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란 나라는 성리학으로 시작해서 성리학으로 망했고 성리학은 조선과 명나라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이론적 역할을 했더랬죠.
사대는 조선왕조 이전에도 있었다지만 조선에서는 학문자체로서 그 합리성을 제공하였고 후대에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버렸습니다.
성리학이란 학문이 나오므로써 사대를 추구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조선이란 나라가 처해있는 현실이 그러했기에 성리학을 받아들였는지 마치 달걀이 먼저인가 닭이 먼저인가의 논쟁과도 같은 그런 얘기지만 조선이란 나라는 그 틀에서 망할 때까지도 헤어나오지 못 하였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이나 사회주의 혁명이나 서구에서 일어난 진보적 사건을 보면 그러한 진보적 사건을 막는 보수적 흐름은 있었으나 그러한 보수적 왕이나 귀족들은 그런 흐름을 적정하게 맞춰주는 역할을 하고 다음 세대에 그 바통을 넘겼죠.
조선이 일본에 망한 것은 한국의 역사에 있어 그런 흐름을 가속화시키게 됩니다. 이 부분이 상당히 애매한 것이 자칫하면 친일사학 쪽으로 흐를 수 있고 그렇게 비쳐질 위험이 크다는 거죠. 조선왕조가 망했기에 왕조도 사라지고 왕정사상 역시 무너졌으며 성리학적 사고 역시 폐기처분 되었기에 일본이 조선을 합병한 것이 그러한 역할을 하게 된거죠. 만약 조선왕조가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생각을 해본다면 단기간에 왕정이 폐지되고 왕정사상이 무너졌으리라 생각하기 힘들다는거죠.
흔히 서구외의 국가에서 왜 우리는 근대화를 자체적으로 달성하지 못 했나 마르크스의 사회발전단계에서 나타나는 단계가 존재하지 못 했나를 염려하지만 애당초 출발하는 틀 자체가 다른 세계에서 동일한 발전단계를 일률적으로 생각하기 힘듭니다. 다만 역사의 흐름상 무엇이 보다 진보적인가를 생각한다면 과거의 유물을 답습하고 있는건 아닌가를 고민해야 하고 보다 나은 사회로의 발전방향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하죠.
한국사를 접할 때 이러한 관점을 제시하지 않고 본다면 식민사관에서 말하는 자학적 사관에 빠지기 쉬울 수 있고, 단순히 이러한 사건이 일어났더라 부정적인걸 억지로든 긍정적으로 서술한다거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한다더라 등의 경향이 나타남을 볼 수 있습니다. 역사서술에 있어 이러한 관점을 제시하고 보는 것이 역사를 접하는 자에게 우선적으로 제공되고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