 일본군의 전투기술은 물론, 전의도 높았습니다. 얘네들은 주로 일확천금을 꿈꾼 애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주로 일본에서의 영지부족에 허덕여 튀어나온 히데요시의 직계 가신들과 서부지역 다이묘들이었죠..
조선에서 개밥그릇 들고가도 떼돈을 벌 수 있는 시기였구요.

그래도 결국 우리가 알던대로 일본은 보급선이 끊기고, 경남쪽에 주저앉은채로 조명연합군에게 수세에 몰리다
결국 후퇴합니다.

실질적으로 일본의 전쟁역량은 조선을 능가했던 건 사실이었죠.
히데요시 아래 집결한 일본군조차 쉽게 삼키지 못하는 곳이 당시 조선이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조선이 일본군에 당하게 된건 근대에서였습니다.
조선의 세도정치와 부패가 극에 달하고, 지배층-피지배층의 국론분열을 틈타 어린 아이
손목 비틀듯이 무너뜨린거지요..

당시 대한제국에는 1개 사단 규모의 신식군대만이 있었지만.. (서울 1개 연대, 지방 각도별 1개 대대)
일본에는 20~25만명의 신식군대가 있었습니다.

본래 조선이 동원가능한 군적상의 병력은 대략 24~30만명입니다.
동학혁명 때 보면.. 동학군 숫자만 봐도 이만한 병력도 사실 동원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죠..
문제는.. 이런 인력자원들을 무장시킬 재력도, 지도력과 명분도 중앙 조정이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임진왜란 때엔 조총을 카피해서 이후 조선군 대부분이 화승총으로 무장할만큼 많은 수를 만든게
조선이었는데.. 볼트액션 소총의 단계에선 전혀 그 때와 같은 힘을 내질 못하죠...

일본이 비약적으로 성장할 때, 조선이 너무나 참담하게 무너져 있었던 것입니다.
11 11-09-29 17:58
   
전쟁이란 = 이익을 남겨야함

북방기마민족이 왜 한족을치고

독일 게르만이왜 로마를 공격했는지보면 답나옴 이익이있으니깐.

청나라가 조선을 볍합하지않은이유 관리하면서 저항하는조선을먹는것보다 속국으로두는게이익이니깐


신라가 일본을먹었다치자 무슨이익이있지?
     
11-09-30 10:49
   
이익이지. 한반도평야지대보다 열도평야지대가 더 넓지. 거기다 정복민 세수걷고 전쟁할때 몽고애들이 하던것처럼 선발대로 세우거나 노예로 쓰면되지. 진짜 몰라서 그럼? ㅋㅋ 이건 정신승리수준인데.
진이킴 11-10-02 03:27
   
음... 댓글 읽어 보니 이게 가장 맞을듯. 일본은 거슬리기는 했지만, 사실상 칠수있는기회가 없었음. 삼국시대 이후에 중원의 압박때문에, 이러니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대단한거임, 중원을 압박을 이겨내면서, 뒤치기 하는거 까지 심플하게 제압하잖아요.
농가무테 11-10-02 10:54
   
사실상 칠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도 하지만 칠 역량도 부족했다 생각되네요..
짜증나는 일제시대때도 그렇게 군사력이 차이가 날 정도이데오 기껏 30여년 박해를 당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당시에 몬 소식 전할려면 몇개월 걸리는데 가능할가요?
또한 원정군 보낼 군사력이 가능할지도 애매합니다. 그많은 군선을 어떻게?
영프 도버해엽은 기껏해야 40키로던가요? 암튼...대한해협은 정말 다르죠...
더욱이 주둔지 군사력을 유지하는 것 조차 힘들겁니다.
그래서 외교와 문화로서 지배를 했을 것이고요..
그런데 이게 아이러니인게... 피지배 받는 입장에서는 언젠가는 꼭 이기겠다는 모종의 악심을 품게 되는게 인지상정이라 언젠가 지배자측의 세력이 약해지면 공격당할수 밖에 없다는 거죠..

더욱이 지리적 입장이라 열도애들 얼마나 육지로 넘어올려고 노력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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