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빨이라고 폄하하는데 기본역량이 안되면 운빨할애비가와도 안되죠 국제정세의 유리함을 기회삼아 신속하게 정비해서 열강수준으로 올라간것도 일본의 역량입니다
일본은 스스로를 지켰습니다 일본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일본은 적극적으로 또 지혜롭게 대처했고 스스로를 지키고 스스로를 강하게 성장시켰습니다 운빨이 좋았다는 말은 일본스스로가 얼마나 스스로를 위해 노력하고 노력했는것을 간과한 판단이라 생각합니다
일본의 근대화가 일본에게 성공이었다는 님의 주장에 굳이 부정하고 싶진 않지만 아시아의 타국들을 짓밟고 올라섰다는걸 덧붙이고 싶네요.
일본의 성공적인 근대화를 주장하면서 굳이 매번 조선과 한국을 언급하는 님의 심리가 이해가 가진 않지만, 조선은 청나라의 속국으로서의 유리함 운운함 하시는걸 보면 일본이 변방의 약소국일때 한반도가 대륙으로부터의 침략을 막아준것에 대해 어지간히 고마움을 느끼셨었나 봅니다.
몽골 침략땐 일본을 못지켜주고 '무쿠리 고쿠리' 하며 주문외우며 벌벌 떨게 해드려 죄송스런 마음 갖고 있습니다만.
어떡하겠어요. 고쿠리도 무쿠리와의 전쟁에 힘들어 죽겠는데 예전의 속국을 돌볼 여력이 없었답니다. 죄송해요.
그 와중에 태풍때문에 나라 보전했다고 카미카제라 부르며 온갖 잡신을 섬기는 일본을 보면 안타까움을 금할수 없네요.
그러니 본국에 대한 미움버리고 다시 예전의 형님품으로 돌아오시는게 일본의 약탈, 강간 습성도 버리고 좋지 않나요. 조선이 일본의 도적 습성을 교화시키려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름답니다. 도적 태생은 숨길수 없는지 별 효과는 없었지만요.
조선은 우선 내부의 당파싸움이 극심했고 그 와중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외세의 침입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던 터라 민생이 매우 불안전했습니다. 때문에 내정을 수습하는 것이 조선이 당면한 문제였지 서양 문물을 들여오느냐 마느냐가 문제가 아니었죠.
게다가 한반도 자체가 일본열도에 가려져서 지리적으로 매우 고립되어 있는지라 서양배가 들어올 기회가 매우 적었습니다. 서양인들과의 교류가 없다시피하니 근대화는 둘째치고 서양 문물에 대한 관심자체도 매우 적을 수밖에요. 지리적으로 조선은 애초부터 기회가 매우 적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일본은 조선과는 다르게 서양 문물을 그대로 받아들였냐 하면, 아닙니다. 임진왜란때 포루투갈에게서 받은 아퀘버스(조총, 또는 뎃포)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18세기에 보신전쟁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일본도 조선처럼 쇄국정책을 하던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남쪽이나 동쪽으로 망망대해가 펼쳐져있는 지리적 특성은 일본에 대한 서양국가들의 접근성이 아주 좋았고, 때문에 열강으로부터 지속적인 압박을 받아옵니다. 상황이 이러니 일본내에서는 서양을 받아들이자는 쪽과 받아들이지 말자는 쪽이 대립하게 되는데 이게 나중에는 천황파와 쇼군파로 나뉘어 싸우게 되지요. 그것이 바로 보신전쟁이고요.
이 과정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일본에 무기와 용병을 대주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일본은 점점 근대화가 되어가죠.
그리고 보신전쟁 이후의 메이지 유신은 일본 근대화의 정점을 찍게 되는거고요.
일본이 근대화 과정을 살펴보면 처음부터 일본이 스스로 원해서했다기 보다는 마지못해 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의 근대화는 딱히 역량이니 뭐니 일본이 우월했다기 보다는 그저 지리적으로 자리를 잘 잡아서 맞이한 운명일 뿐이라고 봐야겠죠.
만약 일본의 경우처럼 조선도 서양국가들로부터 압박을 심하게 받았더라면 근대화가 빨리 이루어졌겠죠. 붕당정치라든지 민생이라든지의 핑계때문에 외국문물에 관심없다고 하더라도 제국주의에 혈안이 되어있는 열강들은 일본이든 조선이든 가만두지 않았을테니까요.
운이란것도 결국엔 스스로 준비한자한테 오는겁니다.
밑에 글처럼 일본의 내전시기에 때마침 서구 열강이 일본에 시선을 돌리지 못했던 정황들을 설명했잖습니까?
만약 그 시기까지 메이지유신 자체도 시행되지 않았었다면?
소위 '운빨' 이라고 표현하는 그 황금같은 타이밍이란건 결국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거죠.
신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듯이 운이란것도 그런 겁니다.