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학교 소령이 박사학위 논문으로 쓴 책에 인용한 겁니다.
이런 문장은 일반인들이 읽으면 뭔 말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솔직히 나도 여러 번 읽고 나서도 지도를 자꾸 보고
<일본성 왜성>을 읽고 나서야 뭔 말인가를 이해했습니다.
나 정도가 이럴진대,
서울대에서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했다는 놈들이
제대로 알기나 하면서 학위를 줬을까?
이런 생각은 안 해봤지?
어쨌거나, 이때는 정유재란을 앞둔 1597년.
일본군 대군이 다시 쳐들어올까
힙쭈구리 조선왕 선조가 전전긍긍하던 1597년.
적이 쳐들어오기 전에 막강을 자랑하던 조선 수군으로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조선 조정과 수군에서는 <선제 공격>을 통한
전쟁 예방을 구상합니다.
이때 원균과 비변사는 서로 다른 전략을
제시하는데,
원균은 수륙병진을 주장하고 비변사는
해로차단을 얘기했답니다.
이때 원균의 저런 계책을 두고 도원수 권율은
두 곳(안골포와 가덕도)이
해안 깊숙이 위치하여 함부로 공격할 수 없다고 했고,
비변사(한양의 국방 문제 담당 부서)에서는
권율의 의견을 들어
수군으로 하여금 부산 앞바다를 왕래하게
하면서
일본군이 자유롭게 건너오는 것을 저지해야 된다는
해로 차단 전술을 지지하는
태도를 취했다고
사관학교 교수는 썼습니다.
여기가 핵심인데,
사관학교 소령은 글자만 나열했어요.
글자만 나열을 하니까 나도 읽으면서는
뭔 소린지 이해를 못했다는 겁니다.
왜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해직되고
곤장에 주리 신세로 전락했는가?
바로 이 문제에 있었던 건데, 아무런 설명이 없어요.
원균도 개소리, 권율도 개소리, 비변사도
개소리!
이순신이 맞는 겁니다.
그냥 한산도에 죽치고 앉아서 큰 칼이나 옆에 차고
시름이나 궁시렁궁시렁 하면 되는 겁니다.
그 이상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원인은 바로 거제도에 있는 것이고,
거제도가 일본군 손에 있는 한
조선 수군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왜 그런가는 다시 지도 앞으로!
이 지도는 칠천량 해전인데,
지도가 이것밖에 없어서 담아온 겁니다.
여기에서 조선 수군의 사령부인 한산도는
지도에 나오지 않는 칠천도 왼쪽.
일본군 사령부인 부산은 가덕도를 지나
더 오른쪽.
지도에 나오는 거제도, 칠천도, 가덕도, 웅천,
안골포는 모두 일본군의
요새!
난공불락 왜성!
그러니까 조선 수군은 <달랑 바다만>
장악한 것이고,
부산으로 쳐들어갈 때 좌우로 보이는
땅은 몽땅 일본 땅!
이런 곳을 지나서 부산 앞바다를 가로막고
있으라고 하는
한양의 비변사!
정신 나갔어, 이 새끼들.
임진왜란 때 배란 통통배가 아니지요?
노를 저어라! 격군들의 팔심으로
배는 움직이는 겁니다.
이 격군들을 먹이고 목도 축이게 한 다음,
노를 한참 저었으면
좀 쉬게도 해줘야 하는 겁니다.
물 좀 떠 마시고 나서 쉬는 곳은
땅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땅을 점령하고 있지 않으면,
수군은 행동반경 자체가
엄청나게 제한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길어야 2-3일 정도는 바다에
떠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을 바다에만 있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겁니다.
게다가 바람이 거세게 불면 어쩔 거야?
골빈 새끼들이 한양에 앉아서 골빈 소리만 해댑니다.
이순신은 이걸 아니까 군대는 움직일 수
없다고 버틴 겁니다.
한양의 비변사 놈들은 <바다는 우리 것>이니까
부산 앞바다까지 가서
일본놈들이 대마도에서 건너오지 못하도록
막으라고 한 건데,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 뭐야?
정신 나간 원균을 살펴보면,
가덕도와 안골포를 점령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원균은 덧셈 뺄셈조차도
안 되는 인간인 거
같어.
가덕도와 안골포를 점령하려면,
병력을 투입해서 죽기 살기로
치열한 전투를 벌여야 합니다.
내 추산으로는 이 두 곳을 점령하는 데에만
4-5만 명이 죽어야 합니다.
그것도 아주 용감한 사무라이 일본군 수준으로
정신 무장이 된 애들.
칼쌈만 하라고 하면 발발 떠는 조센징들은
도망가기 바빠서 안 됩니다.
더 큰 문제!
가덕도를 점령하려면
수군을 투입해야 하는데,
가덕도를 둘러싸고 있는 땅들은 몽땅 일본 땅.
이건 조선 수군이 맘 편히 배를 댈 곳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런 곳에다가 수군을 투입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계책은 안골포를 먼저 점령하는 수가
남습니다.
안골포 전투!
만약에 이 작전이 실행됐다면,
임진왜란 최대의 격전지가 됐을 겁니다.
내 계산으로는 10만 명 정도가 투입돼야 합니다.
안골포 공격에만 5만 명에다가
적 지원군 차단 병력 5만.
이 10만 명 중에서 2-3만 명 정도는 죽어야
안골포를 점령할 수 있었을 겁니다.
시간으로는 최소한 2-3개월 정도를
날이면 날마다 공격하는 겁니다.
하루도 쉴 틈을 주지 않고 계속 때려붓는 겁니다.
안골포를 점령하면,
여기를 기지로 해서 조선 수군이 출항을 하는 겁니다.
목표는 부산 바로 앞에 있는 가덕도!
수군 중에서 한쪽 부대는 적
수군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막아 서고,
다른 부대는 육군을 실어나르는 겁니다.
이때 실어날라야 할 육군은 한 4-5만 명쯤 되것다!
부산시 강서구 바로 아래 있는 가덕도!
이 섬을 점령하면
전쟁은 끝난 겁니다.
격군들이 노를 저어서 두어 시간이면
부산포로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영도구 오른쪽 부산포로 들어가면
6-25 때 미군이 B-29로 폭격하듯이
조선 수군은 날이면 날마다 폭격질만
해대고 나오면 되는 겁니다.
이 경우에는 지금의 영도구인 절영도를
둘러싼 육박전이 또 치열했것다.
절영도는 뺏긴다는 것은 곧
부산포를 뺏기는 거나 마찬가지.
이러면 일본놈들은 대마도로 돌아갈 길이
완전히 없어지는 겁니다.
어쨌거나, 이 정도를 할 수 있으면
임진왜란이 왜 일어났것나?
그래 안 그래, 원균?
덧셈 뺄셈도 안 되는 꼴통.
한산도에 죽치고 앉아 시름이나 궁시렁궁시렁,
이순신!
이게 맞다는 겁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래도 정유재란으로 해서 전라도 백성들이
온통 도륙 당한 걸 생각하면,
안골포 작전을 한 번 구사해볼 수는 있었것다.
다만 조선은 조선이고,
조센징은 조센징이지요?
도바리 전문 조선과 조센징.
거제도!
만일 거제도를 일찍부터 장악했으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가덕도 공격을
할 수가 있는 겁니다.
또 격군들이 좀 힘들 테지만,
가덕도는 놔둔 채 부산 앞바다를
꽉 틀어막고
폭격질만 해대는 수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제도는 일본땅!
이러니까 이순신은 도대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선조한테 개긴 겁니다.
개기다가 뼈가 으스러져라
곤장 맞고 백의종군.
도바리 전문가들이 이런 짓은 또 잘하는 법.
정신 차리고들 살어!
사관학교 소령!
이런 설명은 하나도 안 하고 옛날 책에 있는 걸 인용만 했지?
여기가 핵심이란 말이다, 짜샤.
박사 학위 논문 심사했던 조센징들, 다들 대가리 박어!
뭐가 어떻게 됐길래
이순신은 한산도 앉아서 시름만 궁시렁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했는가?
이걸 제대로 설명해야 되는 거 아니야?
논문 심사했다는 조센징들, 뭔 말인지 알아먹기나 하고 학위를 준 건가?
이 새끼들 말이야, 이순신이 앉았던 주리틀에 쑤셔박아야 할 조센징들.
위에서 나는
안골포를 공격했다면, 2-3만 명 정도는 죽어야
점령했을 거라고 했습니다.
왜 그런가?
일본성 = 왜성!
천하무적!
일본의 에도 성!
아주 멋있지요?
아래 사진은 관광 사이트인 모양인데,
아래를 클릭해서
왼쪽에 있는 pan을 누르면 빙빙 돌아가면서
에도성의 바깥 모양새를 감상할 수가 있습니다.
역시 한때 시베리아를 점령하겠다고
껄떡거리던 놈들이라서 다르긴 달라요.
한편,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에서는.
무슨 절간 같다고 썼어요.
경복궁 말이야.
읽어보란 말이야, 조센징.
경복궁 = 절간, 서양 사람 눈에 비친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
비예스티의 그림책에도 에도성이 나오지요?
나는 이게 이렇게 대단한 건지 몰랐네.
이 에도성의 가치를 얘기한 사람은 은퇴하고
고고학에 매달린 노인네.
임진왜란 때 만든 왜성들은 모두가 에도성의 축소판.
예스 24를 클릭하면 미리보기가 나옵니다.
여기에서 표지그림.
이 표지그림이 바로 부산포에 있었던 부산왜성!
이 부산왜성의 전신은 바로 부산진성.
이 그림에서 저 위에 보이는 산이 바로 부산의 증산.
이 증산에다가 쌓은 성이 바로 부산왜성!
돌멩이는 부산진성.
부산진성에 있던 돌멩이를 다 뜯어다가 증산에 새로운 성을 쌓은 겁니다.
요건 부산에 있는 자성대.
원래는 자성대라는 작은 성이 있었다는데,
이걸 뜯어다가 새로 만든 성 자성대왜성!
위의 사진은 지하철 만들고 하면서 요즘에 세운 건가 봅니다.
부산진성의 새끼 성 자성대성.
부산왜성의 새끼 성 자성대왜성!
두 성이 원래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모양인데,
일본놈들이 돌멩이를 뜯어다가 일본식으로 새로 쌓은 겁니다.
새로 쌓을 때 기본 모형은 에도성.
이 그림을 보면 맨 꼭대기에 천수각이라고 있습니다.
에도성에도 저런 게 있지요?
에도성은 5층이야 6층이야?
천수각은 왜군 대장이 사는 곳이고,
저 꼭대기에는 보초병이 있답니다.
사방팔방으로 잘 보이는 높은 곳에 성을 쌓고
그 위에 천수각을 세웠으니
올라가서 보면 모든 것이 잘 보이는 겁니다.
그 아래는 땅을 평평하게 다듬고 함부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성을 쌓습니다.
성 바로 아래에는 병사들의 주둔지가 있고,
여기를 지나서 포구로 내려오면 포구에는
작은 <외성>이 또
있습니다.
적의 배가 쳐들어오면 여기에서 조총이나
대포를 쏘는 겁니다.
또 적이 상륙작전을 펼친다면,
바로 옆에 있는 자성대왜성에다가 연락해서
지원군을 보내라고 하는 겁니다.
이런 성 하나를 점령하려면,
2-3만 명은 죽어야 할 거 같어.
이 왜성이란 3중으로 방어벽을 만든 거랍니다.
천수각을 중심으로 돌로 쌓은 성이 있고,
이 성에는 구멍들이 있어서
조총을 막 쏴댈 수가 있답니다.
이 조총에 맞고 조선과 명나라 군사들이
엄청 죽었던 모양인데,
울산왜성 무대 앞으로!
성벽으로 기어 올라가거나 또는 말탄 애들이 조명 연합군.
성에서 방어를 하는 애들이 일본군.
조총 쏘는 구멍은 어디 있노?
아무튼 이 성을 무진장 공격했지만,
점령하지는 못했습니다.
여봐, 조선과 명나라 군사들이 바글바글하지요?
이렇게 바글바글한 애들이 성 하나를 점령하지 못하고 죽기만 엄청 죽었어요.
더 한심한 건 울산왜성은 서생포왜성의 새끼성.
요게 본성인 서생포왜성.
울산 왜성은 이걸 지원하라고 만든 작은 성.
그 작은 성 하나도 점령 못하고
죽기만 엄청 죽은 겁니다.
내 짐작이지만, 왜성 하나를 점령하려면
2-3만 명은 죽어야 한다.
또는 대포의 파괴력이 엄청날 경우에는
대포로 성벽을 부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시 조선의 대포란 성벽을
부술 정도는 아니었고 해서
성벽으로 기어 올라가서 칼쌈 하는 수밖에
없는 겁니다.
기어 올라가기 전에는 조총에 맞고
엄청 죽는 겁니다.
중요한 건 돌로 쌓은 성벽에 도달하기 전에
나무와 흙으로 쌓은 성벽을 돌파해야 한다는 점.
왜성은 3중 구조, 왜성은 3중 구조!
이 3중 구조 중에서 두 벽을 뚫어야만
마지막 남은 돌벽에 도달하는 겁니다.
돌벽에 가기 전에는 해자!
다시 한 번 일본 에도성.
성벽이 있는 곳에는 시커멓게 칠한 곳이 보이지요?
여기가 해자.
영어로는 moat.
저 시커먼 게 다 물이라는 말입니다.
푸른색 물이 보이지요?
이게 바로 해자.
해자를 건널 때에는 다리로!
에도성을 봐도 다리가 있어요.
에도성의 천수각을 중심으로 보면,
해자가 두 번 둘러쳐져 있습니다.
성벽도 두 번.
이 두 번을 다 뚫고 지나가야만
왜장을 만나서 칼쌈을 한 번
신청할 수가 있는 건데,
이 돌성을 만나려면 목책과 토성 같은 걸
다 거쳐야 한다는 말씀.
에도성은 거의 이 패턴으로 만든 거지요?
성벽과 성벽 사이에는 해자.
대포는 없다 치고,
이걸 어떻게 뚫을 거야?
몇 명이 죽어야 저런 성을
점령할 수가 있을 거 같나?
원균이, 덧셈 뺄셈 계산이 좀 빠져 안 빠져?
임진왜란 때 만든 왜성들은 에도성보다는
규모가 다 작습니다.
하지만 기본 구조는 에도성이랑
똑같답니다.
다만 지형에 따라서 조금씩은
변화를 주기도 합니다.
강물을 끌어들여서
해자를 만든 것도 있고,
바닷물을 끌어들인 것도 있답니다.
일본성 왜성!
기본 구조는 중세 유럽의 성이랑
같다고 보면 됩니다.
가장 높은 곳에 만든 천수각 = Keep.
이 천수각에 도달해서
왜장이랑 일합을 겨루고 싶다면
세 겹의 성을 뚫고 12군데나 되는 문을
통과해야 한답니다.
문이 12개라니까
완전 미로처럼 만든 모양이라.
이 천수각은 보이기만 잘 보이고,
여기로 쳐들어가다 보면
애들 다 죽게 돼 있습니다.
Keep에 대해서는 일본 놈이
아주 자세하게 쓴 책이 있지요?
이렇게 만든 일본성 = 왜성!
비리비리 조선성이랑은 완전히 달라요.
조선성은 한 겹짜리.
게다가 조총이 없었으니까
조총 쏘는 구멍도 없어요.
자신들의 자랑인 대포를 설치할
생각들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한 겹짜리 비리비리 조선성을
뜯어다가 초강력 왜성을 쌓는다!
여기에는 조선 백성들이
수만 명씩 동원됩니다.
이거 죽여야 돼 살려야 돼?
"애매합니다!"
왜성은 모두 28개.
임진왜란 동안에 전투로 빼앗은
왜성은 단 0개.
단 한 개도 뺏지 못했습니다.
전투 성과는 이렇고, 꼬마작가 추산 전사자는 왜
성 한 개에 2-3만 명.
다만 <본격 왜성>과 새끼성을
한 개로 친다면,
뺏어야 할 성은 모두 14개.
14개에다가 2-3만 명씩 곱하면,
한 30만에서 40만 명쯤 죽어야
이 성들을 다 뺏을 수가 있었던
일.
조선은 이런 군사력도 정신력도 없던 나라지요?
이런 왜성들이 거제도와 가덕도 곳곳에
만들어져 있었던 겁니다.
이순신은 이걸 아니까 시름만 골골 했던 것인데,
실제로 그는 왜성을 직접 공격도 해봐서 잘 알 겁니다.
또 수군에는 정찰병들이 아주 많았어요.
그러니까 왜성을 어떻게 쌓고 있었던 건지도
다 보고를 받았을 겁니다.
해서 왜성이란 게 얼마나 단단한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사태가 이런데, 사관학교 소령이라는 잡것.
왜성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놓고는 원균이 이렇게 떠들었고,
비변사는 이렇게 받아쳤다고
인용만 줄줄이 해댄 겁니다.
대가리 박어야 할 거 같어 안 같어?
한국 역사에서는 38선 논의가 세 번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한국사를 그렇게 배웠어도 이런 건 몰랐지.
배운 거라곤 그저 북한 공산 괴뢰도당.
이러다가 50대에는 집단 치매 걸려서
행복시대에 동참하고 그러는
거지요?
제 1차 38선 논의 - 임진왜란 때.
제 2차 38선 논의 - 러일 전쟁 전.
제 3차 38선 논의 - 2차 대전 직후 소련과 미국.
이게 다 힙쭈구리 이씨 놈들이 다스리던 시대이고,
그 시대랑 연관된
겁니다.
1904-5년 러일 전쟁 전에
러시아는 일본이랑 싸우기가 겁나니까
38선을 기준으로 양분하자는 제의를 합니다.
하지만 일본의 욕심은 한반도를 거쳐 만주를 지나
중국에다가
시베리아까지.
다만 아직은 힘이 약하다는 것 때문에
38선 제의를 받아치기는
해줍니다.
한반도는 몽땅 넘겨라!
일본의 이런 반격을 받고 러시아는 고민을
좀 하다가 없던 일로
합니다.
압록강-두만강을 국경선으로 했을 때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