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는 조선이 평화로 인해 군대가 10만도 안 되던 시기죠
조선이 수십만 병력을 보유하던 전성기 때였으면 한 달도 안 되서 녹아버렸을 겁니다
세조 때만 해도 병력이 43만이었습니다
실제로 조선 기병들이 주둔 중인 함경도에 진출하자마자 바로 북관 대첩 등으로 썰리고 후퇴했었어요
임란 후기 정조때까지, 조선은 이미 일본 세키부네를 압도했던 판옥선도 35-40m급으로 늘리고, 조총도 19-20만정까지 보유하죠. 한마디로 군사력을 부지런히 키우고 정치사회도 다시 어느정도 안정되어서 OECD자료에 이르면 정조땐 대영제국보다도 일인 gdp가 높았다죠
황태연 교수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 숙련노동자의 실질임금 비교
- 조선(1780~1809): 쌀 8.2kg
- 밀라노(1750~1759): 빵 6.3kg
- 런던(1750~1959): 빵 8.13kg
◇ 경작면적기준 총요소생산성 비교(1800년)
잉글랜드 100, 조선 134, 중국(강소성, 절강성) 191.
중국전체의 평균 총요소생산성은 191 이하일 것이나 이 역시 잉글랜드보다 高.
◇ 1인당 GDP 비교(조선 vs. 중국)
1820년 1인당 GDP - 중국: 600달러, 조선: 600달러
┃중국의 1인당 GDP 추이
- 인구의 비약적 증가로 인해 1500년부터 320년간 600달러 수준.
- 1870년 530달러로 추락.
- 1920~30년대 550달러대에서 등락을 반복.
┃조선의 1인당 GDP 추이
- 1870년 604달러로 반등
- 1911년 777달러(아시아 2위)
- 1917년 1,021달러
- 1939년 1,459달러
조선의 생활수준은 16세기말부터 상승하여 18세기 영·정조시대(1724~1800)에 정점을 기록한 후 하락.
- 16~17세기에는 중국보다 낮을 수 있으나 18세기 중국을 추월.
- 19세기(1820년)에는 다시 중국과 비슷한 수준.
반면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이후 조총 외 화기를 다수 없앰. 즉 군사력부터 다시 조선의 월등한 우위로 감. 경재? 일본이 땅이 크고 인구가 많으니 저장해논 돈은 조선보다 많았을지도 모르나 부는 모두 귀족에게 집중. 일본 백성은 걍 거지 처럼 삼. 뭐가 국력이 앞서고 자시고여?
님은, 그 인터넷 자료의 무얼 믿고
이렇게 시건방을 떠는지 모르겠군요;;
대체, 그 인터넷 자료의 소스가 어디며, 신빙성이 얼마나 있는지를 알기에
그걸 보라 어쩌라인지?
이건 뭐.. 막말로 팥으로 메주 만든다고 인터넷에 적혀 있으면,
이게 진짜글인지? 가짜글인지? 천지구별도 못하고
콩이 아니라
진짜 팥으로 메주 만들 인간이네 ㅋㅋㅋㅋㅋㅋ
병력과 경제규모는 관계가 있죠..그리고 북한은 비교대상이 아니라고 봅니다. 북한의 경우 기형적인 형태의 국가체제이고, 그 당시 일본의 모습과는 또 다르다고 판단합니다..
잘사는것과 경제규모는 또 다른 얘기입니다..경제규모는 일본이 조선보다 높았던것은 맞다고 봅니다..일본이 조선을 선진국대접은 해주었죠..또 문화적으로 선진국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국가의 체력이나 경제규모는 일본이 높았을 수 밖에 없지 않았나 봅니다..
밑에 님이 쓰신 글인데
왜 밑에 스레에 글이 안써지는지 모르겠네요-.-;;
내컴터의 이상인가? 가생이 이상인가? 모르겠지만..
하여든, 여기에 새로 달겠습니다.
중국..그러니까 명나라와만 주요 교역 대상국이 조선이었지만,(조선입장에서)
일본은 명나라뿐만이 아니라, 인도와 필리핀을 통해 중동상인들까지 교역했어요..
조선이란 나라는 명나라만 바라보고 교역했지만, 일본은 과거 한반도의 고려,삼국시대의 백제,가야,신라처럼 무역을 했고,
할수 있는한 여러나라들과 교역했습니다.(이미 에도시대떄 화란(네덜란드)인과 스페인,포르투갈 상인들이 일본을 들락거렸지요..)
교역의 양도 일본이 조선보다 더 높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지금으로 치면 무역규모쯤 되겠네요) 전국시대를 거쳐 에도시대로 넘어가면 그 무역의 양이 조선을 훨씬 넘어선걸로 보이고요..
즉, 규모의 힘은 경제력이고 체력입니다.
조선의 선진적인 문화와 기술(도자기,서예,화풍,문학...)은 일본보다 앞선것은 맞지만, 오로지 무역과 상공업은 일본이 앞서있었고..이것이 그 나라의 경제력..즉 체력과 직결된다고 봅니다..
조선의 제1무역상대국이 중국은 맞지만, 다른 나라하고도 했는데요-.-?
조선 각궁 만들때도, 그거 동남아산 물소뿔이 원재료 아니던가요?
조선실록에도 여러 나라들 이름 나와요;;;
누가 들으면, 조선은 중국이랑만 놀고, 일본은 (애네들말로 세상에서 이쁨받는줄 알겠네요;;)
유럽의 경우엔, 필리핀을 향하던 포르투칼 배가 태풍에 밀려와 조총을 알게 되었죠.
그뒤, 카톨릭 포교의 문제로 다 쫒아내고 네델란드만 데지마에서 허용하구요.
난학이라고 약간의 서양학문이 들어왔는데, 우리나라 실학과 중국의 양명학처럼
의의는 있으나, 메이저 학문은 아니였다고 하고, 기본적으로 일본도 쇄국이예요.
직접적으로 다른나라와 했다는게 중요합니다..
조선은 명나라를 거쳐온 물건을 받아들이는 정도이고, 일본은 직접 그 나라사람을 만나서 물건을 들여오는거에요..무슨 말이냐면 쇠뿔,코끼리 상아 이런거를 조선은 명나라 상인한테 받아오는것이고, 일본은 바닷길을 통해 중동과 동남아시아 상인들과 부닥치며 거래해오는것입니다..여기서 상공업의 발전과도 깊은 관련이 있고요.
그나라의 시장규모만봐도 에도시대의 모습과 조선시대 도성인 한양의 모습은 규모면에서도 큰 차이가 있어요..
다른건 조선이 앞섰다고 할수 있어요..저도 그 점은 얼마든지 인정하고요.그러나 상공업은 일본이 조선보다 앞서 있었던게 맞습니다.
무역과 상공업이 일본이 앞섰다고요? 일본은 왜구라고 정식국가 취급도 못받는 해적집단이였는데요? 아시아 왕따였는데요? 그때 당시 전세계 끝판왕 명하고 무역을 못했는데요? 푸훗 지금으로 치면 미국+EU 보다 더 큰 시장에 진입자체가 불가능 했는데 무역? 상공업? 지나가던 개가 웃겠습니다. 겨우겨우 밀무역이나 하고 명하고 교역하러온 서양상인들 뒷구녕이나 핥아서 간신히 콩고물 떨어지는것만 챙긴게 당시의 일본입니다. 운좋게 은이 많이나서(그나마 조선에서 기술 전수해주기 전까지는 개발도 못했음)이것저것 바가지 쓰면서 사들인걸 무역이 발달했고 상공업이 발달했다고 안합니다. 그냥 호구죠. 당시 화약 1관에 일본처녀 한명이였다죠? 역시 뿌리깊은 인신매매국 답군요.
shrekandy님..제 생각은 이렇습니다..조선시대의 전반적인 개인적 평가는 우리 한국역사 전체에서 부정적 부분이 좀 많았던 역사가 아닌가 ?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긍정적 부분은 40% 부정적 부분은 60%로 보기 때문인거 같긴 합니다만, 일본의 역사는 에도시대이전 부정적으로 보는쪽이고 에도시대부터는 긍정적인 부분이 많아 보이기 떄문인것도 같습니다.
지정학적 위치가 조선이 더 유리했던 시절도 있고, 일본이 더 유리했던 시절도 있다고 생각은 합니다.
그러나 세계사적으로 넓게보면, 조선도 일본처럼 또는 서구나라들처럼은 될수도 있었다고 보기 떄문에 안타까운 측면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유럽의 같은 반도국가인 이태리를 봐도 그렇고..또한 프랑스를 봐도 그렇습니다.
명나라 중심적 사고구조를 탈피하기 어려웠던 조선의 그 당시 상황도 이해는 합니다.
그게 가장 편하니까요..무엇하러 험한 바닷길을 조선이 선택하겠습니까..당연한 이치겠지요.
그래도 조선이 할수 있는 최대치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역사에 만약에,, 라는건 없다고 합니다만, 그래도 만약에,,가 있다면, 조선은 유럽의 이태리와 같은 길을 걸었어야 하지 않나 ??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그것이 조선의 최대치가 아니였을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의도를 가지고 댓글을 달지 않습니다..그냥 제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나열한것일뿐..,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