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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07 20:33
[일본] 닌토쿠 천황릉(인덕천황)에 대한 솔직한 심정
 글쓴이 : history2
조회 : 2,197  

닌토쿠 천황은 제15대 오진 천황[應神天皇]의 네 번째 황자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나카츠히메노미코토[仲姬命]이다. 이와노히메노미코토(磐之媛命)를 황후로 맞이하여 네 명의 황자를 두었으며 황후가 죽은 뒤 맞이한 야타노히메미코(知田皇女) 황후와 3명의 비()에게서 11녀를 더 얻어 총 51녀를 두었다. 그 중 이와노히메노미코토(磐之媛命) 황후에게서 태어난 황자 중 세 명은 후에 각각 제17대 천황인 리추천황[履中天皇], 18대 천황인 한제이 천황[反正天皇], 19대 천황인 인교 천황[允恭天皇]으로 즉위하였다.


인덕천황 항공.jpg
                              닌토쿠 천황릉 항공촬영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닌토쿠 천황이 재위 중에 가와치 평야(河內], 현재 오사카 동부 지역)에 홍수를 막기 위해 제방(堤防)을 건설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일본 최초의 대규모 토목 공사이다. 또한 황실이 직접 관할하는 토지인 둔전(屯田)을 설치하고 이후에도 오사카 지역에 제방을 설치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전형적인 백제식 오방체제라고 생각을 한다)

인덕천황 지도 전체.jpg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따르면 닌토쿠 천황은 313년부터 399년까지 일본을 통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학계에서는 여러 가지 역사적 자료에 비추어 봤을 때 니혼쇼키의 정보가 정확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어, 정확한 재위 년도는 알 수 없다.(두산백과 참조)

 

사실, 닌토쿠 아니 인덕천황 그 자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냥 그 능이 관심이 있을 뿐 이다. 전방후원능이라는 그 능이 영산강과 관련이 있어서도 아니다. 사실은 그 규모 때문이다. 거대하 해자....해자만도 3개에 걸친 그 규모, 일본을 무시할 수 없겠다고....내가 알던 왜가 아니라고 속으로 그 무덤을 보며 되내었다. 사실 그 무덤은 대학생 시절 정말 충격이었다.

3중의 해자.jpg
                                       3중의 해자 

피라미드 안부러운 저 무덤..... 한국의 경주 대능원을 훨씬 능가하는 그 무덤을 보며, 솔직히 웅크러졌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 릉을 건설하려면, 하루 2000명 장정들이 158개월간이나 동원되고 이들이 져 날랐던 돌과 흙만도 5톤 트럭으로 562300대 분량인 것으로 나왔다. 지금 기준으로 보아도 어머어마한 대규모 공사였던 것이다. 무덤의 주인인 닌토쿠 왕은 고대 시대에 그 정도 인력을 동원할 수 있었을 정도로 강력한 통치력을 행사하며 중앙집권적 통일국가를 이끌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일본 고대사학자들은 일본 고대사에서 실질적 왕권이 시작된 시점을 닌토쿠 왕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오사카가 일본의 중심지로 야마토 시대(고분시대)를 이끈 시대를 나니와 대세(難波 大勢)’라고 명명하며 이 시대를 열었던 인물이 바로 닌토쿠 왕이라고 밝혔다. 능의 옆에는 인덕천황의 재현된 궁전모형은 가로 42m, 세로 21m의 대극전(大極殿)에 서 있었는데, 입은 의상들이 백제나 신라 귀족들이 입었던 것과 비슷했었다. 그럼에도 솔직히 눌리는 기분을 이기질 못했었다.


* 백제인을 등용한 인덕천황

그후, 인덕천황릉을 조사하면서, 닌토쿠 왕이 특별히 백제인들을 아꼈다는 것을 여러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었고, 백제인 신하가 죽었을 때에는 매우 슬퍼하며 따로 신사를 지어주었을 정도였다.

한 예로 일본서기에 따르면 왕은 439월에 백제인 아비코로부터 사냥용 매를 선물 받고 이 매를 백제인 신하 사케노기미(酒君)’에게 건네주며 잘 기르라고 했는데 그만 신하가 죽고 만다. 왕은 이에 크게 슬퍼하며 따로 장례를 치러주고 그에게 응견신(鷹見神·매를 돌보는 신)이라는 시호까지 내린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에 의하면, “한일 역사학계에서 인덕천황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일본 고대 국가의 틀을 완성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한반도에서 건너간 백제 도래인들과 매우 밀접하고 특별한 관계를 맺은 사람이기 때문이며 백제도래인들이 대거 살던 오사카를 수도로 삼을 정도로 왕실 차원에서 한반도와 의 교류의 문을 활짝 열었던 상징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몇년이 한참지나고, 닌토쿠 천황의 유물(보스턴 박물관 소장)의 사진을 보며, 백제 왕실과 닌토쿠 황실의 관계는 닌토쿠 왕능에서 발견된 각종 유물들이 백제 무령왕릉 고분에서 발견된 유물들과 너무 흡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그제야 난감한 마음을 극복할 수 있었다. 1872년 닌토쿠 왕릉에서 출토된 것이 1971년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것과 거의 비슷해 한일 역사학자들로부터 쌍둥이‘ ’복제품소리까지 들었을 정도였다.

백제나 고대 왜왕의 무덤에서 발견되는 청동 거울은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무덤 내 부장품으로 알려져 있다. 쌍둥이 유물은 또 있었으니 바로 두 무덤에서 각각 나온 환두대도 였다. 고리 안에 세 발 달린 새가 한 마리씩 들어가 있는 것이 똑같았다. 이런 양식은 중국에서는 볼 수 없어 한반도에서 전래됐다는 학설이 유력하다(, 거울, 방울은 신성과 왕권의 상징이다)

환드대도.jpg
                                     환두대도 

닌토쿠 왕은 오사카의 건설과정에도 백제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개인적으로는 인덕 자신이 백제인이라고 생각을 한다)

인덕천황 초상.gif

                                                 닌토쿠천황

닌토쿠 천황은 홍수를 막기 위해 오사카의 물줄기를 바꾸는 제방공사를 했는데 이는 일본 최초의 대규모 토목공사였다당시 공사 때 백제인들이 기술자나 공사 감독관으로 일했다고 말했다. 요새는 닌토쿠 천황 당시 오사카 거주 인구의 3분의1이 백제인이었다고 한다.

결국 닌토쿠 천황릉을 건설한 것은 백제인임에 틀림이 없다.

, 백제의 기술과 왜의 노동력의 결과물인 것이다.

인덕천황릉2.jpg
                           원래의 천황 릉역도 

일제는 역사 과장 조작의 바탕으로써 일본의 건국 시기를 600년 올려 기원 2600년 만세일계의 천황설을 내세우고 신토주의 황국사상을 외쳤다. 급기야 1910년에는 한반도 침략과 함께 서슴없이 백제와 관계된 지명들을 없앴다. 백제인 신주(神主) 주군의 정체를 숨기고 다카아이신사라는 본래의 사당 이름마저 현재처럼 스사노오노미코토 신사라고 개칭한 것이 그 한 예이다.

그러나 실상은, 4세기 후반 한반도 남부와 근접된 규슈 섬을 완전히 정복한 백제인들의 제2 진출지는 다름 아닌 본토(혼슈)의 오사카 땅이었다. 백제인들은 기타큐슈로부터 대형 선박들을 띄워서 일본 열도의 본토 세도나이카이로 동진(東進)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백제인들이 상륙한 곳이 지금의 오사카 항구 지역인 난바 나루터였다. 이 나루터 일대를 교두보로 해서 오사카는 백제인들의 새로운 식민지 구다라스가 되었다. 더구나 그 나니와쓰 땅 중심지에 가장 큰 행정구역의 정식 명칭을 구다라 고리로 불러온 사실 또한 우리는 새롭게 평가할 일이다.


마지막으로 그러면, 닌토쿠왕은 도대체 누구일까? 두 번째로 큰 무덤인 오진왕릉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가장 유력한 의견은 오진왕이 한성백제의 마지막 왕인 개로왕의 둘째아들인 곤지(그는 백제의 좌현왕이었다)라고 주장한다.

곤지는 개로왕의 아우로도 등장한다. 개로왕이 곤지에게 왜로 건너갈 것을 명했다. 곤지는 왜로 건너와서 터전을 닦고, 나라의 기틀을 만들었다.

이때 백제의 아직기와 왕인박사가 건너왔다. 미지의 세계에 문명을 수혈하기 시작한 것이다.

곤지는 왜로 와서 아들을 다섯 낳았는데 그 중에 첫째가 나중에 백제의 동성왕이 된다. 그리고 넷째 아들이 닌토쿠왕이 된다는 것이다.

한성백제가 멸망하고 문주왕자는 웅진으로 가서 백제국을 다시 일으킨다.

그리고 곤지는 백제로 건너가 형인 문주를 돕는다.

우리의 역사서 삼국사기는 곤지가 백제로 건너와 병관좌평을 맡아 일하다가 피살당하는 것으로 나온다. 하여간 일본에서 곤지는 대단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의 신사가 아직도 존재하고, 신으로 섬겨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솔직히 오진왕릉은 곤지의 무덤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나, 무덤의 형식이 백제와 많이 다르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묘제는 가장 보수적인 유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부장품을 통해, 백제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알아냈으면서도, 묘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숙제를 안고 있다. 서울지역에서(하남쪽) 최근 전방후원능의 원형분이 발견되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이 묘제만 풀리면, 완전한 퍼즐이 맞추어 질 것 같은데, 아직은 안타깝다. 그리고 솔직히 여전히 한성위례성의 위치조차 찾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은 더 안타깝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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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좀와라 18-03-07 21:06
   
구다라는 일본말로 큰나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죠. 한국이란 말과 같은 의미의 말입니다. 실제로 한국령이란
 비석이 일본에서 발견 되었기도 하고요. 그리고 구다라는 백제를 가리키는 말이지 왜 열도의 식민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죠. 지금의 한국은 백제국이란 말과 같단 말입니다.

여기서 구다라라는 말의 어원을 고찰해 본다면...

국어시간에 배우는 구지가를 보면 수로부인이 부른 노래라 하죠. 구지라는 말이 구다라와 같은 말로 이 말이 유라시아와 유럽 북부 아프리카와 심지어 북부영국에 나타납니다.

구지 쿠차 쿠쉬 쿱타 구자(가야의 한 연맹국이죠) 쿠리 구리 귀리 가지 카쉬 카슈 키쉬(Kish - 슈메르의 중요 도시국가 이죠) 피쉬(Fish - 물고기는 기독교의 심볼이자 삼목어와 이목어의 형태로 가야에 남아 있으며 역시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서 발굴되는 굉장히 귀중한 이미지죠) 기시 핏트 워드 조선 보타 등등으로 남아있는 중요한 문화벨트 그룹입니다.

저 들을 모두 한 부류로 봅니다. 그리고 구지에서 구는 구龜(거북)로 보기에 귀龜(거북)와 같이 사용되죠. 거북은 황제의 상징이면서 헤라클레스의 이미지로 사용되며 무열 왕릉비와 같이 거북을 밑에 놓고 비석을 사용하는 것은 저들 집단의 공통된 관습인데 이 풍습이 몽골의 풍습과 같습니다.

몽골에서는 거북을 이 세상의 모든 것 또는 대지(땅)을 의미 한다고 하죠. 역시 한국에서도 그런 의미로 사용합니다.

심지어  페르시아 왕자 아비틴과 신라공주 프라랑의 신화인 쿠시나메의 신화에서 쿠시역시 같은 말로 신라역시 쿠시 또는 피시(Fish - 선鮮)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구다라라는 명칭은 백제만의 명칭이라기 보다는 이 일단의 공통문화를 가진 종족의 공통명으로 이게 바로 조선과 같단 말이에요.
     
칼리S 18-03-08 07:50
   
어처구니 없는 망상글을 길게도 써 놓으셨네.

구다라(백제)랑 구지랑 뭔 상관이 있다고 ㅋㅋㅋ,

일단 구지가의 구지란 건 삼국유사 가락국기편을 보면 나옵니다."龜旨[是峯巒之稱 若十朋伏之狀 故云也]"  즉 그냥 산봉우리의 형세를 빗대서 나온것이지, 구다라와 전혀 상관이 없는것임. 신라 수로부인과 상관도 없고, 수로부인편의 해가 역시 수로부인이 부른게 아니라 수로부인을 구할려고 다른 이들이 부른거임 ㅋㅋㅋ

환빠라서 무시하고 싶지만, 너무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해서 그냥 알려줌.

그리고 상식선에서 제대로 알고 갑시다. 해가와 구지가 이는 모두 삼국유사에 나옵니다.

海歌 (삼국유사 권2 수로부인편)

龜乎龜乎出水路
掠人婦女罪何極
汝若悖逆不出獻
入綱捕掠燔之喫

龜旨歌 (삼국유사 권2 가락국기편)

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뚜리뚜바 18-03-08 08:01
   
캬 역시 현자님의 ㅄ력은 당해 낼수가 없네요. 만물우주 창조급의 필체 ~! ㅋㅋ

진짜 뇌가 넘쳐나서 없는 건가 ㅋㅋㅋ 아니면 인성부족?
               
칼리S 18-03-08 08:04
   
너도 환빠냐? 반박할려면 제대로 하던가 ㅋㅋㅋ. 머 무식한 환빠라서 애당초 반박할 논리도 없겠지
                    
뚜리뚜바 18-03-08 12:29
   
??쟤가 감히 현자님께 우주까지 창조하신분을... 근데 다아시는 분이 밑에서 저를 환빠로 단정지으시곤 왜 묻는거세요? 환단고기 얘기도 안했는데 환빠? 진짜 대단 ㅋㅋㅋㅋ
윗글도 수정 한번 하셨네요 ㅋㅋ
아 반박? 전 역사 얘기한번도 한적 없습죠 미천한 놈이 무슨 ㅋㅋㅋ 그저 현자님 인성 한번 뵙고자 간질간질 거리고 있습죠 ㅄ 같은 모습 한번 더 볼려고요 ㅋㅋ
history2 18-03-08 01:27
   
아 그렇군요...구다라는 백제에 대한 일본식 표현인지 알앗는데,,,그나저나 그 어원이 궁금했는데, 참고가 되었습니다. 특히 신라의 쿠시라는 용어가 인상이 남네요
     
칼리S 18-03-08 08:03
   
저렇게 어처구니 없는 말을 참고하면 님 수준이 드러나는 겁니다. 그리고 일단 좀 찾아보시면 저게 바로 헛소리란걸 알 수 있으실 텐데.

해가와 구지가도 분간 못하는 사람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되죠
빠가살이 18-03-08 07:49
   
구다라라고 백제를 부르는 이유는 백제라고 부르는 것이 불경하기 때문에 높여부르기 위해 구다라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Korisent 18-03-08 08:01
   
좋은 자료 잘보고 갑니다.
이해한다 18-03-08 08:04
   
여기에 대한 고찰에 대해선 동의합니다. 이 것외에도 유물과 유적을 고려해보면 일본은 백제 혹은 백제의 후신이라는 것에 더욱더 신빙성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애초에 왜왕이 백제인이라고 인정하고 있지요. 반대로 백제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느 종족의 후신일까요? 아이누? 전쟁하고 탄압했는데 본인들의 종족이었다면 그렇게 했을까요? 없는 걸 만들고자 조작해서 만든 종족명인 죠몬인이며 이것을 어떻게든 끼워맞추고자 하는게 현 일본의 역사관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가난한서민 18-03-08 11:02
   
원래 왜는 역사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가야랑 같은 연합세력인지는 모르겠는데 가야인들의 역사를
그대로 복사해서 써놓았습니다. 거기 판타지를 추가해서 사서를 만들죠. 그들은 가야를 자처했습니다. (가야의 역사를 빼겼습니다.) 그 후 가야 멸망후 백제를 자처하다가 (백제와 연합국가 [제후국]) 그들은 백제의 산하국으로서 신라와 싸웠었는데
그들은 나중엔 백제가 멸망하자 백제랑 왜인들의 상하관계를 바꿔놓고 일본이란건 만들어 일본을 자처합니다.
그러나 일본의 천황도 백제의 왕이죠.;

저 닌토쿠 천황 왕릉은 백제왕이죠 누가봐도
이해한다 18-03-08 08:21
   
물론 아에 다른 종족이며 백제를 동경한 스스로 열등하다고 느낀 종족이 자신들의 역사를 지워버리고 백제의 후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에는 배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저는 오히려 그러길 바라지만 그러기엔 근거가 부족해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history2 18-03-08 09:03
   
댓글을 보며, 많이 배우게 됩니다... 저는 구다라 라는 명칭의 유래가 궁금했는데.....좀 더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함과,,,,전방후원분에 대한 추가적 연구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history2 18-04-02 01:15
   
아무래도, 왕권이 미약하가 강화되는 시기 이런 대형 고분이 나온다고 생각할 때, 이 고분 이전의 일본의 역사에 대한 신빙성은 접고 가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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