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인들 역사서에만 만주인이 신라에서 왔다고 써있는게 아닙니다. 만주여진에 관한 초기 역사기록은 중국인(송나라)이 당시 금나라에 10여년간 머물면서 쓴 "송막기문"이라는 책입니다. 여기에 여진의 지도자는 신라인이라 기록했습니다.
만주와 여진족에 관한 당대의 가장 생생한 기록은 중국인이 쓴 기록이고, 중국인 스스로 여진족이 신라에서 왔다고 기록했습니다.
女真酋長乃新羅人 ("여진의 지도자는 신라인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대체 왜 중국눈치를 보나요? 중국인들이 기록한 내용에 여진족 지도자가 신라인이라고 했는데요. 금나라 청나라를 한국사로 보는 것은 남의 역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우리역사를 찾는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금나라 청나라는 중국사로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1980년대부터 동북공정과 함께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만주여진족이 신라(고려)에서 왔다라는 것은 고려사에도 나오고 몽골사에도 나오며 금나라의 정사인 금사에도 나옵니다.
"金則本我國平州之人, 稱我爲父母之國。" (고려사)
(금나라의 근본은 우리나라 평주사람이다. 나(고려)를 일컬어 부모의 나라라했다.)
"其初酋長本新羅人" (몽골원나라때 쓰여진 금지(金志))
(여진의 초기지도자는 신라인이다.)
"金之始祖諱函普,初從高麗來,年已六十餘矣" (금사 (金史))
(금의 시조 함보는 처음에 고려에서왔을 때 60세였다.)
김구 임시정부때 국사교과서에서는 금나라 청나라를 한국사로 가르쳤습니다. 당시에는 모두다 금나라 청나라를 한국사로 알고 배웠는데 김구가 암살당하고 일제 밑에서 식민사관을 배운 사람들이 역사학을 장악하면서 사장되어 버린 것입니다. 김구 임시정부때의 역사교과서를 되살려서 원래대로 금청사를 한국사로 다시 되돌려놔야합니다.
아래는 김구임시정부때 편찬됐던 우리나라 최초 근대 교과서 목차입니다.
제1장 려요시대
제2장 고려와 금나라 때
제3장 고려시대
제4장 종교
제5장 제도
제6장 문학과 기예
제7장 풍속
제4편 근세(近世)
제1장 조선시대
제2장 조선과 청나라 시대
우리나라는 헌법상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김구 임시정부의 역사관을 회복해서 금청사를 한국사로 원래대로 회복시켜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