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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03 21:44
[일본] 괴뢰 정부와 완장 효과 - 푸이 내세운 만주국 건설은 일제의 ‘차시환혼’ 책략
 글쓴이 : 히스토리2
조회 : 1,047  

괴뢰 정부와 완장 효과 - 푸이 내세운 만주국 건설은 일제의 ‘차시환혼’ 책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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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일본을 방문해 일왕 히로히토와 함께 무개차에 탄 푸이(앞줄 오른쪽). ​



최근 북한 여러 매체가 대한민국 정부 및 당국자를 ‘괴뢰’로 호칭하며 비난하고 있다. 남이 조종하는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를 의미하는 괴뢰는 최근뿐 아니라 분단 70년 내내 남북한관계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다.  



괴뢰는 어떤 전략적 의미를 갖고 있을까. 괴뢰정부의 효능은 근대 이후에 더 커졌다. 근대 이전에는 조공관계처럼 다른 나라 내정에 직접 개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괴뢰정부를 세울 필요가 없었다. 이에 비해 내정불간섭의 근대국가 체제에서는 역설적으로 타국 내정에 간섭하기 위해 괴뢰정부의 필요성을 더 느끼게 된다. 

근·현대 국가는 독립국을 전제로 한다. 그렇지만 외세의 관여는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특정 정권이 괴뢰정권인지 아닌지는 늘 논란의 대상이다. 예컨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프랑스 침공 후 수립된 프랑스 비시정권은 괴뢰정부라는 견해가 많지만 온건한 민주정부였다는 평가도 있다. 

이에 비해 논란의 여지없이 괴뢰국으로 받아들여지는 나라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꼭 83년 전인 1932년 3월 1일 건국한 만주국이 그렇다. 만주국이 괴뢰국으로 공인되는 이유는 국제연맹의 유권해석 때문이다. 중국 제소로 발족된 국제연맹 리튼위원회는 만주국이 일본의 괴뢰국이며 만주국 지역은 중국의 주권관할 지역이라고 1932년에 보고했다. 이에 일본은 이듬해 국제연맹에서 탈퇴했다.

남만주철도주식회사(滿鐵)가 1934년 3월 1일 푸이의 만주국 황제즉위를 기념하여 발행한 그림엽서. 즉위 연도를 1933년으로 잘못 인쇄하여 1934년으로 정정하는 스티커가 붙어있다. 그만큼 즉위시점이 불명확했다. 만주국-일본-미국 항로와 함께 만주국이 오래전부터 있었던 왕조였음을 강조하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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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nchuria Daily News 1934년 3월 1일자 만주제국 황제즉위 기념호

잃을 것 없는 푸이에겐 ‘치명적 유혹’

만주국은 오족협화(五族協和)와 왕도낙토(王道樂土)를 내세웠다. 5족(만주족·한족·몽골족·조선족·일본족) 공생 국가를 표방하여 아시아판 미국을 지향했다. 또 공화정 대신 왕정제, 그 가운데서도 패도가 아닌 왕도를 표방했다. 만주국 경제는 일본 지원으로 급속히 성장했고 인구도 가파르게 증가했다. 관동군 개입을 비판하고 만주국 독립을 주장하던 일본 내 목소리도 있었다. 만주국은 1945년 패망할 때까지 독일과 이탈리아를 포함한 여러 나라로부터 국가승인을 받았다. 

그렇지만 만주국이 기치로 내세운 다민족 왕도정치는 전혀 실천되지 못했다. 헌법에 상응하는 조직법은 입법원을 설치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국무원 산하 총무청이 거의 모든 정책을 결정했다. 만주국은 총무장관, 총무청 차장, 관동군 헌병대사령관, 남만주철도 총재, 만주중공업개발 사장 등 이른바 2키(도조 히데키, 호시노 나오키) 3스케(기시 노부스케, 아아키와 요시스케, 마쓰오카 요스케)로 대표되는 일본인이 지배한 병참기지에 불과했다. 

만주국으로 이득을 본 일제는 내몽골·난징·베트남 등에도 왕족이나 고위관리를 통해 각각 괴뢰정부를 세웠다. 이에 따라 중국 분열은 심화됐는데, 이는 일제가 의도했던 바다. 당시 국제정세는 특정 국가가 중국을 독점할 수 없도록 중국 침공을 서로 견제하던 분위기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민족자결과 민주주의라는 국제여론이 힘을 받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직접 타국을 병합하거나 압박을 가하는 것보다 괴뢰국가나 괴뢰정부를 내세우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 

만주국 건설의 배경에는 식민지 한반도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당시 만주는 조선 독립운동의 배후기지로 활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만주국 건설은 일제의 한반도 장악에 도움이 되었다. 조선총독부는 한반도에서 수탈할 때 조선인을 내세웠다. 완장을 차면 완장을 채워준 자의 기대 이상으로 악랄하게 행동하는 자는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다. 앞잡이를 세우든 괴뢰국을 세우든 이는 간접 통치에 해당한다. 간접 통치는 직접 통치보다 전략적이다. 

종전 후 만주국을 상대로 제기한 여러 소송에서 일본은 만주국이 일본과 관계없는 독립국이라며 책임이 없다고 대응했다.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도 일본은 만주국 황제 푸이가 중국 동북지역 침략을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푸이는 자신도 일제의 피해자라고 항변했다. 

푸이가 만주국 황제로 즉위한 날은 지금으로부터 81년 전인 1934년 3월 1일이다. 만주국 황제 즉위는 일제뿐 아니라 1906년생 푸이의 선택이기도 했다. 푸이는 유아 시기 2세(1908)부터 6세(1912)까지 청나라 마지막 황제로 재위했고 복벽사건으로 11세(1917)때도 잠시 재추대됐는데, 재위기간 내내 섭정이 이뤄졌다. 아무 실권도 없던 자신이 왕조 패망의 책임자로 여겨지는 상황에 불만을 가졌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푸이가 만주국 황제 자리를 받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만주국 황제 자리는 만주족과 청 왕조를 부흥시킬 수 있거나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제고시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 더 나은 대안이었다. 만주국 황제로 취임하더라도 더 나빠질 것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차도살인(借刀殺人)은 남의 칼을 빌려 다른 사람을 죽인다는 뜻이고, 차시환혼(借尸還魂)은 남의 시신을 빌려 다른 혼을 불러온다는 뜻이다. 칼(刀)을 빌린 자나 칼을 빌려준 자 모두 혜택을 보는 경우도 있고, 칼을 빌려준 자는 다치고 자기 칼 대신 남의 칼을 빌린 자만 혜택을 보는 경우도 있다. 일제가 푸이에게서 빌리고자 한 것은 칼이 아니라 정통성이었다. 푸이는 1924년까지 청나라 황제 칭호를 유지했는데, 일제는 푸이라는 청왕조의 시신(尸)을 빌려 동북부 중국을 지배하려 했다.

시신이나 칼을 빌려준 자가 적의 괴뢰로 간주되면 시신이나 칼의 효능은 급격히 떨어진다. 중국에서는 만주국을 가짜 만주라는 뜻의 위(僞)만주국 혹은 줄여서 위만으로 부른다. 만주국이 일제 괴뢰국으로 지칭되면서 일제가 얻는 효과는 반감됐다.


특히 괴뢰로 받아들여지는 당사자는 비록 시신이더라도 채찍질을 받는, 이른바 굴묘편시(掘墓鞭屍)를 당하게 된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하자마자 만주국은 패망했고, 정치적 영향력이 없던 푸이도 소련과 중국의 수용소에서 십년 넘게 고초를 겪었다. 

하늘 아래 함께 살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는 괴뢰라는 낙인은 치명적이다. 실제 적과 내통하지 않았더라도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다. 남북한이 체제우위를 경쟁하던 시절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상대를 괴뢰로 불렀다. 물론 남한이 북한을 더 이상 체제경쟁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북한이 주변국 압력에 불구하고 핵개발을 추진하면서 북한은 더 이상 북괴(북한괴뢰)로 불리지 않고 있다. 

민주국가도 다루기 쉬운 ‘꼭두각시’ 선호

괴뢰국을 내세우는 전략은 제국주의자나 군국주의자만 구사하는 게 아니다. 민주국가도 괴뢰국 파트너를 선호한다. 괴뢰국이나 독재국가일수록 대가를 받고 외국의 정책적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만일 파트너가 국민 이익에 충실한 민주국가라면 그 파트너를 통제하기 어렵다. 

민주화 지수를 이용한 통계분석은 민주국가나 유엔 개입이 현지국의 민주화에 도움 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시켰음을 보여준다. 미국 개입만 현지국의 민주화 지수를 높였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실상은 미국의 개입조차 민주화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미국이 개입한 국가 다수는 민주주의 수준이 더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가장 낮은 단계의 국가들이었다. 즉 표본 편중에서 오는 착시효과다. 그런 사례를 빼고 계산하면 미국 개입도 평균적으로 민주화를 후퇴시킨 것으로 나온다. 

대외원조 효과도 마찬가지다. 여러 정치통계는 대외원조를 많이 받은 나라일수록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원조 공여국은 원조 수혜국의 정책적 양보를 원하기 때문에 정책적 양보가 더 용이한 독재국가들이 더 많은 원조를 받게 되며 따라서 정권연장도 독재국가가 더 쉽다. 즉 대외원조를 받음으로써 더 오래 유지되는 나쁜 정부로 인해 빈국 빈곤층의 삶은 오히려 더 피폐해지는 것이다. 

 
만일 공여국 국민이 수혜국의 민주화 혹은 빈민구제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공여국 자신의 이익에 부합되는 정책을 수혜국 정부에 강요하기보다 수혜국의 민주화 혹은 빈민구제 진전 등 인류보편적 가치의 실현을 요구해야 한다. 민주국가 국민이라고 해서 독재국가 국민보다 더 착한 것은 아니다. 인성과 정치체제는 별개의 문제다. 정부정책에 다수 국민의 입장이 반영되면 민주주의이고, 그렇지 못하면 독재일 뿐이다. 

어떤 면에서는 동맹조차 남의 힘이나 명분을 빌리는 일종의 차도살인 혹은 차시환혼이다. 민주정권이든 독재정권이든 누구나 남의 힘 혹은 명분을 빌리는 것이 필요할 때는 빌리려 한다. 괴뢰라는 확실한 친구를 만드는 것, 남의 괴뢰가 되어서라도 이득을 좇는 것, 경쟁자를 괴뢰로 낙인찍어 무력화시키는 것, 이 모두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실존하는 전략적 행위다. 
 

[출처] : 김재한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 < 세상을 바꾼 전략> / 중앙 Sunday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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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 18-05-04 18:08
   
저렇게 만주국을 세워서까지 대륙을 지배하려던 일본이 본받으려 한 이민족의 중원 지배사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해당하는 민족이 바로 만주족이라니 역사는 돌고 도는 모순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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